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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2 19:38:43

부호(상나라)


1. 개요2. 생애3. 무덤

1. 개요

婦好

상나라 22대 왕 무정의 왕비 중 한 명. 시호는 모신.

2. 생애

사기에는 기록이 없지만 부호에 대한 갑골문만 해도 수백 점에 이를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왕에게 공물을 바치고 각종 희생제례, 제의를 집전하는 여제사장이었다. 여장부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갑골문에 의하면 이민족등에 의해 수도권 2곳이 피해를 입자 1만 3000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귀방(鬼方)과 토방(土方), 강방(羌方), 파방(巴方) 등 주변국들을 정벌하는데 성공했다.[1][2]

하지만 이로 인해 몸이 망가지고 출산을 마친 후에 여러 지병에 시달리다가 결국 기원전 1200년에 사망했다.

3. 무덤

부호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은허에서 발굴된 부호릉인데, 거의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고 내부에서 온갖 귀중한 유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부호릉은 현재까지 유일하게 온전하게 보존된 상나라 왕릉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주나라가 상나라를 정벌한 뒤에 은허에 있던 상나라 역대 왕릉 구역을 철저하게 훼손하여 없애버렸는데, 부호의 능은 상나라의 왕릉 구역에 위치하지 않았고, 부호의 친정 가문의 묘역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부호릉에서 발견된 청동 기물의 명문과 함께 발견된 다양한 화폐, 옥, 무기, 기타 부장품들을 볼 때 부호는 여성이면서도 대군을 이끈 엄청난 사회, 군사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게 밝혀졌다. 무정 시기의 상나라 갑골문에도 부호가 제후를 접견하고 주변국을 정벌하는 등의 내용이 나와 있어, 이러한 면모가 교차 검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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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대군 중에서는 최소 600명의 여성들도 있었다고한다. [2] 포로가 된 방족들은 인신공양에 동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