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박태원의 1936년작 소설. 놀랍게도 단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등과 함께 박태원의 실험 정신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소설에 적힌 전체 글자 수는 무려 5558자다. 200자 원고지로 옮기면 40매 분량이라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분량이 비슷하기 때문에, 단 한 문장일지언정 실제로는 생각보다 길이가 긴 소설이다.1930년대 금전 문제에 쪼들리던 예술인의 좌절감을 나타낸 작품으로, 제약이 큰 구성임에도 그야말로 깔끔하게 소설 한 편을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는다. 내용은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다가 찻집을 차리게 되었으나 처음에는 이익을 보는 듯하다가 후에 가서는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직원을 내보내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보다 못한 수경 선생이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직원과 결혼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자 주인공은 그럭저럭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수경 선생의 집으로 가보니 정작 수경 선생은 아내에게 두들겨 맞고 있었다는 내용이다.
예술가 출신의 안 팔리는 찻집 주인이라는 주인공의 설정이 박태원과 매우 절친한 관계였던 시인 이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이 소설 속의 주인공 '그'는 박태원의 친구였던 이상을 모델로 만든 인물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도 이상은 '제비'라는 이름의 카페를 차린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주인공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던 소설가 수경 선생은 이상과 박태원 본인보다 연상의 친구였던 소설가 이태준을 모델로 만든 인물이라는 설이 있다.
KBS 스펀지 13회 방송분에서 소개되어 별 5개를 받았는데, 스펀지에서 이 소설이 알려졌을 당시 김경란 아나운서가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을 때 무려 21분이나 걸렸다. 참고로 소설 전체가 한 문장이라 이 전문을 세 줄 요약 생성기에 넣고 요약하면 세 줄 요약이 불가능해 원문 그대로 출력된다.
외국 소설 가운데서도 방란장 주인과 비슷한 소설이 있다. 소설 전체가 한 문장은 아니지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단어 823개, 쉼표 93개, 세미콜론 51개, 대시 3개로 이루어진 긴 문장이 있고, 영화의 시작에서 끝까지 롱테이크로 일관하는 러시아 방주라는 영화 또한 공통점이 있다.
2. 등장인물
- 그: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작중 배경인 카페 방란장의 주인으로 본업은 화가이다. 장삿속도 없고 잇속도 밝지 않은 인물인데 동료 예술가들이 편하게 이용할 구락부로나 쓸까 하는 마음에 300원 돈으로 카페를 차렸다. 첫 달엔 본인의 예상과 달리 장사가 잘 되었으나 그 이후부터는 손님이 뜸해졌으며 설상가상으로 옆 동네에 새로운 카페가 생기면서 여종업원 월급도 못 치를 정도로 가난에 쪼들리게 된다. 모티브가 된 인물은 박태원의 친구며 화가이기도 했던 비운의 천재 작가 이상인 듯하다.
- 미사에: 작중 배경인 방란장에서 근무하는 여종업원이다. 시골 출신이고 얼굴은 그닥이라고 한다. 본래는 수경 선생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였으나 명색이 다방에 여자 종업원 하나는 있어야지 않겠냐는 수경 선생의 권유에 따라 10원 월급을 주기로 하고 데려왔다. 순박하다 못해 둔하기까지 한 여성으로 처음 몇 달만 월급을 제대로 받았고 그 이후로는 2년 가까이 월급이 아예 체불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어떤 불평불만도 한 적 없이 미련할 정도로 방란장에 계속 출근하여 주인공을 미안하게 한다.
- 수경 선생: 직업은 소설가이며 '그'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친구이다.[1] 동료 예술가들에 비해선 좀 형편이 나은 듯 보이며 집에서 기르던 난초를 선물하며 방란장이란 상호를 지어주었다.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며 미사에의 월급도 못 치러주는 '그'의 하소연을 듣고는 차라리 그럼 미사에랑 결혼을 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 역시 어쩔 수 없이 벌이가 시원찮은 예술가라 그런지 아내에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인다. 모티브가 된 인물은 이상과 박태원보다 연상의 친구였던 소설가 이태준인 듯하다.
- 자작, 만성: '그'가 친하게 지내는 동료 예술가들이다. 이 자작이란 인물의 이름은 작위 자작과 한자가 같은데 아마도 실제 귀족이라기보다는 필명이 자작인 듯하다. 주인공이 카페를 차리자 자작은 축음기와 20여 장의 흑반 레코드를 기증했고 만성은 7~8개의 재떨이를 기증하며 형편이 어려운 주인공을 돕는다. 하지만 이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세상 물정에 어두운 예술가들이라 그런지 경영난에 시달리는 주인공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못 주고 아무 도움 안 되는 조언을 하는데 그친다.
3. 전문
그야 주인의 직업이 직업이라 결코 팔리지 않는 유화(油畵) 나부랭이는 제법 넉넉하게 사면 벽에 가 걸려 있어도, 소위 실내장식이라고는 오직 그뿐으로, 원래가 삼백 원 남짓한 돈을 가지고 시작한 장사라, 무어 찻집답게 꾸며 보려야 꾸며질 턱도 없이, 다탁과 의자와 그러한 다방에서의 필수품들가지도 전혀 소박한 것을 취지로, 축음기는 자작(子爵)이 기부한 포터블을 사용하기로 하는 등 모든 것이 그러하였으므로, 물론 그러한 간략한 장치로 무어 어떻게 한밑천 잡아 보겠다든지 하는 그러한 엉뚱한 생각은 꿈에도 먹어 본 일 없었고, 한 동리에 사는 같은 불우한 예술가들에게도, 장사로 하느니보다는 오히려 우리들의 구락부와 같이 이용하고 싶다고 그러한 말을 하여, 그들을 감격시켜 주었던 것이요, 그렇기에 자작은 자기가 수삼 년간 애용하여 온 수제형 축음기와 이십여 매의 흑반 레코드를 자진하여 이 다방에 기부하였던 것이요, 만성(晩成)이는 또 만성이대로 어디서 어떻게 수집하여 두었던 것인지 대소 칠팔 개의 재떨이를 들고 왔던 것이요, 또 한편 수경(水鏡) 선생은 아직도 이 다방의 옥호가 결정되지 않았을 때, 그의 조그만 정원에서 한 분의 난초를 손수 운반하여 가지고 와서 다점의 이름은 방란장(芳蘭莊)이라든 그러한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의하여 주는 등, 이 다방의 탄생에는 그 이면에 이러한 유의 가화미담이 적지 않으나, 그러한 것이야 어떻든, 미술가는 별로 이 장사에 아무러한 자신도 있을 턱 없이, 그저 차 한 잔 팔아 담배 한 갑 사먹고 술 한 잔 팔아 쌀 한 되 사먹고 어떻게 그렇게라도 지낼 수 있었으면 하고, 일종 비장한 생각으로 개업을 하였던 것이, 바로 개업한 그날부터 그것은 참말 너무나 뜻밖의 일로, 낮으로 밤으로 찾아드는 객들이 결코 적지 않아, 대체 이곳의 주민들은 방란장의 무엇을 보고 반해서들 오는 것인지, 아무렇기로서니 그 조금도 어여쁘지 않은, 그리고 또 품도 애교도 없는 미사에 하나를 보러 온다든 그러할 리가 만무하여, 참말 그들의 속을 알 수 없다고 가난한 예술가들은 새삼스러이 너무나 간소한 점 안을 둘러보기조차 하였던 것이나, 그것은 어쩌면 자작이 지적하였던 바와 같이, 이 지나치게 소박한 다방의 분위기가 도리어 적지않이 이 시외 주민들의 호상(好尙)에 맞았는지도 모르겠다고, 그것도 분명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모두들 그럴 법하게 고개를 끄떡이었고, 하여튼 무엇 때문에 객이 이 다방을 찾아오는 것이든, 한 사람이라도 더 차를 팔아 주는 데는 아무러한 불평이나 불만이 있을 턱 없이, 만약 참으로 이 동리의 주민들이 질박한 기풍을 애호하는 것이라면 결코 넉넉하지 못한 주머니를 털어서 상보 한 가지라도 장만한다든 할 필요는 없다고, 그래 화가는 첫달에 남은 돈으로 전부터 은근히 생각하엿던 것과 같이 다탁(茶卓)에 올려놓을 몇 개의 전기 스탠드를 산다든 그러지는 않고, 그날 밤은 다 늦게 가난한 친구들을 이끌어 신주쿠로 스키야키를 먹으러 갔던 것이나, 그것도 이제 와서 생각하여 보면 역시 한때의 덧없는 꿈으로, 어이 된 까닭인지 그 다음달 들어서부터는 날이 지날수록에 영업 성적이 점점 불량하여, 장사에 익숙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새삼스러이 당황하여 가지고, 어쩌면 이 근처에 끽다점이라고는 없다가, 하나 처음으로 생긴 통에 이를테면, 일종 호기심에서들 찾아왔던 것이, 인제는 이미 물리고 만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만약 그러하다면 장차 어떻게 하여야 좋을지, 그들이 채 그 대책을 강구할 수 있기 전에, 그곳에서 상거(相距)가 이삼십 칸이나 그밖에 더 안되는 철로 둑 너머에가, 일금 일천칠백 원여를 들였다는 동업 ‘모나미’가 생기자 방란장이 받은 타격은 자못 큰 바가 있어, 그 뒤부터는 어떻게 한때의 농담이 그만 진담으로, 그것은 참말 한 개의 끽다점이기보다는 완연 몇 명 불우한 예술가들의 전용 구락부인 것과 같은 감이 없지 않으나, 그렇다고 돈 없는 몸으로서 모나미와 호화로움을 다툴 수는 없는 일이었고 그래 세상 일이란 결국 되는 대로밖에는 되지 않는 것이라고, 그대로 그래도 이래저래 끌어 온 것이 어언간 2년이나 되어, 속무(俗務)에 어두운 자작 같은 사람은, 하여튼 2년이나 그대로 어떻게 유지하여 온 것이 신통하다고 이제 그대로만 붙들고 앉았으면 당장 아무 일은 없을 것이라고, 그러한 말을 하기조차 하였던 것이나, 근래에 이르러서 이 다방에 빚쟁이들의 내방은 자못 빈번하여, 자기의 그 동안의 부채라는 것이, 자기 자신 막연하게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엄청나게 많은 금액이라는 것을 새삼스러이 깨닫고, 비로소 아연한 요즈음의 그는, 아무러한 낙천가로서도 어찌하는 수 없이, 곧잘 자리에 누워 있는 채, 혼자 속으로 모나미의 하루 수입이 평균 이십 원이나 그렇게는 되었던 것으로 미루어 사실일 것이나, 자기는 물론 그렇게 많은 수입을 바라는 것은 아니요, 더도 말고 하루에 오 원씩만 들어온 다면 삼오는 십오, 달에 일백오십 원만 있다면, 그야 물론 옹색은 한 대로, 그래도 어떻게 이대로 장사는 하여 가며, 자기와 미사에와 두 식구 입에 풀칠은 하겠구만서도, 아무리 한산한 시외이기로 그래도 명색이 다방이라 하여 놓고, 하루 매상고가 이삼 원이나 그밖에 더 안되니, 그걸 가지고 대체 무슨 수로 반년이나 밀린 집세며, 식료품점 기타에 갚을 빛이며, 거기다 전깃값에, 와사값(瓦斯값, 가스비)에, 또 미사에의 월급에, 하고, 그러한 것들을 모조리 속으로 꼽아 보노라면 다음은 으레 쓰디쓰게 다시는 입맛으로, 참말이지 아무러한 방도라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방란장의 젊은 주인은 저 모르게 엄숙한 표정을 지어도 보는 것이나, 그러면 방도는 대체 무슨 방돈고 하고, 늘 하는 모양으로 잠깐 동안은 숨도 쉬지 않고 물끄러미 천장만 쳐다보아도, 물론 이제 이르러 새삼스러이 머리에 떠오를 제법 방도라 할 방도가 있을 턱 없이, 문득 뜻하지 않고 눈앞에 아른거리는 온갖 빚쟁이들의 천속한 얼굴에, 그는 거의 순간에 눈살을 찌푸리고서, 누구보다도 제일에 그 집주인놈 아니꼬워 볼 수 없다고, 바로 어제도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남의 점에가 버티고 앉아, 무슨 수속을 하겠느니 어쩌느니 하고, 불손한 언사를 희롱하던 것이 생각나서, 무어 밤낮 밑지는 장사를 언제까지든 붙잡고 앉아 무어니무어니 할 것이 아니라, 이 기회에 아주 시원하게 찻집이고 무어고 모두 떠엎어 버리고서 내 알몸 하나만 들고 나선다면, 참말이지 만성이 말마따나, 하다못해 시나소바(중국식 국수)[2] 장수를 하기로서니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느냐고, 그는 거의 흥분이 되어 가지고 얼마 동안은 그러한 생각을 하기에 골몰이었으나, 사실은 말이 그렇지, 그 것도 역시 어려운 노릇이, 혹 자기 혼자라면 어떻게 그렇게라도 길을 찾는 수가 없지 않겠지만, 그러면 그렇게 한 그 뒤에, 돌아갈 집도, 부모도, 형제도, 무엇 하나 가지지 않은 미사에를 대체 자기는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것인고, 하고, 그러한 것에 생각이 미치면, 그는 그만 제풀에 풀이 죽어, 사실이지 이 미사에 문제를 해결하여 놓은 뒤가 아니면, 아무러한 방도도 자기에게는 결코 방도일 수가 없다고,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만한 한숨조차 그의 입술을 새어 나오는 것도 결코 까닭없는 일이 아닌 것으로, 원래가 수경 선생집 하녀로 있던 미사에를, 어차피 다방에 젊은 여자가 한 명은 필요하였고, 기왕 쓰는 바에는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역시 지내 보아 착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이 좋을 게라고, 그래 사실은 어느 모로 뜯어보든 다방의 여급으로는 적당치 않은 것을, 그 늙은 벗이 천거하는 그대로, 십 원 월급을 정하고 데려다 둔 것이 정작 다방의 사무라는 것은 분망치 않아, 그렇다고 주인 편에서는 아무러한 암시도 한 일은 없었던 것을, 주부도, 하녀도, 있지 않은 집안에, 어느 틈엔가, 저 혼자서 모든 소임을 도맡아 가지고, 아직 독신인 젊은 주인의 신변을 정성껏 돌보아 주는 데는, 정말 미안스러운 일이라고도, 또 고마운 일이라고도, 마음 속에 참말 감사는 하면서도, 지나치게 가난한 몸에 뜻 같이 안 되는 장사는,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어, 그래 정한 월급을 세 갑절 하여 미사에의 노역에 사례하리라고는 오직 그의 마음속에서뿐으로, 그도 그만두고 그나마 십 원씩이나 어쨋든 치러 준 것도 다방을 시작한 뒤 겨우 서너 달이나 그 동안만의 일이요, 그 뒤로는 그저 형편 되는 대로 혹 이 원도 집어 주고 또 혹 삼 원도 쥐어 주고, 그리고 나머지는 새 달에, 새 달에, 하고 온 것이, 그것도 어느 틈엔가 이 년이나 되고 보니, 그것들만 셈쳐 본다더라도 거의 이백 원 돈은 착실히 될 거이나,대체 아무리 순박한 시골 처녀라고는 하지만서도, 어떻게 생겨난 여자기에, 그래도 금전 문제는 부자지간에도 어떻다고 일러 오는 것을, 이제까지 그것을 입밖에 내어 단 한 번 말하여 보기는 커녕, 참말 마음속으로라도 언제 잠시 생각하여 보는 일조차 없는 듯싶어, 그저 한결같이 주인 한 사람만을 위하여 진심으로 일하는 것이, 젊은 예술가에게는 일종 송구스럽기조차 하여 언젠가는 이내 견디지 못하고 그에게 어디 다른 데 일자리를 구하여 볼 마음은 없느냐고, 그러면 자기도, 또 수경 선생도, 힘껏 주선은 하여 보겠노라고, 마주 대하여 앉아서도 거의 외면을 하다시피 하여 간신히 한 말을, 우직한 시골 색시는 어쩌면 자기에게 무슨 크나큰 잘못이라도 있어, 그래 주인의 눈에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어떻게 그렇게라도 잘못 알아들었던 것인지, 순간에 얼굴이 새빨개져 가지고, 원래 구변이라고는 없는 여자가, 금방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준비 아래, 한참을 더듬거리며,그저 뜻모를 사과를 하여, 경력 적은 화가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놓았으므로, 그래, 그는 다시 그러한 유의 말을 미사에 앞에서 꺼내어 보지 못하고, 생각 끝에 무슨 묘책이라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마침 목욕탕에서 그와 만났을 때, 그 일을 상세히 보고하고서, 나이 많은 이의 의견을 물었더니, 그는 또 어떻게 생각을 하고 하는 말인지, 무어니무어니 할 것이 아니라, 아주 이 기회에 둘이서 결혼을 하라고, 자기는 애초부터 그러한 것을 생각하였었고, 그리고 또 그것은 아름다운 인연에 틀림없다고, 만약 그기 직접 말을 꺼내는 것이 거북하기라도 하다면, 자기가 아주 이 길로라도 미사에를 만나 보고 작정을 하여 주마고, 혼자서 모든 일을 알아차렸다는 듯이 그렇게 한 바탕을 서두르는 통에, 젊은 미술가는 거의 소녀와 같이 얼굴조차 붉히고, 그것만은 한사하고 말리면서, 문득 어쩌면 수경 선생이 자기와 미사에와 사이에, 무슨 의혹이라도 가지고 그러는 것이나 아닐까 하고, 그러한 것에 새삼스러이 생각이 미치자, 그는 그제야 다 늦게 당황하여 가지고, 만약 인격이 원만한 수경 선생으로서도, 자기들에게 그러한 유의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라면, 동리의 경박한 무리들의 입에는, 어쩌면 이미 오래 전부터 별의별 소리가 모두 오르내렸을지도 모르겠다고, 또다시 얼굴이 귓바퀴가지 빨개졌던 것이나, 이제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설혹 그러한 말들이 생겨 났다더라도 그것은 어쩌는 수 없다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이, 사실 젊은 남녀만 단둘이 그렇게도 오랜 동안을 한집안에가 맞붙어 살아오면서 그들의 순결이 그래도 유지되었으리라고는, 그러한 것을 믿는 사람이 어쩌면 도리어 괴이할지도 모르나 역시 사실이란 어찌하는 수 없는 것으로 그것은 혹은 자기가 미사에에게 애정이라든, 욕정이라든,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기 전에, 우선 그렇게 쉽사리는 갚아질 듯싶지 않은 너무나 큰 부채를 그에게 졌던 까닭에 이미 그것만으로도 그를 대하는 때마다 마음 속의 짐은 무거워, 그래 무슨 다른 잡스러운 생각을 먹어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나, 그러한 것이야 사실 어떻든, 이제 이르러서는 설사 그에게 지불할 그 동안의 급료 전액으 준비가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을 치러 주었을 그뿐으루 어디로든 가라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았고, 또 미사에도 그러면 그러겠노라고, 선선히 나가 버릴 듯도 싶지 않아, 생각이 어떻게 이러한 곳에까지 미치니까, 다음은 필연적으로, 그러면 대체 이 여자는, 그 자신, 자기 장래에 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그것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고, 그는 그러한 것을 생각하여 보았으나, 아무래도 미사에에게는 그러한 방침이니, 계획이니, 하는 거이 전혀 없는 듯도 싶어, 그러한 것은 마치 자기의 주인이나 또는 수경 선생이 가르쳐 줄 것으로, 자기는 그들이 하라는 그대로 하여 가기만 하면 그만일 것같이 어째 꼭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라, 그렇게 되고 보니 이것은 바로 어디 마땅한 곳이라도 있어, 그의 혼처를 정하여 준다든 그러기라도 하지 않으면, 혹은 한평생을 자기가 데리고 지내지 않으면 안 될런지도 모르겠다고, 사태는 뜻밖으로 커지어 그는 얼마동안을 아연히 천장만 우러러보았던 것이나, 문득, 만약에 미사에로서 아무런 이의도 없는 것이라 하면, 무어 일을 어렵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주 이 기호에 둘이 결혼을 하여 버리는 것이 좋지나 않을까, 그래 가지고 새로이 자기으 나아갈 길을 개척한다든 하는 밖에는 아무 다른 도리가 없지나 낳을까 하고, 언젠가 목욕탕에서의 수경 선생 말이 생각나서, 그야 미사에는 오직 소학을 마쳤을 그뿐으로, 결코 총명하지도, 어여쁘지도 않았으나, 어쩌면 예술가에게는 도리어 그러한 여자가 아내로서 가장 적당한 것일지도 몰랐고, 남이야 어떻든간에 이 여자는 저어도 자기 한 사람을 능히 행복되게 하여 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그는 어느 틈엔가, 미사에가 가지고 있는 온갖 미덕을 속으로 외쳐 보았던 것이나, 하지만, 그러면 자기도 그를 또한 행복되게 하여 줄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그러한 것을 돌이켜 생각하여 보았을 때, 그는 새삼스러이 그렇게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자기 자신이 느껴졌고, 어제 왔던 집주인의 자못 강경하던 그 태도로 미루어, 어쩌면 내일로라도 집을 내어놓고, 갈 곳 없는 몸이 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그러한 자기가, 잠시라도 미사에와 결혼을 하느니, 그래 가지고 어쩌느니, 하고, 그러한 꿈 같은 생각을 하였던 것이, 스스로 어이없어 픽 자조에 가까운 웃음을 웃어 보고는, 어느 틈엔가 방안이 어두워 온 것에 새삼스러이 놀라, 그제야 자리를 떠나서 게으르게 아래로 내려와 보니, 점에는 미사에가 혼자 앉아 있을 뿐으로, 오늘은 밤에나 들를 생각인지 자작도, 만성이도, 와 있지 않은 점 안이 좀더 쓸쓸하여, 그는 세수도 안 한 채, 그대로, 미사에에게 단장을 내어 달래서, 그것을 휘저으며, 황혼의 그곳 벌판을 한참이나 산책하다가, 문득 일주일 이상이나 수경 선생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 생각나서 또 무어 소설이라도 시작한 것일까, 하고, 그의 집으로 발길을 향하며, 문득 자기가 그나마 찻집이라고 붙잡고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이미 완전히 게으름에 익숙하고, 화필은 결코 손에 잡히지 아니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영영 그리다운 그림을 단 한 장이라도 그리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러한 자기 몸에 비겨, 무어니무어니 하여도, 우선 의식 걱정이 없이, 정돈된 방 안에 고요히 있어, 얼마든 자기 예술에 정진할 수 있는 수경 선생의 처지를 한없이 큰 행복인 거나 같이 부러워도 하였으나, 그가 정작 늙은 벗의 집 검은 판장 밖에 이르렀을 때, 그것은 또 어찌 된 까닭인지, 그의 부인이 히스테리라고 그것은 소문으로 그도 들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실상 자기의 두 눈으로 본 그 광경이란 참으로 해괴하기 짝이 없어, 무엇이라 쉴 사이 없이 종알거리며, 무엇이든 손에 닿는 대로 팽개치고, 깨뜨리고, 찢고, 하는 중년 부인의 광태 앞에 수경 선생은 완전히 위축되어, 연해 무엇인지 사과를 하여 가며, 그 광란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모양이, 장지는 닫히어 있어도 역시 여자의 소행인 듯싶은 그 찢어지고, 부러지고, 한 틈으로 너무나 역력히 보여, 방란장의 젊은 주인은 좀 더 오래 머물러 있지 못하고, 거의 달음질을 쳐서 그곳을 떠나며, 문득, 황혼의 가을 벌판 위에서 자기 혼자로서는 아무렇게도 할 수 없는 고독을 그는, 그의 전신에 느끼고,[3]
[1]
이 시기만 하더라도
나이를 따지는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덜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상팔하팔이라고 해서 위아래로 8살 차까지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오성과 한음으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도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동갑이 아니라 이항복이 이덕형보다 5살 위의 형이다. 조선시대에는 교육시스템 자체가 1년 단위로 칼같이 학년을 나누어서 딱딱 운영되는 식이 아니었고, 만학도들도 적지 않았던지라, 일일히 나이를 따지지 않았던것이었다. 일제강점기때는 기수제 문화가 도입되었지만 아직 의무교육이 보편적이지 않았고, 영유아기와 아동기때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호적 등록이 몇년씩 늦는 경우가 많아서 나이를 따지는 경향이 적었던것이었다.
[2]
지금의
라멘과 거의 같은 음식이다.
[3]
이 소설이 '시와 소설'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에는 '느꼈다' 뒤에 마침표를 찍어 끝냈고, 1938년판 단편집에서는 '느꼈다' 뒤에 9개짜리 말줄임표를 썼다. 최종적으로 1948년 2월 발간된 판본에서는 여기 쓰여 있듯 '느끼고' 뒤에 쉼표를 찍어 마무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