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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1 08:50:46

기경량

<colbgcolor=#808080><colcolor=#fff>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조교수
기경량
奇庚良 | Ki Kyoung-r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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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8년 ([age(1978-12-31)]~[age(1978-01-01)]세)
경기도 부천시
본관 행주(幸州)[1]
학력 인하대학교 (사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 / 석,박사)

1. 개요2. 생애3. 성향4. 논란5. 여담6.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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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역사학자.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고대사, 그중에서도 고구려사이다.

2. 생애

2004년도에 인하대 학사를 졸업했다. 2010년 2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高句麗 國內城 시기의 왕릉과 守墓制(고구려 국내성 시기의 왕릉과 수묘제)라는 논문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17년 2월에는 동 대학원에서 高句麗 王都 硏究(고구려 왕도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후술할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에 출연하는 강진원 교수 등과 함께 노태돈, 송기호 교수 문하에서 수학했다.[2]

이후 가천대, 강원대, 서울대 등에서 강사를 했고,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3. 성향

박근혜 정권 시절 국정 교과서를 비판한 학자로도 알려져있으며 역사 파시즘이란 단어를 국내에서 최초로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학문의 자유가 있다는 것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지, 모든 의견들이 동일한 수준의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학문세계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치열하게 논리경쟁을 해 가장 논리적인 것들이 살아남고 논리성이 떨어지는 것은 도태된다. 이것이 학문세계의 자유경쟁이다. 낙랑군 요서에 있다는 주장은 학문적으로 도태된 이야기다. 얘기하고 싶으면 기존 학계를 식민사학이라고 매도하지 말고 더 많은 증거를 모아 제시하면 된다.

2016년 부터는 만인만색 역사공작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프로그램 내에서의 닉네임은 ‘기랑’

탈민족주의 사관을 지향하며, 이로 인해 가야사/백제사 전문가 위가야와 함께 이덕일 일파들의 표적이 된다. 유사역사학 세력이 선정한 차세대 역사7적 후보군에도 포함되어 있다.
질문 : 일부 지식인들마저 왜 사이비 역사학에 쉽게 동조할까.

답변 : 주류에 대한 반감이 원인인 것 같다. 주류는 잘못돼 있다는 생각을 하며, 주류를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를 갖고 이들의 전략에 쉽게 넘어간다.

광개토대왕릉비 신묘년조에 대해서 과장설을 방송에서 소개하기도 했다.

4.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기경량/비판 및 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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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6. 출연



[1] 정무공-광주문중/덕성군-왕심봉문중 30세 주(柱) 항렬, 본인은 항렬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2] 기경량 교수와 강진원 교수 모두 노태돈 교수의 제자였는데 노태돈 교수가 정년은퇴하고 나서, 송기호 교수로 지도교수가 바뀌었다. 물론 노태돈 교수라고 실명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말투나 성대모사 또 은퇴시기를 고려 했을 때 노태돈 교수가 지도교수인 것이 확실해 보인다. [3] 결혼, 약혼 등 단어들이 일본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고 패널이 지적하자, 기경량은 그렇게 치자면 우리가 현재 쓸 수 있는 순수 우리말 단어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로 반박하기도 했다. 학술적 용어나 외래어의 경우 6-80년대 일본 학자들에 의해 대거 번역된 것을 한국어로 중역했기 때문에 일본어 한자음을 차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고 한자 단어 상당수가 일본어에서 유래한 것도 옳은 지적이긴 하지만,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400회 자산어보와 역사속 자산어보 편을 청취하면 시대를 시다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등 일본어를 모르는 이들에겐 은어가 될 수 있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며 이중잣대를 시전한다. 게다가 일본어나 일본에 관한 내용이 아님에도 맥락없이 남용하기도 한다. 다른 편에서는 쇼부, 나와바리 같은 말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