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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조 추존 황제 文皇帝 | 문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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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호 | 없음 |
시호 | 건시흠명문황제(建始欽明文皇帝) |
부친 | 막히엔 |
모후 | 불명 |
성 | 막(Mạc / 莫) |
휘 | 딘 찌(Đĩnh Chi, 挺之/정지) |
자 | 띠엣 푸(Tiết phu, 節夫/절) |
생몰 | 1280년 ~ 134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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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월 쩐 왕조의 시인. 자는 절부(節夫)이다. 막 왕조의 시조인 막당중의 조상으로 시호는 문황제(文皇帝)였다.2. 생애
막딘찌는 찌린 현(至靈縣) 롱동랑(隴洞廊, 현재의 하이즈엉성 남삭현 남떤사) 사람으로, 리 왕조 시기 막히엔띳의 5세손이었다.[A]용모가 추했지만 지혜가 많았다. 흥롱 12년( 1304년) 3월, 막딘찌는 전시(殿試)를 통과하여 장원이 되었고, 태학생(太學生) 중 제일로서 내서가(內書家)에 충임되었다.[A] 이후 좌복야(左僕射)가 되었다.1308년, 원나라에서 원 무종이 즉위한 뒤 상서(尙書) 안로위래(安魯威來)를 쩐 왕조에 파견해 즉위 사실을 알렸다. 영종은 막딘찌를 원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막딘찌의 용모가 왜소하고 누추했으므로 원나라 사람들은 그를 업신여겼다. 하루는 원나라의 재상이 그를 불러 부(府)로 들어오도록 했는데, 막딘찌가 문장(蚊帳)의 위에 황작(黃雀)이 대나무 가지 위에 수놓아진 것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찢어버렸다. 사람들이 이를 기괴하게 여겨 모두 그 이유를 물었다. 막딘찌는 "
我聞古人有梅雀書,未聞有竹雀書者。今宰相帳裡繡竹雀。竹,君子也;雀,小人也。宰相以此繡諸帳,是以小人加君子,恐小人道長,君子道消,我為聖朝除之
나는 옛 사람이 《매작서》(梅雀書)를 가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죽작서》(竹雀書)를 가진 자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재상의 장(帳) 안에는 대나무와 황작이 수놓아져 있는데, 대나무는 군자를 뜻하고, 황작은 소인을 뜻합니다. 재상이 이것들을 장에 수놓는 것은 곧 소인으로써 군자에 더하는 것이니, 소인의 도가 성하고 군자의 도가 쇠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조(聖朝)를 위하여 그것을 없애버렸습니다.
나는 옛 사람이 《매작서》(梅雀書)를 가졌다는 말은 들었지만 《죽작서》(竹雀書)를 가진 자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재상의 장(帳) 안에는 대나무와 황작이 수놓아져 있는데, 대나무는 군자를 뜻하고, 황작은 소인을 뜻합니다. 재상이 이것들을 장에 수놓는 것은 곧 소인으로써 군자에 더하는 것이니, 소인의 도가 성하고 군자의 도가 쇠할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조(聖朝)를 위하여 그것을 없애버렸습니다.
라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재능에 감복했다.
막딘찌가 무종을 조현할 때, 마침 외국에서 부채를 진공하자 무종은 막딘찌에게 부채에 제사(題詞)를 지으라고 명했다. 막딘찌는 붓을 잡고
流金礫石,天地為爐。而於斯時兮,伊周鉅儒。北風其涼,雨雪載塗。而於斯時兮,夷齊餓夫。噫用之則行,舍之則藏。惟我與爾,有如是夫。
'흐르는 금과 조약돌이여, 천지를 화로로 삼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이윤과 주공이 거유(鉅儒)라네. 북풍의 서늘함이여, 비와 눈이 길을 질척거리게 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백이와 숙제는 굶주리는 사내구나. 아! 등용하면 출세하고, 버려두면 숨는구나. 오직 나와 그대만이, 이러한 사내와 같도다.
'흐르는 금과 조약돌이여, 천지를 화로로 삼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이윤과 주공이 거유(鉅儒)라네. 북풍의 서늘함이여, 비와 눈이 길을 질척거리게 하네. 이 시대에 있음이여, 백이와 숙제는 굶주리는 사내구나. 아! 등용하면 출세하고, 버려두면 숨는구나. 오직 나와 그대만이, 이러한 사내와 같도다.
라고 적었다. 원나라인들은 그를 매우 칭찬하였고 이것을 《선자명》(扇子銘)이라고 했다.
3. 기타
막당중은 막딘찌의 7세손이었다. 1527년, 막당중이 막 왕조를 세운 뒤 막딘찌의 시호를 '건시흠명문황제'(建始欽明文皇帝)라고 했다.고려를 방문한 베트남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