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왕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0000, #000000 20%, #000000 80%, #000000); color: #fbe673;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0> 부왕 | 태자 | 왕자 |
동명성왕 | 고유리 | <colcolor=#000,#DDD> 비류 · 온조 | |
유리명왕 | 고도절 · 고해명 · 고무휼 | 고해색주 · 고재사 · 고여진 | |
대무신왕 | 고해루 | 고호동 · 고궁? | |
모본왕 | 고익 | ||
태조왕 | 고막근 · 고막덕 · 고수성? · 신대왕? · 고인고? | ||
차대왕 | 고추안 | ||
신대왕 | 고남무 | 고발기? · 고발기 · 고연우 · 고계수 | |
산상왕 | 고우위거 | ||
동천왕 | 고연불 | 고예물 · 고사구 | |
중천왕 | 고약로 | 고달가 · 고일우 · 고소발 | |
서천왕 | 고상부 | 고돌고 | |
봉상왕 | 왕자 · 왕자 | ||
미천왕 | 고사유 | 고무 | |
고국원왕 | 고구부 | 고이련 | |
고국양왕 | 고담덕 | ||
광개토대왕 | 고거련 | 왕자 | |
장수왕 | 고조다 | 고공 · 고승우 | |
태손
고나운
|
|||
문자명왕 | 고흥안 | 고보연 | |
안장왕 | 고복귀 | ||
안원왕 | 고평성 | 왕자 | |
양원왕 | 고양성 | ||
평원왕 | 고원 | 고건무 · 고대양 | |
영류왕 | 고환권 | 고복덕 | |
대양왕(추존) | 고보장 | ||
보장왕 | 고복남 | 고덕남 · 고덕무 · 고임무 · 고안승? · 고인승 | |
}}}}}}}}} |
<colbgcolor=#000><colcolor=#c5b356> 작위 | <colbgcolor=white,#191919> 고추가(古鄒加) |
성씨 | 고(高) |
이름 | 돌고(咄固) |
아들 | 미천왕(美川王) |
부왕 | 서천왕(西川王) |
생몰연도 | ? ~ 293년 |
[clearfix]
1. 개요
고구려의 왕족. 고추가(古鄒加)의 지위에 있었던 사람으로[1] 서천왕의 아들이며 봉상왕의 동생이자 미천왕의 아버지이다.2. 생애
돌고의 형인 봉상왕은 성격이 거칠고 교만하면서도 늘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였는데, 특히 자신의 친족들을 의심하였다. 봉상왕의 이러한 행동은 292년에 자신의 숙부이자 전쟁 영웅으로 칭송받던 안국군 달가를 시기하여 죽인 이후로 더욱 거침없이 표출되었다.[2]293년, 봉상왕은 자신의 아우였던 돌고마저 의심하던 중에 돌고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서 사약을 내려서 자결하도록 하였다. 결국 돌고는 죄가 없음에도 죽게 되었는데, 당시 고구려 사람들은 돌고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어서 돌고의 죽음을 애통해하였다고 한다.
그의 아들인 을불은 아버지가 죽자 화를 피해 달아나서 자신의 신분을 숨긴 채 7년 동안 가난하고 비참하게 살았다.[3] 후에 봉상왕의 폭정을 보다 못한 국상 창조리가 봉상왕을 폐한 후에 을불을 다시 궁궐로 데려와서 왕으로 추대하니 그가 바로 미천왕이었다.
미천왕부터 후대 왕들은 전부 이 사람의 후손들이다. 즉 고돌고는 고구려의 중시조이다. 생전에는 억울한 죽음을 맞았으나 자식과 자손을 잘 둔 덕분에 폭군 형에게 복수도 하고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다.
3. 둘러보기
고구려 왕실의 계보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color: #c5b35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ccc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font-size:0.90em; letter-spacing: -1.2px" |
천제 | 하백 | ||||||||||||||||
|
|
|||||||||||||||||
해모수 |
|
유화 | ||||||||||||||||
|
||||||||||||||||||
|
||||||||||||||||||
|
||||||||||||||||||
부여 왕실 |
1대 동명성왕 |
|||||||||||||||||
|
||||||||||||||||||
|
|
|||||||||||||||||
2대 유리명왕 |
비류 |
온조 백제 왕실 |
||||||||||||||||
|
||||||||||||||||||
|
|
|
|
|
||||||||||||||
고도절 | 고해명 | 왕녀 |
3대 대무신왕 |
4대 민중왕 |
고여진 | |||||||||||||
|
||||||||||||||||||
|
|
|||||||||||||||||
고호동 |
5대 모본왕 |
고재사 | ||||||||||||||||
|
|
|||||||||||||||||
고익 |
6대 태조대왕 |
|||||||||||||||||
|
||||||||||||||||||
|
|
|
|
|||||||||||||||
7대 차대왕 |
고막근 | 고막덕 |
8대 신대왕 |
고인고 | ||||||||||||||
|
|
|||||||||||||||||
|
|
|
|
|||||||||||||||
고추안 |
9대 고국천왕 |
고발기 |
10대 산상왕 |
고계수 | ||||||||||||||
|
|
|||||||||||||||||
고박위거 |
11대 동천왕 |
|||||||||||||||||
|
||||||||||||||||||
|
|
|||||||||||||||||
12대 중천왕 |
고예물 | 고사구 | ||||||||||||||||
|
||||||||||||||||||
|
|
|
|
|||||||||||||||
13대 서천왕 |
고달가 | 고일우 | 고소발 | 공주 | ||||||||||||||
|
||||||||||||||||||
|
||||||||||||||||||
14대 봉상왕 |
고돌고 | |||||||||||||||||
|
||||||||||||||||||
15대 미천왕 |
||||||||||||||||||
|
||||||||||||||||||
|
|
|||||||||||||||||
16대 고국원왕 |
고무 | 고림 | ||||||||||||||||
|
||||||||||||||||||
|
||||||||||||||||||
17대 소수림왕 |
18대 고국양왕 |
|||||||||||||||||
|
|
|||||||||||||||||
고강 |
19대 광개토대왕 |
|||||||||||||||||
|
||||||||||||||||||
20대 장수왕 |
고익 | |||||||||||||||||
|
|
|||||||||||||||||
|
|
|
||||||||||||||||
고조다 | 고승우 | 공주 | 고승천 | |||||||||||||||
|
||||||||||||||||||
21대 문자명왕 |
||||||||||||||||||
|
||||||||||||||||||
|
|
|||||||||||||||||
22대 안장왕 |
23대 안원왕 |
고안학 | ||||||||||||||||
|
||||||||||||||||||
|
||||||||||||||||||
24대 양원왕 |
왕자 | |||||||||||||||||
|
||||||||||||||||||
25대 평원왕 |
||||||||||||||||||
|
||||||||||||||||||
|
|
|
||||||||||||||||
26대 영양왕 |
27대 영류왕 |
평강공주 | 대양왕 | |||||||||||||||
|
|
|||||||||||||||||
고환권 |
28대 보장왕 |
|||||||||||||||||
|
||||||||||||||||||
|
|
|
|
|||||||||||||||
고복남 | 고임무 | 고덕남 | 고덕무 | 공주 | ||||||||||||||
|
||||||||||||||||||
부흥 보덕왕 |
||||||||||||||||||
}}}}}}}}}}}} |
[1]
고추가는 고구려의 왕족과 귀족의 칭호다.
오등작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보면 좋을듯
[2]
사실 달가가 죽은 이유는 사람들에게 너무 인기가 많았던 것도 한 몫하였다.
[3]
그래도 왕의 조카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머슴 노릇에 소금장수까지 하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연명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을불 본인은 오히려 그 생활이 봉상왕의 눈을 피할 수 있다는 것에 다행스럽다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