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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0 16:13:03

레이 세포

파일:ray-sefo-wsof-34.jpg
이름 레이 세포
(Ray Sefo)
생년월일 1971년 2월 15일 ([age(1971-02-15)]세)
오클랜드 지방 오클랜드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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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투 전적 6전 5승 1패 (4 KO)
입식 전적 79전 56승 (38 KO) 22패 1무
종합격투기 전적 4전 2승 2패
1KO, 1SUB
1KO, 1SUB
체격 180~183cm / 105kg / 191cm
링네임 Sugerfoot
주요 타이틀 1997 WKA World 슈퍼 헤비급 챔피언
1996 WMTF World 슈퍼 헤비급 챔피언
기타 2000 K-1 WGP 준우승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전적3. 커리어
3.1. 복싱 커리어3.2. 킥복싱 커리어3.3. 종합격투기 커리어
4. 파이팅 스타일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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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의 전 킥복싱, 종합격투기, 복싱 선수. 현재는 MMA 단체인 PFL(구 WSOF)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2. 전적

※ 복싱
* 주요 승: 스티브 그리핀
※ 종합격투기
* 주요 승: 김민수, 케빈 조던

3. 커리어

3.1. 복싱 커리어

1라운드 40초만에 TKO패 당했다. 2초에 5연타를 얻어맞고 로프 밖으로 떨어져 실신했다. 격까들이 자주 쓰는 레파토리로 유명한 6라운드 검정 복서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이 선수.
스티브 그리핀에게 무난하게 KO를 따내며 승리한다.

3.2. 킥복싱 커리어

한때 어네스트 후스트나 제롬 르 벤너와 함께 K-1 빅3로 꼽혔었지만 정작 우승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처음 나왔을 때는 개성도 부족하고 인지도가 낮았다.
제롬 르 밴너전에서 한 차례 다운을 당했지만 제롬 르 밴너를 라이트 훅 한 방에 KO시킨다.[1] 여담으로 이 경기의 영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후 밴너는 세포와 경기를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스테판 레코전에서는 레코를 손쉽게 제압한다. 레코는 특유의 다운 패시브 스킬을 발동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났으나 풀린 다리와 쏟아지는 코피는 막을 수 없었다. 이내 연신 몰아 부치며 TKO승

이 당시 레이 세포는 상대를 도발로 농간하는 등의 행동은 하지 않은 페어 플레이어류 인상이었는데 점점 승승장구하자 갑자기 기믹을 바꾸며 도발. 노가드로 쇼맨십을 유도하여 상업가치를 높이기 시작했다.
2001년 슈퍼 사모안 마크 헌트와의 명승부가 매우 유명한데, 마크헌트는 레이 세포의 주먹을 받으며 더 때려보라고 도발했고 그에 응수하여 레이 세포 역시 비슷하게 노가드 전법을 사용했으나 되려 손해를 본 것은 레이 세포였다. 심지어 완전 가드를 내려놓은 마크헌트에 비해 레이 세포는 맞는중 아펐는지 가드를 올리기까지 했다. 결국엔 경기는 판정으로 승리를 장식했으나 정작 안와골절로 부상을 당해 결장하고, 마크 헌트가 대타출전하여 우승함으로서 레이 세포에게는 안타까운 한 해가 되었다.
2000년 월드 그랑프리 결승에서 맞붙게되는데 상대가 상대인지라 판정패한다.[2] 2년 후 2002 WGP 준결승에서 만났으나 세포의 로우킥을 후스트가 컷팅하자 세포의 발목이 골절되면서 그대로 주저앉아 1라운드 KO패를 당하였다.
시릴 아비디와의 경기에서는 수세에 몰리자 기권패한다. 그 후 2차전에선 난투전 끝에 압도하며 판정승하였다.
1차전(2000)에서는 압도적인 기량으로 펀치러시에 의한 KO승을 따냈다. 그후 2003, 2004에는 판정까지 가다가 두 번 다 판정패했다. 이때가 한창 무사시 편파판정이 성행하던 시기였고 무사시를 결승전까지 끌어올리려는 주최측의 의도 때문에 세포가 희생양이 된 것일 수도 있다.[3]
샙이 언제나처럼 닥돌하며 세포를 압박하였으나 맷집 좋은 세포는 잘 견뎌 내었고 2라운드에 펀치로 다운을 뺏으면서 승리했다. 경기중에 샙이 자꾸 후두부를 타격하는 등의 반칙을 시전하자 그 대가로 세포가 로블로를 선사해 주었다.
카오클라이와의 대전에서는 판정승한다. 경기 전부터 카오클라이에게 트래쉬 토크를 구사하며 도발했고 경기에서 승리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둘의 체급상 카오클라이는 거리를 벌리며 한 방을 노리고 세포는 쫓아가는 구도여야 했는데, 카오클라이가 다가오지 않자 세포가 온갖 도발과 기행에 가까운 관중호응을 유도한 게 문제. 이전에는 판정 논란이 있었다고 서술돼있었으나 사실 압도적인 세포의 승리는 맞았다. 이후 어정쩡한 체급이었던 카오클라이는 점점 인기가 하락되고 방출되었다.
루슬란은 두 번 다 압도적인 기량차이로 초살(1라운드 KO)시킨다. 첫번째는 루슬란의 데뷔전이었는데 첫번째 다운시킨 후 두번째에 펀치러쉬로 스탠딩KO시켰고, 두번째에는 클린치상태에서 라이트 훅으로 아예 실신시켰으며, 기절한 루슬란은 한참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세포가 하드 펀처이기는 하지만 루슬란이 알아주는 유리턱이기 때문.

그후 입장곡을 redman의 smash sumthin 에서 7central의 OPERA로 바꾸며 오페라의 저주에 빠지기 시작한다. redman이 앞부분을 welcome to motherxxxing k-1 이라고 곡앞에 스피칭 하기 까지 해줬는데 얼마 쓰다 버렸다. 곡을 바꾸고 나서 급격하게 하향선을 타기 시작한다.
오페라의 저주가 시작된 후 2007년도에 피터 아츠전에서는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어버리고 기권한다. 심지어 울기까지 했는데 아무도 아직까지 그 원인을 모른다. 다만 2002년도에 아츠가 하락세였던 시기에 판정승을 거둔 적은 있다.
그후 마빈 이스트먼과 경기에서 신경전을 펼치다 극에 달한 마빈 이스트먼과 실랑이가 벌여졌고 달려드는 마빈에게 쓰리랑 훅을 날렸지만 빗나갔고 마빈 이스트먼은 바닥에서 철권 낙법을 쳤다. 이것을 두고 레이세포 장풍사용설이 급파되었다. 프로파이터로 비신사적인 행동이라 욕을 먹기도 했다. 당시 구장에 타이슨이 있어서 존재감 증폭을 위해 더 예민했을지도 모른다는 설레발이 있다.
게리굿리지는 예상대로 쉽게 제압
보타는 의외로 힘겹게 이기면서 보타의 사자후 펀치 최강론이 등장하기도 한다. 평소에는 안 쓰던 하이킥에 심지어 내려차기까지 시전하여 포인트 위주의 경기를 펼쳤던, 세포답지 않은 경기였다.
2005년 WGP 8강- 리치 차이가 커서 원거리에서 유효타를 많이 허용하다가 결국 3라운드에서 코너에 몰린 끝에 스탠딩 다운을 뺏겨서 결국 판정패했다. 2007년 원매치- 마찬가지로 리치차이에 고전하며 정타를 얼마 못 먹이고 있었는데 1라운드 막판 클린치상태에서 휘두른 훅이 적중하면서 다운을 뺏는다. 그러나 이 기회 아니면 안되겠는지 2라운드 초반에 흥분해서 달려들다가 스트레이트에 카운터로 맞아 실신KO당했다. 이건 레이세포 K-1 역사상 처음 실신KO였다. 하지만 ko당하기 전의 경기력은 먼치킨급인 세미슐트를 이길 뻔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세미슐트를 K-1에서 처음으로 다운시킨 선수가 되었다.

세미 슐트와의 경기를 끝으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하고 연패하며 기량이 점점 낮아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것을 두고 k-1 해설자였던 김대환씨는 로보트(세미슐트)의 저주라고 표현했다.
바다 하리와는 신경전을 펼치며 대회 당일 KO패 시키겠다고 호언장담 했으나 역으로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펀치가 적중했을 때 바다하리가 흔들렸지만 그때 놀리지 말고 몰아붙였으면 이기는 거였는데 레이 세포가 자존심이 강해서 어떻게 더 처참하게 이겨줄까 하고 봐주다가 역발렸다는 설이 있다. 당시 가드를 단단히 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체가 워낙 짧아 마크 헌트처럼 팔만 올려도 웬간한 건 커버하는데 바다하리가 기술로 주먹을 우겨넣는 통에 가드가 뚫어져 그대로 얻어맞으며 2회 다운되어 TKO패 했다. 같은 바다하리와 경기했던 니콜라스 페타스 전에 비하면 너무나도 무기력한 경기였다.
최홍만과의 사이즈에 압도당했는지 체격 열세에도 불구하고 포인트를 침착하게 따내면서 판정승한다. 최홍만의 도리도리 펀치, 헛스윙을 가볍게 피해내면서 스피드에서 최홍만을 농락하며 연패에서 탈출하였다. 경기자체는 레이세포 답지 않았다. 심지어 저돌적인 바다 하리도 최홍만의 사이즈에 압도당했는지 대결에선 맘놓고 기권승 했다.
K-1이 몰락하고 둘다 전성기가 지난 2012년에 딱 한 번 붙었는데 결과는 세포의 판정패

3.3. 종합격투기 커리어

히어로즈에서 김민수와의 대전을 시작으로 MMA계의 발을 뻗는다. 당시 김민수를 TKO시키며 승리한다. 이 경기는 1라운드는 MMA룰, 2라운드는 입식 룰로 진행하였다.
스트라이크 포스에 진출하여 알리스타 오브레임의 형인 발렌타인 오브레임에게 베이스볼 초크에 걸려 2분여만에 패배한다.
스트라이크 포스에서 케빈 조던에게 이겼다. 그런데 부상으로 인한 승리라서 찝찝하다.

이후 WSOF 라는 단체를 형성, UFC에서 방출된 존 피치, 안드레이 알롭스키 등을 영입하여 사업을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은퇴 경기로 데이브 후카바와의 마지막 경기 후로 공식적으로 은퇴하였다. 노가드 전법을 구사하며 분전했지만 판정패한다. 선수를 띄워주기 위함이였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러기엔 상대방도 나이가 많았다.

은퇴경기 직전 "내가 직접 뛰어서 돈 준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오히려 독이 되는 지루하고 부진한 경기만을 남기고 말았다.

은퇴후 공식적으로 대표직으로 돌아가 단체운영에 기여한다고 발표했다. UFC만큼은 아니지만 WSOF는 나름 2~3위 계열에 드는 단체이다. (성장시킨 뒤 UFC측의 인수 협의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2017년 이후로는 PFL이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4. 파이팅 스타일

하드펀처라 주로 펀치 위주의 진행으로 풀어나간다. 간간히 유인용 로우킥을 섞어주기도 하나 주력은 아니다. 하이킥 등은 적중률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클린치 상태에서 어퍼컷, 훅 등이 특기이고 더티복싱을 주로 즐긴다.

각종 도발과 노가드 전법을 주로 사용한다. 상대방을 도발하여 호전적으로 만든 뒤에 되받아치는 카운터 전법을 자주 쓴다. 부메랑훅이라고 불리는 기술은 특허기술. 상대의 펀치를 피해가며 기회를 노리는 타입이지만 신체적인 한계로 인해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많았다.[4] 리얼파이트와는 괴리감 있게 도발 등의 장착으로 쇼맨십으로도 인기를 구사했다. 간간히 브루스 리의 절권도 스텝도 사용하며 허세를 부리다 로우킥에 얻어맞는 반드시 웃어야할 광경을 선사하기도 했다.

맞아도 더 때려보라는 식의 일종의 허세식 도발(허발)로 펀치 공격을 유인하나 어네스트 후스트, 피터 아츠, 바다 하리 등에겐 유독 통하지 않았다.[5] 도발 역시 성공률이 낮은 편이다. 도발에 걸려 카운터 맞아 고꾸라진 선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오히려 바다 하리 같은 경우엔 그 독기를 더 부추겨 TKO로 패하는 수모를 겪고 말았다.

5. 기타

앤디 훅과의 상대전적은 2전 2패로 전패하였다. 도장 운영 및 Fubu 등의 스폰서 모델을 하여 경기외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였다. 단체를 설립할 자본력이 있을 정도로 실제로도 부자라는 설이 있다.

주먹이 날아올 때마다 움찔하는게 눈에 보일 정도로 허세가 넘쳐흐르던 노가드 전법, 뜬금없는 이소룡 스텝 등으로 대변되는 강한 캐릭터성으로 K-1 시절 국내에도 적지 않은 팬층이 있었고, 나훈아를 닮은 외모와 세포라는 묘한 이름 등으로 인해 경기 외적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뽐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던 선수였기도 하다.

2004년의 영화 고지라 파이널워즈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남극에 봉인된 고지라를 감시하는 기지에 상주하는 UN 직원 역할. 또 이 영화에는 돈 프라이가 매우 중요한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국적이 뉴질랜드인 것과 외모 때문에 마오리족 혈통으로 알고있는 사람도 있지만 세포 본인이 사모아+ 독일 혼혈이라고 하였다. 물론 사모아계와 마오리계가 매우 비슷한 유전자이긴 하다.

레이 세포의 세포는 Sefo이며, cell이 아니다.


[1] 이 당시 밴너는 KO되어 코까지 골았다고 한다! [2] 세포의 처음이자 유일한 월드그랑프리 결승전 매치였다. [3] 2004년의 경우, 하드펀치로 무사시를 다운시켜 승리했다면 다음 상대가 카오클라이였으므로, 카오클라이를 가볍게 꺾고 결승전에서 레미 본야스키와 접전을 펼쳐서 잘만 하면 우승했을 수도 있었다. 본야스키의 가드가 워낙 단단해서 쉽게 뚫을 수 있었을지는 별개의 문제다. [4] 그와 싸웠던 네임드 선수들 중에 마크 헌트를 제외하고 그보다 키가 작은 선수가 없었다. [5] 무시하고 그 틈을 타 더 교묘하고 집중도 높은 펀치, 킥으로 응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