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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22:47:44

동제염거화상탑지

파일:동제염거화상탑지.pn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4. 보물 제1871호

1. 개요

銅製廉巨和尙塔誌. 신라 문성왕 17년(855)에 제작한 동판 기록물. 현재 강원도 춘천시 국립춘천박물관이 소장 중이고 2015년 4월 보물 제1871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가로 17.2 cm, 세로 28.8 cm.

통일신라 승려 염거화상(廉居和尙, ?~844)의 탑지이다. 염거화상은 진전사 원적선사 도의선사(道義禪師)의 제자로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가지산문(迦智山門)의 2대 조사이다.

844년에 염거화상이 입적하자 승탑을 만들면서 관련 내용을 해서체 한자로 적어 쌍구체기법으로 동판에 새겨 탑 안에 함께 넣었다. 염거화상의 탑은 1911년 원 자리에서 반출되어 탑골공원에 있었는데, 이 탑을 경복궁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동제 탑지가 발견되었다. 염거화상탑은 1962년 12월 국보 제104호로 지정되었다.

동판에 새긴 명문은 다음과 같다.
會昌四秊歲次甲子季
회창사년세차갑자계
秋之月兩旬九日遷化
추지월양순구일천화
廉巨和尙塔去𥼶迦牟
염거화상탑거석가모
𡰱佛入𣵀槃一千八百四
니불입열반일천팔백사
秊矣
년의

當此囯慶膺大王之時
당차국경응대왕지시
회창會昌 4년 간지가 갑자이던 해 9월 29일에 천화한(돌아간) 염거화상의 탑으로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지 1804년이 지나서인데, 이 나라 경응 대왕(문성왕)의 때이다.

번역문 출처: 강삼혜, "염거화상탑지와 탑에 대한 고찰", 국립춘천박물관 소장품조사연구보고서 Ⅰ: 선림원종 · 염거화상탑지 (2014. 12.), 150.
여기서 회창(會昌)은 당나라 무종의 연호로 회창 4년은 서기 844년이며 간지는 갑자(甲子)이다. 경응(慶膺)은 신라 문성왕(文聖王)의 이름이다.[1]

이전까지는 회창 4년, 즉 844년에 염거화상이 입적하자 탑을 만들었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그러니까 탑을 조성한 해도 844년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명문에 한 가지 걸리는 구절이 있다. "석가모니불입열반일천팔백사년의(𥼶迦牟𡰱佛入𣵀槃一千八百四年矣: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든 지 1804년이 지나서)"라는 글귀이다. 1950년대 이전까지 동북아시아 불교계는 석가모니가 기원전 1027년에 태어나 일흔아홉 살이 되는 기원전 949년에 사망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기원전 949년을 열반 1년으로 삼아 1804년이 되는 해를 따지면 서기 855년이 된다. 회창 4년(844)과 석가모니 열반 1804년(855)은 11년 차이가 난다.

탑지의 내용이 염거화상이 죽은 해에 승탑을 만들었다는 뜻이라고 전제해보자. 그렇다면 회창 4년(844)이 곧 석가모니 열반 1804년이고, 석가모니가 사망한 해는 기원전 960년이어야 한다. 기존의 동아시아 불교계에서 석가모니가 사망한 때라고 여긴 기원전 949년과는 기준이 다르다. 그런데 국보 제117호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에서 발견된 조상기(造像記)에서는 헌안왕 즉위 3년(859)을 석가모니 사망 후 1808년이라고 설명했는데, 석가모니가 사망한 해를 (당시 동아시아 불교계와 마찬가지로) 기원전 949년이라고 보고 헤아린 것이다. 신라시대 불교 관련 유물에 등장하는 '석가모니 열반 이후 ○○○○년이 지난 때'라는 표현은 원년의 기준이 고정되지 않고 들쭉날쭉하다고 여겨 무시해왔다.

국립춘천박물관이 발행한 조사연구서 <선림원종·염거화상탑지>에 수록된 논문 "염거화상탑지와 탑에 대한 고찰"의 저자 강삼혜 학예연구사는 논문에서 염거화상이 844년에 입적했고 화상의 승탑을 855년에 완성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다른 신라의 불교 유물에서도 이처럼 유물을 조성하기 시작한 때와 완성한 때를 다른 기년법으로 적었을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후로는 염거화상탑/탑지를 조성한 때를 855년으로 보는 시각이 퍼졌다.

동제염거화상탑지는 9세기 중반 신라의 금속공예 기술 및 불교문화 연구의 중요한 사료이다. 이에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와 함께 2015년 4월 2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1871호

이 염거화상탑지는 얇은 동판에 통일신라 선종승인 염거화상이 844년에 전화한 내용을 해서체를 쌍구체기법으로 전각한 것이다. 염거화상(?~844)은 진전사 원적선사 도의의 제자로 가지산문의 2대 조(祖)로 알려진 인물이다. 동판에 새겨진 탑지의 내용은 비록 소략하지만 단정한 글씨체로서 당시의 서체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며 축조의 정교한 끌 자국은 금속공예 기술의 우월함을 잘 대변해 준다. 무엇보다 이 몇 줄의 명문을 통해 당대 최고의 고승인 염거의 행적이 밝혀졌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승탑의 효시가 되는 염거화상탑의 축조시기를 규명하는 결정적인 자료라는 점에서 이미 국보로 지정된 염거화상탑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1] 출처: <국립춘천박물관 소장품 조사연구보고서 I: 선림원종·염거화상탑지>, 2014, 국립춘천박물관, 150쪽 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