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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2 19:25:27

김우진/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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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2010년~2016년1.2. 2017년~2019년1.3. 2021년~2023년
1.3.1. 2021 국가대표 선발전1.3.2. 2020 도쿄 올림픽1.3.3. 2021 세계 선수권1.3.4. 2022 국가대표 선발전1.3.5.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1.4. 202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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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양궁 선수 김우진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2010년~2016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며 남자 양궁의 차세대 에이스로 부상했다. 개인전에서 모든 토너먼트 경기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여유로운 점수 차로 승리를 거뒀다. 단체전 결승에서는 중간 순서로 나서서 10발 중 8발을 10점에 꽂아넣으며 맹활약했다.

2011년부터 확실한 남자 양궁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세계 선수권 개인전 4강에서는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미국 브래디 엘리슨[1]을 만나서 풀세트 접전을 벌인 후 승부를 가리지 못해서 슛오프까지 가는 혈투를 벌였다. 이때 엘리슨이 먼저 10점을 쏘며 기선제압을 제대로 했으나, 김우진이 엑스10을 꽂아넣으며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이후 오진혁을 결승에서 꺾고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다. 단체전에서도 좋은 경기력으로 우승에 공헌했고 2관왕에 올랐다.

2012년 대표 선수 4인에는 뽑혔지만, 마지막 월드컵에서 부진하며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전국체육대회에서 60명 중 55등을 하며 극심한 슬럼프를 겪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이 시기에 여러모로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월드컵 파이널에 출전하여 결승에서 엘리슨을 만났고, 이번에도 풀세트 접전 후 슛오프에서 승리를 거두며 우승했다.

올림픽 탈락의 여파로 슬럼프에 빠졌다. 2013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밀리며 세계 선수권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차츰 기량을 회복해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선수 4명에 들어갔으나, 다른 한국 선수들에게 밀리며 본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2015년 방황을 끝내고 슬럼프를 이겨내며 부활했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메달권에 입상하며 폼을 되찾음을 입증했다. 세계 선수권 개인전과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며 2011년 이후 4년 만에 2관왕을 차지했다. 월드컵 파이널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하며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에서는 구본찬, 이승윤과 함께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개인전에서는 32강에서 탈락했다.

1.2. 2017년~2019년

국가대표에 복귀한 이후부터는 이전처럼 다시 에이스 역할을 든든히 맡고 있다. 세계 선수권에서 조금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꾸준히 메달을 땄다. 월드컵 파이널에서 우승하며 2연패(2017, 2018)를 달성했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도 이우석을 꺾고 8년 만에 아시안 게임 개인전에서 우승했다.

1.3. 2021년~2023년

파일:IMG_20210927_114331.jpg

1.3.1. 2021 국가대표 선발전

올림픽 출전 선수를 선발하는 최종 선발전에서 1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로써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으로 출전하게 되었다.[2]

1.3.2. 2020 도쿄 올림픽

단체전에서 김제덕, 오진혁과 함께 우승하며 2개 대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했다.[3] 오진혁의 에 가려졌지만 남은 시간 카운트를 해 주다가 오진혁이 쏘자 바로 "들어갔다."를 말하며 존재감을 발휘했다.
파일:김우진_도쿄_올림픽_준결승_올10.jpg
개인전에서는 64강에서 헝가리 선수를 맞아 6-0으로 이겼고, 32강에서는 프랑스 선수를 상대로 6-2로 승리했다. 16강에서는 말레이시아 카이룰 모하마드를 상대로 6-0으로 승리하면서 8강에 진출했다. 참고로 이 경기에서는 9개의 화살을 모두 10점에 쏘며, 1~3세트에서 모두 30점을 기록했다. 덕분에 상대 선수는 27-27-29를 쏘고도 세트 포인트를 1점도 따내지 못했다. SBS 해설 위원인 박성현 - 박경모 부부는 "우리도 한 경기에서 과녁에 10점만 꽂은 적은 없다. 저 표적판은 기념으로 집에 갖고 가야 한다."며 극찬했다. "모하마드가 이기려면 김우진을 쐈어야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하지만 8강에서 대만의 탕즈쥔에게 세트 스코어 4-6으로 패하며 대한민국 양궁 전관왕 석권에는 실패를 하고 말았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스포츠는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래서 열광하는 것", "(마지막 세트 8점에 대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쏜 화살이고 돌아오지 않는다"며 덤덤하게 소회를 밝혔다.

다른 선수들은 심박수가 120BPM[4]을 넘기는 반면 평상시 심박수를 약간 넘긴 수치인 80~90BPM 사이를 유지하며 평정심이 돋보였다. 16강전에서는 심박수 수치가 78BPM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심지어 32강전에서는 심박수가 73BPM까지 내려갔다.

1.3.3. 2021 세계 선수권

랭킹 라운드에서 677점으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며 개인전 32강에 직행했고 여자 랭킹 라운드 1위를 기록한 안산과 함께 혼성 단체전에 출전했다.

단체전에서는 16강 독일전, 8강 브라질전, 4강 대만전 모두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결승에 진출하였다. 결승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6-0 완승을 거두며 올림픽에 이어 세계 선수권에서도 우승했다.

혼성 단체전에서는 16강 인도전, 8강 몽골전, 준결승 일본전에서 각각 세트 스코어 5-1, 5-3, 5-1 승리를 거두며 무난하게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결승에서는 러시아와 맞붙게 되었는데 필요할 때마다 10점을 쏘며 6-0 완승을 거뒀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대회 2관왕에 올랐다.

개인전에서는 32강 대만 선수를 상대로 7-3, 16강 미국 선수를 상대로 6-4 승리를 거두며 8강에 안착했다. 8강전은 러시아 선수를 상대로 6-2로 승리하여 준결승에 진출하였다. 준결승전에서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튀르키예의 메테 가조즈를 상대로 6-4로 승리하면서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이어 벌어진 브라질 에이스 마르쿠스 다우메이다와의 결승전에서 7-3으로 승리,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단체전, 혼성전 금메달과 함께, 세계 선수권 역사상 첫 단일대회 3관왕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또한 김우진은 양궁 세계 선수권이 2년마다 개최하는 것으로 개편된 이후 역대 2번째로 개인전을 3번 우승한 선수가 되었다. 김우진의 개인전 금메달로 대한민국은 이번 세계 선수권에서 12년 만에 리커브 전종목 석권에 성공하였다.

1.3.4. 2022 국가대표 선발전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서 2위를 기록하며 2차 선발전에 진출했다. 2차 선발전 결과 합산 1위로 2022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가 되었다.

1.3.5.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리커브 랭킹 라운드를 전체 8위라는 결코 낮지 않은 순위로 통과했으나, 1위 이우석, 3위 오진혁, 6위 김제덕에 밀려 국내 3위안에 들지 못해 세부종목에 출전하지 못했다.

1.4. 2024년

평가전을 1위로 통과하며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5]

1.4.1. 2024 파리 올림픽

2024 파리 올림픽 랭킹 라운드에서 686점으로 1위를 달성하였다. 이로서 여자부 1위 임시현과 함께 혼성 단체전 대표로서 3관왕에 도전한다.

2024년 7월 29일, 2024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에서 이우석, 김제덕과 함께 출전하여, 2016 리우 올림픽부터 현재까지 남자 양궁 단체전 올림픽 3연패를 달성하였다. 이로 인해 양궁 종목에서 3번 연속 금메달을 획득한 유일한 선수로 등극하게 되었다.[6][7]

7월 30일, 양궁 개인전에서는 64강, 32강 모두 6-0이라는 압도적인 점수차로 이기면서 16강에 진출하였다.

8월 2일, 혼성 단체전에서는 임시현과 함께 4강전에서 인도를 꺾고 결승에 진출, 독일을 상대로 2관왕에 도전한다. 독일을 6:0으로 꺾고 금메달 획득에 성공함에 따라 8월 3일 기준 2관왕을 달성했으며 김수녕에 이어 올림픽 양궁 금메달 4개를 획득하였다.[8]

8월 4일,개인전 16강전에서는 세계랭킹 1위인 브라질의 마르쿠스 다우메이다를 상대로 12발의 화살 중 10점을 11번을 쏘는 신기를 보였다. 나머지 한 발도 9점이었다. 8강전은 도쿄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메테 가조즈와 접전을 펼쳤고 세트 스코어 6:4로 승리, 준결승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4강전에는 이우석과 슛오프까지 가게 되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고 10점을 쏜 끝에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단체전 3연패에 이어 임시현처럼 3관왕을 노려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전 결승전에서는 8강에서 한국의 김제덕을 꺾고 올라온 미국의 브래디 엘리슨을 만났다.[9] 서로 1세트씩 주고 받으면서 5세트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끝에 마지막 5세트, 김우진이 10-10-10을 쏘면서 경기가 끝나나 싶었으나 엘리슨도 10-10-10으로 만점을 맞히며 슛오프가 진행되는 명승부가 되었다.[10] 그리고 화살 단 한 발로 승패가 결정되는 슛오프에서 단 4.9mm[11][12]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한국 남자 양궁 선수 최초로 대회 3관왕은 물론이고 4개의 금메달을 땄던 진종오, 김수녕, 전이경을 넘어 대한민국 동계&하계 올림픽 최다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13]

김우진이 파리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세워진 기록은 다음과 같다.

시상식을 마친 뒤 인터뷰에서 밝힌 소감으로 "오늘 딴 메달도 이제는 과거입니다." 라며 오늘까지만 금메달을 즐기고, 다음 날부터는 새로운 목표를 위해 전진하겠다고 하면서 2028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도 도전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3관왕을 달성하여 올림픽 막바지 무렵 대한체육회에 의해 2024년 대한민국 선수단 남자 MVP로 선정되었다. 이때 같이 3관왕을 달성한 동료 임시현은 여자 MVP로 선정되었다.

[1] 미국의 세계 정상급 양궁 선수로, 2010년대를 대표하는 궁사 중 1명이다. 한국 양궁 선수들을 국제 대회에서 여러 번 잡아내며 한국 킬러라고 불렸다. 하지만 김우진은 오히려 엘리슨을 상대로 매우 강했다. 첫 경기에서 진 이후 내리 6경기를 따내며 상대전적 6:1로 압살했다. [2] 올림픽으로는 오진혁도 두번째 출전이지만, 오진혁의 경우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참고로 여자팀은 전원 모두가 첫 올림픽이였다. [3] 장용호, 박경모, 임동현에 이어 2연속 단체전 금메달을 딴 네번째 선수가 되었다. [4] 가령 김제덕의 경우 32강 탈락 직전 170BPM이 가까이 나올 정도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5] 현역 선수들 중에서 3연속 올림픽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6] 여성부에서 김수녕이 올림픽에서 3개 대회 금메달을 획득한 적이 있으나 중간에 한 번을 건너뛰어 3연속은 아니다. [7] 3번 연속 메달로 한정하면 1996 애틀란타 단체전에서 은메달, 2000 시드니 단체전과 2004 아테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장용호가 최초다. [8] 동하계를 포함한다면 양궁의 김수녕, 쇼트트랙의 전이경, 사격의 진종오 이어 4개 이상 금메달을 획득한 네 번째 선수가 되었고, 하계 선수 한정으로 세 번째 인물이 되었다. [9] 엘리슨은 이전에도 세계 선수권 대회 등 각종 양궁 국제전에서 한국 선수들을 상대로 강한 모습을 보여 주어 "한국 킬러"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한국 양궁계에서도 경계하는 선수였다. 실제로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단체전 때 엘리슨의 맹활약에 힘입은 미국에게 준결승에서 패하여 우리나라는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고, 엘리슨 본인은 2024 파리 올림픽 혼성에서 동메달을 획득함으로써 올림픽 양궁 최초로 메달을 4개 딴 비한국인 양궁 선수라는 기록도 세운(그리고 개인전 은메달까지 총 5개) 어마무시한 사람이다. 스포츠에 만약은 없지만 이때 금메달을 획득했으면 파리까지 7연패도 가능했을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김우진이 선배들의 한을 풀어준 셈이다. [10] 대한민국을 포함한 각국 중계진 대다수가 김우진의 30점에서 경기 종료를 확신하다가 엘리슨의 30점에 경악하는 장면도 나왔다. [11] 0.49cm [12] 두 선수 모두 라인에 물리는 10점을 쐈으나, 김우진은 라인 안에 물렸고, 엘리슨은 라인 밖에 물렸다. 공식적인 기록은 김우진 55.8mm, 엘리슨 60.7mm. [13] 커리어 전체로만 보면 안현수가 올림픽 금메달 6개이지만 대한민국 국적으로 획득한 메달은 3개이고 나머지는 러시아로 귀화한 후 획득한 메달이기에 제외. [14] 여성 선수는 2020 도쿄올림픽때의 안산이 최초다. [15] 동계올림픽 최초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안현수(러시아 귀화 전)와 진선유다. [16] 올림픽, 세계 선수권, 아시안 게임, 아시아 선수권 우승 [17] 여성 선수는 박성현이 유일무이 [18] 1984 로스앤젤레스 2개(금1/은0/동1), 1988 서울 6개(3/2/1), 1992 바르셀로나 4개(2/2/0), 1996 애틀랜타 4개(2/1/1), 2000 시드니 5개(3/1/1), 2004 아테네 4개(3/1/0), 2008 베이징 5개(2/2/1), 2012 런던 4개(3/0/1), 2016 리우 5개(4/0/1), 2020 도쿄 4개(4/0/0) [19] 한 대회에서 한 국가가 양궁에서 딸 수 있는 메달은 최대 9개이다. 남/여/혼성 단체전은 국가당 1팀만 출전할 수 있고 남/여 개인전에서 한 국가가 포디움 스윕을 달성하면 가능한데,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양궁 대표팀은 여자 개인전 동메달과 남자 개인전 은메달만 놓쳤다. [20] 양궁에 걸려있는 금메달 수가 적다보니 이 기록은 단일 대회 단일 종목 최다 메달 공동 5위다. 1위는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10개(금6/은3/동1), 2위는 1988 서울 올림픽 레슬링 9개(2/2/5), 공동 3위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8개(모두 2/4/2)이다. 1984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레슬링(2/1/4)과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1/4/2)이 7개의 메달을 수확했기 때문에 2024 파리 올림픽 양궁의 7개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21] 종전 기록은 2008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의 4개로 당시 출전할 수 있는 전체급을 석권했다. [22] 동계까지 포함하면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의 6개가 최다 금메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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