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교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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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교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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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대교 | 당산철교 | 서강대교 | ||
서울 지하철 2호선 |
당산철교 Dangsancheolgyo(Railway Bridge) | 堂山鐵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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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선순환 ←
당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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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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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선순환
합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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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amu_당산철교_2호선_최종.png | ||
다른 문자 표기 | ||
로마자 |
Dangsancheolgyo (Railway B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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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堂山鐵橋 | |
간체자 | 堂山铁桥 | |
가나 | [ruby(堂山, ruby=タンサン)]鉄橋 | |
관리기관 | ||
2호선 | 서울교통공사 | |
구조형식 | ||
구교 | 상부: 프랫 트러스(Pratt Truss) | |
하부: 트러스 아치(Truss Arch) | ||
신교 |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상형교 (PSC[1] box girder Bridg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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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사 | ||
남광토건 (구교, 1997년 철거) HD현대중공업, 진흥기업 (재시공) |
[clearfix]
1. 개요
당산철교를 지나는 2호선 전동차 |
주행 영상 |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역과 합정역 사이를 잇는 철교이다. 구간은 당산역부터 합정동에 위치한 일신오피스텔까지이다.
2. 역사
2.1. 구 교량 완공
시공 중인 옛 당산철교 (1982년) |
한강의 3번째 철교로 남광토건에서 건설하여 1980년 2월에 착공, 1983년 11월에 준공하였다.[2] 이후 1984년 5월 이 구간을 지나는 서울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면서 교량의 열차 운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의 교량은 무(無)도상 트러스 철교였는데 특이하게도 상하부가 철제 트러스였다. 아래의 두 사진을 기준으로 쉽게 말하자면, 상부는 직선 트러스인데 하부는 상하(上下) 반전시켜 제작 설치한 아치형 트러스였다는 이야기이다.
옛 당산철교 |
2.2. 교량 안전성 문제
완공한 지 채 10년도 지나지 않은 1990년대 초반부터 서울 지하철 2호선 기관사들 사이에서는 '당산철교에서 빠르게 달리면 교량 구조물의 진동이 심해 운행하기 무섭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본격적으로 당산철교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당시 2호선의 운영사였던 서울지하철공사가 철교의 부실한 내구성을 직접적으로 인지한 것은 1992년의 일이었지만, 공사는 이에 대해서 제대로 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러다 2년 후인 1994년 10월 21일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실시한 한강 교량 정밀 진단에서 당산철교의 안전성 문제가 알려졌다. 설계 당시의 수요예측 실패에서 기인한 시공 당시의 부실 공사와 잘못 적용한 공법으로 트러스와 기둥에 많은 균열이 발생했던 것이다. 더는 균열이 진행되지 않도록 균열 끝 부분에 동그랗게 구멍을 내는 스톱 홀을 뚫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했거니와 균열 또한 멈추지 않았다. 또한 스톱 홀을 뚫는 과정에서마저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된 적도 있었다. 결국 '성수대교가 붕괴되지 않았다면 당산철교가 먼저 무너졌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당시 당산철교의 붕괴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진단됐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마찬가지로 기존 교량을 보수해서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일부 전문가와 시민단체의 의견도 있었지만[3], 당시 MBC 기자였던 최일구가 MBC 뉴스데스크의 카메라 출동에서 당산철교 붕괴 위험성을 고발해(1994년 10월)[4] 여론을 뒤흔들었다.
당산철교 붕괴 위험성을 보도한 MBC 뉴스데스크 |
이미 성수대교 붕괴 이전부터 당산철교의 부실 문제에 관해서 여러 차례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이때 최일구의 보도가 특히 임팩트가 컸다. 최일구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올라와 와우아파트에 거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붕괴 사고를 겪으면서 현장의 중요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미 서울지하철공사는 1994년 11월부터 당산철교를 지나는 모든 전동차에 대해 시속 30km 정도로 서행 운전하도록 조치를 취했고, 1995년 3월까지 대대적으로 보수를 시행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던 당산철교 트러스트의 균열을 멈출 수는 없었다. 1996년 11월 기준으로 시속 30km 서행 운행 중에도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볼트와 너트들이 빠져버리는 충격이었다고 말한다. 그게 아니면 탕탕 하는 소리가 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뉴스영상에서도 보여졌듯이 철교 여기저기 제 위치를 이탈한 볼트와 너트들이 나동그라져 있다. 전철이 양방향으로 통행하면서 그 하중을 볼트, 너트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모조리 뜯겨져나간 것이다. 볼트와 너트가 깨져서 그 파편이 나뒹굴 정도였다는 것은 이 당시의 당산철교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상태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재시공 전 열차 운행 모습(1994년 10월) |
만약 당시나 지금이나 서울 지하철 중에서도 혼잡도가 매우 높은 서울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당산철교가 붕괴된다면 당연히 피해가 엄청났을 것이다. 열차의 혼잡도는 100%를 기준으로 한 량에 160명, 10량에 1600명이 탄 것으로 보는데, 철거 당시 2호선은 평균 혼잡도 300%(약 4800명 탑승)를 가볍게 기록했다. 만약 초만원 상태인 출/퇴근 시간대에, 열차 두 대가 동시에 당산철교를 교행하는 도중에 철교가 붕괴되기라도 했다면, 거진 1만 명이 한강에 그대로 수장당하는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철교가 붕괴한다면 아무래도 출퇴근 시간에 승객들로 가득찬 외선순환 전동차와 내선순환 전동차가 다리 중간에서 서로 교차할 때 교량에 하중이 가장 크게 걸려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으므로,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동시에 모든 가능성 중 가장 일어날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였다.
2.3. 재시공 결정과 철거 및 붕괴
결국 이를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정부는 예산 낭비라는 일각의 반대를 무릅쓰고 1995년 12월, 당산철교의 전면 재시공을 신속히 결정하였다. 당시 이미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의 대형 참사가 잇달아 터져나온 터라 한시가 급했기에 돈 낭비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원래는 1997년 3월부터 재시공하기로 계획했으나 철거 시기를 앞당기자는 데 여론이 몰렸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어차피 돈은 똑같이 드는거 할 거면 원래보다 빨리 시작해서 원래보다 빨리 끝내는 게 불편을 상대적으로 줄이는 것인 데다 늑장 부리다가 그 사이에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고, 때마침 대체 경로로 이용할 수 있는 서울 지하철 5호선 도심 구간( 여의도역~ 왕십리역)의 완전 개통일이 1996년 12월 30일로 잡힌 것도 일찍 철거하자는 의견에 힘을 보태 주었다.
정부는 1996년 12월 31일 막차 통과 직후 당산철교를 전면 폐쇄했고 1997년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철거가 시작되었다.[5] 다만 운행 중단 후에도 최소 3개월은 철교의 외형, 트러스 부분은 유지되었다.
한참 철거 작업 도중이던 1997년 5월 22일, 8~9번째 교각 사이의 철제빔이 붕괴하며 당산철교는 스스로 무너졌다. 사고 원인은 철거 작업을 위해 철제빔 아래에 받쳐놓은 임시지지대가 상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 힘을 불안정하게 견디던 철제빔이 부서지며 상판과 함께 그대로 무너진 것이다. 부실공사 탓에 무너지기 직전인 다리를 철거하고 있는데 작업용 지지대마저 부실하게 세우고 작업하다가 사고가 터진 것이다. 다행히도 해당 지지대 인근에 사람이 없어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6]
2.4. 철거 기간(1997~1999) 동안
[7]
재시공 기간 동안 당산역- 합정역간 열차 운행은 중지되었고 그 대신 당산역과 홍대입구역 사이를 잇는 무료 셔틀버스가 다녔다. 당시 당산역과 홍대입구역에서 내린 승객들은 개찰구에 표를 넣지 않고 그냥 나간 뒤 대기하던 무료 셔틀버스를 타고 양화대교를 건너서 합정역 정류장을 거쳤다가 홍대입구역 정류장과 당산역 정류장에 내린 후 2호선 전동차를 이용했다. 이와 더불어 서울시는 이용객들이 국철(1호선), 5호선, 118번 등 대체노선을 이용하도록 유도했다.
당산역의 경우에는 진입 전에 X자형 회차선을 설치하여 기관사가 열차 반대편으로 가서 다시 출발하는 형식으로 열차를 회차시켰고, 홍대입구역은 기존에 존재하던 Y자형 유치선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활용하여 회차했다.
문제는 합정역이었는데, 원래는 앞서 언급한 홍대입구역의 Y자형 유치선을 활용해서 운행할 계획이었다. 유치선 끝이 끊겨 있지 않고 합정역 방면 본선과 연결되어 있어서 이론적으로는 합정역에서 회차선을 거쳐 선로를 건너가는 방식의 운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홍대입구 종착 열차 회차와 맞물려 운행 지연이 될 수 있었다. 때문에 일시적으로 폐쇄 후 임시 회차선을 설치한 뒤에 합정행을 운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합정역의 경우 시설물 구조상 회차 처리를 1대만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열차가 홍대입구역까지만 운행했고, 그래서 셔틀버스가 합정역을 지나 홍대입구역까지 운행했던 것이다. 이 때에 대한 자세한 상황은 당산역, 합정역, 홍대입구역 각 문서에 있다.
배차 간격도 RH 2.5분에서 3분으로 벌어졌다. 회차 시설의 용량이 부족해서 3분 미만으로 배차 간격을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철거 기간 중 2호선을 타고 충정로역/ 영등포구청역에 도달하면 이들 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영등포구청역/충정로역에서 다시 2호선으로 갈아타라는 안내방송을 내보냈었다.
사고 당시의 모습 |
2.5. 신 교량 완공
새로 건설된 현재의 당산철교 |
새 당산철교는 교량 준공과 더불어서 방음벽 등 방음 장치를 강화해서 주변에 끼치는 소음 공해를 최소화하였으며, 내진 설계까지 적용하여 1등급 교량으로 인증받았다. 옛 교량의 복잡하고 약해 보이는 트러스 구조물과 상반되게 디자인도 매우 깔끔하고 튼튼해 보인다. 기술진에 따르면 완공 후 70여년 동안은 크게 보수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신 당산철교를 만들 때 양화대교의 혼잡 분산을 위해 동작대교나 동호대교처럼 도로-철도 겸용 복합교량 또는 청담대교처럼 복층 교량으로 시공하는 안이 있었으나 공사 기간이 길어진다는 문제 때문에 철도 전용교량으로 완공되었다. 만약 도로-철도 겸용 복합/복층교량으로 시공되었다면 당산철교가 아닌 당산대교가 되었을 수도 있다.
재시공 후 열차 운행 모습. 한강 북쪽의 합정동에서 한강 남쪽 당산동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찍혔다.[11] |
3. 기타
- 한강 북단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인 절두산 성지를 관통하며 지하로 들어간다. 거기에 지하로 들어가는 선로 바로 옆으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과 민가들이 붙어있다. 그래서 철교 북쪽 구간에는 차단막이 설치되어 있다. 차단막이 터널식으로 되어 있어서 채광이 낮기에 마치 한강을 통과하자마자 바로 지하로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한강 남단의 경우 당산역이 지상 3층에 위치한 지상 승강장이기 때문에 바로 당산철교와 연결된다.
- 재시공 시기에는 여지껏 볼 수 없었던 당산행 / 합정행 플랩 행선지와 열차의 행선판 롤지가 일상이었다. 거기에 더해 막차시간대에나 볼 수 있었던 홍대입구행이 시도 때도 없이 다녔다.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주인공인 우영우가 출근 중에 건너는 다리가 바로 이 다리이다. 다리 뒤로는 고래가 등장한다.
[1]
Pre-Stressed Concrete
[2]
1947년 부산 출신인 배정일 창업주가 설립하여 운영하다가 석유파동 이후 경영이 악화되어 당산철교 건설 시점에서는 쌍용건설의 위탁경영을 받고 있었다. 이후 산업합리화 대상 기업으로 지정되어 84년에 쌍용건설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사실상 쌍용건설의 멀티 격인 회사로 200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쌍용아파트 중에는 남광토건에서 지은 경우도 상당히 많다. 현대건설 -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 DL건설을 생각하면 쉽다.
[3]
#
[4]
#
[5]
당산철교 폐쇄...31일밤 마지막 열차 통과.
[6]
붕괴된 당산철교 보도(MBC)
[7]
아래 영상은 당산철교의 일부 교각 철제빔이 교량 철거 도중 스스로 무너진 1997년 5월의 이전에 촬영되었을 것이다.
[8]
「[서울지하철파업]2호선 전동차, 끊어진 당산철교로 돌진[문호철]」, MBC, 1999-04-22
[9]
「서울지하철공사 노사분규; 전동차 정차선 벗어나 한강 추락 모면」, KBS, 1999-04-22
[10]
관련 게시글, 출처: 네이버 블로그.
[11]
구 초퍼, 저항제어부터 1차에서 4차(당시 시운전 중)까지 다양한 열차들이 운행하던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