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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9:03

덕수궁 대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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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대한문
德壽宮 大漢門
창덕궁 돈화문
昌德宮 敦化門
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인화문이었으나 후일 폐쇄되고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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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의 원래 정문은 인화문이었으나 후일 폐쇄되고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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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24호 덕수궁
<colbgcolor=#e8cb2d> 덕수궁 대한문
德壽宮 大漢門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 정동 5-1)
건축시기 창건연대 미상 ( 1897년 추정)
파일:대한문월대.jpg
<colbgcolor=#e8cb2d> 대한문[1]
1. 개요2. 역사3. ‘대안문→대한문’ 관련 낭설4. 여담

1. 개요

덕수궁의 정문이다.

2. 역사

파일:PYH2010062501860000501_P4.jpg
<colbgcolor=#e8cb2d> 대안문 시절의 대한문. 현판에 '大安門'이라고 쓰여있다.
원래 경운궁의 동쪽 문으로 세워졌으나, 덕수궁 남쪽 중화문 앞에 있던 정문이자 남쪽 문이었던 인화문(仁化門) 앞쪽으로 도로개통계획이 생겨 헐리면서 정문으로 바뀌었다. 1904년 화재로 1906년 중화전 등을 재건하면서 동쪽의 대안문(大安門)을 대한문(大漢門)으로 개칭하면서 정문으로 삼았다.
파일:덕수궁대한문월대원형.jpg
<colbgcolor=#e8cb2d> 1902~1903년 당시 촬영된 대한문의 원형 사진.[2]
파일:mosa7lGw6k.jpg
<colbgcolor=#e8cb2d> 1970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기 전 도로 한가운데에 있는 대한문.
대한문의 원래 위치는 지금의 태평로 중앙선 부분이었으나, 잦은 도로 확장 등으로 위치가 수차례 옮겨졌다. 원래는 1968년에 이전할 예정이었으나, 공사비 책정이 되지 않아 1970년에야 현재 위치로 이전했다.[3]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다포식 우진각지붕으로 공포가 화려하다.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과 함께 단층이며 건립 당시에는 문 바로 앞에 월대와 계단이 모두 갖춰졌었지만 지금은 기단과 계단은 훼손된 상태고, 계단과 월대가 있을 시절 같이 조성되었던 해태와 비슷하게 생긴 석수(石獸)를 새긴 소맷돌만은 파묻혀 있다가 언젠가 간신히 수습된 모양인지 문 중앙칸에 배치해 놓았다.

2020년 4월부터 과거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던 대한문 앞 월대[4]를 발굴 및 복원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월대가 사라진 것은 마차 등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없앤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월대가 제자리에 세워지는 것은 아닌데, 이는 앞서 서술했듯이 1970년대에 태평로 확장 공사를 위해 대한문을 총 33m 가량 후퇴 이전시켰기 때문이다. 즉 월대 공사는 이전 복원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문과 비슷한 사례로는 서대문구 독립문이 있는데, 독립문은 금화터널 공사로 인해 원래 위치로부터 70m 정도 옮겨지게 되었다.

김동영 덕수궁관리소장이 "대한문을 원위치로 옮기는 것은 어렵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대한문이 원래 자리를 찾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을 듯하다. 대신 현재 위치에 월대를 철저한 원형고증으로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5월, 3년 만에 마침내 공사가 완료되어 가림막을 철거하기 시작했다. #

3. ‘대안문→대한문’ 관련 낭설

지금 현재 덕수궁의 정문은 동문인 대한문(大漢門), 이전엔 대안문(大安門)이었다. 원래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의 인화문이었다. 그런데 1900년 대안문 앞으로 대로가 생기고 당시 정문인 인화문 통행이 줄어들자 1904년의 덕수궁 화재 후인 1906년 대안문을 수리하면서 정문으로 삼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꿨다.

원래는 도로 한가운데에 위치했지만 지금의 위치로 옮겨서 덕수궁 담장과 이었다. 해체해서 다시 지은 것이 아니라 문 전체를 조금씩 들어 옮겼다.

이 대한문의 뜻에 대해 여러 오해가 있다. 일제가 퇴위한 고종을 조롱하여 '큰 놈(漢)이 사는 곳의 문'이라 그렇게 지었다든가, 일제가 조선을 중국의 속국이란 뜻으로 '위대한 중국(漢)의 문'이라고 지었다든가...하는 식. 또 다른 속설로는 매국노 배정자 연관설이 있다. 대안문(大安門)의 자가 머리 아래에 가 있어 궐문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배정자를 연상케 해서 배정자를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해 女가 겁내는 漢자로 바꾸었다는 속설이 당시에 널리 퍼졌을 정도.

그런데 이런 해석은 아무 근거 없는 속설이다. 서울의 옛 이름인 한성도 중국의 성이란 뜻이 아니라 한수, 즉 큰 강의 북쪽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한(漢)은 음차. 한국의 한(韓)과 같은 쓰임새다. 여튼 이런저런 논란이 있으나 논란 자체가 필요없는 상황이다. 왜냐면 대한문 상량문에 대한문인 이유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乃立大漢正門, 備皐門應門之規. 塗勤丹 , 取霄漢雲漢之義, 德合蒼

이에 대한(大漢)이란 정문을 세우니 고문(皐門 : 왕궁 바깥문)과 응문(應門 : 왕궁의 정문)의 규모를 다 갖추었도다. 단청을 정성스레 칠하고 소한(霄漢, 동쪽 하늘)과 운한(雲漢, 은하수)의 뜻을 취했으니 덕이 하늘에 합치하도다.
대한문 상량문
아주 간단히 말해서 '큰 하늘의 문'이란 뜻이다. 일종의 글로벌 한양으로 이해하면 편할 듯. 대한제국이 앞으로 번창하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다.

4. 여담


[1]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2] 하단에는 오른쪽부터 '조선왕성대한문'이라 적혀 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월대와 우측의 원수부 건물이 보인다. [3] 이전 당시 문을 해체하지 않고 통째로 덕수궁 쪽으로 밀어 당기는 식으로 옮겼다고 한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문 전체를 조금씩 들어올려 건물 전체가 살금살금 걸어 가듯 밀었는데, 이 당시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장인이 있었다고. [4] 궁궐 건물과 같이 중요한 건물이 가지고 있는 넓은 기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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