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개리 헨리 굿리지 (Gary Henry Goodridge) |
생년월일 | 1966년 1월 17일 ([age(1966-01-17)]세) |
포트오브스페인 세인트 제임스 | |
국적 |
[[트리니다드 토바고| ]][[틀:국기| ]][[틀:국기| ]]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복수국적)[1] |
거주지 | 온타리오 주 배리 |
입식 전적 | 38전 12승 24패 2무 (11KO) |
종합격투기 전적 | 46전 23승 22패 1무 |
승 | 14KO, 8SUB, 1판정 |
패 | 10KO, 8SUB, 4판정 |
체격 | 190cm / 109kg |
링네임 | Big Daddy |
주요 타이틀 | IVC 1 무제한급 토너먼트 우승 |
기타 | UFC 8 무제한급 토너먼트 준우승 |
UFC 10 무제한급 토너먼트 3위 |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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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킥복서, 종합격투기 선수.팔씨름 세계 챔피언 출신으로 초기 UFC에서부터 일본의 Pride와 K-1의 입식무대까지 산전수전 다 겪은 희대의 베테랑. 90~00년대의 좀 한다 하는 헤비급 파이터들과는 모두 주먹을 섞어봤다.
2. 전적
※ 종합격투기- 주요 승: 폴 헤레라, 제리 볼랜더, 안드레 로버츠, 칼 워셤, 페드로 오타비오, 올렉 탁타로프, 밥 슈리버, 발렌타인 오브레임, 얀 노르키아(2), 댄 보비쉬, 돈 프라이, 알란 카라에프
- 주요 패: 마크 슐츠, 돈 프라이(2), 마크 콜먼, 마르코 후아스, 이고르 보브찬친(2), 오가와 나오야, 톰 에릭슨, 리코 로드리게즈, 길버트 아이블,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할리드 아랍,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히스 헤링, 최무배, 폴 부엔텔로, 알리스타 오브레임, 게가드 무사시, 페드로 히조
- 무승부: 에베네제르 폰테스 브라가
※ 킥복싱
- 주요 패: 사타케 마사아키, 무사시, 제롬 르 밴너(2), 마이크 베르나르도, 마크 헌트, 피터 아츠(2), 마이티 모, 레이 세포, 글라우베 페이토자(2), 알렉세이 이그나쇼프, 하리드 디 파우스트, 카터 윌리엄스, 레미 본야스키, 패트릭 배리, 최홍만, 아마다 히로미, 커털린 모로샤누(2), 이고르 미하일레비치
- 무승부: 무사시, 콘스탄틴 글루호프
3. 커리어
3.1. UFC
캐나다, 유럽 등지를 돌며 팔씨름 대회를 휩쓴 굿리지는 세계 팔씨름 대회마저 석권하며 스포츠계의 스타가 된다. 원래 복싱을 비롯하여 격투기도 수련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인들의 권유를 받아 UFC 8 토너먼트에 출전하게 되었다.1996년 2월 UFC 8 토너먼트 1차전에서 만난 상대는 탱크 애봇 일당인 폴 헤레라이다. 이 경기에서 폴 헤레라의 더블렉을 스프롤로 막고 굿리지는 크루시픽스 포지션에서 엘보우를 난타하며 13초만에 헤레이라에게 실신 KO승을 거두었다. 경기 전 헤레라가 인종 차별 발언까지 하는 등 심한 도발을 하자, 굿리지는 "이놈은 그냥 쓰러뜨리면 안 되겠다." 라고 생각해서 이런 기술이 나왔다고 한다. 원래 크루시픽스 초크는 조르는 기술인데 굿리지에 의해 특이하게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2차전에서도 제리 볼랜더에게 승리하여 결승에 진출했지만 돈 프라이에게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UFC 9에선 1984 LA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인 마크 슐츠와 맞붙었다. 경기 초반부터 슐츠에게 테이크다운을 허용하며 파운딩을 얻어맞다가 닥터스탑 TKO패했다.
1996년 7월에는 UFC 10 토너먼트에 참가 1차전에서 존 캄테텔라를 누르지만 2차전에서 마크 콜먼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1996년 12월에는 왕중왕 결정전인 Ultimate Ultimate에 참가했지만 1차전에서 돈 프라이와 대결해 다시 패배했다.
1997년 7월에는 IVC 초대 토너먼트에서 칼 워샴과 페드로 오타비오에게 승리하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3.2. Pride & K-1
1997년 10월 Pride 1에 참가하여 올렉 탁타로프를 상대로 KO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이고르 보브찬친, 오가와 나오야, 톰 에릭슨 등에게 패배하며 한계를 드러내게 된다.이후에는 PRIDE, K-1 등지에서 활약하며 리코 로드리게즈,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히스 헤링 등의 강자와 대결하며 전적을 쌓아나갔다.
2003년 PRIDE에서 은퇴한 이후 K-1으로 이적하여 K-1의 입식 무대에서도 많은 시합을 치렀는데 2007년 8월 홍콩에서 최홍만과 대결한 적도 있어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다.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하와이 예선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적이 있을 정도의 베테랑 파이터였다. 2006년 이후로는 킥복싱과 종합격투기 무대를 병행하면서 활동했다.
3.3. 중소단체
2008년 이후에는 중소단체를 전전하면서 최무배, 폴 부엔텔로, 알리스타 오브레임, 게가드 무사시, 페드로 히조 등에게 7연패를 기록하며 안쓰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2008년에는 헝가리의 가보르 네메스라는 선수와의 경기에서 탑을 잡고 있는데 뜬금없이 스탠딩 선언을 하거나, 네메스가 대놓고 링줄을 잡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병맛 넘치는 레프리의 진행에 빡쳐서 본인이 직접 링 밖으로 나가며 몰수패를 당하기도 했다.[2]
결국 2010년 12월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4. 파이팅 스타일
강인한 육체와 무거운 펀치를 주무기로 사용하며 K-1에서 12승을 KO로 거둘 정도로 하드펀처이다. 맷집도 좋고 매우 터프한 경기를 보여주는 선수로, K-1에서 마크 헌트와 난타전을 벌인 몇 안되는 선수이다. 굿리지가 상대와 함께 난타전을 하는 경기는 십중팔구 명경기가 나오는데, 대표적인 경기가 2006년의 하리드 디 파우스트와의 미국 토너먼트 결승전이다.다만 초창기 UFC 무제한급 토너먼트 시절을 제외하고는 정상권에 근접했던 적은 없다. 센스나 격투 스킬이 많이 부족해서 타격이나 그래플링 양면에서 최고가 되기에는 부족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로, 특히 월드 클래스급 파이터들과 대결했을 때는 한 대도 못 때리고 막타는 상대 파이터의 대표 기술에 맞고 패하는 경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경기가 표도르와의 경기이며, 이 경기는 표도르가 때리다가 주먹 부상을 입은 경기로도 유명하다.
개리 굿리지와 월클급 파이터와의 경기를 보다보면 시합 전부터 기세에 눌린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속된 말로 강약약강으로 보일 정도로 파이팅 스타일이 확연하게 차이난다. 평소엔 성큼성큼 전진스탭을 밟고 들어가 가드도 내리고 무자비하게 난타하며 필요하면 그래플링도 시도하는것과는 달리, 전진스탭도 잘 밟지 않고 정수리만 보일 정도로 가드를 바싹 올리며 위축되다시피 모습을 자주 보여주기 때문.
또한 피지컬 위주로 싸운 선수니만큼 40대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량이 많이 퇴보하기 시작했다. 특히 전성기 시절에는 웬만한 펀치로는 끄떡도 없던 턱이 말년에는 굉장히 약해졌다. 국내에 격투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 이미 커리어 10년차가 된 40세의 노장이었다. 패배가 많아진 2007년경 이후의 시합을 보면 덩치 어느정도 되는 파이터가 대충 들이대서 대충 주먹 막 휘두르고 굿리지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하고 얻어만 맞다가 레프리가 말려서 끝나는 양상의 경기가 대부분으로, 마지막 경기인 카탈린 모로사누와의 2차전을 보면 참 보는 사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얻어맞는 등 밥 샙과 비슷한 행보이다. 사실 전성기때도 맷집을 믿고 지나치게 노가드로 상대의 주먹을 일부러 맞아주는 퍼포먼스가 많긴 했다.
이런 이유에서 종합격투계의 수문장을 맡기도 하는 등 종합격투계의 미드카더로 진입 장벽을 형성하는 일종의 전투력 측정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굿리지를 이긴다는 것은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일정 이상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된다.
K-1 입식 격투에서도 스타일이 비슷했는데 이 때는 아예 상대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맞받아치기 위해 한 손으로는 살살 흔들면서 가드하고 나머지 한 손으로 공격할 준비를 하는 십자 모양의 특이한 가드를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 클래스 선수들 만나면 경기 내내 얼굴보기 힘든 하이가드만 한다.
그래도 워크 소리까지 듣던 밥 샙과는 달리, 굿리지는 항상 지던 이기던 화끈한 경기를 보여주고, 또 굿리지가 월클급 파이터를 상대로 지더라도 투혼을 보여주는 경기는 거의 명승부가 나오기 때문에 올드 격투팬들로부터 항상 사랑을 받아왔던 선수이다.
5. 기타
UFC 8 무제한급 토너먼트에서 국술원, 궁중무술이라는 한글이 새겨진 도복을 입고 나가 화제가 되었는데, 마침 이 도복을 입고 치른 경기가 헤레이라와의 하이라이트였기에 더욱 주목을 받았다. 실은 국술원에서 무술을 배운 일은 일절 없었고, 원래 UFC 출전 예정이었던 국술원 소속 파이터를 굿리지가 묵사발을 내버려서 출전하지 못하게 되자, 국술원 측에서 4단을 수여하고 제발 도복을 입고 나가달라고 간청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돈 프라이와는 라이벌 플래그가 있다. PRIDE에서는 함께 은퇴하기도 했는데, 은퇴 경기에서 상대 전적에서 2연패를 기록 중이던 프라이를 상대로 호쾌한 하이킥 승리를 거두어서 프라이가 주는 은퇴 선물이 아니냐는 얘기가 돌기도 했다.[3] 다만 실제로는 꽤 친한 사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생계형 파이터로, 종합격투기과 킥복싱 전적을 합쳐서 거의 100전 가까이 싸워왔다. 댄 서번에 비견될 정도의 커리어로, 거쳐간 시합들의 면면을 보자면 대전료 수입은 굿리지 쪽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K-1 활동 시절에는 일본에서 김민수 못지 않은 대타왕으로 매우 유명했다. 김민수처럼 18시간 전에 오퍼를 받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타로 나온 전적이 꽤 되신다. 한 예로 2006년에는 자메이카에서 놀고 있다가 라스베가스 대회에서 1주일 전 비자 문제로 토너먼트 출전 선수인 마고메드 마고메도프가 아웃되어 K-1에서 오퍼가 오자 그대로 군말 않고 출전을 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2005년 K-1 월드 그랑프리 리저버 매치 도중 글라우베 페이토자의 상단 프론트 킥에 입을 제대로 강타당하는 바람에 이가 빠지자마자 터프하게 뱉어버리고 곧바로 경기를 한 적도 있었다.[4] 이 외에도 레미 본야스키의 하이킥을 맞고 KO된 뒤 이마에 큰 컷이 생겨 피가 분수처럼 터지는 등[5] 여러모로 고생을 많이 했던 파이터이다.
은퇴 후 인터뷰를 통해 PRIDE 시절에 주최 측으로부터 오가와 나오야와의 경기[6]를 앞두고 돈 많이 줄테니 져 달라는 오퍼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론 본인은 거절했고, 실력으로 졌다고 밝혔지만...
링에 들어설 때 여동생 수지 굿리지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여동생도 몸이 장난이 아니다. 수지도 일본에서 컬트적인 인기가 있다.
중량급의 생계형 선수들이 그렇듯 프로레슬링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은퇴 후 치매 초기로 진단받았는데 만성 외상성 뇌증으로 흔히 말하는 펀치 드렁크이며, 오랫동안 격투기 생활을 하며 누적되어 온 데미지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완치불능 판정을 받았으나 "좀 더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후회는 없으며, 즐거웠고 내가 해 온 일에 만족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대환의 파이트캐스트에 따르면 K-1에서 활약하던 시절부터 이미 펀치 드렁크 증세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2014년 12월 최근 인터뷰에서 굿리지 본인이 치매설을 부인했는데 누가 거짓말을 한건지 술렁이고 있지만, 하여튼 본인이 괜찮다고 해서 대부분 팬들은 안도하는 중이다.
최의민에 의해 리지가 되어버렸다.
격투기 계에서는 유명세에 비해 그다지 특별한 업적을 쌓지 못했지만[7] 팔씨름 계에서는 그야말로 레전드이다. 특히 왼팔 팔씨름에서는 비할바가 없는 절대적인 레전드이고, 오른팔 팔씨름도 2년동안 세계 대회를 휩쓸었을 정도. 여동생이나 사촌(이쪽도 팔씨름계의 레전드)을 보았을때 유전자가 남다른듯.
[1]
자녀 교육을 위해 캐나다로 이주하며 이중 국적을 취득했다고 한다.
[2]
이 경기는 셔독 공식 전적상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
[3]
더불어 워크 의혹이 돌기도 했다. 프라이드라는 단체가 항상 그렇기도 했지만 굿리지는 입식이건 종합이건 킥을 거의 활용 안하는 스타일에다 한창 시절에도 돈 프라이에게 한번도 못이길 정도로 천적관계였다. 더군다나 프라이도 경기후 은퇴하는 상황에서 둘다 전성기도 지난 상황이지만 프라이의 기량이 나쁜것도 아니었으니 이 하이킥 KO는 굿리지에게 주는 선물로 치고 대준거 아니냐고 말들이 많았다.
[4]
후에 이 이는 2006년
피터 아츠와의 2차전에서 다시 부러지게 된다.
[5]
참고로 이 경기도 피터 아츠가 식중독으로 아웃되면서 경기 1주일 전 대타로 급하게 들어간 경기였다.
[6]
이 경기는 오가와의 종합격투기 데뷔전이었다.
[7]
물론 상대들이 워낙 강하기도 했다.. 그래도 리즈 시절때는 입식에서
시릴 아비디나
마이크 베르나르도 같은 네임드를 잡아냈었고 일본의 중견 파이터인
후지모토 유스케를 꺾으며 지역 토너먼트 우승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