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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29 06:34:58

멜키오르 은다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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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 부룬디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
멜키오르 은다다예
Melchior Ndadaye
파일:Ndadaye.jpg
<colcolor=#fff><colbgcolor=#000> 출생 1953년 5월 28일
루안다-우룬디 냐비앙가
사망 1993년 10월 21일 (향년 40세)
부룬디 부줌부라
역임 부룬디 제4대 대통령
1993년 7월 10일 ~ 1993년 10월 21일 (3개월 11일)
국적 파일:부룬디 국기.svg 부룬디
1. 개요2. 생애3. 사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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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룬디 후투족 출신 대통령.

2. 생애

군인 출신에다 쿠데타로 전임자를 축출한 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전직 대통령 세 명과는 달리 후투족 가정에서 태어나 르완다 국립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금융학을 공부한 뒤 르완다에 귀국해 은행원으로 일하며 인권운동과 노동운동가로 활동하던 비교적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딱히 큰 논란은 없던 편이었다.

1993년 6월 1일 부룬디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민주적인 다당제 선거에 의해 선출된 첫 후투족 대통령이며 1993년 7월 10일에 취임하였다.

취임 이후에는 후투족과 투치족 간의 대립 완화와 개혁을 시도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1993년 10월 21일일에 투치족에 의해 장악된 군부내의 쿠데타 시도에 의하여 집권 3개월만에 암살당했다. 암살의 배후에 2대 대통령이었던 장바티스트 바가자가 있었다는 설이 나왔으나 그가 절대 아니라고 반발해서 무마되었다.

3. 사후

그의 암살 후 후투족과 투치족은 12년간 잔인한 내전을 치렀다.

그러다가 2002년 두 부족은 평화협정에 서명했고, 이후 새로 발행되는 부룬디 1만프랑 지폐 루이 르와가소레와 함께 도안으로 등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는 투치족(루이 르와가소레)과 후투족(멜키오르 은다다예)의 화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파일:attachment/부룬디 프랑/burundi2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