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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역대 감독 {{{-3 (구미-성남 시절 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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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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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 | 3대 | 4대 | 5대 |
김명수
(2005~2007) ☆ ☆ |
박주점
(2007~2009) |
신만근
(2009~2010) |
어창선
(2010~2013) |
서남원
(2013~2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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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6대 |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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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 (2015) |
감독 대행 박종익 (2015~2016) |
김종민
(2016~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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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챔피언 결정전 우승 / ☆: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 |
대한민국의 배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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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박주점 朴注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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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65년 4월 4일 ([age(1965-04-04)]세) | |
경상북도
월성군
양북면 송전리 (現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 송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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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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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90cm | |
직업 |
배구 선수 (
미들 블로커 / 은퇴) 배구 감독 배구 행정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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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양북중학교 (졸업) 경북체육고등학교 (졸업) 서강대학교 (학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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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입단 | 1989년 고려증권 배구단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고려증권 배구단 (1989~1994) |
감독 |
본오중학교 배구부 (1996~2002) 구미 한국도로공사 EX (2007~2009) 수원시청 배구단 (2010~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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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 |
한국도로공사 (2002~2007 / 수석 코치) 덴소 에어리비즈 (200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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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
한국배구연맹 (2012~2023 / 경기 감독관) 한국배구연맹 (2023~ / 경기 위원장)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 출신 감독, 행정가. 前 한국배구연맹 경기위원(감독관), 現 경기위원장.2. 선수 경력
경북체고와 서강대를 졸업했다. 의외로 서강대에 배구부가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1981년 서강대에는 정식 운동부로서 배구부가 있었다. 비록 학교 수뇌부에 의해 1985년 돌연 해체되면서[1] 전설로만 남아 버렸지만, 서강대 배구부는 1984년 전국 대회 우승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우수했다. 서강대 재학 당시 박주점은 "당시 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이를 악물고 노력했다" 고 회상하였다. "팀을 운영하고 선수들은 지도하면서, 그 당시 경영학을 공부한 덕을 보고 있다. 모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오늘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발판이 됐다"고 덧붙이기도 했었다.운동과 학업을 병행하며 재학 도중 배구부가 돌연 해체되는 충격을 딛고 졸업한 후에는 고려증권에 입단하여 센터로 활약했다. 센터 박주점은 팀의 동료 박삼용, 어창선의 좌우 쌍포와 세터 이성희와 박주점 콤비의 블로킹 및 속공을 앞세워 1991년 대통령배 배구대회에서 고려증권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1994년까지 팀의 중앙을 책임졌다.
3. 지도자 경력
1994년에 일찌감치 은퇴를 선언한 박주점은 안산 본오중학교 배구부 감독을 시작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배구 팬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본오중 감독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황동일의 재능을 높이 평가한 나머지 황동일을 자신의 학교로 오게 하여 황동일을 발굴한 적이 있었다.이후 2002년에는 도로공사 배구단의 수석코치로 부임하여 김명수 감독을 보좌하였고, 프로 이후인 V-리그로 넘어오면서까지 도로공사의 황금기를 열었던 김명수 감독이 2006-07 시즌 챔피언결정전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자 2007년 감독으로 내부승진되어 팀을 이끌게 되었다.
하지만 도로공사 감독으로는 그다지 뚜렷이 내세울 만한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당시 도로공사는 프랜차이즈 선수를 홀대하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로 인해 김사니의 FA 이적, 이동공격에 탁월했던 김미진과 대형 공격수로 촉망받던 임유진이 고질적인 부상 문제로 은퇴하면서 팀 캐미가 급격히 흔들렸다. 2007-08 시즌에는 지난 시즌 맹활약하였던 미국 출신 용병 레이첼 반미터와 어렵게 재계약하였으나 시즌 개막 직전 부상으로 결국 용병 교체를 단행할 수밖에 없었고, 대체 용병으로 케이티 존슨과 계약했지만 레이첼에 비해 기량이 훨씬 떨어진데다 얇은 국내 선수진과의 시너지를 이루면서 포스트시즌도 점점 멀어지자 2008년 2월 케이티마저 퇴출되어 용병 농사에도 실패하며 5개 팀 중 4위에 그쳤다. 그나마 그 밑에 주축 선수였던 이숙자와 정대영을 FA 시장에서 놓치며 선수층이 완전히 파탄나버린 현대건설 그린폭스가 밑바닥을 깔아 줬다는 것이 다행일 정도.
도로공사 감독 2년차를 맞이한 2008-2009 시즌에는 한송이마저 FA로 이적하면서 완전히 꿈도 희망도 없어져 버렸다. 프로 경험도 많지 않은 어린 선수들과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용병 밀라그로스 카브랄의 원맨 팀에 불과할 정도로 선수층이 너무나도 초라했다. 그 결과 지난 시즌보다 성적이 더 나빠졌는데, 8승 20패를 거두며 지난 시즌보다도 3승이 더 모자란 성적으로 최하위로 추락해 버리며 5개 팀 중 유일하게 10승도 거두지 못했다. 결국 박주점 감독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하며 도로공사에서의 감독직을 초라하게 마감했다.
도로공사 감독 사임 후에는 일본으로 잠시 유학을 떠나 덴소 에이리비즈의 코치로 1년간 몸담았으며 귀국 후에는 실업 구단 수원시청 배구단의 감독을 맡았다.
4. 행정가 경력
2012-13 시즌부터 2022-23 시즌까지 11년간 한국배구연맹 경기감독관(경기위원)으로 재직하였다. 역대 경기위원 중 유일하게 10년 이상 재직하였다.2017년 2월 14일에 발생된 한국전력 소속의 강민웅 선수의 부정 유니폼 사건으로 2016-17 잔여 시즌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2] 이후 2017 넵스컵 프로배구대회 때 경기감독관으로 복귀하였다.
2018년 7월, KOVO 조직 개편으로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이 한 팀으로 통합됨에 따라 경기위원으로 재직하게 되었다.
2021년 4월 14일,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이수황의 더블컨택 여부에 관한 비디오 판독에서 No touch(노 터치)로 판독하여, 신영철 現 서울 우리카드 우리WON 감독을 화나게 했다.
2023년 4월 6일,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흥국생명 vs 한국도로공사) 5차전 5세트 맨 마지막 순간 박정아 공격에 대한 강주희 주심의 인/아웃 비디오 판독 요청이 있었는데 역대 이런 챔피언 결정전은 본인도 처음 지켜보는 터라 상당히 긴장이 되어 '도로공사 비디오 판독 요청'으로 잘못 이야기해 버리기도 하였다.[3]
2023년 7월 4일, KOVO 경기위원장에 선임되었다.
5. 여담
-
이름이 이름인지라, 별명은
주접'술집'이다.
6. 관련 문서
[1]
이 때문에 1985년 서강대에 입학한
이상렬이 자퇴 후 다음 해에
경기대학교에 다시 입학했다.
[2]
이로 인해 박주점은 잔여 시즌에 사후판독위원을 맡았고 당시 사후판독위원을 맡고 있었던
이운임 위원이 잔여 시즌 한정으로 다시 경기감독관을 맡았다.
[3]
심판 위원과 부심이 바로 지적해 줘서 '주심 비디오 판독 요청'으로 정정했으며 이 비디오 판독 결과 아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바로 도로공사 측에서 블로커 터치아웃 여부로 추가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였고 판독 결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의 손가락에 맞고 나간 것으로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