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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19 23:55:46

금태섭/다른 정치인과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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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어준

2018년 2월 24일에 김어준 김어준 미투 운동 공작 발언에 대해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들이 겪어야 했던 일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좌파 우파가 관련이 있나. 좌파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어도 방어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감춰줘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김어준을 정면 비판했다. #

민주당의 권리당원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나팔수들 (김어준을 비롯한 나꼼수 멤버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금태섭이 낙천된 이유 중 하나로 이 불화가 종종 거론된다. 이에 대해 "금태섭은 무명의 정치신인에게 당내 경선에서 졌을 뿐이다. 심지어 큰 차이로 졌다. 이는 본인이 지역구 관리에 소홀했던 탓으로 결코 불법적으로 당한 보복이라고 볼 수 없다. # 당선된 의원도 홍보할 시간이 1주일밖에 없었는데도 현직 의원을 이긴 것을 신기하게 여겼을 정도다." 라고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는 이들 스피커가 금태섭에게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 때문에 이 방송을 즐겨듣는 행동력있는 민주당 권리당원들이 모두 반금태섭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김어준 뿐만 아니라 정봉주와도 원수지간이다. 그 이유는 정봉주 본인과의 사적 통화를 금태섭이 자신의 SNS에서 공개하였고, 그 공개된 내용중에 김어준을 디스하는 내용이 있어서, 이를 본 김어준이 정봉주에게 발끈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정봉주는 2018년부터 봄 "금모씨", "금모의원"이라고 이름을 지칭하지도 않고 디스해댔다. 정봉주가 총선을 앞두고는 '빨간 점퍼(...)는 안 된다'고 디스하기도 했다.

또한 김용민과도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다. 김용민에 따르면 2000년대 이명박 시기에 자신이 맡고 있던 방송에 출연한 금태섭에게 자신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느꼈다고 한다. 김용민은 금태섭이 여권 주류와 엇나가는 언행을 할 때마다 그를 비판했고, 결국 금태섭은 페친에서 김용민을 삭제하기도 했다.[1]

서울시장 재보궐에 뛰어든 이후에는 대놓고 '서울시장이 되면 편향된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바로잡겠다'며 각을 세우고 있다. # 또한 더불어민주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김어준을 선거 승리에 1등 공신으로 보거나 김어준 유튜브를 자주 본다고 이야기하는 것에도 크게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2. 안철수

정계 입문 이전부터 친분이 있었고 안철수가 창당하려 했던 새정치연합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때문에 송호창, 장진영과 같이 원조 친안으로 분류되는 정치인 중 한 명이었다. #

이후 2012년 대선에서 안철수 선거대책본부에서 상황실장을 역임한다. 이때 금태섭은 안철수의 네거티브 공세를 방어해내며 안철수의 변호사라고 한때 언론에 보도될 정도였다. (중앙일보)안철수의 변호사' 금태섭은 누구

그러다가 안철수의 대선 후보 사퇴와 새정치민주연합 합당과정에서 갈등을 겪으며 멀어졌다. @@

이후 안철수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자로 변모하게 된다. 이에 한 언론에서 한때 안철수의 측근이였던 금태섭이 왜 안철수를 비판하는지 보도하기도 했다. 금태섭 변호사는 왜 안철수를 쏘았나

2015년 안철수 캠프의 숨은 실세는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이라며 이들의 존재와 개입으로 소통 부재가 심각했다고 안철수를 비판했다. 금태섭 "2012년 대선, 박경철 중심의 비선 개입으로 소통 부재 심각"

2017년 4월 13일에 열린 SBS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안 후보에게 새정치민주연합이 창당됐을 때 안철수 측이 당 강령에서 ' 5.18 정신', ' 6.15 선언'을 강조하는 부분을 빼자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고 입장을 철회했던 사건을 거론하며 안 후보의 역사관을 공격하자, 안 후보가 '실무자들의 잘못이었고 나는 그걸 바로잡으려 했다'고 반론한 바 있다.

이에 금태섭은 자기 SNS를 통해 ( 안철수의 첫 번째 신당이었던) 새정치연합 민주당 합당하는 과정에서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통해 5.18과 6.15를 새정련 정강 정책과 당헌 당규에서 빼자는 입장을 전해왔었다고 주장했다. # 이 과정에서 (자신을 포함한) 안철수 측 실무진들은 안철수로부터 세부적인 사항 하나하나 지시를 받으면서 일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4월 18일 본인 페이스북에 그 일에 대해서 본인의 잘못이었으며 이 문제에 대해서 안철수의 지시를 받지 않았다면서 안철수 후보 측을 옹호하고 나서자 금태섭은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윤영관 전 장관이 (5.18과 6.15가 삭제된) 강령안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에 안철수 후보도 분명히 있었다고 재반박했다. #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서울시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게 되었다. 안철수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으나, 이내 봉합되었고 안철수로의 단일화가 이루어졌다. 다만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에 나서기보단 일단은 쉬고 싶다며 단일화 시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은 편인 안철수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또다시 거리두기를 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으나 일단은 안철수와 함께 보수 측의 공동선대위원회에 합류하였고 국민의힘 점퍼를 입으면서까지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2] 그리고 오세훈과 박형준이 압승하면서 안철수와 함께 주가가 올라가는 중이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공천을 받게 되면 컴백할 가능성이 있다.[3]

그러나 금태섭은 20대 대선에서 국민의힘 대선 캠프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나왔고, 나중에 새로운선택이라는 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국민의힘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 물론 새로운선택은 나중에 개혁신당에 흡수합당되었다.

3. 조국

서울법대 박사 과정 재학 당시 조국이 그의 지도교수였다.[4] 나름 사제 간의 인연이 있는 셈인데 2019년 9월 6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서울대 박사과정 지도교수였던 조국 후보자를 비난하면서 언행 불일치와 청년 세대의 상처, 동문서답, SNS 활동, 편가르기 등을 언급해 # 정부여당·조국 지지층들에게 비난을 받았다. #

우스갯소리로, 대학원 박사 과정의 험난함을 아는 사람들은 옛 지도교수를 공격하는 금태섭이 이해된다는 반응도 있다. 청문회가 끝나고 조국은 여당 의원들에게 감사 문자를 돌렸지만 금태섭에게는 보내지 않았다. 다만 기사가 나간 후 전화통화를 했다고 한다. # 참고로 박사 학위는 받지 못했고, 수료로 끝났다.

민주당을 탈당한 이후에도 조국 민정수석에게 자신이 개혁안을 수도 없이 이야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TV에서 하는 등 여전히 사이는 좋지 않아 보인다.

2021년 2월 26일 금태섭이 검찰개혁이 사적 감정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조국 민정수석과 소리를 지르며 개혁안을 두고 싸웠다고 대놓고 SNS에 글을 올리자, 조국은 당시 토론에 가깝게 논쟁을 한 건 인정하지만 말다툼처럼 서로 소리를 지른 적은 없었고 그렇기에 싸웠다는 건 인정못하겠다고 쓰며, 선거에 자신을 이용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면서 이를 부인하였다. 금태섭은 "나는 검찰의 직접수사권, 구체적 검찰 특수부부터 없애자고 했지만 문재인 정권은 어느 정권보다 특수부를 키웠다"며 "이 문제로 조국 전 민정수석과 소리를 지르며 싸우던 기억이 선하다"고 했다. #

4. 손혜원

금태섭 “손혜원 목포 부동산 구입은 이해충돌 문제”
손혜원, 금태섭도 정면비판…“가짜뉴스 인용, 심히 유감”

2019년 1월 21일 손혜원 목포시 문화재 관련 논란에 대해 금태섭은 이해충돌의 전형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손혜원은 금태섭이 가짜뉴스를 인용하여 자신을 비난했다며 자신에게 사과하라고 반박했다.


[1] 허나 시사평론가 김용민은 2020년 12월 초 스스로 나꼼수를 탈퇴해버렸다. [2] 다만 안철수는 공식적으로 국민의당 소속이라 다른 당의 옷을 입고 선거운동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3] 다만 금태섭은 국민의힘을 완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4] 사제지간이라고 하면 나이차이가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조국은 금태섭보다 겨우 2살 위다. 만16세에 대학에 입학하고 26세에 교수로 임용되는 등 엄청난 소년등과를 한 인물이기 때문. 단, 조국은 실제로는 그의 딸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단순히 부모가 주민등록을 실수로 늦게 잘못한 걸 그대로 사회에서도 우기고 사는게 아니냐는 설이 있다. 학교를 입학 후 월반한게 아니라, 국민학교 입학 자체를 1970년에 1963년생들과 했기 때문. 게다가 2살 많다는 대학 동기들과도 형동생을 한적 없이 평생 동갑친구로 지내왔다. 즉 실제로는 금태섭과 4살 차이일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건 맞지만. 그리고 4살보다 덜한 차이일지라도 완전히 불가능할 것까지는 없는게, 금태섭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0년 정도 지나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간 것이기에 나이가 이미 30대 중반이었다. 그보다 많은 30대 후반에 정식 교수임용이 되는 건 꽤 빠른 편이긴 해도 약간 소수인 거지, 20대 교수처럼 극소수가 아니라서 희박한 경우는 아니다. 즉 조국보다 늦게 임용받고 조국과 같은 나이인 교수가 있다고 가정해도 이론상 충분히 만날 수는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