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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5 21:29:00

김시연

파일:gelandang-serang-persebaya-surabaya-song-ui-young.jpg
<colbgcolor=#0b8441>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No. 7
송의영
Song Ui-young
<colcolor=#efd10b> 출생 1993년 11월 8일 ([age(1993-11-08)]세)
인천직할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1993 ~ 2021.08.)

[[싱가포르|]][[틀:국기|]][[틀:국기|]] (2021.08.~ )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
신체 177cm
학력 정왕중학교 (2006~2008)
여의도고등학교 (2009~2011)
프로 입단 2012년 홈 유나이티드 FC
소속 구단 홈 유나이티드 FC/라이언 시티 세일러스 FC (2012~2022)
농부아 핏차야 FC (2023)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2023~ )
국가대표 18경기 4골 ( 싱가포르 / 2021~ )[1]
병역 해당 사항 없음[2]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여담
5.1.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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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가포르 국적의 한국계 축구 선수.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소속이다.

현재 싱가포르에서 가장 성공한 대한민국 출신 축구 선수다. # 10년 이상 싱가포르에서 활약하며 현지에서의 열렬한 지지로 싱가포르 시민권을 취득해 국가대표 승선까지 성공한 매우 특이한 경우다.

현재 중국 슈퍼리그 산둥 타이산에서 미드필더로 활동하고 있는 손준호와는 인천남동초등학교 선후배 지간이기도 하다.

2. 클럽 경력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스카우트되어 경기도권에서 유명한 정왕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정왕중학교 입학 초기에는 기숙사 생활을 해야하기에 적응 문제로 축구를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했으나 견뎌냈고 결국 정왕중학교 주장이자 팀의 핵심으로 팀을 이끌어 나갔다. 그렇게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당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이 U-18팀 창단 멤버로 송의영을 스카우트 하려 했으나 송의영은 수원의 제의를 거절하고 여의도고등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향후 진로를 결정해야 했던 시점에서 싱가포르 홈 유나이티드 이임생 감독의 부름을 받아 # 홈 유나이티드 2군에 입단하게 된다. 김환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대학 대신 프로행을 선택한 이유는 가정형편 때문에 장학금 없이는 대학에서 뛸 상황이 안되어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2.2. 홈 유나이티드/라이언 시티 세일러스

파일:b307ce263bfcce3d281b17e8347844b83b3fc2e9.jpg
홈 유나이티드에 입단하고 초기에는 당시 홈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 였던 백종석 코치의 집에서 생활을 하며 싱가포르 생활에 적응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은 2군 리그인 프라임 리그 선수단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1군으로 승격된다. 송의영은 입단 2년차까지 운동만 하는 생활을 했으며, 같은 팀 선수들 간에서도 중국계, 말레이시아계, 인도계 파벌이 나뉘어 서로 견제를 벌여 무시도 받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

2013 시즌부터 제대로 주전자리를 보장받게 된 송의영은 2013시즌 22경기 2골을 기록하며 안정적인 활약을 했다. 2014 시즌에도 리그 20경기에 나서며 굳건한 주전을 지켜냈고, 감독이 바뀐 후에도 2015시즌 20경기, 2016시즌 19경기를 뛰며 확실한 핵심선수로 거듭난다.

2016년 시즌 중반 싱가포르인 아이딜 샤하크 감독이 도중 부임하면서 송의영은 축구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기존 중앙 미드필더에서 2선 공격수로 포지션이 변경된 것이다. 송의영의 넒은 활동량을 보고 감독이 보직을 변경한 것인데, 이게 적중하여 송의영은 팀에 없어서는 안될 선수로 위상이 더 올라가게 된다. 2016년 리그 5골, 2017년 리그 4골로 감을 잡아간 송의영은, 2018년 리그 13경기 10골, AFC컵 11경기 9골, 싱가포르컵 3경기 1골로 시즌 20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한다. 2018년 시즌의 엄청난 활약으로 인도네시아 페르시자 자카르타의 이적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다.

이 때부터 송의영의 싱가포르 귀화 얘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리그 최고의 2선 공격수이자 외국인 선수로, 평소 귀화선수에 문호가 열려있는 싱가포르의 특성상 자연스런 수순이었고, 송의영 선수 본인도 싱가포르 귀화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면서 구단과 2년 재계약에 합의했고, 2019시즌 23경기 11골, 코로나로 단축 운영된 2020시즌에도 12경기 9골로 엄청난 골 결정력을 보이며 구단의 레전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2.1. 2021 시즌

2021시즌, 구단이 민간 기업구단인 라이언 시티 세일러즈 FC로 재창단되었으나 송의영은 여전히 구단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시즌에는 한국인 김도훈 감독이 팀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더 시너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개막전 탬피니스 로버스 FC와의 경기에서 개막 첫 골을 넣으며 기분 좋은 시작을 했다. 이어서 2라운드 탄종 파가르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도 멀티골과 함께 1도움을 거두는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이후로 스티페 플라지바트, 가브리엘 콱, 디에고 로페즈 등등 화려한 공격진들에게 밀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하기도 했다.

한편 8월에는 싱가포르 시민권 취득을 완료하면서 국가대표 진출도 노려볼수 있게 되었고, # 취득과 함께 대표팀에 소집돼 경기를 뛰었다.

여름이적시장을 앞두고 원톱이였던 스티페 플라지바트가 십자인대 부상으로 떠나며 팀 전술이 투톱 체제로 바뀌었고 그러면서 송의영 또한 다시 톱으로 복귀하였다. 그리고 톱으로 복귀하고 마지막 3경기에서 4골을 집어 넣으며 라이언 시티 세일러스의 18년만의 리그 우승에 큰공헌을 했다.

2021시즌 기록은 15경기 7골 1도움.

2.2.2. 2022 시즌

2022 시즌 드디어 프로데뷔 이후 첫 AFC 챔피언스 리그 무대를 밟게 되었다. 조별리그 2차전 대구 FC와의 경기에 선발출전하여 헤더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라이언 시티 세일러스 역사적인 첫 골과 함께 첫 승을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조별리그 6차전에서도 또 다시 대구 FC를 상대로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내며 라이언 시티를 16강에 올리는듯 했으나 폭우가 내리면서 경기 흐름이 확 바뀌었고 결국 연달아 2골을 먹히며 아쉽게도 첫 ACL 무대에서 짐을 싸게 되었다.

이러한 ACL 활약을 바탕으로 5월 27일 K리그1 2팀으로부터 영입 관심을 받고 있다고 한다. 팀은 수도권 1팀, 지역구단 1팀으로 각각 수원 FC 대구 FC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소속팀에서 높은 임대료 요구에 의해 결국 한국행은 무산되었다.

이후 싱가프로 무대에서 더욱 더 집중한 송의영은 리그 15경기에 나와 11골 2도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했다.

현재 K리그 몇 팀이 관심이 있는 듯 보인다. 동남아 쿼터로 상당히 효용이 높은 자원이며 기본적으로 기량도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1월 15일에 태국 타이 리그 1 소속 구단인 농부아 핏차야 FC로 이적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3. 농부아 핏차야 FC

파일:Song_nongbua.png

2023년 1월 18일에 공식 오피셜이 나왔다.

2.4. 페르세바야 수라바야

2023년 6월 21일에 공식 오피셜이 나왔다.

2.4.1. 2023시즌

파일:IMG_20230618_185659.jpg

3. 국가대표 경력

대한민국에선 국가대표와 거리가 멀었지만, 싱가포르에서의 대단한 활약으로 호의적인 현지여론에 힘입어 귀화를 계속 추진해왔다. 전임 싱가포르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베른트 슈탕게 감독도 송의영의 귀화를 지지하고 나섰고, 싱가포르 축구협회에서도 적극적이라 조만간 싱가포르 대표팀으로 소집된 송의영의 모습을 볼 수도 있을 듯 하다.

그리고 2021년 8월 27일, 싱가포르 시민권 취득을 완료하자마자 싱가포르 축구 국가대표팀에 바로 소집되었다. # 이는 한국인 귀화자로는 최초의 사례다.[3][4]

결국 2021년 11월, 키르기스스탄과의 친선 A매치에서 싱가포르 국가대표로 데뷔전을 가졌다. 또한 12월 열리는 스즈키컵 대회의 싱가포르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귀화 후 첫 정식 국가대항전 출전을 하게 되었다.

12월 5일 스즈키컵 조별리그 1차전 미얀마와의 경기에 출전해 공식 대회 데뷔전을 가졌다.

12월 23일,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와의 스즈키컵 준결승전 1차전에 선발 출전했다. 왕성한 활동량으로 공수 양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후반 교체 아웃되었다.

12월 25일, 인도네시아와의 스즈키컵 준결승전 2차전에서 전반전 추가시간에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을 넣었다.

2022년 6월 8일, 키르기스스탄과의 2023 AFC 아시안컵 3차 예선 경기에서 후반 10분, 선제 득점에 성공하였으나, 후반 31분, 상대 선수에게 페널티 박스 안에서 반칙을 범하여 페널티킥을 내주기도 했다.

6월 14일, 미얀마와의 경기에서는 전반 16분 이른 시간에 팀의 두번째골을 넣으며 6-2 대승을 이끌었다.

2023년 10월 12일, 괌과의 202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홈 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팀의 2대1 승리에 기여했고 이후 5일 뒤 2차전에서도 선발 출전했고 팀은 1-0 승리를 거두며 월드컵 2차 예선 진출에 성공했다.

이로써 송의영은 자신의 전 조국이었던 대한민국과 월드컵 예선에서 맞붙는 기회를 잡았다.

4. 플레이 스타일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멀티 능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받는다. 본래 수비형 미드필더부터 시작했고, 이후 프로에 들어와 중앙 미드필더, 윙어, 2선 공격수, 공격형 미드필더 등을 모두 무리없이 소화하였다. 또한 리그에서 가장 활동량이 좋은 선수이자 가장 기술적인 선수로 꼽히고 있다.

5. 여담

5.1.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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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그리고 심지어 일부 국내 기사들을 통해 송의영에 대해 잘못 퍼진 정보가 하나 있다. 송의영이 고교 졸업 후 J2리그 로아소 구마모토 한국 내셔널리그 수원시청 축구단(현 수원 FC)에서 뛰었다는 것인데, 사실 송의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한국과 일본의 성인 무대에서 뛴 적이 없다.

송의영은 이미 2017년에 김환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어려운 가정형편상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위해 고교 졸업 직후에 싱가포르 행을 택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후 적응의 어려움은 겪었을 지언정 한번도 홈 유나이티드에서 나간 적이 없다. #

이는 2011년에 로아소 구마모토에서, 2012년에 수원시청 축구단에서 뛴 송인영 #이라는, 이름만 비슷할뿐 송의영과는 전혀 다른 1990년생 축구 선수의 기록이 와전된 것이다.

이런 오류가 생긴 이유는 그 송인영이라는 선수가 2014년에 홈 유나이티드에서 송의영과 함께 뛰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름이 비슷한 두 선수의 커리어가 혼합되어 잘못된 정보가 생겨난 것. 게다가 송의영과 송인영 두 선수 모두 한국에선 철저한 무명이었던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오류의 존재를 인지하지도 못해 고쳐지지도 않았다.

참고로 송의영에게 얼떨결에 커리어를 빌려준(?) 송인영 선수는 2015년을 앞두고 홈 유나이티드를 떠났으며 2015 시즌 시작 전 K리그 챌린지(現 K리그2)의 서울 이랜드 입단 테스트를 본 이후로는 더 이상 현역 축구 선수로 활동하고 있지 않다.


[1] 싱가포르 축구 국가대표팀에 2021년 8월 27일 처음 소집됐다. 기록은 2023년 9월 3일 기준. [2] 싱가포르 귀화 이전에 이미 대한민국 병역은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면제 사유는 '생계곤란'으로 사정에 의해서 면제가 가능한 남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각한 질병, 해당 남성이 입대하면 부양자가 부족해진다는 등의 사정으로 인한 것이다. 실제로 송의영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 대신 프로 구단 입단을 선택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병역 처분과 관련해서는 크게 뒷이야기가 없다. 현재는 대한민국 국적 포기 후 싱가포르 귀화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병역 의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싱가포르도 징병제 국가이다보니(특히 싱가포르는 한국보다 더 빡빡한 징병제다) 이 경우는 확인되지 않았다. [3] 정운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대활약할 때 현지 축구협회로부터 귀화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선수 본인이 대한민국에 귀국한 뒤 병역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거부하며 무위로 돌아갔다. 넓게 보면 한국 국적을 유지하던 재일교포 선수 이충성이 일본에 귀화하며 일본 대표팀으로 뛴 적은 있다. 그러나 한국 본토 태생 선수가 타국으로 귀화 후 그 나라의 대표팀에 선발된 경우는 역사상 최초다. [4] 화교 선수인 왕건명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뛴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는 왕건명이 대만계 혈통을 지닌 화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고, 실제로 그는 한국에서만 생활해왔기 때문에 중국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