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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30 19:51:03

박도순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fff,#1c1d1f><tablebgcolor=#fff,#1c1d1f> 파일:한국교육과정평가원 심볼.svg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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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a928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1998~현재)
초대
박도순
제2대
김성동
제3대
이종승
제4·5대
정강정
제6대
김성열
제7대
성태제
제8대
김성훈
제9대
김영수
제10대
성기선
제11대
강태중
제12대
이규민
제13대
오승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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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colbgcolor=#862633><colcolor=#d7c9b1>
파일:박도순.jpg
출생 1942년 2월 25일 ([age(1942-02-25)]세)
충청북도 청주군
현직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명예교수
재임기간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1998년 1월 1일 ~ 2000년 12월 31일
학력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육심리학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교육심리학 / 석사)
피츠버그 대학교 (교육방법론 전공 / 박사)
경력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학장
제5·7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교학부장
제14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장
국립교육평가원장 (제9대 / 국민의 정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초대 / 국민의 정부)
제36대 한국교육학회 회장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선임위원 ( 참여정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1. 개요2. 생애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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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학자, 교수.
초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냈으며 수능 창시자로 대중에게 알려져있다.

2. 생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전신인 국립교육평가원의 마지막 원장을 지냈으며 1998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설립 후 자연스레 초대 원장이 되었다. 이전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도입에 참여하였다.

퇴임 후 2004년 참여정부의 교육혁신위원회 선임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정권의 의중에 따라 전성은 교육혁신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수능 5등급제( 수능 등급제)와 입학사정관제를 밀어붙여 큰 논란을 야기했다. 교육혁신위원회는 수능과 본고사 등의 기존 입시 체제를 모두 비판하며 미국식 입학사정관제 위주의 대입 제도를 도입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안병영 교육부 장관이 5등급제를 결사 반대하고 9등급제를 고집하여 관철시켰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의중을 거스른 대가로 안병영 장관은 2005년 1월 곧바로 경질되었다.

결국 2007년 수능은 사상 초유의 9등급제로 실시되었다. 등급 이외에는 성적이나 퍼센트를 일체 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대해 로또 수능이라는 여론의 반발이 거세었기 때문에 2007년 이후 곧바로 폐기되었다.

원장에서 물러난지 근 20년이 지난 최근 언론에서 현행 수능을 비판하고 있다. 현재의 수능은 지나치게 어려워 원래 수능의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이다. 박도순 본인이 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초기 수능은 대학에 갈 정도의 수험생이라면 누구나 맞출 수 있게 설계되었다고 한다.[1] 하지만 지금의 수능은 처음의 수능과 99% 달라졌다고 말했다. “수능은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이면 능히 맞힐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하는데 자꾸 변별력을 높인다.", “내가 지금 수능을 보면 통과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졸업한 대학에 입학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3. 여담

최근 박도순이 수능을 비판하는 인터뷰가 언론에 자주 실리며 언론에서 박도순을 수능 창시자라고 띄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박도순이 수능 창시자라는 것은 매우 과장된 수식어다. 박도순이 수능 도입에 참여한 여러 인물 중 한명인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이지만, 수능 개발에는 많은 연구진과 학계 관계자가 참여했다. 특히 중앙교육평가원과 함께 초기에 수능 개발을 주도했던 인물로는 황정규[2], 이종승[3] 등이 있다. 이들은 중앙교육평가원의 의뢰를 받아 수능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박도순은 당시 학회 등에서 대입 제도 개선 등에 대해 발표한 적은 있지만 수능 개발 당시 중앙교육평가원으로부터 직접 의뢰를 받아 연구를 진행한 적은 없다. 박도순이 현(現) 평가원 초대 원장이기 때문에 수능창시자라고 한 듯한데, 이는 막 갖다 붙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수능 자체가 현 평가원이 출범하기 한참 전에 개발, 시행되었다. 수능은 중앙교육평가원 장기옥 원장(초대)과 주순호 원장(2대) 시절에 기초연구가 진행되었다. 이후 공영목 원장(3대) 시절에 사실상 체계 개발이 완료되었고, 이와 함께 문교부의 대입입시 개편안도 확정되었다. 이후 오덕렬 원장(4대) 시절부터 고3을 대상으로 수능 실험평가가 시행되었고, 박병용 원장(7대) 시절인 1993년 8월 첫 수능이 시행되었다. 첫 수능 이후 김하준 원장(8대)이 2년차인 95학년도부터 97학년도 수능까지 출제 및 시행을 주관하였고, 이후 1997년 9월 박도순이 8대 국립교육평가원장으로 취임하여 1998년 1월 1일 국립교육평가원을 대신하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출범하자 초대 원장이 된 것이다.[4]


[1] 실제로 94학년도 1차 수능 수학 시험지를 보면 맨 마지막 문제가 상용로그표 문제이다. 현행 수능 체제에서 수학 시험지의 마지막 문항이 가진 위상을 생각하면 절로 코웃음이 나오는 수준. [2] 서울대 교수. 중앙교육평가원의 의뢰를 받아 '대학교육 적성시험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1989, 중앙교육평가원)', '대학교육 적성시험의 활용방안(1989, 중앙교육평가원)', '대학교육적성시험의 활용방안(1989, 중앙교육평가원)', '대교육적성시험 실험평가연구(1990, 중앙교육평가원)' 등의 연구를 진행했다. [3] 충남대 교수. 중앙교육평가원의 의뢰를 받아 '대학교육적성시험의 개념화(1989)', '대학교육 적성시험 문항 개발연구(1989)' 등의 연구를 진행했다. [4] 수능 창시자라는 수식어가 사실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지난 몇 년간 언론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데, 박도순 본인부터가 이를 정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 한두번은 언론이 임의로 수식어를 잘못 붙였다 하더라도 이것이 몇번 반복되면 박도순 본인이 이같은 표현을 정정해 달라거나 앞으로 사용하지 말아줄 것을 언론에 이야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