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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1:53:52

드래곤볼/작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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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으로서2. 액션3. 단순하고 명쾌한 스토리라인4. 매력적인 세계관5. 클리셰의 확립6. 재생산7. 영향력

1.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으로서

사실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품들 중 장기 연재물은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의 단 두 작품이 전부이다. 때문에 어느 부분이 어떻게 토리야마의 스타일이라고 정의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단 이 두 작품 중 토리야마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닥터 슬럼프로 알려져 있다.

드래곤볼의 첫 에피소드인 피라후 편을 보면 토리야마가 선호하는 스타일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캐릭터들은 전반적으로 닥터 슬럼프의 인물들을 계승하고 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졌으면서도 놀라운 힘을 가진 캐릭터인 손오공과 아라레, 어딘가 나사 빠진 듯하지만 천재적 면모를 보이는 부르마와 노리마키 센베의 모습은 정확히 등치된다. 이렇게 두 주연 캐릭터를 갖춰놓은 뒤에는 '서유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오룡-저팔계, 야무치-사오정 등의 캐릭터를 두어 모험활극적 요소를 갖추었다.

작품의 첫 번째 변곡점은 손오공이 무천도사의 제자로 들어가면서 시작된 21회 천하제일무도회이다. 여기서부터 드래곤볼은 모험활극이 아닌 배틀물로 탈바꿈한다. 이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가 되었는데, 여기서부터 드래곤볼은 이전까지의 만화 역사에서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뛰어난 액션성을 선보인다. 그렇게 드래곤볼은 토리야마 아키라를 세계적인 만화가로 만들어 주었다.

2. 액션

시원함과 정교함이 강조되는 액션은 드래곤볼을 상징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드래곤볼이 지금까지도 폭넓은 인기를 누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드래곤볼로 격투 만화로서 필요한 컷 배분과 모션, 집중선과 연출을 제대로 완성시킨 작품이다. 40주년을 맞이한 지금도 특유의 높은 액션씬 완성도는 현재 작품들과 비교해봐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이며, 후속작인 드래곤볼 슈퍼도 마찬가지이다.

토리야마는 만화보다는 영상물의 영향이 강한 작가로, 실제 배우들의 스턴트를 모티브로 그린다. 물론 그것을 만화적으로 과장했지만, 동작의 연속성과 공간감을 매우 잘 살린다. 더군다나 어떤 각도에서도 작붕이 거의 없다. 이러한 특징들을 종합해보면 복잡한 액션씬에서도 가독성이 매우 높은 그림체가 나온다. 높은 가독성은 빠른 액션씬을 머리에서 연상되는 속도에 맞추어 술술 읽히게 해주기 때문에 그 액션성이 더욱 살아나는 맛이 있다.

게다가 한 장면당 하나의 액션이라는 대전제를 잘 지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면과 장면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물 흐르듯 부드럽게 머리속에서 이어진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인데도, 마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상당수의 액션 만화는 중간중간 장면을 과도하게 생략하거나, 한 장면에 서로 다른 2개 이상의 액션을 과도하게 끼어넣어 말 그대로 '적절한 속도로 적절한 연상'을 하는 것이 방해된다.

이와 더불어 컷과 액션을 분배할 때 Z자 패턴등으로 자연스럽게 독자의 눈을 유도하기 때문에 하나의 장면인데도 액션을 통해 그 장면의 스토리텔링을 하고 있다. 장면속의 말풍선 등의 교묘한 배치로 독자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고, 끊김없이 읽게 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

이처럼 겉으로는 눈에 띄기 힘든 섬세한 디테일들 때문에, 토리야마의 연출 스타일은 단순히 분석하는 정도로는 함부로 따라할 수 없는 신의 영역으로 평가받는다. 토리야마 이후에 등장한 후배 작가들 중에서도 그의 액션을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이들은 얼마 없으며, 그마저도 때로는 가독성이나 연출에 문제가 발생하여 비판을 받기도 한다. 드래곤볼은 그의 특징이 강하게 나타난 작품이다. 특히 주먹과 주먹같이 신체가 복잡하게 얽히는 공방전 묘사를 따라오는 작품이 드물다. 2020년 이후로 현재까지도 몸싸움을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보여준 만화는 많지 않다.

격투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에너지탄의 방출과 충돌, 폭발로 이어지는 연출은 엄청난 박력을 가지고 있어서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전통적인 격투만화가 아니라 SF 전쟁물을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받게 한다. 드래곤볼을 읽은 수많은 독자들은 이런 화려한 격투씬과 더불어 이러한 지형 자체를 바꿔버리는 엄청난 스펙터클한 파괴연출에 충격을 금치 못했고, 후에 만화계에서 소위 드래곤볼 배틀이라 불리는 파괴 연출을 즐게 쓰게 된다.

3. 단순하고 명쾌한 스토리라인

점프의 메인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우정, 노력, 승리'의 공식을 사실상 전형화시킨 작품임에도, '전투'라는 작품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우정론이나 인생론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드래곤볼에는 원피스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과거 회상 같은 장면은 거의 없다.[1] 강한 적과 맞서 모두가 힘을 합쳐 맞서 싸운다는 단순한 스토리의 반복이지만, 드래곤볼은 과거 서사를 깔아놓으며 캐릭터의 사연을 부각시키는 대신 직관적인 캐릭터와 흥미로운 설정으로 지루함 없이 이 반복을 이끌어간다.

이를테면 손오공이 성인이 되고 등장한 손오반은 '성인'이자 '아버지'가 된 손오공의 입장을 부각시키는데, 이렇게 '가족'이 생긴 손오공의 첫 번째 적은 다름 아닌 또 다른 가족인 라데츠이다. 라데츠는 손오공이 우주에서 온 외계인임을 밝히면서 손오공에게 꼬리가 달려 있던 이유와 거대 원숭이로 변신하는 성질을 납득시키는 동시에 드래곤볼의 세계관을 지구 바깥으로 확장시킨다. 라데츠라는 캐릭터는 이 때문에 출연분량은 길지 않으나 드래곤볼 전체에서 꽤 중요한 캐릭터이다. 설정만 읊어도 지치기 쉬운 상황을 매력적인 신캐릭터와 악역으로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다.

프리저 또한 기념비적인 캐릭터인데, 바로 메인 악역이 '변신'하는 설정을 처음으로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는 끊임없이 강해지는 악당의 모습을 비추며 작품의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에 대단히 효과적이었으며, 급격히 진행되는 파워 인플레이션에 관한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세 번의 변신을 거치는 프리저를 상대로 손오공은 고전하다 자신 또한 '초사이어인'으로 변신한다. 이후의 적들인 셀과 마인부우 또한 이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2] 변신을 거듭하며 강해지는 악역은 손오공이 '수련'을 이유로 스토리의 메인 스트림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을 용인하게 해 주었다. 손오공이 없는 사이에는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이 활약할 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강해진 손오공은 주인공답게 최후에 나타나 사건의 해결을 도맡는다. 이 과정에서 '우정, 노력, 승리'의 3요소는 굳이 판을 만들어 따로 깔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완성되는 것이다.

4. 매력적인 세계관

'첨단과학, 중국풍(애초에 원작이 서유기니), 사람 같은 동물'등 다양한 요소를 있는대로(?) 집어넣은 무국적의 세계관도 매력적이다. 국적, 이념, 인종 따위는 아무 상관 없다. 굉장히 심플하고 깔끔하다. 여기에 작가 특유의 일러스트레이션적인 화풍이 더해져 일본 만화의 틀을 벗어난 듯한 기묘한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5. 클리셰의 확립

캐릭터가 각성하면 모습이 변하며 파워가 올라간다든가 이전까지는 중구난방이었던 장풍과 오오라의 확연한 시각화, 싸우고 나니 더 강한 상대가 나온다든가 등등 현대의 소년만화 진행에서 당연한 것처럼 쓰이는 소재들이 나타났다.

특히 눈여겨 볼것은 주인공의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동시대나 그 이전의 액션물은 북두의 권처럼 주인공이 웬만해선 적보다 강한 경우가 많았으며 특별히 파워업을 하는 부분은 적었다. 그러나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은 적에게 패배하는 빈도가 의외로 높은 편이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수련 등으로 성장해서 적을 뛰어넘는 스토리가 형성되었다.[3]

현재 시점에서는 드래곤볼의 구성이 반복적이고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우선 편마다 엄청나게 강한 적(주로 최종보스) 예고 → 주인공의 수련 → 파워 업 → 약한 부하들부터 차례차례 격퇴 → 최종보스와의 결전 → 주인공의 승리 → 이하 반복의 형태, 즉 이러한 '에스컬레이터식 구성'을 기본적으로 취하고 있다며 같은 패턴의 반복이라고 하지만, 위와 같은 구성의 경우 드래곤볼이 그 시조격에 해당되고[4], 그 당시에는 굉장히 혁신적인 구성이었다. 후대에 이러한 구성을 받아들인 작품들이 무수히 나왔기 때문에 이러한 구성이 식상하게 느껴지는 것이지, 그 당시에는 같은 패턴의 반복이라고 할 수 없었다.

계왕권 → 초사이어인 1 → 초사이어인 2 → 초사이어인 3으로 표현되는 '각성을 통한 신체변형'이라는 파워업의 형태가 일정하고 식상하다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그것은 지금에 와서 그렇게 생각되어지는 것이지 당시에는 변신이라고 하면 전대물처럼 갑옷이나 슈트가 착용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드래곤볼처럼 신체변형의 변신은 획기적이고 파격적이었다. 게다가 이런 변신의 시초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스급 캐릭터들은 변신이나 흡수를 거쳐 파워업을 거치는 만큼 본파워가 아닐시에 다양한 조연 캐릭터들의 활약의 여지를 주어서 누구 위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는 느낌은 받기가 어려웠다.[5] 이는 현재 드래곤볼 슈퍼나 애니메이션 후속작인 GT 보다 재미있고 박진감 넘쳤던 이유이기도 하다.

더불어서 라데츠와 싸울때 피콜로와 손오공이 손을 잡는 것도 당시로써는 아무도 예상못한 파격적인 전개였으며 더 나아가서 주인공인 오공이 죽는 전개 역시도 당시로써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전개였다.[6]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이것을 모방하거나 오마주한 작품들이 우후죽순 나와서 식상한 클리셰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고 대략적인 스토리를 알기에 반복적인 전개로 느껴지는 것이지 당시로써는 드래곤볼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본다면 절대로 식상한 이야기 구조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드래곤볼은 1984년부터 1995년까지 연재된 만화로 완결난지 약 20년이나 지나서 지금보면 식상해보이는 건 당연하지만 그 당시엔 희귀한 것이다.

6. 재생산

현재 드래곤볼은 완결되어 있으나 팬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재해석되고 있으며 관련 상품의 발매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드래곤볼을 보고 자라난 '드래곤볼 세대' 에 의해 현재 만화계가 움직이고 있으며[7] 그 토양 위에 새로운 만화들이 태어나고 있다. 지금도 TV에서 재방송될 때마다 어린아이들이 감명 깊게 보고 새로운 드래곤볼 세대로 탄생하고 있다.

7. 영향력

"드래곤볼은 지난 30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소년 만화다."
― 제이슨 톰슨 (만화 비평가), 2011년 #

드래곤볼은 오늘날의 소년만화 배틀물 장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중요한 작품으로도 불리며, 소년만화의 필수 근본과 기틀을 세운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러한 영향력으로 드래곤볼을 소년만화의 바이블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드래곤볼과 토리야마의 영향을 받는 작가들은 셀 수도 없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원피스의 작가 오다 에이치로가 매우 유명한 드래곤볼 광팬이다. 나루토의 작가 키시모토 마사시도 과거에 드래곤볼에 빠져서 그의 화풍을 여러번 모작했다고 하며, 이들 외에도 여러 수많은 중견 만화가들이 드래곤볼을 통해서 자신의 진로나 작품세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토로한 바 있다. 사실상 드래곤볼 연재 시기에 10대 소년 시절을 보낸 만화가들 중에서 드래곤볼을 아예 안 본 사람들을 찾아내는 게 힘든 수준.

그리고 드래곤볼의 영향력은 비단 본토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도, 만화를 넘어 여러 미디어 믹스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을 가진다. 미국 애니메이션 스티븐 유니버스 OK K.O.! Let's Be Heroes의 제작자 이안 존스쿼티, 독일 만화가 한스 스타인바흐는 드래곤볼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대답한 적이 있고, 철권 시리즈의 제작자인 하라다 카츠히로는 드래곤볼은 기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최초의 작품 중 하나이며, 그로 인해 철권과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와 같은 다른 일본 게임에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를 통해서, 드래곤볼은 일개 만화가 아니라 일본 만화라는 20세기 후반 등장한 글로벌 대중문화양식을 대표하는 레퍼런스로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큰 문화적 자료라고도 부를 수 있는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1] 주인공 손오공의 출생의 비밀 또한, 애니메이션은 과거 회상으로 다 보여주지만, 원작에서는 거북선인의 말풍선 단 두개로 끝난다. [2] 단 셀의 경우는 아들인 손오반이 처치하게 되는데, 토리야마 아키라는 단행본의 36권 시작에서 '이제부터의 주인공은 손오반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새로운 주인공을 위한 화려한 피날레였으나, 결국 손오반은 손오공의 캐릭터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주인공 자리를 다시 손오공에게 내주게 된다. [3] 당장 손오공은 천하제일무도회에 세번째 참가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승을 차지했다. [4] 이런 식의 구성은 세인트 세이야의 영향도 크다. [5] 미스터 사탄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일반인으로는 최강이지만 다른 이들에 비하면 최약자임에도 중간, 중간 잘 활약한다. [6] 사이어인편 당시 피콜로는 전시즌의 보스 캐릭터였고 완벽한 악역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역이라기엔 애매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강적이 나타나자 주인공이 전시즌 보스와 손을 잡고 적을 협공한데다가 이전까지의 최강자 두명 중 한명이 죽어야만 쓰러트릴 수 있었던 적이 알고보니 적의 최약체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매우 파격적인 전개임과 더불어 극의 긴장감까지 끌어올려버렸다. 거기다가 최강자 둘 중 하나인 주인공까지 죽어버렸으니 이 난관을 어떻게 해쳐나갈지에 대한 궁금증도 유발했는데 이게 전부 사이어인편 극초반의 전투 한번으로 일어난 일들이다. [7] 대표적으로 원피스 작가인 오다 에이치로. 과장 좀 보태서 현 일본 배틀만화 작가 중에 드래곤볼을 안 본 작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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