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 유지 中 裕司 | Yuji Nak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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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63ff><colcolor=#ffffff> 출생 | 1965년 9월 17일 ([age(1965-09-17)]세) |
일본 오사카부 히라카타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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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게임 제작자 |
소속 |
세가 (1984년 ~ 2006년) Prope[1] (2006년 ~) 스퀘어 에닉스 (2018년 ~ 2021년)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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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5년 9월 17일에 태어난 일본 오사카 출신의 前 세가의 프로그래머이자 게임 제작자. 오오시마 나오토, 야스하라 히로카즈와 함께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시리즈 소닉 더 헤지혹의 핵심 개발자 이다.[2]대표작으로는 일부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와 나이츠 시리즈, 판타시 스타 시리즈 등이 있다.
2. 생애 및 행적
2.1. 소닉 1 개발 이전
어린 시절 YMO에 빠져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있었다가 근처의 사람이 나타나 이런저런 해설과 가르침을 받으며, 신디사이저나 전자음악에 대해 흥미를 가지게 되어 PC-8001을 구입한 것을 계기로 컴퓨터에 빠져들었다. 여담으로 PC-8001을 처음 부팅했을 때 비프음이 울린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이후 고등학생 시절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공부했고, 아르바이트로 시내에 있는 퍼스컴 업체 日本マイコン学院에서 OA용 프로그램과 게임을 제작했다. 당시는 퍼스컴 기종이 상당히 많았는데 이런 각 기종별로 똑같은 프로그램을 수십 개 포팅하는 작업을 하였다.
이후 선생님에게 넌 머리가 나쁘니 진학은 그만 두고 취직을 하라는 말을 들었고,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오사카부립 니시노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 일본 도쿄에 위치해 있는 세가 엔터프라이즈에 입사하였다.[3] 신입 연수 시절 이미 '스크롤'을 제멋대로 구현할 정도였고 그런 특출난 실력으로 연수 시절 제작한 '걸즈 가든'이라는 게임은 상품화까지 된다.
이후 스페이스 해리어 기획을 전해 듣고 좋아서 혼자서 멋대로 만들고 있던게 높으신 분의 눈에 띄어 프로젝트 시동. 이후 스즈키 유 아래에서 스페이스 해리어, 아웃런, 애프터 버너 2 등의 게임을 제작했다. 이때 스즈키 유로부터 프로그래밍 노하우 뿐만 아니라 플레이 감각을 만드는 방법 등에 대해 직접 전수받았다고 한다. 또한 마크3판 아웃런에 PSG 음원이 만족스럽지 않아 동료들과 함께 또 멋대로 FM 음원 보드를 만들어 대응시켰는데 그것이 높으신 분의 눈에 들어 또 다시 상품화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리드 프로그래머로 활약하는 동시에 북두의 권(세가 마스터 시스템)[4], 판타시 스타 시리즈 등의 콘솔 게임기용 게임을 제작하였는데, 판타시 스타 2는 4메가비트 예정이었으나 상부에다 납기에 맞출 테니 6메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쇼부를 쳐서 만들어 냈다.
한편 어뮤즈먼트 게임 쇼에서 캡콤이 출품한 대마계촌을 보고 감격하여,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상사에게 "이식하고 싶으니까 캡콤과 교섭해 달라."고 호소한 적이 있다. 그리고 1개월 정도 후에 캡콤으로부터 롬 및 그래픽 데이터, 소스 코드 등을 제공받아 진짜로 MD판 이식 프로그램의 제작에 착수했다. 이때 45메가의 대용량을 도저히 4메가에 담아내지 못했는데, 그래픽을 배제해도 프로그램만 4메가 이상이었기 때문에 결국 또 높으신 분에게 "5메가 사용하게 해주세요!"했다고.
위와 같이 각종 아케이드 게임을 가정용 게임기로 이식하면서 하드웨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프로그램을 짜는 경험을 쌓아올렸다. 나카 유지 본인의 회상에 의하면 당시 세가 측은 프로그래머를 육성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고,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되는 과정은 전부 독학이었다고 한다. 이때 특히나 이식하기 어려웠다는 작품이 대마계촌이었지만, 이때 습득한 기술 중 일부가 소닉 1에도 적용되기에 이른다.[5]
나카 유지가 직접 밝힌 대마계촌과 소닉 1의 관계
2.2. 소닉 1 개발 이후
1990년에는 콘솔 게임 부서에서 일하고 있던 오오시마 나오토, 야스하라 히로카즈와 함께 세가 최초의 마스코트인 알렉스 키드에 이어서 두 번째 마스코트인 소닉 더 헤지혹을 탄생시킨다. 이 시기에 나카 유지는 소닉 1의 개발을 맡았던 '세가 AM8'의 팀장이었으며, 캐릭터가 완성될 즈음에 팀 이름이 소닉 팀으로 개명된다.소닉의 탄생은 세가 아메리카를 구원했다. 그러나 소닉의 개발 과정은 나카에게 독이 되었고 결국 나카는 이 시점에서 세가를 그만둔다. 이를 놓치지 않고 세가 미국 지사에서는 나카를 직접 세가 테크니컬 인스티튜트로 영입한다. 이 과정에서는 당시 일본 세가에 근무하고 있었던 PS4의 설계자 마크 서니도 크게 관여하였다고 한다.
나카의 미국 시절에는 깐깐했던 일본과 달리 제약사항도 적었고 개발실은 전부 개인실로 갖춰져 있어서 놀랐다. 처음엔 소닉은 다시는 만들지 않겠다는 조건이었지만, 결국 '2인 동시 플레이를 할 수 있게'라는 조건으로 개발을 시작. 소닉 1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욱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이때 해외의 아티스트들은 성향이 너무 달라서 그래픽의 테이스트를 전달하기가 어려웠고 그 때문에 폐기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당초 미국측에서도 이런 문화적 차이로 인해 소닉의 디자인부터 캐릭터의 네이밍까지 사사건건 충돌이 잦았다. 소닉 더 헤지혹 3의 도트 그래픽이나 BGM 등을 보면 1, 2편에 비해 미국 스타일이 반영된 흔적이 보인다.[6]
2.3. 소닉 팀에서의 활동
소닉 1이 성공한 이후 나카 유지는 야스하라 히로카즈와 함께 세가 미국 지사인 세가 오브 아메리카의 세가 기술 연구소로 이동하여, 개발팀과 함께 소닉 2를 제작하여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 중 1편을 제외하면 역대 최고인 603만 장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한다. 이후 소닉 더 헤지혹 3, 소닉 & 너클즈, 소닉 스핀볼을 제작하였다. 나이츠 인투 드림즈...를 끝으로 소닉 시리즈의 프로듀서로 일하기 시작하였으며, 1998년에는 소닉 어드벤처를 제작하여 성공을 하였고, 2000년 7월에는 소닉 팀을 세가로부터 독립시켜 주식회사 '소닉 팀 리미티드(Sonic Team Ltd.)'를 세우고 CEO로 취임한다.[7]2.4. 프로페 시기
그러나 소닉 팀은 재정 악화로 결국 2004년에 다시 세가에 통합되고, 이후 나카 유지는 판타시 스타 유니버스를 마지막으로 세가에서 떠난다. 그는 2006년에 함께 일하던 동료 10여 명을 데리고 세가를 퇴사하여, 세가 게임 크리에이터 독립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프로페 리미티드(Prope Ltd.)'를 설립한다. 이 퇴사가 소닉 더 헤지혹(2006)의 제작 팀이 와해되는 사태를 낳았고, 그 결과 소닉 더 헤지혹 시리즈의 명성이 추락하는 데 기여해 버리고 말았다.그러나 십수년이 지난 2022년, 나카 유지가 밝힌 바에 의하면 개발진들의 급여를 두고 경영진과의 갈등을 빚다가 세가에서 쫓겨났다고 한다.[8] 나카 유지 개인의 주장이기는 하나, 실제로 05~06년 당시 사내 인사이동이 제법 있었다는 보고가 있었고, 합병으로 인해 소닉 팀도 분위기가 어지러운 시기였으며 이전부터 나카 유지가 묘하게 세가로부터 계속 간섭 받은 정황이 있었기에[9] 신빙성은 낮지 않다.
어쨌든 이후 나카 유지는 프로페에서 레츠 탭[10]과 로데아 더 스카이 솔져를 비롯한 여러 게임을 내놓고, 여러 게임 회사와 협업 관계를 유지한다. 세가를 떠난 이후에도 세가 타이틀의 컨설턴트 역할을 겸임하였고, 소닉 시리즈의 앞날에 어느 정도 개입하고 있다. 실제로 마리오와 소닉 올림픽 시리즈 프로젝트를 제안한 것도 나카 유지 본인이라고 한다. 또한 SXSW 2016의 소닉 25주년 기념 스테이지를 포함하여, 소닉 시리즈와 관련된 행사 등에도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여담으로 나카 유지와 이이즈카 타카시는 Summer of Sonic 2011 라이브에서 카니발 나이트의 원통 때문에 고생한 유저들한테 사과(…)하였다. 소닉 123의 레벨 디자인을 담당한 사람은 야스하라 히로카즈였다.[11]
프로페 홈페이지를 가보면 2017년부터 추가소식이 없는데 본인의 트윗에 따르면 2017년부터 1인 기업으로 전환했으며, 스퀘어 에닉스 입사 후에는 평일에는 스퀘어 에닉스에서 주말에는 프로페 서류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2.5. 스퀘어 에닉스 시기
2018년 1월에는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하여, 오리지널 액션 게임을 제작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2020년 7월 24일, 이 오리지널 액션 게임은 BALAN WONDERWORLD로 밝혀졌다.2019년 5월 크루즈 여행 둘째날에 한국 부산 관광에 다녀왔다. 트위터 페이스북
나카 유지는 IGN과의 인터뷰를 통해 BALAN WONDERWORLD가 스퀘어 에닉스가 준 마지막 기회라 본작의 평가가 나쁘면 자신이 마지막으로 만드는 게임이 될 수 있다고 밝힌 적 있으나, 안타깝게도 BALAN WONDERWORLD가 2021년 3월 발매된 후 메타크리틱에 붉은 불이 들어오는 등 큰 혹평에 시달리면서 나카 유지의 앞날도 불투명해졌다.
2021년 6월 5일 본인이 직접 트위터를 통해 4월 30일부로 퇴사 사실을 알렸다. 또한 퇴사의 이유는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 기회가 되면 언급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2.6. 스퀘어 에닉스 퇴사 이후
2021년 9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신작 스마트폰 게임 개발을 위해 프로그래밍 방법을 독학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기사현재는 1인 스튜디오로 전환한 Prope 소속으로 1인 제작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이후 2021년 12월 15일에 SHOT2048이라는 게임을 출시하였다.
2022년 4월 28일, 나카 유지는 트위터에서 밸런 원더월드의 개발에 얽힌 이야기를 풀었다.( 관련 디스이즈게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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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밸런 원더월드 발매 약 반년 전부터 밸런 원더월드의 디렉터로부터 제외되는 업무 명령이 내려졌기에 스퀘어에닉스에 대하여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나 업무 명령이 현 시점에서 효력이 상실되었다고 하므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게임과 게임 팬을 소중히 하지 않는 스퀘어 에닉스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 자료에 따르면 2가지 포인트로 저는 밸런 원더월드의 디렉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프로듀서, 홍보담당, 사운드담당, 담당이사, 인사부에 의하여 실행되었습니다.
하나는 프로모션에서 게임 악곡을 유튜버가 피아노 연주를 한 악보를 공개한다는 것으로 오리지널 게임을 내는데 어레인지된 악곡을, 그것도 대필 작가가 악보를 쓰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오리지널 악곡의 악보를 내고싶다고 주장한 것으로 트러블이 발생하였습니다.[12]
또 하나는 재판 자료에 의하면 개발 중에 버그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제스트가 수정하지 않고 제출하는 것에 대하여 제가 말한 것이나 게임을 좋게 하기 위해 제가 이야기한 것으로 인해 아제스트와의 관계가 붕괴되고 있다라고 써져 있어서 그것을 오오시마가 프로듀서 후지모토에게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오오시마가 후지모토에게 보낸 메일에서 「방금 스태프를 모으고 체험판을 연기하는 건을 전했습니다. "이 판단은 후지모토 프로듀서가 한 것입니다. 후지모토씨를 위해 우리 모두 노력합시다."라고 전하니 스태프로부터 박수와 환성이 일어났습니다. 예상 외의 일이었기에 감동했습니다. 최근 많이 가라앉아있던 스태프에게 활기가 되살아났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스태프 모두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만 스케쥴은 제가 아닌 프로듀서가 결정하는 것이므로 관계없고, 스케쥴이 빡빡한 것은 프로듀서가 결정한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죠.[13]
오리지널 게임을 내는데, 어레인지한 악곡의 악보만을 세상에 내는 것은 역시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흥얼거리는 게임 음악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것은 게임의 오리지널 악곡 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은 마지막 순간까지 얼마나 좋은 게임을 만들까를 노력하고 게임 팬 분들께서 사주셨을 때 즐겨주셨으면 한다는 마음으로 만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코멘트 해주는 디렉터를 시간이 없으니 상담도 없이 제외 시키고 일절 관여 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SNS 등의 리트윗이나 좋아요 등도 금지 당해 있었기에 스퀘어 에닉스는 게임 팬 분들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밸런 원더월드의 여러가지 코멘트나 너무나도 멋진 일러스트를 그려주신 것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어서 정말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로서는 미완성인 밸런 원더월드를 사주신 고객님들께는 정말로 죄송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후로는 SNS 등에서 제 미니 멘션이나 태그 등을 붙혀주신 경우 반응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게임을 만들고 있으니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한 수정 요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만약 그것이 안된다면 대화를 하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그게 안되는 것 같습니다. 게임을 소중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닉 더 헤지혹 말입니다만 마스터업 2주 전에 링을 1개라도 갖고 있으면 죽지 않는 사양으로 변경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이 사양에 이르기 위해서는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게임을 좋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기에 현재도 전세계의 모든 분들이 즐겨하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게임을 좋게 하는 것이 게임 크리에이터이고 그것을 못하게 한다는 것은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선생님께 부탁해서 어떻게 든 마지막까지 개발의 코멘트를 내는 것 만이라도... 라고 교섭했습니다만 전혀 들어주지 않았기에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밸런 원더월드는 여러분들께서 아시는 결과와 평가가 이렇게 되어있는 것은 이 건이 크게 관련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부터 만들어낸 작품이 이러한 결과를 낳고 만 것은 정말 유감입니다.
저로서는 미완성 작품 「밸런 원더월드」를 세상에 내버린 것이 너무 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여러가지를 생각해서 액션 게임으로서 세상에 제대로 된 형태로 내고 싶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와 아제스트는 게임과 게임 팬을 소중히 하지 않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게임의 실제 개발을 담당한 아제스트와 버그 수정과 관련한 의견 차이가 있었고 그 후 발매 반년 전부터 사실상 모든 권리를 박탈당하고 SNS로 밸런에 대한 의견 표현을 금지 당했다고 한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심각한 사내 정치질까지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호소하기 위해 법정 분쟁까지 벌였기에 신빙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일로 나카와 오오시마는 절연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오시마 나오토와의 SNS 계정 상호 팔로우가 끊겨 있음이 발견되었다. 그 후 나카는 나이츠 26주년 트윗을 하며 오오시마 나오토로 추정되는 사람을 검게 칠해서 사진을 올렸는데 아무래도 원색적인 행동이었기에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14] 나카 유지는 이를 두고 자신의 입장이 되어보라고 반박했다. #
2.6.1. 내부자 거래 혐의 및 직장 내 괴롭힘 사건
드래곤 퀘스트 신작 개발 정보를 둘러싼 내부자 거래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 정확히는 스퀘어 에닉스 퇴사 이전인 2020년, 드래곤 퀘스트 택트가 발표되기 이전에 공동개발사인 Aiming의 주식 약 1만주(280만엔 가량)를 매수한 혐의이다. 2022년 12월에는 파이널 판타지 VII THE FIRST SOLDIER의 개발사인 Ateam의 주식을 매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후 2023년 3월에 열린 첫 공판에서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 #그리고 이후 나카 유지가 스퀘어 에닉스에 제기한 해고 무효 확인 및 위자료 청구 소송을 법원이 기각했는데, 그 판결문의 내용이 알려졌다. 판결문에 따르면 스퀘어 에닉스가 나카 유지를 업무에서 배제한 이유는 직장 내 괴롭힘 보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 번역 해당 기사에 따르면 나카 유지는 직원들에게 주말에 무급으로 일해달라고 강요하거나 유튜버 콜라보가 내부 반발로 무산되자 왜 자신을 괴롭히냐며 메일을 보냈고 이런 행위들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판단해 개발 중간에 해고를 통보했다고 한다.
2023년 7월, 법원에서 내부자 거래 사건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2년 6개월의 징역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00만엔, 추징금 1억 7천만엔이 선고되었다.
3. 외부 링크
[1]
2017년 4월 말부터 나카 유지 1인 스튜디오로 전환
[2]
캐릭터 자체의 디자인은 오오시마의 것이고 나카 혼자서 게임을 다 만든 것이 아니다보니 나카를 소닉의 아버지라고 하기에는 좀 미묘하지만 게임 스타일을 고안하고 직접 프로그래밍도 했으며 무엇보다 미국에 가서도 2와 3를 만들어 내며 소닉을 세가의 상징으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한 것 자체는 틀림이 없다.
[3]
원래는
남코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당시 남코는 고졸자를 뽑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능했고, 나카 유지 본인도 대학교에서 공부하기는 싫었기 때문에 세가에 입사했다. 참고로 이 일화는 미국 잡지인 오피셜 드림캐스트 매거진 1호에 실려 있다.
[4]
북두의 권 게임들 중 명작으로 손 꼽히는 작품. 나카 유지의 프로듀서 데뷔작이다. 그런데 훗날 인터뷰에서 자신은
선데이파라
북두의 권이 싫다고 밝혔다.
[5]
당시의 횡스크롤 액션 게임에는 경사진 길을 따라 이동하는 일이 별로 없었고, 나카 유지도 대마계촌의 소스 코드를 제공받고 나서야 경사 길의 원리를 이해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한 결과물이 바로 소닉 1의
그린 힐이나
스타 라이트 존 등에서 관찰되는 루프. 경사 길을 계속해서 기울이다가 아예 둥글게 이어붙인 것이다.
[6]
특히 3편의 일부 BGM은 무려 "
마이클 잭슨(!)"이 가세한 탓에 미국 특유의 팝 스타일 음악들로 수록되었다.
[7]
이 당시
이이즈카 타카시는 나카 유지의 밑에서 소닉 메인 타이틀의 디렉터를 전담하게 되는데, 나카의 퇴사 이후 이이즈카가 소닉 팀의 수장이 되어 프로듀싱을 전담했던 것을 보면 이이즈카를 후임으로 미리 내정해 놓은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견이 있다.
[8]
나카 유지 본인은 정년까지 세가에 남고 싶어 했다.
[9]
소닉 1 때는 경영진이 이런 건 안 팔릴 거라며 발매 거부를 때린 걸 나카가 진득하게 설득해야 했고,
소닉 2도 본사와 갈등이 있어 나갈 뻔한 나카를 미국 지부의 마크 서니가 우연히 보고 스카웃해서 완성한 게임이었으며,
소닉 더 헤지혹 3는 미국 지부의 해피밀 콜라보 때문에 시간이 촉박해서 프로젝트를 2개로 나눠서 겨우 개발해낸 작품이다.
[10]
Wii 리모컨을 뒤집어서 상자에 올려놓고 그 상자를 두들기면서 즐기는 굉장히 특이한 스타일의 게임이다.
[11]
소닉 3의 프로듀서는 나카 유지였고, 야스하라 히로카즈는 디렉터 겸 레벨 디자이너 였으며, 이이즈카 타카시도 디자이너를 맡았다.
[12]
게임 내에 표절 의혹이 강하게 나는 음악이 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로 추정되고 있다.
[13]
맥락상 개발사 직원들이 나카 유지가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다고 생각해서 사기가 떨어진 상태였는데 오오시마 나오토가 프로듀서에게 건의하여 일정을 연기할 수 있었고 직원에게 그 사실을 전하니 기뻐하더라라는 이야기로 보인다. 해당 트윗을 쓴 이유는 처음부터 일정은 프로듀서가 잡았던 것이라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오오시마 나오토가 자신에게 책임을 전가시킨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현한 것으로 추측된다.
[14]
개중에는 뭔가 안다는 듯 나카의 리더십을 비난하거나, 네가 나이츠에서 오오시마를 지울 자격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소닉 엑스트림에 대한 루머로 나카 유지를 저격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카 유지는 해당 루머는 소설이라며 부정하고 왜 그런지 해명하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