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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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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f5f5,#2d2f34><colcolor=#4C516D,#ddd> 일생 | 일생 · 평가 | ||
가족 | 아버지 김순영 · 어머니 곽낙원 · 아들 김신 · 증손자 김용만 | |||
역대 선거 | 제1대 대통령 선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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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 백범일지 | |||
기타 | 피 묻은 적삼 · 경교장 · 묘소/기념관 · 대장 김창수 · 드라마 김구 |
<colbgcolor=#000><colcolor=#fff> 김순영 金淳永|Kim Soon Yung |
|
출생 | 1848년 9월 1일 |
사망 | 1901년 12월 9일 (향년 53세) |
본관 | 구 안동 김씨[1] |
부모 |
아버지 김만묵(1824 ~ 1888)[2] 어머니 결성 장씨(1824 ~ 1876) |
형제자매 |
형 김백영(1844 ~ 1880) 남동생 김준영 포함 2명 누이[3] |
배우자 | 곽낙원[4](1859 ~ 1939) |
자녀 | 김구(1876 ~ 1949) |
1. 개요
조선 말기의 인물로 독립운동가 김구의 부친이다.2. 생애
1848년 9월 1일, 아버지 김만묵(金萬默)의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1876년 곽낙원과의 사이에서 김구를 낳았다. 김구를 낳은 1876년 8월 29일은 김순영의 모친이자 김구의 조모인 장씨가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5]
김구가 소년 시절이던 1888년 뇌출혈로 쓰러졌고 치하포 사건 이후 백범이 탈옥하자 탈옥수의 부모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그 후유증으로 1901년 사망했다. 이때는 김구가 계몽운동을 하던 시기였다.
3. 가족
- 증조부: 김복원(金福源, 1789 ~ ?)
- 증조모: 영월 신씨(寧越 辛氏)
- 조부: 김영원(金榮元, 1806 ~ ?)
- 조모: 희천 김씨(熙川 金氏, 1801 ~ ?)
- 부친: 김만묵(金萬默, 1824 ~ 1888)
- 모친: 결성 장씨(結城 張氏, 1824 ~ 1876)
- 형: 김백영(1844 ~ 1880)
- 형수: 진주 정씨(晉州 鄭氏, 1852 ~ ?)
- 아내: 곽낙원(郭樂園, 1859 ~ 1939)
- 아들: 김구(金九, 1876 ~ 1949)
- 며느리: 최준례(崔遵禮, 1889 ~ 1924)
- 동생: 김○영
- 동생: 김준영
- 누이: 1명
- 매제: 현풍 곽씨(玄風 郭氏)
- 재종숙[6]: 김장련(1848 ~ ?)[7]
[1]
익원공파 22세손 재○(在○) 항렬. 족보명 김재하(金在夏).(
족보(1)
족보(2))
[2]
金萬默,
1824년
10월 25일 ~
1888년
4월 20일. 향년 63세.
[3]
현풍 곽씨 곽양식(郭陽植)의 아들에게 시집갔다.
[4]
황해도 전통적 겹사돈 혼례 풍습에 따라 곽낙원이 시집왔다. 즉, 그녀는 매제의 누이이다.
[5]
안타깝게도 김구가 태어나기 몇 시간 전 장씨는 별세했다고 한다.
[6]
아버지의
6촌.
[7]
나이는 같으나 한 항렬 위였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김순영이 김구가 숟가락을 엿과 바꿔 먹자 가옥히 체벌했는데 그걸 재종숙이 보자마자 김순영을 김구가 보는데 앞에서 체벌했다고 한다. 삼종조모(재종숙 모친)도 김구 편을 들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