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完一
1935년 8월 29일 (음력8월1일) ~ 2018년 10월 26일 (향년 83세)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교육인,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2. 생애 및 활동
1935년 전라남도 광주군 송정면(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났다.정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승려로 출가하여 효봉을 은사로 하였다가 4년만에 환속하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 석사 및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재학 중이던 1960년 4.19 혁명에 참여하였다. 1961년 5월 18일에 지명수배령이 내려져서, 결국 체포되어 수감된 이력이 있다.
1970년대 이후 동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근무하는[1] 한편 대한불교 조계종 전국불교신도회[2] 회장[3]을 지내기도 하였다. 이후 특정 단체의 요청이 있으면 찾아가서 강의를 해줬다. 이로 인해, 강의 내용이 담긴 음반도 출시되기도 했다.
2.1. 주요 강의 제목 및 장소, 상대 등
2.1.1. 나는 누구인가(1986년)
- (하절기) 전주문화방송 여성교양강의
- (11월) 대전시민회관에서 열린 법회 후.
2.1.2. 나도 한마디
- (1984년) 대전시민회관에서 충남지역 사회정화추진위원회를 상대로 강의한 것으로 추정
- (1985년) 새마을본부에서 강의.
2.1.3. 그 외
- 인생이란 무엇인가: 1986년 8월 도고호텔에서 라미화장품 대리점주 단합대회 초청으로 강의.
- 지혜의 눈: 1987년 9월(추정) 계성제지 계열사 풍만제지 사원들을 상대로 강의.
- 영원한 것은 없다: 1987년 1월에 대전에서 강의한 것으로 추정.
2.2. 정치 활동
1983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통일민주당 김재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은평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원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레퍼토리 중 하나가 벼슬이라곤 동 소개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여담
그의 강의 내용에 담긴 테이프를 청취하여 확인한 것이 많다.- 미군한테서 받은 껌을 무려 1주일간 씹었다고 한다.
- 1961년 5월 18일에 현상범으로 지목되어 1년 반동안 숨어지내다가 적발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바 있다고 한다.
- 월 2~4회씩 아내를 마루에 불러앉히고 새벽까지 특강을 했다고 한다. 또한, 그의 장남이 집이 좁다는 이유로 5학년때엔 자기 친구를 데려오지 않는 점을 알아채고 어느날 장남에게도 특강을 했다고 한다. 이걸 거쳐간 아들은 반 회장 선거때 그 며칠전의 특강을 활용해 회장에도 당선됐다고 한다.
- 1984년 초에 칼라TV를 32만5천원 주고 14인치짜리 하나 샀는데, 반년이 지나니 값이 10만원이 뚝 떨어졌다는 사실에 분개하여 전자회사 강의할 때 돈 내놓으라고 했다고... 알고 보니, 가격 인하 사유가 미국에서 가격 내리라고 해서란다.
- 4년의 수행기간 중에 0시에 취침, 2시에 기상했으며, 오전6시에 죽 한그릇, 11시엔 나물밥, 13시 이후부터는 물만 마셨고, 오전,오후 뒷산에서 죽은 나무를 베어다가 하루 두지게씩 지고, 나머지 시간엔 목에 칼을 대면서 수행을 했다고 한다. 직접 밥을 하는데 죽이 되고 타지니까, 불을 때면서 아궁이에 대고 절하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 그는 생전에 수많은 비행기 조종사들에게 강의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대한항공 조종사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는데, 제목은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대한항공 902편 격추 사건을 언급하면서 비유를 하는데, 강의 트렌드를 보면 거의 안봐도 비디오다. 비행기를 놓쳤으나, 후술할 사유로 목숨을 건진 승객과, 예약을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갈 일이 생겼지만 자리가 없을 경우, 그 당시에는 공항에 나와서 대기하고 있다가, 사유로 인해 빈 자리가 생기면 그 자리를 타는 형식을 취하는데, 그렇게 비어진 자리를 탑승한 승객이 사망한 경우를 설명했으니... 참고로, 그는 대한항공을 KAL(칼)[4]이라고 언급한다.
- 1979년 호텔롯데의 첫 영업점인 롯데호텔 서울이 오픈할 때, 신격호[5]의 초대로 호텔을 방문했다. 어떤 방문자가 손으로 대리석을 막 더듬으며 신세한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신격호씨가 자기 혼자 잠자고 살림하려고 객실 600개 이걸 다 지었나? 그는 종이쪽지 등기문서만 가지고있고, 호텔이라는건 돈내고 자는 사람이 주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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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모든 상황엔 씨앗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경위는 이렇다. 택시를 타고 가는데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음악을 듣고는,
경동시장의 씨앗가게에서 눈물의 씨앗을 문의하자, 망신만 당하고 쫓겨났다고 했는데, 한달 지난 후, 그의 친구가 사망했기에 조문을 갔다. 가서, 미망인이 아주 서럽게 통곡을 하는데, 앉아있기 뭐해서 잠시 거실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보니, 그 미망인이 벽에 기대가지고 실실대며 웃었다고.[7] 그래서 깨닫게 된 것이라 한다.
- 국민대학교에 근무할 당시 한번은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때 인생이란 무엇이냐라는 제목으로 생각나는대로 적으라고 하고 백지를 돌리고, 걷어가지고 검토해서 80점씩 채점해줬다. 그러나, 1인은 제외. 다들 신세 비관하는 것을 적어 80점, 이 1인은 꿈이 있다 미래가 있다 희망이 있다 이런 글을 써서 95점을 채점해줬다고 한다.
4.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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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그러려니~~~~~~
(여름이니까 덥겠지, 고춧가루니까 맵겠지 등등....)
- 묘~~~~한 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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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은 사용자의 것이다./ 물질은 소유의 한계가 있다./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돈없이 등기없이 재벌 못지않은 삶을 살게끔 해주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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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인 건 마찬가지
(임명장없이 국무총리와 동격으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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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누라가 나를 보고 무슨 기계냐고 그래. 스위치만 넣으면 돌아간다고./ 그래 나는 잠을 5시간 이상 안 자.
(드러누우면 1분 이내에 코를 골고, 5시간 이내에 깬다.)
[1]
동국대학교 이전엔 국민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았다.
[2]
1967년에
김성곤,
이후락과 함께 결성했고 재계인사 100여명이 이사로 지냈다.
[3]
단체 결성 당시엔 사무총장에서부터 시작했다.
[4]
대한항공의 ICAO부호이자 3자 이니셜이고, 고니 상표를 썼을때 표기했다.
[5]
당시 롯데그룹 회장
[6]
돌아온 답변으로는, 평소에는 1500도, 고기압 때엔 2000도까지 도달한다고 했다.
[7]
그것도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상태라고 했다. 잠이 들어놓으니까, 남편 사망을 잊어버린채 꿈속에서 동창들과 더불어 말이다. 이렇게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