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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3:24:42

바이인 연쇄살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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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인시의 위치[1]

1. 개요2. 사건 일지3. 중국 경찰의 분석4. 피의자 검거5.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의 비교6. 외부 링크

1. 개요

白银连环杀人案[2]

중국 간쑤성 바이인시에서 1988년부터 2002년까지 14년 동안 여자 9명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

2016년까지 중국 경찰 당국은 이 사건의 범인을 잡으려고 수많은 수사법을 동원했지만 범인 검거에 실패하여 미제사건으로 남는가 하였으나 2016년 8월 26일 범인 가오청융이 검거되었다. 범인이 평소에는 평범한 사회인임이 밝혀져 중국 전역이 경악했다.

서구 언론에선 중국판 잭 더 리퍼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유사한 부분 때문에 '중국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기도 한다.

2. 사건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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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청융 검거 이전 배포되었던 연쇄살인범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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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발생 위치.

이 사건의 시작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8년 5월 26일 오후 5시에 바이인공사(白銀公司)에 다니는 여직원 23세 바이(白) 씨가 바이인시 바이인구 융펑가(永丰街)의 집 안에서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는데 그 시신이 너무나도 참혹했다. 목이 잘렸고 상의는 가슴이 보이도록 벗겨졌으며 아랫도리는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였다. 몸에는 칼로 쑤신 흔적이 무려 26군데나 남아 있었다. 살인과 함께 강간이 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중국에는 범행 현장에 남아 있던 증거를 확보하고도 과학적으로 분석할 기술이 없어 결국 범인을 잡는 데 실패했다.

6년 2개월이 지난 1994년 7월 27일 오후 2시 50분 바이인 전력공급국(供電局)에 근무하던 19세 여직원 스(石) 씨가 직장 내 독신자 숙소에서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다. 시신은 6년 전과 동일하게 매우 참혹했는데 목이 잘렸고 몸에 무려 36군데나 칼에 찔린 흔적이 발견되었다. 역시 6년 전과 동일하게 강간을 당한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거기서 또 4년이 지난 1998년에는 연쇄살인 4건이 발생했는데 그 중 첫 번째 사건은 1998년 1월 16일에 일어났다. 그날 오후 4시쯤 바이인구 성리가(胜利街)의 집 안에서 29세 여자 양(楊) 씨가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다. 조사 결과 양씨는 시신으로 발견되기 3일 전인 1월 13일에 변을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역시 1988년 사건, 1994년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의 목은 잘려 있었고 시신은 알몸 상태였다. 강간을 당한 흔적도 남아 있었고 몸에는 16군데 칼에 찔린 흔적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번 시신은 전과 달리 사체의 일부가 훼손되었다. 양 씨의 시신 양쪽 귀와 두정부에서 13×24 cm 남짓 살을 도려낸 흔적이 있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3일이 지난 1월 19일 오후 5시 45분 바이인구 수이촨로(水川路)에서 27세의 여성 덩(鄧) 씨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 여성도 지난 사건들과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되었으며 상의는 벗겨져 상체가 드러났고 바지는 무릎까지 벗겨져 있었다. 이로 보아 역시 이전처럼 강간을 당한 뒤 살해된 듯 보였다. 목에는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고 8군데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는데 덩 씨의 시신도 3일 전에 발견된 양 씨와 마찬가지로 왼쪽 유두와 등에서 30×24 cm 정도 살을 도려낸 흔적이 있었다.

6개월이 지난 1998년 7월 30일 저녁 6시 바이인 공전국 직원 쩡(曾) 씨의 8살 난 딸이 집 안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었다. 범인은 8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는데 하의를 완전히 벗기고 목을 허리띠로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음부가 찢어졌고 안에서 정액이 검출되어 역시 성폭행을 한 후 살해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5차 사건은 이전 사건과 수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전 1~4차 사건까지 피해자들은 모두 성인이었고 모두 목이 잘렸으며 몸 전체에 여러 군데 자창이 있음이 특징이었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이 때문에 5차 사건은 다른 범인의 소행이라는 지적이 있다.

다시 4개월이 지나 1998년 11월 30일 오전 11시 바이인공사에서 근무하던 16세 여직원 추이(崔) 씨가 바이인구 둥산로(東山路)의 자기 집 안에서 살해당한 채로 발견되었다. 역시 이번 사건의 피해자도 지난 사건과 마찬가지로 목이 잘렸고 몸에는 22군데 칼에 찔린 상처가 있었으며 하의가 완전히 다 벗겨져 있었다. 그런데 이 6차 사건의 피해자 추이 씨는 가장 끔찍하게 사체가 훼손되어 양쪽 젖가슴과 양 손, 음부가 모두 도려내져 있었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살인마는 점점 더 잔인하고 사악해진 것이다.

6차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이 지난 2000년 11월 20일 오전 11시에 또 사건이 벌어졌는데 바이인 면방적공장에 다니던 28세 여공 뤄(羅) 씨가 집 안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되었다. 이번 사건의 피해자도 5차를 제외한 지난 사건 피해자들과 마찬가지로 목이 잘렸고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왔으며 양 손이 잘려져 없어졌다. 다만 특이한 건 몸에 칼로 난자당한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01년 5월 22일 오전 9시에 또 사건이 벌어졌다. 바이인구 부녀 보건소에 재직하던 28세 여간호사 장(張) 씨가 바이인구 수이촨로의 집 안에서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다. 전신은 예리한 흉기로 16군데나 찔렸고 역시 강간을 당한 흔적도 있었다.

9개월이 지난 2002년 2월 9일 오후 1시에 25세 여성 주(朱) 씨가 바이인구 타오러춘(陶樂春) 호텔 객실에서 피살된 채로 발견되었는데 목이 잘렸고 상의가 가슴 위로 올라갔으며 하의는 발가벗겨진 상태였다. 역시 이전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강간을 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렇게 14년 동안 여자 9명이 끔찍하게 살해당하자 바이인시에서는 범인은 빨간 옷을 입은 젊은 여성들만 노린다는 둥, 밤에 자신이 앞서 봐둔 여성의 집에 잠입해 강간한 후 살해하거나 반대로 살해한 뒤 시체를 상대로 강간한다는 둥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 때문에 바이인시에 사는 여자들은 대낮에도 외출을 꺼릴 정도였다고 한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는 모두 여자였고 연령대는 5차 사건을 제외하고 모두 10~20대였다는 점이다.

3. 중국 경찰의 분석

첫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14년이 지나면서 경찰의 수사기법도 한 층 더 진보되었다. 경찰이 범인에 대해 발표한 단서는 다음과 같다. 범인은 1964~1971년생으로[3] 첫 살인사건을 벌였을 당시 10대 후반~20대 중반 정도였으며 키는 168~176 cm 정도[4]로 평균적인 남자라는 것이며 20대 여자들만 범행 대상으로 노린 점으로 볼 때 범인은 극도의 여성혐오증이 있고 성기능단속장애와 우울증이 있어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매우 합리적인 분석이었고 범인을 잡아낼 단서를 유추하는 데 성공했으나 거기까지였다. 범인은 고사하고 용의자를 잡는 데도 실패하여 결국 이 사건은 수많은 수색방법을 동원하고도 2016년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4. 피의자 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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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가오청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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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는 가오청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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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가 운영하던 학교 매점.

2016년 8월 경찰은 수사를 재개하여 동월 26일에 피의자를 검거했다. 피의자는 52세였던 가오청융(高承勇)으로 가족과 함께 학교 매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첫번째 살인 이후 28년 동안 대부분 바이인시에서 살았고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다 시험에서 떨어진 뒤 바이인시의 방직 공장 등을 전전하면서 홀로 지내 오다가 3년여 전 주거시설을 갖춘 바이인공업학교 매점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는 평소 튀지 않고 성실한 성격으로 알려진 데다 두 아들까지 명문대로 진학시켜 마을에서 부러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범인으로 밝혀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경악했다고 한다. 그의 지인들은 '내성적이고 우울하고 차가우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고립된 성격이었고 인내심이 강했다.'고 설명했지만 그의 부인과 두 아들, 가족 모두 그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어리둥절해했는데 가족관계는 원만했으며 부인과의 사이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의 당숙도 가오청융이 부모에게 효성이 깊고 이웃과도 아무런 분란이 없었다며 범인이라고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호적(후커우)이 바이인시가 아니라 란저우시에 등록되어 있어서 그 동안 수사망을 피할 수 있었지만 2016년 초 중국 경찰당국이 호적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바이인시에 거주하던 모든 남자를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여 꼬리가 잡혔다. 검거 과정이 참으로 대륙의 기상이 느껴지는 방식이었는데 바이인에 사는 모든 남자들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해서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유전자 샘플과 비교 대조하는 것이었다. 개인의 인권의식이 약한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이니 가능한 방법이었다. 바이인시 거주 용의자의 DNA를 일일이 대조하던 경찰은 사소한 범죄를 저지르고 체포된 어느 남자에 주목했는데 DNA 검사 결과 범인과 DNA가 유사한 숙부였기 때문이다. 곧바로 이 남자의 친척을 용의선상에 올리고 수사를 벌여 범인을 찾아냈다.

수사 결과 그는 바이인에서 저지른 살인사건 9건 외에도 내몽골 자치구 바오터우시에서도 살인사건 2건을 더 저질렀음이 드러났다. 결국 그는 경찰에 체포된 후 여자 11명을 살해한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경찰은 가오청융을 사이코패스이자 다중인격자로 분류했다. 막가파 전수조사로 DNA 일치를 확인했고 피의자도 자백하여 범인으로 확정되어 이 희대의 미제사건은 결국 사건 시작 28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정식으로 구속된 가오청융은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2019년 1월 3일 약물주사형으로 사형에 처해졌다.

5.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의 비교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이 사건은 매우 일치하는 점이 많다.

공통점이 많은 만큼 차이점도 존재한다.

6. 외부 링크


[1] 사막에 가까운 지역으로, 고도가 높고 춥고 건조한 지역이다. 그래도 황하가 남북으로 흐르기 때문에 강원도와 거의 비슷한 크기에 2011년 기준으로 인구가 171만 명이나 된다. [2] 구글에 이 검색어를 칠 경우 피해자의 시체 사진이 거의 그대로 나오니 주의. 검색할 시 같은 중국의 살인 사건이라 그런지 연관 이미지에 댜오아이칭 사건의 시신 사진도 딸려서 나오므로 2번 놀라고 싶지 않거든 검색을 피하자. [3] 실제 범인 가오청융은 1964년 11월 10일생으로 경찰의 추리가 어느 정도 맞았다. [4] 실제 범인의 키는 170cm였다. [5]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2년 빨랐다. [6] 프로파일러의 분석에 따르면 아내나 애인이 아닌 보호 관계에 있는 여자이라고 한다. 이로 보면 어머니인 듯하다. [7] 다만 8차 사건은 실내에서 일어났다. [8] 사건 자체가 워낙 잔혹해 방송도 미성년자와 임산부, 노약자의 청취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분석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범행 방식에 대한 묘사가 나오니 주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