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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22 22:09:02

루초 곤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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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초 곤살레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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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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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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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초 곤살레스
Lucho González
본명 루이스 오스카르 "루초" 곤살레스
Luis Óscar "Lucho" González
출생 1981년 1월 19일 ([age(1981-01-19)]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국적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신체 조건 185cm, 81kg
직업 축구선수( 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CA 우라칸 (1995~1998/유스)
CA 우라칸 (1998~2002)
CA 리버 플레이트 (2002~2005)
FC 포르투 (2005~2009)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2009~2012)
FC 포르투 (2012~2014)
알 라이안 SC (2014~2015)
CA 리버 플레이트 (2015~2016)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2016~2021)
감독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 (2022 / 수석 코치)
세아라 SC (2022)
국가대표 45경기 6골( 아르헨티나 / 2003~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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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엘 코만단테(El Coman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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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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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아르헨티나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막시 로드리게스, 에스테반 캄비아소와 함께 200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의 중원을 담당했던 에이스로 왕성한 활동량과 다재다능함으로 2000년대 당시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대명사로 활약을 보여준 선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초창기 및 FC 포르투 시절

CA 우라칸에서 3년동안 활약한 후, 2002년 CA 리버 플레이트에서 3년동안 120경기에서 23골을 기록한 뒤 2005년 포르투갈 명문인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당시 포르투는 루초 곤잘레스르 영입하기 이전 브라질 최고 유망주 중 하나인 지에구를 영입했는데 신통치 않았고 SL 벤피카에게 리그 왕좌의 자리를 내준다. 시즌이 끝난 이후 코 아드리안세 감독은 디에구 대신 루초를 중용하였고 루초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데뷔시즌 10골을 넣으며 다시 리그 우승을 탈환했다.[2]

이 후 FC 포르투의 주장으로 임명된 루초는 포르투의 4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며 포르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유럽클럽대항전에서는 비록 2005-06 시즌 조 꼴지로 탈락했으나 그 뒤로는 2006-07, 07-08 시즌 16강, 08-09 시즌 8강, 09-10 시즌 16강까지 연이어 챔피언스리그 2차 토너먼트를 계속 넘기며 안정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2.1.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그렇게 4년간 포르투에서 활약한 루초는 2009년 6월, 2,2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로 이적하는데 당시 구단 역사상 최고 이적료였다. [3]

프랑스 무대에서도 루초는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데뷔 시즌 리그앙 우승과 쿠프 드 라 리그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다. 챔스에서는 AC밀란전 동점골, 마지막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만회골을 넣었으나 해당경기 PK 실축을 했고 결국 3위로 유로파리그에 나갔고 유로파리그에서도 16강에서 벤피카를 만나 합계 스코어 3:2로 탈락했다.

마르세유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아스날 FC의 무수한 이적루머가 돌았으나 루초는 마르세유에서 2012년 1윌까지 머물렀고 2012년 1월 경 다시 FC 포르투로 리턴한다. 참고로 마르세유의 마지막 우승컵이 바로 2011-12 쿠프 드 라 리그우승이다.

2.1.3. FC 포르투 그리고 황혼기

다시 포르투로 돌아온 루초는 이 후 2연속 리그 우승을 이끌며 포르투갈 리그의 왕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루초도 서른이 넘기면서 서서히 주전에서 후보로 밀려났고 마지막 2013-14 시즌 16경기 출장에 그치며 10년간 유럽 무대 생활을 청산하고 카타르의 알 라이안 SC를 거쳐 자국리그인 CA 리버 플레이트로 돌아오나 사실상 서브맴버였고 이 후 2016년 아틀레치쿠 파라나엔시로 이적하는데 노장임에도 주전급으로 5년간 활약한 뒤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3년 1월 31일 온두라스와 경기에서 데뷔를 했고 2004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해 조별리그 에쾨도르전과 4강 콜롬비아전에 골을 기록하지만 팀은 결승에서 브라질에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축구에서 카를로스 테베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파브리시오 콜로치니 등 신성들과 함께 활약해 첫 금메달의 주역이 되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도 막시 로드리게스, 에스테반 캄비아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후안 로만 리켈메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 미드필더진의 중추로 이 시기 아르헨티나는 역대급 팀밸런스를 보여주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분류되었고, 당시 캄비아소의 백업이었던 루초는 16강전 이후 캄비아소의 체력 보호 차원에서 8강 독일전 첫 선발출전했는데 백업 맴버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기량을 선보여 미하엘 발락, 토어스텐 프링스, 베른트 슈나이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가 버티던 개최국 독일을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팀은 승부차기 끝에 2:4로 패했지만 당시 골키퍼인 로베르토 아본단시에리의 불의의 부상만 없었으면 아르헨티나가 4강에 진출했을 것이고 잘하면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었기에 더욱 아쉬운 결과였다.

이후 2007 코파 아메리카까지 대표팀 미드필더의 주요 선수로 활약하지만 2007년 후반기부터 서서히 대표팀에 멀어지는데 특히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달랑 1경기만 출전했다. 문제는 그 경기가 바로 라파스 참사(...) 더 골때리는 건 라파스 참사에서 정작 아르헨티나의 유일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루초 곤잘레스였고 이 경기 이후 무려 2년간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못했다. 이후 알레한드로 사벨라가 2011년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 후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에 기용했지만 2011년 9월 6일 나이지리아전이 그의 마지막 A매치 경기가 되어버렸다.

3. 지도자 경력

3.1. 세아라 SC

현지 시각 2022년 8월 24일, 세아라 SC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10경기에서 1승 4무 5패를 거두는 등 팀을 강등권으로 떨어트렸고, 결국 성적 부진으로 인해 현지 시각 2022년 10월 28일에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

4. 플레이 스타일

동갑내기 막시 로드리게스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데, 올라운더 플레이어로 상당한 활동량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가담도 열심히 하는 살림꾼 스타일. 예리한 슈팅과 패싱 능력, 그리고 높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엘 코만단테(El Comandante)라는 애칭이 있다. 그렇다고 쓸데없는 움직임을 보여 체력만 깎아먹는 일도 없었으며 패싱력과 강력한 슈팅력, 단단한 피지컬, 거기에 더해 팀 전체를 이끄는 전술적 이해도도 매우 높은 선수였다. 시야도 넓고 판단력도 빨라 쓸데없는 움직임으로 볼을 뺏기는 일도 없고, 공격시 뛰어난 위치선점으로 헤딩 득점도 좋았다. 개인기나 기동성 등 공격적인 능력은 동갑내기 막시 로드리게스에게 뒤졌지만,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하는 중원 조율 능력은 루초가 더 나았다.

사실 이런 유형의 미드필더는 2010년대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 더더욱 필요했던 선수다. 아르헨티나의 2010년대 메이저 대회 기록을 보면 아쉬운 성적밖에 없는데 특히 결승까지 갔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과 2015, 2016 코파 아메리카에서 항시 지적됐던 고질적인 문제가 중원에서 공격과 수비를 안정적이게 조율을 해줄 중앙 미드필더 선수가 없었다는 것이였다. 이 단점때문에 활동량이 적기로 유명한 메시를 중원 싸움에 가담시키고 또한 디 마리아를 중원으로 내리면서 그의 공격력을 포기하면서까지 중원에서 볼 전개를 지시했는데 당연히 개인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경기력이 오락가락했다. 2020년대에 들어선 지금은 로드리고 데 파울, 레안드로 파레데스, 기도 로드리게스, 지오바니 로셀소 등 뛰어난 중미들이 배출되며 걱정을 덜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 당시 최고의 팀 밸런스를 보여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제 몫을 다한 선수중 한 명이다.[4]

[1] 윙어, 중앙 미드필더 [2] 이는 모든 팀의 코어를 자신에게 맞춰야 하는 디에구와 달리 루초는 플레이 스타일에도 나와있듯이 멀티 플레이어에 능한 무상성 미드필더이기에 팀 전체의 밸런스를 생각하면 당연히 디에구보다 활용도가 높다. 물론 디에구도 2006년 분데스리가로 넘어간 후 기량이 만개하긴 했지만 훗날 디에구를 영입한 유벤투스가 1년만에 디에구를 방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3] 이 이적료는 5년 뒤 2017년 디미트리 파예트가 2,900만 유로로 마르세유로 이적하면서 경신된다. [4]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캄비아소는 5경기 출장에 377분을 소화했으며 반면 루초는 3경기 출장에 151분을 소화해 사실상 캄비아소의 백업 맴버였다. 8강전 독일전에서 교체로 들어온 캄비아소 대신 루초가 120분 풀타임 동안 보여준 뛰어난 기량으로 인해 주전으로 착각할 수 있는데 독일전을 제외하면 사실상 캄비아소가 해당 대회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