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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승기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2. 선수 경력
2.1. 고등학교 시절
세탁소를 운영하는 집안에서 삼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4학년 시기에 농구를 시작했다. #용산고등학교 진학 이후 동기 김재훈, 후배 김병철,
2.2. 대학교 시절
중앙대학교 입학 첫해부터 정봉섭 및 강정수 감독에게 배우며 주전 자리를 꿰찬 김승기는 기존의 표필상, 정경호라는 장신 더블포스트 위주였던 팀에 스피드와 파워를 가미하며, 중앙대가 1990년대 초반 대학농구연맹전을 연세대와 양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빼빼 말랐던 다른 가드들과는 달리 탄탄한 근육을 바탕으로한 지칠 줄 모르는 파워를 가지고 있었고[2], 여기에 스피드도 최상급이라 "터프가이", "터보가드" 등의 별명으로 불렸다. "장신군단"이라는 팀컬러로 매번 대학팀끼리의 대회에선 최강을 자처하다가도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들만 만나면 작아졌던 중앙대는, 김승기가 3학년이 되는 시점부터 수비와 속공의 팀으로 변모하면서[3] 실업팀들을 꺾고 오랜만에 농구대잔치 6강에 오른 것은 물론, 졸업을 앞둔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는 8강에서 농구대잔치 6연속 우승을 노리던 최강 기아자동차를 꺾고 4강에 진출하는 대이변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때의 활약 덕분에, 김승기는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대표팀 가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2.3. 실업-프로 시절
졸업시즌을 농대 4강이란 성적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한 김승기는, 90학번 최대어를 놓고 다투던 국가대표 슈터 문경은과 함께 삼성전자 농구단에 입단했다. 김현준, 김진 등 슈터는 많았지만 믿음직한 포인트 가드가 없어 고민하던 삼성전자에서 김승기는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고, 젊은 슈터 문경은에 상무에서 제대한 센터 이창수까지 합류한 삼성전자는 단번에 1994-95 농구대잔치의 우승 후보로 주목받았다. 농구대잔치 정규리그에서는 손발이 맞지 않으면서 부진, 8위의 성적으로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8강에서 정규리그 전승 우승의 연세대를농대를 마치고 문경은과 함께 상무에 입대한 김승기는 이상민, 조성원, 김재훈, 조동기, 홍사붕 등 당시 사상 최강이라던 멤버들과 함께 상무를 1995-96 농구대잔치와 1996-97 농구대잔치에 2연속 결승에 진출시킨다. 비록 상무는 95-96 때는 기아에, 96-97 때는 서장훈이 복귀한 연세대에 패하며 2연속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김승기는 오랜만에 대학 때의 패기를 다시보여주며 맹활약, 1996-97 농구대잔치 베스트 5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상무 시절엔 특이했던 부분으로, 당시 로스터에 넘치던 가드, 포워드 자원에 비해서 인사이더진이 빈약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강한 하드웨어를 가진 그를 상당시간 인사이더 슬롯에 사용했다. 1997 리야드 ABC에도 출전하여 28년만의 ABC 우승컵을 가져오는데 일조한다.
군 제대 후 문경은과 함께 원 소속 구단 수원 삼성 썬더스로 복귀해 1997-98 시즌이 KBL 데뷔 시즌이 된다. 문경은과 김승기가 제대했고 외국인 드래프트 1위 존 스트릭랜드(200cm)까지 가세하면서, 허- 동- 만 트리오가 건재한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이- 조- 추 트리오가 처음 구성된 대전 현대 다이넷과 함께 3강구도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센터 스트릭랜드는 피딩 따윈 배운 적 없다는 듯 블랙홀 마냥 모든 공격을 독식했고, 문경은, 김희선 등 멤버간의 호흡도 맞지 않으면서 리그 9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4] 특히 김승기는 대표팀 가드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팀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고, 당시 고려대 1학년 중퇴 후 데뷔했던 원주 나래의 신인 주희정에게도 탈탈 털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 인해 팀 내에서도 경희대 출신 신인가드 박성배와 함께 출전 시간을 나눠야할 정도로 신뢰를 잃었고, 시즌 종료 후 그 주희정과 트레이드되어 원주 나래로 이적하게 된다.[5]
1998-99 시즌을 앞두고 허재, 신기성,
2002-03 시즌을 앞두고 신인 드래프트 1순위 김주성이 합류하면서, 원주 TG는 단신의 슈팅 가드 데이비드 잭슨(192cm)을 뽑았고 허재가 오랜만에 포인트 가드 자리를 맡게 된다. 김승기는 백업가드로서 37세의 노장 허재의 체력 보전은 물론 전 시즌 KBL 우수수비상 수상자답게 강력한 디펜스를 펼치며 원주 TG의 정규리그 3위 및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 타이틀을 얻는 데 이바지 한다. 특히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갈비뼈를 다친 허재를 대신해 출전한 6차전 대구 원정경기에서 오랜만에 리딩가드로서 믿음직한 활약을 펼치며 대역전극을 주도하였다.
2002-03 시즌 우승 이후, 원주 TG 전창진 감독은 울산 모비스에서 자리를 못잡고 있던 장신 유망주 정훈(F, 198cm)을 얻기 위해 김승기와 2:1 트레이드(TG삼보 get: 정훈, 박정완 ↔ 모비스 get: 김승기)를 단행한다. 어차피 신기성이 제대하면서 후보로 밀릴 김승기를 보내고 한때 김주성과 함께 한국농구의 희망이라 불렸던 정훈을 데려다 키워보자는 게 전창진 감독의 복안이었으나, 결과는 폭망....덕분에 김승기는 모비스에서 반짝 주전을 차지하지만, 여기도 우지원, 노쇠한 조니 맥도웰과 함께 폭망하면서 리그 꼴찌가 된다.
2005-06 시즌을 앞두고 FA가 된 김승기는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고, 은퇴 위기 끝에 친정팀이라 할 수 있는 원주 동부 프로미에 재합류했다. 당시 신기성을 FA 시장에서 잃고[9] 확실한 포인트 가드가 없어 고민하던 원주 동부는 김승기를 강기중, 한상민 등과 플래툰 시스템으로 돌려가며 썼고 리그 3위로 시즌을 마무리하지만, 6강 플레이오프에서 김승현이 맹활약한 대구 오리온스에 1:2로 허무하게 탈락하고 만다. 김승기는 이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했다.
2.4. 시즌별 성적
역대 성적 | ||||||||||
시즌 | 소속 구단 | 경기 수 | 2점 슛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슛 |
1997-98 | 삼성 | 37 |
53/117 (45.30%) |
15/57 (26.32%) |
47/63 (74.60%) |
198 | 78 | 126 | 46 | 0 |
시즌 | 소속 구단 | 경기 수 | 2점 슛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슛 |
1998-99 | 나래/삼보/TG 삼보 | 37 |
41/74 (55.41%) |
12/40 (30.00%) |
16/21 (76.19%) |
134 | 42 | 51 | 28 | 0 |
1999-00 | 38 |
47/89 (52.81%) |
21/65 (32.31%) |
21/27 (77.78%) |
178 | 34 | 43 | 33 | 0 | |
2000-01 | 44 |
70/141 (49.65%) |
36/107 (33.64%) |
27/35 (77.14%) |
275 | 66 | 75 | 35 | 1 | |
2001-02 | 54 |
116/264 (43.94%) |
88/258 (34.11%) |
42/53 (79.25%) |
538 | 252 | 73 | 64 | 3 | |
2002-03 | 49 |
36/82 (43.90%) |
49/153 (32.03%) |
17/23 (73.91%) |
236 | 91 | 166 | 46 | 1 | |
시즌 | 소속 구단 | 경기 수 | 2점 슛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슛 |
2003-04 | 모비스 | 54 |
36/81 (44.44%) |
62/171 (36.26%) |
17/18 (94.44%) |
275 | 90 | 157 | 46 | 0 |
2004-05 | 19 |
5/10 (50.00%) |
7/46 (15.22%) |
31 | 16 | 30 | 9 | 0 | ||
시즌 | 소속 구단 | 경기 수 | 2점 슛 | 3점 슛 | 자유투 | 득점 | 리바운드 | 어시스트 | 스틸 | 블록 슛 |
2005-06 | 동부 | 49 |
14/32 (43.75%) |
40/112 (35.71%) |
21/25 (84.00%) |
169 | 65 | 109 | 35 | 1 |
KBL 통산 (9시즌) |
381 |
418/890 (46.97%) |
330/1009 (32.71%) |
208/265 (78.49%) |
2,034 | 626 | 1,009 | 342 | 6 |
[1]
G: 김승기,
이상민,
홍사붕, F:
문경은,
조성원, C:
김재훈,
전희철,
서장훈 등... 네임밸류만으로는 다시 볼 수도 없는 멤버들이었다.
[2]
농구인들 사이에 일화이기에 신빙성은 불명이지만
현주엽과 씨름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다.
https://sporki.com/basketball/news/840996.
[3]
이때 베스트 5는 PG 김승기 - SG
홍사붕 - SF
김영만 - PF
양경민 - C
조동기, 키
식스 맨
김희선으로 구성되었었다.
[4]
원래 성적은 7위 정도였는데,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가 확정되고 나서 1998 드래프트에서
현주엽을 뽑기 위해 탱킹을 시도했던 탓이 컸다. 당시 10위는 40%, 9위 30%, 8위 20%, 7위 10%의 차등확률 추첨제였기 때문이었는데, 결국 정의는 승리하여
수원 삼성은 드래프트 3순위로 김택훈(F, 193cm)을 뽑는데 그쳤다.
[5]
삼성 get:
주희정,
강병수 ↔ 나래 get: 김승기,
양경민(상무 제대)
[6]
팀명도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서 원주 삼보 엑서스로 바꿨다.
[7]
이로 인해 당시 김동욱 감독이 경질되고
전창진 코치가 감독대행의 자리에 오른다. 대충 이 시기에 김승기와 전창진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될 듯도 하나 실질적으로 둘의 인연은 실업농구 삼성전자 시절 전창진이 구단 매니저로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8]
97-98 삼성: 9위, 01-02 TG: 9위, 03-04 모비스: 10위.
[9]
부산 KTF 매직윙스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