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보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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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약사여래입상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 |
대한민국 보물 제329호 |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扶餘 軍守里 石造如來坐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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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석조 / 불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연도 | 1963년 1월 21일 |
제작시기 | 삼국시대 |
1. 개요
扶餘 軍守里 石造如來坐像.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삼국시대 백제에서 만들어진, 납석(蠟石=곱돌)제 석조 좌 불상으로 석가모니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1936년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 위치한 부여 군수리 사지에서 조선고적연구회의 일본인 고고학자 이시다 모사쿠(石田茂作 1894-1977)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뤄지던 중에 발견되었으며, 이와 함께 '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도 출토됐다.
부여 군수리 사지는 문헌기록에 전혀 등장하는 바가 없고, 내역도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발굴 조사에서도 절에 관한 정보를 유추할 만한 별다른 유물도 나온 것이 없고 본 불상에도 명문 같은 것이 전혀 없어서 정확히 언제쯤 만들어진 불상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백제가 수도를 공주에서 부여로 옮기고 불교를 크게 일으키던 성왕 때에 만들어진 사찰일 것으로 보여서, 본 불상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1]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백제 시대에 만들어졌지만, 군수리 사지가 폐사된 이후 계속 땅속에 파묻힌 채 보존되어 있어서인지 불상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보존 상태가 아주 양호하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1963년에 보물 제329호로 지정되었으며,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국립중앙박물관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설명판 |
부처의 머리에는 위로는 마치 상투를 튼 것 같은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3] 부처의 얼굴은 통통하게 살이 올라 사각진 형태이며 앞으로 살짝 숙였고, 표정은 양 눈을 감고 만면에 가득히 미소를 띠고 있어서 온화하고 따스한 인상을 주는데, 완숙한 조형 솜씨가 드러난다.
미술사학자 김원용은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을 평하면서 본 불상의 인상에 대한 코멘트를 다음과 같이 남긴 바 있다.
백제 불상의 얼굴은 현실적이며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미소 또한 현세적이다. 군수리 출토 여래좌상은 인자한 아버지가 머리를 앞으로 내밀고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라도 듣고 앉은 것 같은 인간미 흐르는 얼굴과 자세를 하고 있어서 백제 불상의 안락하고 현세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 중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작년(1959)에 발견된 서산 마애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 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 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세대ʼ 1960년 5월호[4]
‘세대ʼ 1960년 5월호[4]
부처가 입고 있는 옷인 법의(法衣)는 둥근 어깨에서부터 시작해 부드럽게 쭉 늘어져서 바닥의 대좌도 거의 덮었는데, 이와 같은 모습을 상현좌(裳懸座)라고 한다.[5] 또한 법의로 인해 부처의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데 이는 초기 불상들에서 많이 보이는 형태라고 한다.[6]
불상의 뒷편은 평평하게 깎아놔서 따로 특별하게 조형이 된 것은 없다. 다만 대좌 밑 부분에 촉이 하나 삐죽 튀어나와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본래는 이 촉을 작은 감실 같은 데에 꽂아서 불상을 봉안했을 것으로 추정한다.[7] 따라서 본 불상은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지 얼마되지 않은 초창기의 승려들이 참선 수행을 할 때 썼을 것으로 보인다.[8]
2023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모습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의 제작 국가나 제작 연대는 불명확하지만, 백제의 강역이었던 부여의 절터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백제의 불상으로 추정하며,[10] 불상이 취하고 있는 선정인은 주로 5∼6세기 경에 국한되어 만들어졌고,[11] 군수리 사지가 세워졌을 시기가 성왕의 통치기인 6세기 경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본 불상 역시 이 시기인 6세기 전반 경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본다.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은 출토지가 명확하고 불상의 형태가 온전하여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표현 기법 등으로 제작 시기를 6세기 전반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백제 특유의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가 잘 남아 있는 불상이라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329호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 한국사전연구사 한국불교미술대전: 군수리사지 활석불좌상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군수리 출토 납석제여래좌상
- 네이버캐스트 - 문화유산 알아보기: 부여 군수리 절터 발견 석조여래좌상
- 두산백과: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4. 보물 제329호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扶餘 軍守里 石造如來坐像)는 1936년에 충청남도 부여 군수리의 백제 절터를 조사할 때 발견된 불상으로, 곱돌로 만들었으며 4각형의 높은 대좌 위에 앉아 있는 백제 특유의 불상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작은 머리(육계)가 솟아 있다. 네모난 얼굴은 두 볼에 웃음이 가득하고, 지그시 감은 눈·넓은 코·미소띤 입 등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꺼워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어깨에서 무릎 위까지 길게 흘러내린 옷자락은 4각형의 대좌(臺座)를 거의 덮고 있다. 이 옷자락의 표현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이어서 사실성이 넘쳐난다. 가슴 부근에서는 U자형의 옷주름을 표현하였고,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좌우대칭의 Ω형 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두터운 옷자락에 싸여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점, 좁아진 어깨, 두 손을 배 앞에서 모아 깍지를 낀 단아한 손모양 등에서 옛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불상은 형식과 자세로 보아 4, 5세기 중국 불상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얼굴 모습이나 신체의 표현 등 세부모습에서 백제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완숙한 6세기 중엽 백제불상의 특징을 갖고 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작은 머리(육계)가 솟아 있다. 네모난 얼굴은 두 볼에 웃음이 가득하고, 지그시 감은 눈·넓은 코·미소띤 입 등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두꺼워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어깨에서 무릎 위까지 길게 흘러내린 옷자락은 4각형의 대좌(臺座)를 거의 덮고 있다. 이 옷자락의 표현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이어서 사실성이 넘쳐난다. 가슴 부근에서는 U자형의 옷주름을 표현하였고, 무릎 밑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은 좌우대칭의 Ω형 주름을 나타내고 있다.
두터운 옷자락에 싸여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점, 좁아진 어깨, 두 손을 배 앞에서 모아 깍지를 낀 단아한 손모양 등에서 옛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불상은 형식과 자세로 보아 4, 5세기 중국 불상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얼굴 모습이나 신체의 표현 등 세부모습에서 백제화된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완숙한 6세기 중엽 백제불상의 특징을 갖고 있다.
[1]
출처:
한국 미의 재발견 불교 조각: 군수리 출토 납석제여래좌상
[2]
禪定印: 참선하는 모습의 손 자세
[3]
육계는 무견정상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을 지칭한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 육계4
[4]
출처:
굿모닝 충청 2014년 12월 3일자 기사 - 충남의 옛 숨결 백제의 미소로 불리는 강댕이 인바위 산신령에서 재인용
[5]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6]
출처:
한국 미의 재발견 불교 조각 - 군수리 출토 납석제여래좌상
[7]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8]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9]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네이버캐스트 문화유산 알아보기 - 부여 군수리 절터 발견 석조여래좌상,
한국 미의 재발견 불교 조각 - 군수리 출토 납석제여래좌상
[10]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부여 군수리 석조여래좌상
[11]
출처:
한국 미의 재발견 불교 조각 - 군수리 출토 납석제여래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