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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fff> ※ 부룬디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 }}}}}}}}} |
미셸 미촘베로 Michel Micomber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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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출생 | 1940년 8월 26일 |
벨기에령
루안다-우룬디 루토부 (現 부룬디 루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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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983년 7월 16일 (향년 42세) |
소말리아 모가디슈 | |
역임 | 초대 부룬디 대통령 |
1966년 11월 28일 ~ 1976년 11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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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부룬디의 정치인이자 육군 장교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첫 부룬디 대통령이자 독재자로서 나라를 통치했다.2. 생애
1940년 벨기에령 루안다-우룬디에서 투치족 출신 부모의 아들로 태어난 미촘베로는 지역 가톨릭 미션스쿨에 재학하며 유년기를 보낸 후 1962년, 부룬디군에 입대했고, 벨기에의 왕립 군사학교로 유학을 가 장교로서 군사 교육을 받은 뒤 귀국 이후 장관 계급을 수여받았다.1965년 10월, 부룬디 왕국의 후투족 총리 임명 거절과 투치족 군대를 대동한 후투족 시위대 유혈 진압에 반발하여 후투족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것을 투치족으로서 지원해 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65년의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이에 힘입어 1966년 미촘베로는 군주를 향한 두번째 쿠데타를 지도했다. 미촘베로 본인은 이 쿠데타의 영향력이 매우 약했다고 생각했으며, 그의 생각이 맞았는지 66년 7월의 쿠데타는 기존의 왕인 므왐부차 4세가 폐위되고 은타레 5세가 새로 왕위에 앉았으며 미촘베로는 총리직이 되었다.
이에 질 수 없었던 미촘베로는 11월에 두 번째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번에는 성공하여 군주제 자체를 폐지시키는 데에 성공하였고 미촘베로는 부룬디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
미촘베로는 일당제 국가를 이끌었는데, 나라의 기관들은 중앙집권화되었고 냉전에서는 중립적인 입장이 되었다.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은 억압되었으며, 이는 곧 독재 정권으로 이어졌다. 1972년, 미촘베로의 권력에 도전하려는 시도는 후투족에 대한 대량학살 폭력으로 이어졌다. 이 때 후투족인 약 10만 명이 죽었다. 그의 정권은 1976년 또 다른 육군 장교인 장바티스트 바가자에 의해 쿠데타로 축출되면서 마침내 무너졌다. 미촘베로는 소말리아 모가디슈로 망명하여 생활하다 1983년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