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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26 20:27:48

바이블 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사건 일지
2.1. 퍼트리샤 도커 살인사건2.2. 제미마 맥도널드 살인사건
3. 초기 수사
3.1. 헬렌 푸톡 살인사건

1. 개요

바이블 존은 1968년 2월 22일~ 1969년 10월 31일에 걸쳐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3명의 젊은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여겨지는 연쇄살인마이다. 각각 바이블 존에게 살해당한 희생자는 모두 25~32세 사이의 젊은 흑갈색 머리의 백인 여성이었고 모두 살인범을 글래스고의 인기 있는 댄스홀 혹은 뮤직 베뉴로 유명한 배로랜드 볼룸에서 만났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비록 연쇄살인범과 강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터 토빈(Peter Tobin)의 알려진 활동 방식과 작업 방식과 일치해 그가 이 사건의 범인일 가능성을 암시했지만, 이 3명을 살해한 살인범이 누구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마지막 사건으로부터 [age(1969-10-31)]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사건은 미해결 상태이며, 스코틀랜드의 범죄 역사상 가장 광범위한 인물 수색이 이루어진 사건으로 남아 있다.

바이블 존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추정되는 살인사건은 스코틀랜드에서 처음으로 살인 혐의가 있는 개인 사진의 출판을 공공장소에 걸도록 하기로 영국 고등법원 형사부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 신원 불명의 연쇄살인범은 성경 구절을 반복적으로 인용하고 그의 마지막 희생자의 그룹에 있는 동안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간통을 규탄해서 훗날 '바이블 존'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2. 사건 일지

2.1. 퍼트리샤 도커 살인사건

1968년 2월 23일, 글래스고 남부의 배틀필드에서 일하는 남성이 자신이 직장으로 가는 길에 출입문이 잠긴 차고 안에서 25세의 간호조무사 퍼트리샤 도커(Patricia Docker)가 나체 상태로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녀의 시체가 있던 위치는 랭사이드플레이스(Langside Place)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겨우 1야드(91.4c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의 시체는 그 중에서도 특히 얼굴과 머리에는 둔기 외상에 대해 광범위한 증거를 보여주었고 또 그녀는 아마도 벨트로 추정되는 강력한 끈에 의해 목이 졸려 죽음에 이르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퍼트리샤의 핸드백과 손목시계 그리고 옷들은 모두 범죄 현장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가 입었던 옷은 끝내 찾지 못했지만 그녀의 핸드백은 후에 수중 탐사 장비를 동원해 카트 강에서 찾아냈고 반면에 그녀의 손목시계는 그녀가 살해당한 현장에서 가까운 수영장 물 속에서 찾아냈다.

지역 내 광범위한 탐문 수사를 통해 한 여성이 전날 저녁에 "나 좀 내버려둬!"라고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던 걸 기억해냈지만 강력한 증거로는 뭔가 부족했다. 그렇지만 범죄 현장에서 시신을 회수하는데 동참했던 한 구급차 승무원이 수사관에게 피해자가 렌프루셔 근처의 먼스커크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라고 알려주었다. 그 결과 피해자는 다음 날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25세 여성 퍼트리샤 도커라고 공식적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퍼트리샤가 살해당하기 전 날 밤 그녀는[1] 그녀의 부모에게 호프스트리트(Hope Street) 근처에 있는 마제스틱 볼룸(Majestic Ballroom)에서 열리는 저녁 무도회에 갈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실제 그녀는 부모에게 말한 것과 달리 그 날 저녁 대부분을 마제스틱 볼룸이 아닌 배로랜드 볼룸에서 시간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으며 매주 목요일마다 배로랜드에서 주최하는 25세 이상의 밤 무도회에 참석한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그 날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데 실패하자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친구와 함께 저녁을 보내기로 결정한 것 같다고 짐작했다. 경찰이 며칠 동안의 수사를 통해 알아낸 것은 퍼트리샤가 마제스틱 볼룸을 떠나 배로랜드 볼룸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살인자와 맞닥뜨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밖에 없었다.

글래스고 의과대학의 길버트 포브스(Gilbert Forbes) 박사가 지휘한 부검보고서에는 사망자 퍼트리샤 도커의 사인을 교살로 확정했으며 시신에는 강간의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뿐만 아니라 시신에 나타난 사후 경직의 단계로 볼 때 사망 추정 시각은 그녀가 배로랜드 볼룸을 떠난 직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수사관들은 어떤 사람이 그녀가 2번이나 "나 좀 혼자 내버려둬!"라고 소리쳤기 때문에 그녀를 반복적으로 구타하고 얼굴을 발로 차기 전에 퍼트리샤를 붙잡았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 때 그는 퍼트리샤를 죽이기 전에 강간을 진행했고 그녀의 시신을 버리고 떠나기 전에 카마이클플레이스(Carmichael Place)에 위치한 차고의 출입구를 걸어잠갔을 것이었다.[2]

2.2. 제미마 맥도널드 살인사건

1969년 8월 16일, 32세의 제미마 맥도날드(Jemima McDonald)가 배로랜드 볼룸에서 저녁 댄스파티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제미마는 배로랜드 볼룸의 정기적인 참석자였고 가풍에 따라 그녀의 여동생 마거릿 오브라이언(Margaret O' Brien)이 제미마가 배로랜드 볼룸에 갈 때마다 그녀의 자녀 셋을 대신 돌보았다고 한다. 자정이 다 되어서 제미마는 젊은이들 그룹에 있는 몇몇 사람에게서 25~35세 사이에 있는 키 6피트(약 183cm)~6피트 2인치(약 188cm) 정도에 날씬한 체격에 잘 차려 입고 말 잘하는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이 남성은 짧고 짙은 갈색 머리에 흰머리가 몇 가닥 있었으며 독특한 글래스고 지방 억양을 구사했으며 가끔 대화 속에 성경의 인용구를 잠깐잠깐 넣었다고 한다.

제미마가 그 남자와 함께 배로랜드 볼룸을 떠나는 모습이 목격된 것은 8월 17일 자정이었으며 그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밤 12시 40분 경에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 혹은 랜드레시스트리트(Landressy Street) 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모습이었는데 그곳은 그녀의 집으로 가는 방향이었다. 다음 날, 여동생 마거릿은 언니가 집에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게 되었다. 같은 날 밤, 그녀는 어린이들이 매키스스트리트(MacKeith Street)의 버려진 연립주택 건물에서 시체를 발견했다고 떠드는 지역 내 소문을 듣기 시작했다. 8월 18일 아침, 마거릿은 불안함과 공포를 느끼며 아이들이 말하는 그 버려진 연립주택 건물로 들어갔는데 결국 소문대로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누운 상태로 여러 곳에 구타를 당해 죽어 있는 언니의 시체를 발견하고 말았다. 시체 옆에는 제미마의 신발과 스타킹도 함께 놓여 있었다.

부검보고서는 제미마는 강간을 당했으며 신체 여러 곳에 특히 얼굴에 구타를 당했고 신고 있던 스타킹에 목이 졸려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미마는 그녀가 시체로 발견되기 대략 30시간 전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1년 6개월 전에 살해당한 패트리샤 도커와는 차이점이 있었는데 퍼트리샤 도커는 나체 상태로 발견되었지만 제미마 맥도널드는 비록 하의가 찢어져 있긴 했지만 옷을 입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으며 퍼트리샤와 마찬가지로 제미마는 살해당할 당시에 생리 중이었다고 한다.

경찰은 그녀가 살해당한 날 밤 행적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배로랜드 볼룸에서 제미마와 함께 있던 남자를 본 몇몇 목격자들을 통해 살인범에 대한 묘사를 얻어낼 수 있었다. 아울러 시체가 발견된 매키스스트리트에서 탐문 수사를 한 결과 제미마가 살해당한 날 저녁에 한 여성이 여성의 비명소리를 들은 것 같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지만 정확한 시간까지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 그 결과 경찰은 그들의 수사에 이 정보가 거의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3. 초기 수사

글래스고 경찰은 퍼트리샤 살인사건과 제미마 살인사건에서 두 여성은 모두 그들이 살해당한 날 저녁에 배로랜드 볼룸에 갔었고 두 여성 모두 끈 같은 것으로 목이 졸려 죽기 전에 심하게 구타를 당했으며 또 두 여성 모두 범죄 현장에서 자신의 핸드백이 없어졌으며 살해당한 그 시점에 생리를 하는 중이었다는 몇몇 결정적인 공통점을 찾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두 살인사건은 동일범의 소행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광범위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1968년에 발생한 퍼트리샤 도커 살인사건 수사는 경찰에게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다 두 사건 모두 증인이 부족했고 증거가 부족해 금세 미제 사건이 되어버렸고 수사관들이 그녀가 죽고 3일이 지나서야 겨우 퍼트리샤가 살해당한 날 저녁에 배로랜드 볼룸에 갔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 때문에 수사가 심각하게 방해받고 있었다. 18개월 후, 연달아서 제미마 맥도널드의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은 퍼트리샤 도커 살인사건과 놀라울 정도의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록 경찰은 확정적으로 두 살인사건이 동일범에 의해 일어났을 것이라고 여기지 않았지만 그들은 이 이론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덧붙여서 경찰은 범인 혹은 범인들이 이 지역의 지리에 대해 빠삭한 인물이라고 확신하였지만 수사관이 직접 이야기한 목격자들 어느 누구도 여성들이 살해당하기 이전에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해서 낯선 사람일 가능성도 있었다.

초기에 스코틀랜드의 살인범 추적은 제미마가 살아있었을 때 마지막으로 목격될 당시 함께 있었던 남자의 몽타주를 언론에 제공해 신문과 TV 양쪽을 통해 스코틀랜드 전역에 널리 퍼뜨려 용의자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 경찰 첩보원들을 배로랜드 볼룸에 보내 신중하게 감시해 용의자를 잡아내려 했다. 하지만 이런 경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또 터지고 말았다.

3.1. 헬렌 푸톡 살인사건

1969년 10월 31일, 개와 함께 산책하고 있던 남성이 글래스고 스코스타운 구의 공동 주택 뒤에서 29세 여성 헬렌 푸톡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녀의 시신은 그녀가 거주하는 얼스트리트(Earl Street)에 위치한 아파트 뒷마당 하수관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옷이 벗겨져 부분적으로 나체가 되어 있었고 강간을 당하기 전에 얼굴에 광범위한 구타 흔적이 있었으며 그녀의 스타킹 한 짝에 의해 목이 졸려 죽어 있었다. 핸드백 속 내용물은 시신 주변에 흩어져 있었지만 핸드백 그 자체는 범행 현장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잔디 잡초 얼룩이 헬렌의 발바닥과 신발 곳곳에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강제로 끌려오면서 살인자에게 맹렬하게 저항했으며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시도한 점이 철도 둑 근처에서 분명히 보였다. 그녀의 시신 또한 오른쪽 허벅지 위쪽에 깊은 멍이 있었으며 범인은 그녀의 왼팔 아래에 생리대를 대어놓았다. 이전 2건의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헬렌 역시 살해당할 시점에 생리 중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그녀가 살해당하기 전 날 저녁에 헬렌과 그녀의 여동생 진 랭퍼드(Jean Langford)는 배로랜드 볼룸에 있었고 두 사람 모두 이라고 불리는 남자 2명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존이라는 인물은 캐슬밀크(Castlemilk)에 거주하는 슬레이트공이라고 한 반면 또 하나의 존은 굉장한 달변가였는데 자신이 어디 사는지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같은 무리에서 1시간 넘게 어울리다가 4명 모두 배로랜드 볼룸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이 중 진의 댄스 파트너였던 존은 조지스퀘어(George Square)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버스에 오른 데 반해 진과 헬렌 그리고 헬렌의 댄스 파트너 존은 택시를 불렀다고 한다. 함께 택시를 탄 3명은 글래스고 크로스를 출발해 진 랭퍼드의 나이트우드(Knightswood)에 위치한 집으로 20분 정도 서쪽으로 갔고 진 랭퍼드는 나이트우드에 도착한 뒤 택시에서 내렸고 그녀가 내리자 곧바로 택시는 헬렌이 사는 스코츠턴(Scotstoun) 방향으로 갔다. 이 여정에서 3명 사이에 대화가 오가는 동안 살인자의 심리적인 프로필에 관한 대부분의 중요한 정보가 존재하고 있었고 점점 분명해졌다.

진 랭퍼드는 후에 형사들에게 그녀의 언니와 함께 한 동행자는 금주가였으며 택시에 있는 동안 자신과 언니와 얘기하면서 구약성경 모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인용했고 이전에 배로랜드를 "간통죄의 소굴"이라고 가리켰으며 4인조가 저녁이 끝날 무렵에 그들의 코트를 회수할 때 그가 기혼 여성이 이곳에 드나드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택시가 얼 스트리트 방향으로 돌리는 것을 보기 전에 켈소스트리트(Kelso Street)에서 택시에서 내렸다고 한다.
[1] 참고로 퍼트리샤 도커는 기혼자이고 자식이 하나 있는데 남편과는 당시엔 별거 중이었다고 한다. [2] 참고로 퍼트리샤는 발견 당시에 나체 상태였지만 맨발은 아니었다고 한다. 즉, 옷은 다 벗겼는데 신발은 신고 있는 상태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