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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윌리엄 뮤젤 Robert William Meu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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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96년 7월 19일 |
사망 | 1977년 11월 28일 (향년 81세) |
국적 | 미국 |
출신지 | 캘리포니아 주 산호세 |
신체 | 190cm / 86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2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 NYY) |
소속팀 |
뉴욕 양키스 (1920~1929) 신시내티 레즈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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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합중국의 전 야구 선수로 포지션은 좌익수와 우익수를 모두 커버할 수 있는 코너 외야수였다.1920년대 뉴욕 양키스의 첫번째 전성기를 함께했던 주역 중 하나로 베이브 루스, 루 게릭과 함께 '살인마 타선'(Murderers' Row)을 구성한 선수 중 한 명이다.
2. 생애
2.1. 프로 데뷔 이전
캘리포니아 산 호세에서 태어나 로스앤젤레스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뮤젤은 1917년 마이너 리그의 버논 타이거즈에서 뛰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을 결정하고 징병제를 실시하자 미합중국 해군에 입대한 뒤 군 야구 팀에서 활동을 이어갔다.전쟁이 끝난 뒤 버논 타이거즈에 복귀한 뮤젤은 3루수로 뛰면서 타율 0.330을 기록, 맹활약했고 메이저 리그 데뷔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2.2. 뉴욕 양키스 시절
1920년, 양키스가 뮤젤의 마이너 리그 계약을 인계받고 자유 계약을 체결하면서 뮤젤은 태평양에 인접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대서양에 인접한 뉴욕까지 이동하게 됐다.사실 이 시절까지 뉴욕 양키스는 월드 시리즈 우승 경력이 한번도 없는 변변찮은 팀이었지만, 뮤젤의 데뷔와 함께 초대형 선수가 양키스에 합류하게 됐으니 바로 베이브 루스였다. 양키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에 12만 5000달러와 펜웨이 파크 건립 자금 융자를 더해 주는 대신 루스를 영입해온 것. 뮤젤은 루스와 함께 양키스 1군 데뷔 시즌을 보내게 됐다.
뮤젤은 데뷔 시즌 3루와 외야를 오고가면서 40개의 2루타를 포함해 11홈런 83타점 타율 0.328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물론 이 시즌 54개의 홈런을 치며 메이저 리그의 역사를 바꾼 루스를 따라잡을 순 없었지만 말이다. 팀 역시 95승을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3위에 올랐고, 이 시즌이 바로 전설의 시작이 되었다.
1921 시즌부터 뮤젤은 전업 외야수로 자리잡았고, 무려 24홈런 138타점을 기록했는데 모두 팀 내에서 루스의 뒤를 이은 2위였다. 특히 이 시즌부터 수비에서도 두각을 드러냈는데, 9월 5일에는 1경기 4개의 보살을 기록하면서 메이저 리그 기록 타이를 이루었다. 말그대로 루 게릭이 등장하기 전 루스의 가장 큰 파트너는 바로 뮤젤이었던 셈. fWAR 기준으로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한 시즌(3.4)보다 이 시즌(4.4)이 더 기여도가 높다.
이후에도 꾸준히 활약을 이어가면서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1923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베이브 루스와 클린업 듀오를 구성해 7안타 8타점을 기록하며 이 시즌 양키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이전한 팀의 역사상 첫 우승에 공언했다.
1925 시즌은 나름 뮤젤에게 의미가 큰 시즌이었는데, 자기절제에 실패해 커리어 최악의 시즌을 보낸 베이브 루스(25홈런 61타점)을 대신해 33홈런 134타점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첫 홈런 1위, 타점 1위에 오른 것. 타이 기록을 세운 선수들을 제외하고 루스의 전성기인 1918년부터 1931년 사이에 루스를 누르고 홈런왕을 차지해본 단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 됐다.[1]
하지만 이 시즌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20홈런을 쳐보지 못했고, 주로 3번 타자인 루스와 5번 타자인 게릭 사이에서 찬스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하는 선에서 만족해야했다. 결국 딱 서른살이었던 1927 시즌을 마지막으로 전성기가 끝난 뮤젤은 이후 장점이었던 타율도 3할 아래로 떨어졌고 이전같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양키스는 1930 시즌을 앞두고 결국 뮤젤을 신시내티 레즈로 팔아버리고 만다. 함께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했던 루스와 게릭이 양키스의 전설로 남은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이별을 맞이하게 된 것.
양키스 선수로서 통산 3번의 우승(1923, 1927, 1928)을 함께 했다.
2.3. 그 이후
원치 않게 양키스를 뜨게 된 뮤젤은 신시내티에서의 마지막 시즌에서도 타율 2할 8푼, 10홈런에 그쳤고, 결국 이 시즌이 메이저 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마이너 리그에서 2년 정도를 더 뛴 뒤 야구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이후에는 과거 해군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살려 해군 기지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양키스의 전성기를 함께한 일원이지만 커리어가 짧은만큼 11차례의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최종 3.7% 득표율로 그치면서 떨어졌다.
야구랑은 거리를 둔 여생을 살았지만, 1939년 7월 4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루 게릭의 은퇴식에 함께 자리하고 양키스를 소재로 한 영화들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등 나름 양키스와의 연은 꾸준히 이어가다 1977년 향년 81세의 사이로 사망했다.
사망 후인 1982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한 명예의 전당 입성도 검토되었지만 결국 뉴욕 자이언츠의 유격수 레전드였던 트래비스 잭슨에게 그 기회가 넘어가면서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3. 여담
- 베이브 루스와 함께 양키스의 코너 외야수를 맡았는데 보통은 뮤젤이 좌익수, 루스가 우익수로 경기에 나섰다. 왜냐하면 당시 양키 스타디움에서 루스의 눈을 지키기 위해 우측 외야에 차양막을 만들어줬기 때문. 그런데 당연히 별도의 차양막이 없는 원정 경기를 뛸 경우 햇빛이 우익수 쪽에 강하게 비추는 경우가 발생하기 마련인데, 이때는 반대로 루스가 그늘이 진 좌익수로 자리를 옮기고 뮤젤이 우익수로 자리를 바꿔 눈부심과 맞서싸워야했다.[2]
- 루스와의 일화가 하나 더 있는데, 1920년대에 루스와 룸메이트를 하던 시절 뮤젤이 옆에 자고 있는 사이 루스가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 그옆에서 하루밤에 7차례나 격렬한 사랑을 나눴다고 한다. 뮤젤로서는 메이저 리그 최고의 스타인 베이브 루스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됐던 셈인데 타이 콥이 루스에 대해 빈볼을 지시하자 뮤젤이 대신 나서 싸웠던 걸 보면 둘의 사이는 나빴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
- 무려 베이브 루스를 제치고 홈런왕을 차지한 선수긴 하지만, 통산 기록을 보면 알수있다시피 홈런 타자라기보다는 중장거리형 교타자에 가까웠다. 커리어가 일찍 꺾이다보니 MLB 11시즌에 그쳤지만 통산 타율이 3할을 넘겼고 그 중 2루타를 40개 이상 친 시즌만 5번, 3루타를 10개 이상 친 시즌도 5시즌이나 있었다. 덕분에 커리어 통산 3번이나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4.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1920 | NYY | 119 | 494 | 151 | 40 | 7 | 11 | 75 | 83 | 4 | 20 | 72 | .328 | .359 | .517 | 0.876 | 3.6 |
1921 | 149 | 646 | 190 | 40 | 16 | 24 | 104 | 138 | 17 | 34 | 88 | .318 | .356 | .559 | 0.915 | 4.4 | |
1922 | 121 | 527 | 151 | 26 | 11 | 16 | 61 | 88 | 13 | 40 | 58 | .319 | .376 | .522 | 0.898 | 3.3 | |
1923 | 132 | 503 | 144 | 29 | 10 | 9 | 59 | 91 | 13 | 31 | 52 | .313 | .359 | .478 | 0.837 | 1.8 | |
1924 | 143 | 630 | 188 | 40 | 11 | 12 | 93 | 124 | 26 | 32 | 43 | .325 | .365 | .494 | 0.859 | 2.8 | |
1925 | 156 | 697 | 181 | 34 | 12 | 33 | 101 | 134 | 13 | 54 | 55 | .290 | .348 | .542 | 0.889 | 3.4 | |
1926 | 108 | 474 | 130 | 22 | 3 | 12 | 73 | 78 | 16 | 37 | 32 | .315 | .373 | .470 | 0.842 | 2.1 | |
1927 | 135 | 584 | 174 | 47 | 9 | 8 | 75 | 103 | 24 | 45 | 58 | .337 | .393 | .510 | 0.902 | 4.2 | |
1928 | 131 | 557 | 154 | 45 | 5 | 11 | 77 | 113 | 6 | 39 | 56 | .297 | .349 | .467 | 0.816 | 2.5 | |
1929 | 100 | 414 | 102 | 15 | 3 | 10 | 46 | 57 | 2 | 17 | 42 | .261 | .292 | .391 | 0.683 | 0.1 | |
연도 | 소속팀 | 경기 | 타석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득점 | 타점 | 도루 | 볼넷 | 삼진 | 타율 | 출루율 | 장타율 | OPS | fWAR |
1931 | CIN | 113 | 484 | 128 | 30 | 8 | 10 | 62 | 62 | 9 | 26 | 63 | .289 | .330 | .460 | 0.790 | 0.3 |
MLB 통산 (11시즌) |
1,407 | 6,031 | 1,693 | 368 | 95 | 156 | 826 | 1,071 | 143 | 375 | 619 | .309 | .356 | .497 | 0.852 | 28.4 |
[1]
다른 한명은 1922 시즌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에서 뛰던 켄 윌리엄스로, 1950년대에 이르러
윌리 메이스가 달성하기 전까지 유일했던 30-30 시즌이었다.
[2]
실제로 루스는 눈부심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는데, 대표적으로
아이 블랙을 MLB에 도입한 사람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