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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1:23:11

마거리트 히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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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0000><colcolor=#fff> 마가렛 히긴스
Marguerite Higgins
파일:mhreporter.jpg
본명 마거리트 히긴스 홀
Marguerite Higgins Hall
출생 1920년 9월 3일
영국령 홍콩
사망 1966년 1월 6일 (향년 45세)
미국 워싱턴 D.C.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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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언론인
학력 컬럼비아 대학교 (불문학 / 학사)
경력 <뉴욕 해럴드 트리뷴> 런던지국 기자
<뉴욕 해럴드 트리뷴> 베를린지국 기자
<뉴욕 해럴드 트리뷴> 도쿄 특파원
<뉴욕 해럴드 트리뷴> 모스크바지국 기자
배우자 윌리엄 에반스 홀 (1952년 결혼)[1]
자녀 1남 2녀[2]

1. 개요2. 생애와 경력3. 저서4. 잘못 알려진 사실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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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거리트 히긴스는 미국의 여성 종군기자로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에 종군해 취재하였으며 1951년 여름에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2. 생애와 경력

그녀의 아버지는 1차대전에 미군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한 참전용사이며 1차대전 종전후 사업가로 활동하였고 그녀의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1924년 9월에 홍콩에서 태어났고 1928년에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녀는 대학생 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고 대학생 통신원 신분으로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대학교 졸업 이후에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 지의 화재피해 전문 기자로 활동하였다.

1950년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고 부임하자마자 한국전쟁 이 일어났으며 그녀는 재빨리 서울의 미8군 군사고문단을 찾아갔다. 그 다음날 새벽에 한강 인도교가 폭파되었고 어렵게 서울을 탈출, 수원에서 미군 군용기를 타고 도쿄로 날아가 한강 인도교 폭파 기사를 송고한 후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함께 한국에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1950년 12월까지 한국전쟁을 취재하였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1951년 봄에 <War in Korea> 를 집필해 인기를 얻었다.

그녀는 1951년 여름 퓰리처상을 수상한 이후 계속해서 런던지부를 포함된 국제정치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프란시스코 프랑코 , 니키타 흐루시초프, 자와할랄 네루 등을 인터뷰하였다. 1963년에 <뉴스데이> 로 이직하고 베트남전쟁에 종군하였는데 이때 라오스에서 취재하다가 풍토병(리슈만편모충증)에 걸려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병을 떨치지 못하고 사망하였으며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3. 저서

4. 잘못 알려진 사실

대한민국 해병대의 "귀신 잡는 해병대" 애칭이 통영상륙작전을 취재하던 마거리트 히긴스가 작성한 기사에서 비롯되었다는 소문이 2000년대 이후 해병들 사이에서 입소문으로 나돌았다.

1990년대까지는 외신 기자들이 대한민국 해병대의 용맹성을 칭찬하면서 붙여진 애칭이다 정도로 알려졋는데 2000년대 이후로 그럴싸하게 만들기 위해 기사 작성자는 마거리트 히긴스 그리고 기사에 쓰여진 'They might capture even the devil.'(그들은 귀신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문구에서 유래했다는 식으로 정교해졌다.

그리고 그리고 이 썰이 해병대를 다룬 언론 기사에도 소개/인용되면서 마치 실제 역사인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혀 사실무근으로 마거리트 히긴스는 통영 상륙 작전을 취재하지도 않았으며 대한민국 해병대에 관한 기사를 쓴 적이 없다.

5. 기타


[1] 1907 ~ 1984, 미국 공군 장교로 1961년 중장으로 퇴역했다. [2] 장녀는 태어난지 5일 후 세상을 떠났다. [3] 2009년 한국에서 <자유를 위한 희생> 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