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1] |
라자르 줄러 (Lázár Gyula) |
생년월일 | 1911년 1월 24일 |
사망년월일 | 1983년 2월 27일 |
국적 | 헝가리 |
출신지 | 퓌제스저르마트 |
포지션 | 레프트 하프백 |
신체조건 | 169cm / 68kg |
등번호 | -[2] |
소속팀 | 페렌츠바로시 TC (1930-1943) |
국가대표 | 49경기 1골 (1931-1941) |
[clerfix]
1. 개요
헝가리의 전 축구 선수.2. 생애[3]
2.1. 선수 생활
2.1.1. 클럽
라자르는 1930년 페렌츠바로시 TC에 입단했다. 즉, 30년대 헝가리 최고의 축구 스타가 될 샤로시 죄르지와 입단 동기이다.[4]1932년 페렌츠바로시는 22전 전승, 105득점 18실점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써냈고 이듬해 컵 대회에선 라이벌 우이페슈트 FC를 결승전에서 11대1로 초전박살을 내며 우승을 차지했다.
이렇게 리그에서는 강자의 면모를 보인 페렌츠바로시였지만 국제 대회인 미트로파 컵에서는 조금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다 미트로파 컵에서 1937년에서야 우승에 성공했고 페렌츠바로시는 라자르가 있을 동안에 헝가리 리그에서도 3차례 우승을 더 맛볼 수 있었다.
라자르는 1943년 페렌츠바로시를 떠났고 축구화도 벗었다.
2.1.2. 국가대표팀
라자르는 1931년 4월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소집되었다. 데뷔전 상대는 스위스였고 헝가리는 6대2로 가뿐히 승리를 챙겼다.1934년 월드컵에 참가한 라자르는 1라운드 이집트전 1경기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1936년 10월의 루마니아전에서는 대표팀 커리어 유일의 득점을 기록했다.
1938년 월드컵에서 라자르는 4경기에 모두 출전하며 헝가리의 준우승에 공헌했고 레프트와 라이트 하프백을 옮겨가며 플레이했다.
라자르는 월드컵 이후인 1941년까지 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경기는 4월의 독일전이었다. 하지만 헝가리는 이 경기에서 0대7로 참패했다.
2.2. 이후
라자르는 선수 생활을 마치고 여러 클럽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이집트 대표팀에서는 선수 시절 대표팀 동료였던 티트코시 팔 감독을 보좌하기도 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축구 지능이 뛰어나서 커버링과 위치 선정에 특화된 하프백. 우아한 플레이를 보였고 양발 사용도 가능했다.4. 수상
4.1. 클럽[5]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우승 5회: 1931-32, 1933-34, 1937-38, 1939-40, 1940-41
- 마자르 쿠파 우승 2회: 1932–33, 1934–35
- 미트로파 컵 우승 1회: 1937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3회: 1934–35, 1936–37, 1938–39
- 마자르 쿠파 준우승 2회: 1930-31, 1931-32
- 미트로파 컵 준우승 3회: 1935, 1938, 1939
4.2. 국가대표
4.3. 개인
- 헝가리 올해의 선수 1회: 1933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4]
이때 샤로시는 알려진 것처럼 인사이드 포워드가 아니라 하프백이었다.
[5]
라자르는
페렌츠바로시 TC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클럽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