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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0:43:47

데이비드 드 스트라스보기

성명 데이비드 스트라스보기
David Strathbogie
생몰년도 1309년 ~ 1335년 11월 30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뉴캐슬
사망지 스코틀랜드 왕국 컬브린
아버지 데이비드 스트라스보기
어머니 조앤 코민
아내 캐서린 드 보몽
자녀 데이비드, 이사벨라
직위 제2대 스트라스보기 남작, 제11대 아톨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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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올리기 위한 전쟁에 참전했으나 컬블린 전투에서 전사했다.

2. 생애

제10대 아톨 백작이자 초대 스트라스보기 남작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트라스보기와 바데녹의 영주인 존 코민의 딸 조앤 코민의 아들이다. 1309년 출생한 직후 뉴캐슬의 성 니콜라스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아버지 데이비드는 잉글랜드의 노퍽 카운티에서 영지를 가진 것 외에도 스코틀랜드에서 광범위한 자산을 보유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잉글랜드 편에 섰다가 1314년 잉글랜드군이 스코틀랜드 국왕 로버트 1세에 의해 패퇴된 뒤 스코틀랜드에 있는 모든 영지를 몰수당했다. 1326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는 제2대 스트라스보기 남작이 되었고, 1330년 처음으로 의회에 소환되었다. 또한 1330년에 종조부인 제2대 펨브로크 백작 에메르 드 발랑스로부터 아일랜드의 오독 성과 관련 토지를 물려받았다.

그는 아버지가 잃어버린 스코틀랜드 영지를 되찾기를 희망해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에 참여했고, 스코틀랜드와 노샘프턴 평화 협약을 맺은 프랑스의 이자벨 로저 모티머 정권에게 불만을 품었다. 1328년 말 제3대 랭커스터 백작 헨리의 로저 모티머를 타도하려는 반란을 지지했고, 이로 인해 1329년 1월 16일에 재산을 몰수당했다. 1330년 10월 에드워드 3세의 친위 쿠데타에 참여해 로저 모티머를 처단하고 이자벨을 유폐하는 데 기여했다. 1332년 여름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으로 세우기 위한 잉글랜드 귀족들의 원정에 참여해 8월 11일 더플린 무어 전투에서 제8대 마르 백작 돔놀 2세가 이끄는 스코틀랜드군을 격파했고, 파스에서 발리올의 스코틀랜드 국왕 대관식을 거행했다.

1332년 12월 발리올이 데이비드 2세를 추종하는 스코틀랜드 반란군에게 밀려나 잉글랜드 북부로 달아나자, 1333년 여름 에드워드 3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해 베릭 성 공략에 기여했고, 로크마벤 성을 함락했다. 이후 에드워드 발리올을 스코틀랜드 국왕에 앉혔고, 헨리 드 보몽과 함께 벨리올이 에드워드 3세에게 스코틀랜드 남부 전체를 잉글랜드 왕실에 양도하겠다는 서약을 하도록 강력히 권고해 성사시켰다. 이후 에드워드 발리올은 그에게 아톨 백작 칭호를 돌려줬고, 스코틀랜드 청지기로서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러나 발리올과 잉글랜드의 통치에 반발한 스코틀랜드인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스코틀랜드 북부로 가서 조상의 영지를 확보하려 했다가 1334년 9월 27일 3대 모레이 백작 존 랜돌프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로카버에서 포위당한 뒤, 신변의 자유를 보장받는 대가로 데이비드 2세에게 충성을 맹세하도록 강요당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이고 북부 스코틀랜드에서 데이비드 2세의 총독에 선임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에드워드 3세는 격분해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 있는 데이비드 스트라스보기의 영지를 몰수했다.

그 후 스코틀랜드 진영에서 코민 가문의 영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는데, 1335년 4월 데어시 의회에서 이 문제가 안건에 올려졌지만 결정이 나지 않았다. 그는 로버트 스튜어트를 자신의 편으로 끌여들어 모레이 백작과 갈등을 벌이게 했다. 그러던 1335년 8월 잉글랜드군이 퍼스로 진군하자, 데이비드는 로버트 스튜어트를 설득한 뒤 에드워드 3세에 함께 귀순했다. 그는 북부 스코틀랜드 청지기로서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이번에는 에드워드 발리올을 주권자로 받들었다. 1335년 10월, 그는 데이비드 2세의 누이 크리스티나 브루스가 방어하던 킬드러미 성을 포위했다. 그러던 중 데이비드 2세를 대신해 스코틀랜드를 지킬 호국경을 자처한 앤드류 머레이가 킬드러미 성을 구원하기 위해 접근하자, 그는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 칼브린 숲으로 진격했다.

1335년 11월 30일, 데이비드의 군대와 머레이의 군대가 에버딘셔의 컬블린에서 조우했다. 머레이는 병력을 둘로 나눴고, 윌리엄 더글러스가 선봉을 맡았다. 데이비드가 전투 준비를 하자, 윌리엄은 마치 적의 방어 태세에 직면하여 망설이는 듯 멈춰 섰다. 이에 데이비드는 적이 겁을 집어먹고 있다고 여기고 진영에서 출진해 단숨에 끝장내려 했다. 이에 윌리엄은 병사들을 이끌고 전면에서 항전했고, 그 사이에 앤드류 머레이가 이끄는 후위대가 적의 노출된 측면을 요격했다. 잉글랜드군은 이 전투에서 참패했고, 데이비드는 항복을 거부하고 항전하다가 토머스 코민을 포함한 소수의 추종자들과 함께 전사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