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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9-05 15:57:02

미야자키 이사무

미야자키 이사무(宮崎勇 : 1919년 10월 5일~2012년 4월 10일)

1. 개요2. 조종사가 되고 싶은 중학생3. 수병에서 조종사까지4. 실전5. 다가오는 파국6. 종전 후의 삶

1. 개요

제2차 세계대전 일본제국의 전투기 조종사.

2. 조종사가 되고 싶은 중학생

히로시마현 쿠레 시의 쿠레 해군공창에서 일하던 부친 아래 태어난 미야자키 이사무는 소학교 시절 카가와현으로 이사를 갔다가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 무렵 젠츠지 연병장에서 펼쳐진 에어쇼에서 창공을 자유롭게 날으는 각양각색의 비행기들을 넋을 잃고 보던 미야자키 소년은 이때부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워나가게 된다. 마침 그는 군속에다 해군 장교를 친구로 둔 아버지가 있었고, 하고자하는 마음만 있다면 길이 열려 있었다. 중학생 미야자키는 1936년 6월에 학교를 중퇴하고 사세보 해병단을 통해 해군에 입대했다.

3. 수병에서 조종사까지

해병단에서 6개월 동안 혹독한 기초 교육을 거쳐 수병이 된 그는 9,800톤급 장갑순양함 이와테(岩手)에 배치되었고, 1937년에는 인도양을 통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프랑스로 향하는 원양 항해를 하게 됐는데, 훗날 미야자키는 이 경험이야말로 해군에서 쌓은 귀중한 체험이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수상기 모함 치토세(千歳)와 경순양함 나가라(長柄), 포함 아타미(熱海)를 차례로 거치며 우수한 근무성적을 바탕으로 상관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게 된 그는 1940년 11월에 병종 비행예과 제2기연습생 자격으로 츠지우라 해군항공대(土浦海軍航空隊)에 들어가 그토록 원하던 조종 훈련을 받게 된다.

1941년에 예과련의 모든 훈련 과정을 마친 미야자키는 전투기 조종사가 되어 요코스카 항공대에 배치되었다. 1942년 4월 18일에 미 해군의 요크타운급 항공모함 USS 호넷에서 발진한 B-25 폭격기들이 두리틀 공습 작전을 걸어왔을 때, 미야자키 이사무도 적기 요격을 위해 즉시 날아올랐지만 당시의 일본군은 레이다를 비롯한 조기경보체제가 허술해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왔다. 같은 해 10월에는 제252항공대가 편성되면서 보충 인원으로 부대를 옮기게 된 미야자키는 11월 9일에 항모 다이요(大鷹)에 실려 라바울로 이동했다.

4. 실전

그의 첫 출격은 11월 12일 과달카날 섬의 룬가 정박지에 입항한 미군 수송선단의 공격을 위해 육상공격기의 직엄기로 엄호하는 임무였다. 그는 영식 함전 21형을 몰고 과달카날 상공에서 미 해군의 함상전투기 F4F 와일드캣을 1대 떨구면서 첫 격추의 기쁨을 맛보았지만, 귀환 후에 편대장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는 커녕 혼자서 너무 깊이 쫓았다는 호통만 실컷 들었다. 라바울의 발라레 섬(Balalae Island)과 부인 섬(Buin Island), 그리고 라에(Lae) 비행장을 거점으로 활동한 미야자키는 솔로몬 제도와 동부 뉴기니의 각 방면을 분주히 오가며 실전 출격을 계속했는데, 그동안 2번의 불시착과 공중전 도중 적기에게 피탄되는 아찔한 경험을 겪었지만 운좋게도 살아돌아올 수 있었다.


1943년 2월에 제252항공대는 남태평양으로 이동해 웨이크 섬 부근을 작전 지역으로 삼고 활동했는데, 이곳은 그다지 미군의 활동이 없었기에 비번인 날에는 낚시를 즐기는 등 한가로운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11월에 미군이 마킨 환초(Makin Atoll)와 타라와(Tarawa)에 상륙하자 마야자키 이사무 병조장은 대함 공격을 위해 제로센에 폭탄을 달고 출격했다. 그러나 미군의 기동력과 보급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와 같아 1주일도 안되는 짧은 시간만에 교두보를 굳히고 유도로까지 갖춘 비행장을 건설해 매일 전투기와 폭격기를 띄워 일본군에게 공습을 해왔다. 미군의 공습은 점점 격렬해져서 1944년 1월 30일에는 252공의 가동 기체는 거의 전부 파괴되고 얼마 남지 않은 잔여 병력은 1식 육상공격기를 타고 말로에라프 환초(Maloelap Atoll)로 탈출했다. 미야자키 병조장도 2월에 일본으로 돌아와 다테야마에서 부대 재건에 힘을 쏟았다.

5. 다가오는 파국

6월에는 마리아나 제도로 미군이 이동해오자 제252항공대는 요코스카 항공대를 중심으로 하치만 부대(八幡部隊)로 편입되었고 미야자키는 6월 25일에 이오지마를 향해 출격했다. 그러나 수 차례에 걸친 미군의 공격으로 인해 다시 252 항공대는 괴멸하여 내지에서 재편 작업에 들어갔다. 10월 10일에 오키나와가 미군 기동부대의 공격을 받자 252공은 대만으로 전개했는데 22일에는 필리핀의 마발라카트 비행장으로 옮겨 가 24일에 루손 섬 해상에서 미군의 항공모함과 수반 군함들로 이루어진 기동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그날 밤 비행부장이던 신고 히데키(新郷英城 : 1911~1982) 소좌의 명령으로 집합한 부대 전원은 특공에 관한 설명과 명령을 하달받고 전원 특공대에 반강제로 지원하게 된다.

미야자키 이사무는 1944년 1월 30일 마샬 제도를 방어하는 임무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이날 그는 252공의 다른 3명의 파일럿과 함께 출격했지만, 그들이 몰던 전투기 모두가 손상을 입고 먼저 후퇴하자 홀로 교전 구역에 남겨졌다. 그런데, 해면 바로 위를 낮게 비틀거리며 날고 있는 1대의 그루먼 F6F 헬캣을 발견했다. 곧바로 하강해 적기의 꼬리를 잡고 추격을 했지만, 미야자키는 그 미군 조종사가 부상을 입어 싸울 수 없는 상태임을 알게 됐다. 헬캣과 나란히 날면서 그 파일럿을 노려보자 그 미국인 조종사는 가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훗날 미야자키는이때의 경험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런 사람을 쏘아 떨어뜨릴 심장은 갖지 못했기에, 그를 보내주었습니다."

그 미군 파일럿, VF-10 소속의 플레처 존스는 곧 바다 위에 불시착했지만, 결국 구조되지 못하고 익사했다.

11월 1일에 비행부장으로 승진한 미야자키는 특공 출진을 기다리던 도중 이와모토 테츠조와 함께 새 기체 수령을 위해 일본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일본으로 돌아온 미야자키는 1944년 12월에 제343항공대 제301비행대에 소속되었다. 301 비행대의 지휘관은 그 유명한 칸노 나오시 대위로, 343항공대는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해군의 에이스 파일럿들을 긁어모아 창설한 최정예 부대로, 해군 최고의 전투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던 신예기 시덴카이를 집중 배치해 겐다 미노루 중좌가 지휘관으로 편성된 특별부대였다. 항목 참조

미야자키 이사무는 일명 신선조로 불린 부대에서 곤도 이사미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1945년 3월 19일에 쿠레 항으로 미군이 공격해오자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전쟁의 향방을 바꾸지는 못했고, 일본이 항복한 후인 9월에 예비역에 편입되어 군복을 벗었다. 그의 단독 격추 기록은 13대 이상이었는데 일설에는 그가 동료들과 함께 공동으로 격추한 숫자까지 합치면 120대 이상이라는 하무맹랑한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야자키 이사무는 일본 육해군의 전투기 조종사를 통틀어 아마도 가장 많은 출격을 하고도 종전까지 큰 부상 하나 없이 목숨을 부지한 조종사라는 점이다.

6. 종전 후의 삶

카가와현의 집으로 돌아간 미야자키는 다시 343 항공대의 추억이 남아있던 마츠야마시로 이사하여 우체국에 들어가 운전배달부를 하는가 하면, 친구의 회사에 고용되어 사장직을 지내다가 처가의 가업인 양조장을 이어받고 나서야 형편이 나아졌다. 미야자키는 패전 후에 개인사업을 하면서도 자신이 전쟁 동안 겪었던 체험에 관해서 절대 입을 열지 않았고, 군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철저히 멀리 했다. 그래서인지 미야자키 이사무는 전사하거나 순직한 전우들을 제외하면 다른 동료 조종사들과 거의 교류가 없었다.

1978년 에히메현의 바다 밑에서 우연히 추락한 시덴 카이 전투기가 발견되자 NHK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그 지역 관계자였던 미야자키 이사무를 찾아가 취재했다. 그 후 조사를 해보니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이 전투기는 1945년 7월 24일에 미군기 용격에 나섰다가 돌아오지 못한 무토 가네요시를 포함한 6대 중에 하나로 밝혀졌고 이에 미야자키는 마음을 바꿔 먹고 인양 작업에 협력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전쟁에 대하여 입을 꾹 닫고 있던 이사무는 증언을 하며 책도 편찬해냈다. 그 후 오사카로 이사한 미야자키는 2012년 4월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