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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0-26 18:19:39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

소련 훈장의 순차
서부시베리아 유류공업단지개발메달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 소련 육/해군 30주년기념메달
Юбилейная медаль «XX лет 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ой Красной Армии»
Jubilee Medal "XX Years of the Workers' and Peasants' Red Army"
노농적군 20주년 기념메달

외형

1. 개요2. 수훈 대상과 사유3. 형태4. 주요 수훈자5. 관련 문서

1. 개요

소련군 창군 기념메달
노농적군 창군 노농적군 20주년기념메달 소련 육/해군 30주년기념메달
이름 그대로 노농적군 소련 해군의 창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1938년 1월 24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의 법령에 따라 제정되었다. 노농적군(勞農赤軍)은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РККА)'를 한자로 옮긴 것이며 1946년의 개편 이전까지 소련군의 공식 명칭이었다. 해군의 경우에는 이 시기에도 통상 'ВМФ(Военно-Морского Флот)'라고 불렸으나 육군과 마찬가지로 스웩'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함대(РККФ)'라는 명칭도 쓰였다. 근데 노농적대 따위의 번역어는 없잖아?

2. 수훈 대상과 사유

그냥 흔한 기념메달이 아니었다. 물론 이 메달이 이후에 10년마다 제정되는 소련군 창군 기념메달들로 이어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기념비적인 메달이었고, 당대 근무중인 장병 아무에게나 주려고 제정된 것이 아니었다. 소련군의 창군에 이바지한 원로 군인들의 수고를 치하하는 성격이 더 강하여 이후 제정되는 기념메달들과는 그 격이 완전히 다르다.
수훈 대상
* 노농적군과 해군에 근무하고 있는 지휘관[1]
수훈 사유
* 노농적군 혹은 해군의 일원으로 적백내전에서의 공훈이 있고 1938년 2월 23일을 기준으로 20년 근속
* 적백내전 시기에 뛰어난 위훈으로 적기훈장을 수훈
* 1917년에서 1921년까지의 적위대 혹은 파르티잔 활동
기본적으로 혁명 시기부터 소련군 창군에 힘을 보탠 대선배급 군인이 아니면 받을 수 없었다. 일단 가지고 있으면 소련군과 시작을 함께했다는 증명이었다. 기념메달의 특성상 제정된 시기 이후로는 수여될 이유가 없으므로 수여시기가 매우 짧았으나, 이후 제정되는 창군 기념메달들에 비한다면 수여숫자가 거의 영웅칭호 수준. 당연히 메달임에도 어지간한 훈장들보다 귀한 존재였다.[2]

제정시기상으로도 소련군 최초의 메달에 속했으므로, 패용할 때에도 정장/약장일 때 모두 훈장들의 바로 다음, 즉 메달 중에서 첫번째로 패용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여러가지 군공메달, 수방메달들이 제정되기도 했고, 후행 훈장인 소련 육/해군 30주년기념메달 등이 거의 훈격이란 없는 기념물에 불과하게 된 괴리가 발생하자, 결국 소련 최고회의는 1980년 6월 18일 법령을 통하여 이 메달을 후행하는 창군 기념메달 앞에 패용하도록 하면서 등위를 격하하였다. 최종적으로 서부시베리아 유류공업단지개발진흥메달 다음에 패용하게 된다.

1938년 1월부터 1940년 12월까지 수여되었으며 총 수여인원은 32,172명이다.

3. 형태

메달의 지름은 32mm이고 두께는 2.5mm이다. 메달 전체를 순도 925‰의 으로 만드는데, 구성성분 중에 도 0.1g 들어간다. 따라서 메달은 전체적으로 은색이지만 아래쪽의 로마 숫자 20(XX)은 금도금이 되어 있었다. 전면에는 빛줄기가 내부에 묘사된 커다란 별을 부조하고 그곳을 붉은 에나멜로 채웠다. 뒷면에는 25밀리미터 크기로 부죤노프카(будёновка)를 쓰고 소총을 겨누고 있는 초기 노농적군 장병의 모습을 부조하고 그 측면에 년도(1918 - 1938)를 세겼다. 영웅칭호도 그렇지만 디자인이 조촐함 그 자체인데, 붉은 별이 워낙 거대해서 굉장히 눈에 띄는 효과적인 디자인이었다. 실제로 소련에서 이렇게 전면에 커다란 붉은 별 하나만 박는 디자인은 다른 훈장 등에 다시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이 메달만의 독자적인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이 메달은 초창기 소련의 훈장들이 다 그렇듯, 원래는 붉은색 천이 둘러진 작은 지지대가 있었고 거기에 달린 나사로 옷에 직접 부착하는 방식이었으나 1943년에 훈장에 리본이 도입될 때는 다른 메달들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리본을 가지게 된다. 이 메달의 리본은 회색을 기본으로 하며 양 테두리에 2mm 두께의 적색 가두리장식을 가지고 있었다.

4. 주요 수훈자

원수만 적는다. 초기 소련군의 원수들은 대체적으로 노농적군 창군 초창기부터 근무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당연히 수훈자가 많다. 그리고 메달이 수훈되던 시기가 공교롭게도 대숙청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메달을 받고 얼마 안 가서 영원히 전역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특히 소련 최초 다섯 원수의 경우는 모두 수훈대상자에 속하였으나 미하일 투하쳅스키는 1937년에 사망하여 수훈목록에 오르지도 못했고, 알렉산드르 예고로프 바실리 블류헤르 또한 1938년에 숙청으로 처형되고 말았다.

5. 관련 문서


[1] Командный и начальствующий состав. 일반적으로 장성급 장교를 뜻하지만 이 메달은 영관급 장교들에게도 수여되었다. [2] 소련의 상훈제도상 기본적으로 훈장(Орден)의 훈격이 훨씬 높으며 메달(Медаль)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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