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민의 연도별 시즌 일람 | ||||
아마추어 시절 | → | 2012, 2013년 | → | 2014년 |
1. 개요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 박해민의 2012년과 2013년을 정리한 문서. 2012년은 박해민이 삼성 라이온즈에 신고선수로 입단한 시즌이고, 2013년은 박해민의 데뷔시즌이다.1.1. 2012년
본인이 스톡킹에서 밝히길 대학교에서 4할 넘게 치고 입단했기 때문에 거만했다고 한다. 2군 선수들보다 더 잘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입단했다. 하지만 너무 잘하는 선수들이 많아 현타가 왔다. 이 당시의 등번호는 115번. 어린 마음에 다른 선수들은 두 자릿 수 등번호인데 자신은 세 자릿 수 등번호여서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2012년에 삼성은 구단 처음으로 육성선수들에게 세 자릿 수 등번호를 부여했고, 당시 박해민의 115번이 제일 마지막 번호였다.시즌 중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으나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타율이 2할 5푼대로 저조했고 어깨 부상 때문에 시즌 후 다시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없을 정도로 부상 정도가 심했던지라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었지만, 이한일 2군 트레이너[1]의 설득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고 한다.
1.2. 2013년
어깨 재활 때문에 5월이 되어서야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다. 6월 말에 붙박이 주전 중견수였던 박찬도가 부상을 당하면서 주전으로서 기회를 더 받게 되었다. 9월 들어 좋은 타격감을 보이면서 9월 10일에 다시 정식 선수가 되었고, 동시에 1군에도 등록되었다. 9월 13일 대구 롯데전에서 최형우의 대주자로 출장해 1군에 데뷔했다. 바로 다음 날인 9월 14일에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면서 시즌을 마쳤다. 이때 1군 버스는 대전으로 가고 박해민은 혼자 경산으로 돌아가기 위해 뒷문으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을 때 1군 경기에 출장했던 것이 마치 꿈만 같고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 만감이 교차했다고 한다.
시즌 후 김헌곤, 박찬도, 정두산, 이현동과 함께 상무에 지원하여 서류전형에서 합격했으나, 실기에서 5명 모두 탈락했다. 소문이기는 하지만 이는 배영섭을 경찰청으로 보낸 것에 대해, 상무가 보복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이는 이듬해 2014 시즌 삼성의 외야진에 신의 한 수가 되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