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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20:28:45

문종(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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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작중 행적
2.1. 어린 시절2.2. 성인이 된 이후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대왕 세종의 등장인물로 문종을 모티브로 하였다. 배우는 성인은 이상엽, 아역은 오은찬과 강빛(53회 이후)이 맡았다.

2. 작중 행적

2.1. 어린 시절

세종이 충녕대군이던 시절 그의 장남[1]으로 태어나지만, 아들에게 줄 선물로 배 모형을 만들어서 돌아오던 충녕이 '고려부흥세력'의 무사인 무비에게 총(정확히는 화살)을 맞고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별 탈은 없었고, 이로 인해 '고려부흥세력'이 사실상 와해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이후 아버지 충녕이 북방 지역으로 유배를 가면서 잠시 이별했지만, 수년 뒤 성장해 돌아온 아버지와 재회한다.

충녕이 세자, 뒤이어 할아버지 태종에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이 무렵 비중을 많이 없었다. 그나마 할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청송 심씨 가문이 풍비박산 났을 때 어머니 소헌왕후에게 앉아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장면 등이 있었다.

이후 조금 더 성장한 상태에서 왕세자에 책봉되어 53회[2]부터 활약이 나오는데, 등장하자마자 활을 못 쏴서 주변의 눈치를 보았고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겨우 쏘았지만, 자신 없는 표정이었다. 그날 밤 장영실의 어깨에 올라타면서 별자리를 보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질투심을 가진 아우 이유(진양대군)의 장난에 당했다. 이후 할아버지에게 풀이 죽은 채 사실대로 말하다가 장영실이 명에 가서 조선만의 역법을 챙긴다는 말까지 하면서 태종과 세종 간의 갈등을 또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태종은 끝내 자신의 고집을 꺾고 세종이 뜻에 따라 장영실을 명에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지었고, 이후 활을 쏘면서 할아버지에게 "자신 또한 할아버지 아버지처럼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아버지와 대립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라고 묻자 "설령 네가 반대하더라도 너를 향한 아비의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들은 후 혼자서 활을 쏘아 명중시켰지만, 그 사이 할아버지가 승하한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나 이후 장영실이 세종에게 중용되어 천문대를 만들려고 할 때 그의 신분으로 트집을 잡는 중신들과 그들로 인해 고생하는 아버지 세종, 그리고 누나(정소공주)가 세종과 약속했다며 노비가 된 할머니가 일하는 집 앞에서 대기했다가 독감에 걸려 사경을 헤메는 등 심리적으로 너무 공격받은 나머지 장영실에게 "왜 너 때문에 우리 가족들이 고통받아야 하는 건데! 이건 세자로써 명이야! 너는 아무리 해도 노비니까 그 관복 벗어!" 하면서 폭언을 내벹고 사라졌다. 다행히 장영실의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자신의 폭언을 후회해 장영실에게 자를 선물하면서 꼭 천문대를 완성하라며 명을 내리고 울면서 사과한다.

2.2. 성인이 된 이후

죽은 할아버지 태종의 마지막 말이 복선이 되었는지, 성인이 된 1430년대 이후부터는 '세자빈'과 '북벌' 문제로 인해 아버지 세종과 대립했고, 여기에 더해 자신의 아우이면서 아버지보다 더 당돌한 아우 진양대군이 어릴 적에 한 말인 "자기가 먼저 천문대를 이용해 보고 싶다."를 기억해 그에게 천문대를 사용하는 영광을 넘기는 등 아우를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다행히 장영실이나 스승 신장[3]의 아들인 신숙주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도움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대리청정을 맡으면서 점차 왕재로서 성장해 나갔지만, '세자빈' 문제로 지속적으로 갈등했다. 오죽했으면, 진양대군을 따로 불러 "이 용포 너한테 그냥 줄까?"라고 묻는 등 심적으로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었다.[4] 결국 첫번째 세자빈이 쫓겨난 뒤에 맞이했던 세자빈 봉씨마저 내쫓으면서 문제는 일단락되었고, 뒤이어 맞이한 권씨에게서 아들을 얻으나 권씨가 산후병으로 죽고 나서 세자로서 모든 정무를 끝내고 나서 비 오는 밤, 자신이 개발한 측우기 앞에 서서 오열한다. 이때 말리려던 장영실을 작으면서 그 광경을 바라본 세종의 아래 발언이 인상적이다.
"측우기라... 어쩌면 저것이 재는 것은 비가 아니라 국왕의 눈물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 이후 아버지 세종이 전적으로 문자를 창제하기로 하자 대리청정을 하면서 틈틈이 옆에서 보좌하면서 도왔고, 명의 의심에 장형을 때려 죽게 한 척 내보낸 장영실의 생존을 집현전 학사들에게 알려 그들이 세종을 돕게 만드는 한편, 이에 반대해 진관사를 습격하려던 최만리 등 문자 창제 반대파들을 유연하게 대처했다.

그리고 최종회에서 훈민정음을 완성한 세종에게 명의 사신으로 온 왕진의 평[5]을 들었고, 이후 근정전 앞에서 진행한 훈민정음 반포식을 동생 수양대군과 함께 바라보았다.

[1] 위로 친누나인 정소공주가 있었다. [2] 52회가 1420년 세종의 모후인 원경왕후 민씨가 사망한 장면으로 마무리되었고, 53회부터 태종이 승하한 1422년으로 넘어갔는데, 문종이 되는 이향이 왕세자로 책봉된 것은 그 사이인 1421년이다. [3] 다만 얼마 안 가 세상을 떠난다. 하필 세종이 북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벌어져 부자간의 갈등을 더 만들었다. [4] 훗날 수양대군이 되는 그의 미래 행적을 생각하면 골때리긴 하지만 달리 말하면 세자&왕위를 포기해서라도 세자빈 때문에 고통받는 나날에서 벗어나고 싶어할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음을 보여준다. [5] "한 사람의 눈먼 자가 만인을 눈 뜨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