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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지율 추이
역대 대통령들 중 지지율이 가장 급격히 변한 대통령이다. 오즉하면 2010년대 이전까지 역대 최고 지지율(83%)과 역대 최저 지지율(6%)[1] 기록을 둘 다 지녔던 대통령이다.2010년대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역대 최저 지지율 기록이 깨졌고[2]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역대 최고 지지율 기록이 깨졌다.[3] 초기 문재인과 말기 박근혜의 지지율을 모두 가진 영욕의 극한을 누린 셈이다.
심지어 상기한 지지율도 분기별 지지율로, 지지율 세부 지표를 보면 더욱 대단한데, 1999년 2월 21일 김종필이 내각제의 필요성을 설득시키기 위해 93%가 3% 되는 게 대통령 지지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 그 외에도 임기 초반에는 90%대 지지율을 여러 번 기록하기도 했는데, 심지어 최전성기에는 무려 98%(!!!)의 국민이 김영삼을 지지했다는 여론조사도 존재한다! # 때문에 1993년 AP에서도 김영삼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지도자"로 평했을 정도였다. # 그 문재인조차 90%대 지지율은 기록한 적이 없다.
사실 김영삼 정도로 영욕에 가득찬 지지율을 기록한 인물은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다시피하다. 그나마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 정도가 김영삼에 비견된다. 그는 사회 개혁을 내세워 임기 초 지지율 96%를 기록했으나 경제, 반군 문제를 더욱 악화시켜 임기 말에는 지지율이 9%로 떨어졌고, 말년에 뇌물수수 스캔들에 연루되었을 당시에는 지지율 4%(부정평가는 93%)를 찍기도 했다. 즉, 가르시아와 김영삼은 세계에서 90%대 지지율과 한자릿수 지지율을 모두 기록한 몇 안 되는 지도자들이기도 하다.[4][5]
1.1. 한국갤럽
김영삼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 한국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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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 득표율 | ||
제14대 대통령 선거 |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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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기간 | 긍정 | 부정 | ||
1993년 2월-1993년 5월 |
7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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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5월-1993년 8월 |
83%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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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1993년 11월 |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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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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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1월-1994년 2월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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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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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갤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김영삼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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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min-height: 26px" {{{#!folding [ 2년차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조사 기간 | 긍정 | 부정 | |
1994년 2월-1994년 5월 |
55%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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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5월-1994년 8월 |
55%
|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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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1994년 11월 |
44%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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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1995년 2월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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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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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갤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김영삼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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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min-height: 26px" {{{#!folding [ 3년차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조사 기간 | 긍정 | 부정 | |
1995년 2월-1995년 5월 |
37%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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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5월-1995년 8월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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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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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1995년 11월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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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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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1월-1996년 2월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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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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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갤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김영삼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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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min-height: 26px" {{{#!folding [ 4년차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조사 기간 | 긍정 | 부정 | |
1996년 2월-1996년 5월 |
41%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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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1996년 8월 |
41%
|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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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1996년 11월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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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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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1월-1997년 2월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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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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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갤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김영삼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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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min-height: 26px" {{{#!folding [ 5년차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조사 기간 | 긍정 | 부정 | |
1997년 2월-1997년 5월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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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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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5월-1997년 8월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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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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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8월-1997년 11월 |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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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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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11월-1998년 2월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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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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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는 한국갤럽에서 자체적으로 조사한 김영삼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 주간집계 결과임.
조사 방법을 비롯한 자세한 내용은 한국갤럽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할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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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7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6.4%였으니, 김영삼의 최저 지지율은 그야말로 경제성장률보다도 낮은 대통령 지지율이었던 셈이다.
[2]
김영삼 전 대통령 6% 박근혜 전 대통령 4%
[3]
김영삼 전 대통령 83% 문재인 전 대통령 84%
[4]
심지어 지지율 최고점과 최저점의 격차는 김영삼이 가르시아보다도 크다! 즉, 김영삼은 세계 정치사에서 가장 지지율 최고점과 최저점의 격차가 큰 대통령이기도 하다.
[5]
다만 역사상 최저 지지율과 최고 지지율을 모두 기록한 대통령은
해리 S. 트루먼,
알란 가르시아,
조지 워커 부시,
지우마 호세프처럼 은근히 흔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