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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2 12:59:44

박승현(프로게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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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news.chosun.com/2008010401073_0.jpg
이름 박승현
출생 1989년 10월 5일[1]
사망 2013년 5월 6일 (향년 23세)
출신지 대구광역시
소속 Team NoA → We are Go → Fnatic → Wicked → Mojawi[2] → 무소속
종족 언데드
ID Space[3]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게이머로서의 행보
3.1. 아이디에 얽힌 일화
4. 사망 및 추모문5. 경력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워크래프트3 프로게이머.

불치병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던 프로게이머였다.[4] 몸이 매우 불편하여 이동 시에는 항상 휠체어를 이용했다.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옆에서 보호자인 어머니가 팔의 위치에서 의자의 기울기까지 자리를 잡아주어야 했다고 하며, 당연히 오프라인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다. 오프라인 이벤트는 AWL때 단 한 번 출전했고, 이것도 나이스게임TV 측의 특별한 배려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WC3L과 AWL을 거치면서 게임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2008년에는 이미 손가락과 목밖에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게임 플레이 시 부대지정 단축키는 4번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고 일부 단축키는 사용할 수조차 없어[5] 마우스로 클릭했다. 순간 마이크로 컨트롤이 매우 중요한 언데드 유저로서는 치명적인 환경. 병세가 악화된 이후로는 눈을 제대로 깜빡일 수도 없어 안약을 넣고 게임을 해야했으며, 단축키는 2번까지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 몸이 너무 쇠약해져 한 경기조차 온전히 집중할 수 없어 체력 때문에 경기를 그르치는 일조차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평범한 컨만 보여줘도 엄청난 인간승리로 볼 수 있는 판인데, 박승현의 실력은 '몸이 불편한 것치고는 잘 한다' 정도가 아니었다. 이성덕, 김성식, 장재호, 박준 등 이름만 들어도 놀랄 만한 게이머들조차 그를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지경이었고, 2009년 강서우의 은퇴로 6대 언데드가 붕괴했을 때는 한국 언데드의 마지막 보루로 평가받던 선수였다. 6대 언데드 유저들조차 오크전에서는 언데드를 포기하고, 언데드를 만나면 자기가 오크를 고르는 야언좆의 시대에 언데드를 고수한 것. 그렇다고 부종 실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었다. 주종은 나엘이지만 오크에 일가견이 있던 김성식을 상대로 언데드로 놀우드에서 털어버리자, 2경기에서 로템을 고른 김성식을 상대로 오크로 맞불을 놔서 오오전으로 이겨버린 적도 있을 정도.

스타크래프트에 빗대어 말한다면 온몸의 근육이 죽어가고 손가락 3개 정도만 움직일 수 있는 장애인이 이영호를 상대로 김택용의 멀티태스킹을 구사하는 수준의 프로토스라고 빗대어볼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임요환과 이벤트 매치를 벌였던 시각장애인 이민석 등이 소개된 적은 있지만, 이민석은 그 당시 기준으로도 보통 정도 실력이었다.[6] 반면 이렇게 몸 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사람이 최고 수준의 게이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은 전례 없던 일이며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그가 몸이 조금만 더 편했더라면, 그래서 전 세계의 수많은 오프라인 대회에 참여해서 더욱 이름을 알릴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를 응원한 이유에는 몸이 불편한 인간의 인간 승리에 감동받은 면도 있었겠지만, 정말로 박승현의 게임을 더 보고 싶어서, 언데드의 가능성을 보고 싶어서 그를 응원했다. 살아만 있었다면 120과 더불어 현재 언데드의 양대산맥으로 활약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측면에서 너무나 안타까운 선수.

AWL 시절 3, 4위 결정전 오프라인 경기를 치른 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장애인으로 보지 말고 한 명의 프로게이머로 봐달라는 취지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너무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는 말자. 병이 있건 없건 그는 최고의 프로게이머 중 한 명이니까. 게다가 장애인들을 무작정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것은 사람들에 대한 실례이기도 하다.

같이 게임을 해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의외로 채팅이 험한 타입에 승부욕도 강했다고 한다.

2. 플레이 스타일


팬들이 제작한 Space 스페셜 동영상

데스나이트의 쉐도우클럭과 심시티를 이용한 워든 낚시 -3분 27초 경에 확인할 수 있다.-

6대 언데드의 시대 이후 한국 언데드를 떠받쳤던 기둥 중 1명으로서 매우 끈질긴 승부근성을 보여주었으며 언데드 특유의 스킬쇼를 이용한 영웅킬이 일품이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몸이 불편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유닛 컨트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세부 컨트롤은 다른 프로게이머들과 비교해도 최상위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나이스게임TV 워크래프트 3 리그에서 있었던 Fly100%와의 대전에서 체력이 1000이 넘어가는 블레이드 마스터를 5킬 한 경기도 있다. 초기에는 멀티태스킹 능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엔 그러한 단점도 완벽히 보강한 상태를 보여주었다.

회복용의 코일은 매우 아끼며, 리츄얼은 반피 어보미네이션도 아낌없이 하는 등 매우 공격적인 스킬 사용을 보였는데, 인드라 해설은 이를 마치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덕 공장주를 보는 듯 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아낀 코일로 순간적인 영웅킬을 통해 불리한 전황을 역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언제 코일노바를 날리면 죽을지 딜 계산을 정확하게 하는 것 같다'고들 말했다.

딜 계산 및 컨트롤이 매우 우수하다보니 특히나 나엘전에서 다수의 가고일을 운용하면서 팬더의 술불을 석화로 정확하게 피한다거나 데스나이트가 아슬아슬한 빨피 상태로 오크와 교전을 시작해서 데스나이트를 후퇴시키지 않고 20초 넘게 적절한 컨트롤과 회복기 사용 및 아이템으로 살려서 교전을 승리하는 컨트롤도 보여주었다.

또 동시대 게이머들보다 앞서간 개념으로 프웜/디스 나무컨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20이 적극적으로 보여주며 유명해진 이 컨트롤은, 점사 당하는 공중 유닛을 따로 빼서 나무 위로 숨김으로써 상대방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만들어 생존하게 만드는 컨트롤이다. 상대 유닛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유닛들이 끌려오면서 핀드리치에 점사 당하고, 그 결과 전투는 언데드에게 기울게 된다.

3. 게이머로서의 행보

2007년 GO 클랜이 NOA라는 팀으로 워크래프트 3의 세계적인 프로리그 WC3L의 예선을 뚫었을 때 모습을 드러낸 신인이었다. 참고로 이때 TH000이 최초로 들고 나온 언데드전 선 팔라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흔히들 생각하는 관광용 선팔라가 아니라, 빠르게 3레벨을 찍고 에콜 테러를 감행하는 무시무시한 전략이었다.

WC3L 13차 시즌에 와서 GO클랜은 Fnatic의 스폰서를 받게 되면서 크게 활약했는데, 이 시즌에서는 개인전 18승 7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리며 단순히 근위축증을 앓는 프로게이머로서가 아니라, 탑클래스의 언데드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게 왜 대단하냐면은, 당시 언데드는 그야말로 암울의 극을 달리고 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주요 6대 언데드들의 이 시즌 성적은 오정기 8승 3패, 강서우 14승 8패, 조대희 9승 6패, 노재욱 12승 13패, 천정희 1승 4패였다. 언데드 암울기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가 바로 이 시기인데, 어느정도냐면 대회에서 언데드 게이머끼리 만나면 오오전이 펼쳐질 지경이었다. 아무리 프로라 하더라도 부종 오크에게도 발리니까(...).

특히 국내 팬들에게 박승현이 열렬한 지지를 받게된 계기는 나이스게임TV에서 주최한 AWL이었다. 이 대회에서 박승현은 언데드로 박준을 잡는 파란을 일으키며 4강에 진출한다. 당시 언오전이 언밸의 극을 달리고 있었고 그 누구도 언데드로 오크를 상대하는데 있어 유효한 전략을 찾아내지 못했다. 박준은 그 중에서도 90%가 넘는 승률을 보이고 있었고 별명이 언데드의 재앙이라고 불릴 정도로 언데드 학살자로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박승현이 박준을 이긴 이 사건은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다음 상대가 하필 외계인였던 바람에 1:3으로 아쉽게 분패했고, 우승의 꿈은 보내야만 했다. 이후 AWL 3차 시즌에서 다시 결승까지 진출해 박준을 만나지만, 오프라인 결승에서는 무력하게 셧아웃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AWL 왕중왕전에서 소주와 장재호를 2:1로 연파하며 4강에 진출한다. 이 승리는 장재호가 2년만에 당한 대 언데드전 다전제 패배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윤덕만에게 0:2로 패했다.

2009년 IEST 초청 선수를 가리기 위한 팬 투표에서 28명 중 장재호 다음으로 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역시 신체적 문제 때문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오프라인 대회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온라인 대회에서는 극에 달한 교전 컨트롤을 보여주며, 원숙미마저 풍기는 경기를 보여주었다. 섀도우리그에서 엄효섭 선수와의 경기에서는 섀퍼 테러를 완벽히 예측하여 구울로 섀퍼 길막을 해서 스피드 스크롤을 찢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랏을 하나만 파괴당하는 선방을 보여 줄 정도였다.

2010년 이후 워3에서 거의 손을 뗐다고 한다. 2011년 AWT에서도 리마인드 김성식선수에게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지는 등, 인드라 해설에 의하면 스타크래프트2를 새롭게 시작하였다고 한다.

2011년 8월에는 Zotac컵에서 모습을 보였다.

XP리그 5차 시즌에서 김성식, 박철우, 윤덕만 등 나엘 A급 선수들을 격파하며 4강에 올라 언데드가 우승하나 하는 기대를 품게했지만. 박준에게 패하여 4위에 그쳤다.

2013년, 나겜 킬링캠프에서 인드라가 1월 초쯤에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하다가 만났다고 한다.

3.1. 아이디에 얽힌 일화

아프리카 방송 도중, 한 시청자가 박승현에게 '왜 아이디를 Space로 지었냐'고 질문한 바가 있다. 원래 박승현은 키보드를 치기에도 불편한 몸이라 ㅇㅇ나 ㄴㄴ같이 간단한 식으로만 대화를 하는데, 긴 침묵 끝에 한 손가락으로 타자를 친 그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주를 자유롭게 날고 싶어서.

그의 몸 상태를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에피소드이다.

4. 사망 및 추모문

2013년 5월 6일 월요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GosuGamers에서 그의 사망소식을 전한 게시물.[7]
kotaku에서도 소식을 전했다.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온 Replays.net의 기사.

6월 22일 블리자드코리아 후원으로 박승현 선수 추모 온라인 워3리그가 열렸다. 상금은 우승 선수 이름으로 박승현 선수의 유가족에게 전달된다. 참가선수 노재욱, 박준, 엄효섭, 장재호.

2020년 5월 5일, 몽실강아지배 고스페이스 추모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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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6월 특별전 한국 이스포츠의 시작 ‘스타크래프트'에 본인의 이야기가 실렸다.
희귀병도 이겨낸 언데드의 자존심
'Space' 박승현은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병에도 불구하고 인내와 끈기, 뛰어난 게임 실력으로 많은 e스포츠 팬들을 감동시킨 워크래프트3 프로 선수이다. 투병생활 중에도 각종 온라인 대회에 출전하여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며 믿을 수 없는 집중력과 컨트롤을 보여주었다. 그는 2013년 2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최고의 언데드 플레이어로 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5. 경력



[1] 여담으로 스타크래프트 종목에서 생일이 같고 이름이 같으나 성이 다른 선수가 있다. [2] 갑자기 나온 스폰서 중단 선언 이후 다른 스폰서를 찾았지만 실패. [3] 일반적으로 Go 클랜의 클랜태그가 붙은 Go)Space를 줄인, '고스페'로 많이 알려져 있다. [4] 루게릭병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약간 다르다. 루게릭병은 어른 때 발병해서 진행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DMD는 소아 때 부터 진행되며, 30살을 넘기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고 한다. [5] 리치의 노바는 기본 단축키가 N으로, 사용하기 다소 불편하다. [6] 물론 RTS 게임과 상극인 장애의 종류를 생각하면 그것도 대단한 것은 맞다. 챌린저 맵에서 대결했다. [7] 일시적으로 워크래프트 섹션의 사이트 디자인을 검은색 계통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