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4-04 23:21:24

정봉주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전 군인에 대한 내용은 정병주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현직 및 역임한 직위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 서울 노원구 갑)
선거구 개편
함승희[1]
제17대
정봉주
제18대
현경병[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33a94 16.6%, #033a94 16.6%, #033a94 33.2%, #5c1d86 33.2%, #5c1d86 49.8%, #5c1d86 49.8%, #5c1d86 66.4%, #006466 66.4%, #006466 83%, #006466 8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3c96 16.6%, #003c96 33.2%, #5a1b87 33.2%, #5a1b87 49.8%, #5a1b87 49.8%, #5a1b87 66.4%, #006464 66.4%, #006464 83%); min-height: 31px;"
{{{#!wiki style="margin: 0 -10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border: 0px solid; margin: -5px -1px;"
대의기관 (전국대의원대회·중앙위원회)
<colbgcolor=#152484>
전국대의원대회
의장
김상희 중앙위원회
의장
변재일
전국대의원대회
부의장
이용선
최혜영
중앙위원회
부의장
어기구
집행기구 (당무위원회·최고위원회)
당대표
(당무위원회 의장)
이재명
원내대표 홍익표
수석최고위원
정청래
최고위원 고민정 · 박찬대 · 서영교 · 장경태
서은숙 (지명) · 박정현 (지명)
독립기구
윤리심판원장 위철환 <colbgcolor=#152484> 당무감사원장 이학영
교육연수원장 정봉주 민주연구원장 정태호
당대표·최고위원회 소속기구
중앙당후원회장
문희상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 송기도
윤리감찰단장 김석담 특보단장 김윤덕
국민응답센터장
강준현 수석대변인 권칠승
대변인 박성준 · 강선우 · 노종면 안귀령 · 이지은 · 한민수 (원외) · 최민석[1] (청년) · 김도균 (국방) 박해철 (노동) 공영운 (경제)
상근부대변인 서용주 · 선다윗[2] (청년)
당대표비서실 (당대표 소속)
당대표비서실장
천준호 당대표정무조정실장 김영진
전국위원회 위원장
전국여성위원장
이재정
전국노인위원장
최락도
전국청년위원장
전용기
전국대학생위원장
공석
전국장애인위원장
공석
전국노동위원장
박홍배
전국농어민위원장
이원택 을지로위원장 박주민
사회적경제위원장
진선미
소상공인위원장
민병덕 · 이동주
상설위원회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 변재일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의장 윤호중
자치분권정책협의회 의장 이재명 세계한인민주회의 수석부의장 임종성
국제위원장 황희 전국직능대표자회의 의장 안규백
민생연석회의 수석부의장 전혜숙 참좋은지방정부위원장 양승조 · 정원오
당헌당규위원장
유동수 인권위원장 주철현
다문화위원장 윤영덕 재정위원장 임호선
예산결산위원장
고용진 청년미래연석회의 의장 홍정민
인재위원장 이재명
탄소중립위원장
김정호
특별위원회 (상설)
중소기업특별위원장 신영대 사회복지특별위원장 최종윤
보육특별위원장
인재근
교육특별위원장
박경미
보건의료특별위원장 신현영 주거복지특별위원장 홍기원
평화경제특별위원장 김경협 국방안보특별위원장 김병주 · 이철휘 · 황인권
동북아평협특별위원장
김준형 문화예술특별위원장 유정주
환경특별위원장
-
체육특별위원장
임오경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장 조승래 · 김상선 정보통신특별위원장 정필모
해양수산특별위원장 윤재갑 재해대책특별위원장 오영환
종교특별위원장
김회재 · 김영배 · 문정복 북한이탈주민특별위원장 김병기
4050특별위원장 임종성
특별위원회 (비상설)
민생경제위기대책위원장 김태년 검찰정권정치탄압대책위원장 박범계
국민안전재난대책위원장 -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장 송옥주
국민통합특별위원장 공석 검찰개혁특별위원장 윤호중
전통문화발전특별위원장 김영배
사무처
사무총장 조정식
수석사무부총장
김병기
조직사무부총장
김윤덕 디지털전략사무부총장 박상혁
전략기획위원장
한병도 홍보위원장 한웅현
국민소통위원장
최민희
대외협력위원장
김원이
법률위원장 김승원 · 양부남
정책위원회
의장 이개호
수석부의장 김성주 제1정책조정위의장 기동민
제2정책조정위의장 김병주 제3정책조정위의장 신동근
제4정책조정위의장 김한정 제5정책조정위의장 최인호
제6정책조정위의장 강훈식 제7정책조정위의장 김영호
파일:국회휘장.svg 원내기구 (의원총회)
원내대표 홍익표
원내운영수석부대표 박주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 유동수
원내정무특보 이병훈 원내경제특보 홍성국
원내부대표 강준현 · 문정복 · 문진석 · 신영대 · 유정주 · 윤재갑 · 이동주 · 이용빈 · 주철현 · 홍성국
원내대변인 임오경 · 최혜영
파일:더불어민주당 로고.svg
상임고문
파일:더불어민주당 로고.svg
역대 당대표

[1] 청년대변인 선발오디션 더블루스피커 우승 [2] 청년대변인 선발오디션 더블루스피커 준우승
}}}}}}}}}}}}}}} ||

}}} ||
<colbgcolor=#152484><colcolor=#fff>
대한민국 제17대 국회의원
정봉주
鄭鳳株 | Jung Bong-ju
파일:정봉주(더불어민주당).jpg
출생 1960년[3] 7월 2일 ([age(1960-07-02)]세)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4]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
본관 봉화 정씨 (奉化 鄭氏)[5]
현직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6] |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152484><colcolor=#fff> 가족 배우자 송지영[7], 1남[8] 1녀[9]
신체 168cm, 74kg
학력 서울연촌국민학교 ( 졸업 / 26회)
휘경중학교 ( 졸업 / 3회)
경희고등학교 ( 졸업 / 16회)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 영어과 80 / 학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대학원 (영어교육전문학 / 석사[10])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 교육학[11] / 석사[12])
병역 병역면제 (수형)[13]
소속정당
의원선수 1
의원대수 17
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
한겨레신문 창간발기인
월간 '말' 기자
신민주연합당 창당준비위원회 기획조정실 차장
열린우리당 어학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 ( 서울 노원구 갑 /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민주당 교육연수위원장
외대어학원 CEO(최고경영자)
정봉주의 전국구 진행자
천안 FC 공격수
열린민주당 최고위원
열린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교육연수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구독 31만명[14]
별명 이명박 저격수, 봉도사 }}}}}}}}}
1. 개요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2.2. 정치 입문 이후2.3. 실형선고 및 복역2.4. 출소 이후2.5. 열린민주당 활동2.6. 더불어민주당 복당 이후
3. 소속 정당4. 선거 이력5. 비판 및 논란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前 국회의원.

공전의 인기를 끌었던 팟캐스트 '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크게 알리기 시작했다. 나꼼수 활동 중 선거법 위반으로 1년 동안 수감이 되었으며, 이후 팟캐스트 ' 정봉주의 전국구'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소위 '정봉주계'의 수장이 되었다.[15]

2016년 tbs TV에서 <정봉주의 품격시대>를 진행.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 고정 출연. 2017년 3월 6일부터 SBS 러브FM에서 < 정봉주의 정치쇼>를 진행하고 있다.

2007년 이후로 이명박 前 대통령의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 및 과장된 사실이라는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1년을 선고받고(2011년 수감, 2012년 만기출소), 피선거권이 공직선거법에 따라 2022년까지 상실되었으나,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29일에 복권하면서 피선거권이 회복되었다.[16] 이후 정치 일선에 복귀하기 위해 서울시장 출마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시도하였으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되면서 2018년 3월 28일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정계에 복귀하여 열린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였으며, 열린민주당이 흡수합당되면서 더불어민주당에 복당했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북구 을 선거구에 출마를 선언, 경선에서 승리하여 후보가 되는 듯 했지만, 상이군인 비하 막말 논란으로 결국 공천이 취소되었다. #

2. 생애

2.1. 정치 입문 이전

1960년 7월 2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서 아버지 정장덕(? ~ 1991)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경찰서장 출신이라 나름 금수저 집안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7] 서울연촌국민학교(26회), 경희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를 거쳐 1980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양어대학 영어과(80학번)에 입학하여 학원민주화추진위원회 회장(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학생운동에 활발히 참여했다. 이때, 문익환 목사의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 차를 몰래 끌고나와 운전기사를 자처했다고.[18] 1982년 ROTC에 22기로 입교하여 후보생으로 수학하던 중 1983년 민주화 시위 주동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ROTC에서 제명되었다.[19]

대학 졸업 이후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약칭 민언련)[20]의 기관지 지의 초창기 기자로[21] 활동을 했으며, 1989년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특별과정을 졸업하여 영어교육전문학 석사 학위 및 TESOL을 취득했다.

귀국 후 1991년 지방선거에서는 신민주연합당 후보로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이후 모교 한국외국어대학교의 특성을 살려 외대어학원을 창업해 운영했다.[22] 지금이야 테솔 자격증이 흔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 정도 경력의 학원 강사면 돈을 잘 벌었을 때였고 실제로 나꼼수에서 말하길 이때 빌딩도 샀다고 한다.[23]

2.2. 정치 입문 이후

민주당 성향이며 김근태 계열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24]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와 전임 지역구 국회의원이던 새천년민주당 함승희 후보를 모두 꺾고 제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25]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엄청난 역풍으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후보들이 비교적 쉽게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을 빗대서 탄돌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정봉주도 이 탄돌이 출신이다. 당시 다른 탄돌이 의원들은 이 말을 듣기 싫어했으나 자신은 떳떳하게 스스로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2006년 3월 2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 입학했다.

2007년 제17대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여당 경선에서는 손학규 후보를 지지했으나, 정동영 후보가 승리하자 곧 승복하고 선거운동을 도왔다고 한다. 그런데 자서전에 의하면 당시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운동권 직계가 아니라는 이유로 중책을 맡기지 않는 것을 보고 좌절하여 결별하였다고 한다.[26]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정치인 중 박영선을 능가하는 자타가 공인한 이명박 저격수. 또한 이명박이 당선된 직후에도 나는 꼼수다 등의 팟캐스트 방송까지 참여하며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정봉주는 이명박은 김백준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방산비리 관련 문제 로 걸려들어갈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이명박의 최측근 김백준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유용건이 걸려들어간 직후에 이명박은 뭔가 겁먹은 듯한 태도로 사무실에서 성명을 발표했고 (한때 이명박의 측근이었으나 지금은 결별한 정두언도 이것을 보고 떨었다고 언급하며 예전에는 설마 그 약은 MB가 걸려들어가겠냐고 했으나, 그 상황을 본 직후 'MB는 종쳤다.'라는 언급을 대놓고 할 정도로 상황이 이명박에게 급속도로 불리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 성명으로부터 정확히 10일 후 진짜로 검찰이 이명박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하였다.[27]

그래서인지 전현직 정치인 중에서 BBK 저격수, MB 저격수는 2018년 시점에서도 정봉주를 뜻하는 별명으로 유명하며, 구글에서도 이명박과 정봉주가 연관돼서 자동 검색으로까지 등장한다.

때문에 정봉주는 직접적으로 이명박한테 고소당했으며, 또한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찍힌 모양인지 외부자들에서 친이계의 좌장이자 친이계 정당인 늘푸른한국당 대표 이재오와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그 상황에서 정봉주는 이재오에게 "의리있는 건 좋지만 이제 의리 버리실 때가 됐는데" 이러면서 이재오에게 은근히 이제 그만 이명박을 버리고 떠날 때가 됐다는 투로 말을 건넸고, 이재오는 "뭐 없는 사람들끼리 의리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하면서 정봉주의 제안을 칼같이 거절하기까지 했다(외부자들 47회). 또한 이재오는 외부자들에서 정봉주의 이름을 대놓고 부르면서 지칭하면서 공격하기도 했으니(외부자들 56회) 친이계 중진들한테도 어느정도 찍혔다고 봐도 무방할 듯.

그러나 BBK 저격수 활동으로 인해 대선 종료 이후 검찰에 의해 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었고 그 중 명예훼손을 제외한 선거법 위반, 허위사실 유포 혐의에 대해 2011년에 징역 1년, 선거법 위반에 따른 피선거권 박탈 10년 선고가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한나라당 현경병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28] 이후 2008년 8월 29일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경영 평생교육 전공으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각종 방송에서 패널로 활동하였고 2011년에는 김어준, 주진우, 김용민과 함께 나는 꼼수다를 진행하였다. 그러다가 위의 내용처럼 대법원 확정판결이 선고되어 2011년 12월 중순에 하차하게 되었다.

2.3. 실형선고 및 복역

정봉주의 전과 가운데 공직선거법 위반이 있는데, 이게 바로 17대 대선에서 BBK 주가조작 사건 수사의 문제점과 의혹에 대한 내용을 기자회견 등에서 언급한 덕분에 생긴 전과이다. 검찰은 정봉주의 BBK 관련 발언들이 허위사실인 데다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에 악영향을 주었다는 이유로 기소했는데, 4년간의 재판 끝에 대법원에서 1년 실형 판결이 확정되었다.[29]당시 재판부(판사)는 '정봉주의 발언은 모두 허위사실임이 넉넉히 인정되며, 확정적 고의가 아닌 미필적 고의 역시 허위사실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부분에 대해서 피고가 인지를 했다면, 허위사실공표의 죄가 성립하기 충분하므로 유죄가 성립된다' 라고 판결하며 결국 징역 1년을 확정하였다. 한편 검찰은 이때 정봉주의 검찰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했으나 재판부는 국회의원으로서 검찰에게 할 수 있는 감사의 역할이라고 판단하여 이 부분은 무죄로 판결되었다.[30]

쉽게 말해서 본인이 제기한 BBK 관련 의혹이 허위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거나 인지할 만한 정황이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일부러 퍼뜨렸다는 것. 집행유예도 아니고 실형 1년이면 상당한 중형인데, 고의성이 인정돼서 죄질을 나쁘게 본 데다 이런 저런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가중처벌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다스 실소유주 논란 이후 이명박이 다스를 명의 신탁으로 차명 소유하며 불법 행위를 한 사실이 수사에서 확인돼 형사처벌을 받자 일부에서 정봉주가 처벌받은 당시 혐의가 무죄가 아니냐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고, 정봉주도 이에 동조해 재심을 청구하겠다니 이명박이 고소해 처벌받았다니 하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정봉주가 형사 처벌된 혐의는 다스의 차명 소유에 관한 사실은 하나도 없고 이명박이 주가 조작에 직접 가담하였다거나 검찰이 수사 결과 발표 시에 고의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사실이 있다, 변호사 사임 전후 관계 등의 BBK와 관련된 내용으로 다스의 차명 소유와는 무관하다. 또한 이명박은 정봉주를 고소하였다가 후에 고소 취하를 하였고, 형사처벌된 사안은 이와 관련 없이 공직선거법 위반에 관한 사실임에도 정봉주는 이명박이 자신을 고소해 처벌 받았고, 이명박의 다스 소유를 주장하다가 억울하게 처벌된 양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정봉주는 자신이 처벌받은 혐의에 대해서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SNS 뿐만 아니라 방송 출연에서도 자신이 '민주화운동'과 같이 사회 운동을 하다 감옥에 간 것이고 전과가 많다며 자랑하듯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정봉주가 자랑하며 언급하는 전과 중에는 실제로 처벌된 적이 없는 경우가 상당하고, 이는 재판 진행 뿐만 아니라 선거 출마시에 전과 기록 증명을 제출하여 확인이 가능함에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2.4. 출소 이후

2012년 12월 25일 정치인 최초로 사면이나 가석방 조치를 받지 못하고 만기출소하였으며, 이후 개인사업과 함께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TBS TV 시사프로그램 <정봉주의 품격시대>를 진행하고 있다. 2017년부터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외부자들에도 고정 출연하고 있다.

우병우가 국정조사 청문회에 불출석하고 도망다녔을 때 최초로 현상금을 걸었다. 처음에는 개인돈 200만 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이후 안민석이 동참하면서 500만 원으로 늘어났고, 이후 시민들이 자발작으로 현상금 기부에 참여하면서 830만 원이 더 모였다고 한다. (아주경제) 결국 우병우가 자진 출석을 통보하면서 이 현상금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고,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2022년까지는 공직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선거법상 대통령이 복권[31]조치를 취하면 피선거권을 회복할 수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정봉주와 정치 성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복권을 시켜주지 않았다. 박근혜가 파면되고 정치 성향이 비슷하고 인연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복권이 기대되었고, 전체 국회의원의 무려 42%인 총 125명( 더불어민주당 97명, 국민의당은 소속 국회의원 절반이 넘는 22명, 정의당은 소속 국회의원 전부인 6명)의 국회의원[32][33]이 2017년 11월에 정봉주 복권 요청 탄원서에 직접 서명하기까지 하여 청와대에 탄원하기도 했다. 그런 결과, 2017년 12월 29일, 마침내 특별복권되었다.[34]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2018년 신년 특별사면 발표 영상 2분 40초경.

사면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감사하다고 밝혔으며 진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다만, 자신은 언제나 민주당이라며 민주당 복당 의사는 확실히 드러냈다. 최근,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위해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사실... 그... 이런 날이 안 올줄 알았어요. 감옥 갔다 오고, 웃으면서 살긴 했지만 이런 날은 오지 않았었고....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죠. 멀리를 못 봐요. 아주 지독한 근시예요. 본인의 재산을 찾아 주겠다는데. 얼마나 감사해요.
- 외부자들 45회 中
2018년 1월 2일 YTN과의 인터뷰에서는 당적이 없다고 밝혔으며, 더불어민주당 복당 시기를 가늠하고 있다고 한다.[35]

이명박의 최측근 김백준이 구속되면서 궁지에 몰린 직후 오랫동안 이명박의 거의 모든 의혹을 조사하던 정봉주가 "지금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다음에는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 잘 들었나, MB?"라고 페이스북에 게시물을 올렸는데, 곽한구가 정봉주의 그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서 화제가 됐다. #

2018년 2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 당초 서울특별시장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것과 달리 당의 요청에 따라 재보궐선거 지역인 노원구 병[36]과 서울특별시장 출마 가운데 하나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3월 7일, 이른바 연트럴파크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 선언을 하겠다고 하였으나, 기사 아래에 나올 미투에 연루되면서, 출마선언을 전격 연기했다. 기사

2018년 3월 23일, 이명박이 진짜로 구속되자 정봉주는 아침에 바로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나는 무죄임이 확인됐다!" 라는 메시지를 올리고, 곧 이명박이 자신을 고소해서 처벌받았던 재판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했으며 3월 27일 오전 10시 30분경에 국회 정론관에서 정식으로 입장을 표현했다. 그러나...

2018년 3월 28일, 후술할 성추행 의혹으로 인해서 잠정적으로 정계를 은퇴하게 되었다. 정계 복귀를 준비하면서 " 안철수가 한 트럭이 와도 나한테는 안 된다"면서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였던 적이 있고 재판이 걸려 있어 더불어민주당으로의 복당도 불허되었다. 그러나 이후, 2019년 11월에 정봉주 무고 명예훼손 재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다음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복당을 허가하면서,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 처리가 완료되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강서 갑[37] 출마를 선언하고 활동 중이었으나, 당에선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2.5. 열린민주당 활동

정봉주는 부적격 판정에 반발하였으나 당의 중진 몇몇이 미래한국당에 대항할 비례정당을 창당할 것을 제안하였고 이에 비례정당 열린민주당을 만들었는데 뒤늦게 더불어시민당 창당이 결정되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약속과 다르게 중진들이 정봉주를 외면하므로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이후 시사타파 TV의 이종원과 함께 신당 창당을 준비하다가 열린공천으로 후보를 캐스팅하자는 의견으로 마찰을 빚던 손혜원 이동형이 주선하여 두 사람이 함께 열린민주당을 이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손혜원은 정봉주에게 비례대표로 참석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였다. 창당 과정 중에 더불어민주당에 탈당계를 제출하였으나 처리가 늦어지면서 이중 당적 논란이 불거졌고 논란이 불거지자 뒤늦게 더불어민주당이 탈당 처리하였다.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되어 선거활동을 했는데 초반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하였으나 사전 투표를 앞두고 더불어시민당[38]의 네거티브로 인해 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던 시점에 진행한 방송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양정철, 이근형, 윤호중 및 지도부를 향해 악감정[39]을 드러냈고 또한 실시간 채팅으로 더불어시민당 지지자들을 향해 욕설을 하며 물의를 일으켰고[40] # 시민당 지지자들의 비난에 실망하여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발언하기에 이른다. 그 영향으로 인해 21대 총선에서 3석만 획득하는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선거 후 손혜원과 약속한 바대로 두 사람은 당에서 모든 직위를 내려놓았다.

2021년 1월 12일에 배포된 열린민주당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재보궐선거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경선에 출마 하였음이 확인되었다 # 2012년 출소 이후 첫 선거 출마이기 때문에 화제가 되었지만 당내 경선에서 김진애 의원에게 패하면서 본선 출마가 무산됐다. 경선 과정에서 정봉주는 "더불어민주당과 당대당 통합", "서울 토지계급 철폐(강북 용적률 상향 등)"을 주장하였다.

2021년 10월 6일, 오랜 침묵을 깨고 이재명 불가론자는 사회부적응자…내가 바로 대깨문이라고 밝히며 이재명 후보를 응원하고 이낙연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비난했다. 뒤이어 극문 세력에게 강성 친문이 아니라 꼴통 반골들, IS. 친문을 빙자한 반문들이다. 이 방송 와서 댓글 폭파 좀 해봐라. 무슨 X소리냐.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불만인 꼴통들이 있다. 키보드 워리어, 골방 전사, 사회 부적응자들이다. 하루 열 시간 키보드 워리어(악플러)하고 있는 게 정상이냐"고 따지면서 "너희들이 무슨 친문이냐. 이렇게 방송이 나가야 걔들이 정신 차리고 공격을 해댄다. 무슨 '이재명 불가론'이냐. 그럼 정권 넘겨주자는 거냐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

제20대 대통령 선거 기간 중인 2022년 1월 18일, 열린민주당이 더불어민주당에 흡수합당되면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탈당한 이후 2년만에 민주당에 복당하게 됐다.

2.6. 더불어민주당 복당 이후

복당 이후 20대 대선기간 동안 MBC를 포함한 여러 공중파나 종편 시사프로그램에 민주당 측 패널로 출연하면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상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비판했다. 허나 3월 9일 열린 본 선거에서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불과 0.7%p 차로 윤석열 당선인에게 석패하면서 정권연장에 실패해 빛을 바랬다.

2022년 6월 1일로 예정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특별시장 선거 출마를 다시 한번 선언했으나, 컷오프되면서 경선도 치러보지 못했다. 컷오프 이후엔 윤호중 - 박지현 지도부를 "신기득권 카르텔 "이라고 비판하면서 "6·1 지방선거가 심히 걱정된다"고 밝혔다. #

이후 이재명 대표 당체제로 들어서면서 교육연수원장에 임명되었다. #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강북구 을 지역에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당 지역구는 이전 선거에서 무려 64%의 득표율로 당선된 현역 재선 의원 박용진의 지역구다. 1월 12일에는 적격 판정을 받게 되었고 3월 11일, 결선끝에 결국 현역 박용진 의원을 꺾고 공천을 받게 되었다. # 박용진의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권리당원 투표, 여론조사에서는 모두 박용진 의원이 미세하게 앞섰으나 하위 10%에[41] 들어간 여파로 정봉주가 승리한것으로 풀이되었다. #

그러나 2024년 3월 14일, 과거에 했던 이른바 '목발 경품' 발언 논란이 다시 수면위로 오르고, 연이어 과거 발언 논란이 이어지자 # 이재명 대표가 직접 여러 문제점들을 사유로 공천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비무장지대 발목지뢰' 발언에 대해 해당 장병들에게 직접 사과했다는 말과 달리, 당사자들은 들은 적 없다고 하는 등 거짓말 정황이 드러나면서 결국 날을 넘기지 않고 늦은 오후 당에서 최종적으로 정봉주 후보에 대한 공천을 취소하였다. # 그리고 당에서는 공선 과정에서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해당 지역구에 경선 2위 박용진 의원을 재공천하지 않고 전략 경선을 통해 재선출하기로 결정했다. #
[오늘 이 뉴스] "과거 발언 발목...내가 마지막이길"..공천 취소 정봉주 끝내 눈물


3월 18일 공천 취소 관련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기자회견문 발표 후 가진 백브리핑에서 "성찰이 부족했던 과거 시절의 발언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정치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저 정봉주가 마지막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히면서도 "다음부터는 지역 주민들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발언하였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평화민주당|
파일:평화민주당 글자.svg
]]
1988 - 1991 정계 입문


[[신민주연합당|
파일:신민주연합당 로고타입.svg
]]
1991 당명 변경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1 탈당


1991 - 1995 복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1995 탈당[42]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2000 창당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3 합당[43]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03 탈당[44]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7 창당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합당[45]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46]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2 합당[47]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2 - 2018 당적 상실[48]

2018 복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18 - 2019 복당 불허[49]

2019 - 2020 복당[50]


[[무소속(정치)|
무소속
]]
2020 탈당[51]


[[열린민주당|
파일:열린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 2022 창당

2022 - 현재 합당[52]
정계 은퇴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1 지방선거
(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서울 노원 3

[[신민주연합당|
파일:신민주연합당 로고타입.svg
]]
4,769 (39.03%) 낙선 (2위)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노원 갑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36,992 (42.69%)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6,251 (37.62%) 낙선 (2위)
역대 선거 벽보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wjdqhdwn (1).jpg
파일:wjdqhdwn (2).jpg
1991년 지선 (서울 노원구 제3선거구) 17대 총선 (서울 노원구 갑)
파일:wjdqhdwn (3).jpg
18대 총선 (서울 노원구 갑)
}}}}}} ||

5. 비판 및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정봉주/비판 및 논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여담

파일:1442191646509148.jpg

7. 둘러보기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 제17대 국회의원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종로 성동 갑 성동 을
박진 박성범 진영 최재천 임종석
광진 갑 광진 을 중랑 갑
김영춘 김형주 김희선 홍준표 이화영
중랑 을 성북 갑 성북 을 강북 갑 강북 을
김덕규 유재건 조순형 오영식 최규식
도봉 갑 도봉 을 노원 갑 노원 을 노원 병
김근태 유인태 정봉주 우원식 임채정
은평 갑 은평 을 마포 갑
이미경 이재오 우상호 정두언 노웅래
마포 을 양천 갑 양천 을 강서 갑 강서 을
정청래 원희룡 김낙순 신기남 노현송
구로 갑
고진화 권영세 이인영 김한길 이목희
동작 갑 동작 을 관악 갑 관악 을 서초 갑
전병헌 이계안 유기홍 이해찬 이혜훈
서초 을 강남 갑 강남 을 송파 갑 송파 을
김덕룡 이종구 공성진 맹형규 박계동
송파 병 강동 갑 강동 을
이근식 김충환 이상경 }}}
}}}}}}

{{{#!wiki style="margin: -7px -10px -10px;"
{{{#!wiki style="margin: -6px 0px -1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419639><tablebgcolor=#419639> }}} {{{#!wiki style="margin: -5px -2px; display: inline-table;" <tablebordercolor=#419639><tablebgcolor=#419639>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강기정 강봉균 강성종 강창일 강혜숙
김교흥 김근태 김낙순 김덕규 김동철
김명자 김부겸 김성곤 김송자 김영대
김영주 김우남 김원기 김원웅 김재윤
김재홍 김종률 김종인 김진표 김춘진
김태년 김태홍 김한길 김현미 김형주
김효석 김희선 노영민 노웅래 노현송
문병호 문석호 문학진 문희상 민병두
박기춘 박명광 박병석 박영선 박찬석
배기선 백원우 변재일 서갑원 서재관
서혜석 선병렬 손봉숙 송영길 신국환
신기남 신명 신중식 신학용 안민석
양승조 양형일 염동연 오영식 오제세
우상호 우원식 우윤근 우제창 우제항
원혜영 유기홍 유선호 유승희 유인태
유필우 윤원호 윤호중 이강래 이경숙
이계안 이광재 이광철 이기우 이낙연
이목희 이미경 이상경 이석현 이승희
이시종 이영호 이원영 이은영 이인영
이종걸 이화영 임종석 장경수 장복심
장영달 장향숙 전병헌 정동채 정봉주
정성호 정세균 정의용 정장선 정청래
제종길 조경태 조배숙 조성래 조성태
조일현 조정식 주승용 지병문 채수찬
채일병 천정배 최규성 최규식 최성
최용규 최인기 최재성 최재천 최철국
한광원 한명숙 한병도 홍미영 홍재형
홍창선 }}}
}}}}}}


[1] 선거구 개편 전 노원구 갑 선거구의 제16대 국회의원 이다. [2]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인한 의원직 상실.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인해 재보궐선거 미실시. [3] 실제로는 1959년생인데, 주민등록을 늦게 했다고 밝혔다. 고등학교를 1978년에 졸업했다. [4]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국회의원도 이곳에서 지냈고 현재 거주지도 이곳이다. [5] 삼봉 정도전의 21대손이다. [6]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예비후보 시절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7] 1963년생. 1983년에 정봉주의 친누나가 운영하던 다방에서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으나, 오랜 기간 연애와 결별을 반복하다가, 수년간 유학 갔던 정봉주의 귀국 후 극적인 재회로, 끝난줄 알았던 관계가 다시 시작되어 혼인을 전제한 진지한 교제로 바뀐 뒤 1995년에 혼인했다고 밝혔다. [8] 1997년생이고, 이름은 정민규이다. 2018년 아들이 군복무를 시작했을때 부친 정봉주가 자신의 트위터로 훈련소 수료식에서 자신과 함께 찍은 아들의 사진을 통해 공개했다. 사실 자세한 수준은 아니지만, 그 이전에도 자신의 팟캐스트 및 유튜브에서 지나가는 얘기로 아들 이야기를 짧게 말한 적이 있다. 특히 세월호 사건에 대한 언급을 한 방송에서 "우리 아들도 1997년생이라, 세월호 학생들과 똑같은 나이라 내 친아들딸들 같은 기분이 들어 당시 집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9] 2000년생. 2012년에 아들이 중학교 3학년이었고,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고 밝혔다. [10] TESOL 자격증을 취득했다. [11] 교육경영 평생교육 전공 [12]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 사립학교법 개정사례에 나타난 교육정책결정과정연구 : 제17대 국회 1·2차 사립학교법 개정 과정을 중심으로(2008. 8) [13] ROTC 후보생 시절 학생운동으로 수감되어 제적 [14] 2022년 9월 15일 기준 [15] 본인 말로는 안민석, 정청래, 김비오를 거느리고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일단 정봉주계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최강욱 한 사람 정도다. 본인의 계파는 아니더라도 일단 안민석, 정청래 의원과는 꽤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 있다. [16] 사면과 복권은 조금 다른데, 정봉주는 선고받은 징역형에 대해서는 이미 만기출소를 했기 때문에 복권 대상자이다. [17] 본인 말로는 80년대초 대학 다닐 때 학교에서 자가용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정봉주 본인은 갖고 있었다고 한다. 특히 민주화운동(학생운동)하는 학생들 중에는 자기밖에 없어서 전설적인 민주화 운동가 문익환 목사를 경찰에 걸리지 않게 자기 차로 시위 및 연설현장에 모셔가기도 했다고. [18] 당시 민주화 운동 인사들 중 차를 몰던 사람이 세 명 있었다고 한다. 서점을 하며 용달차를 몰던 이해찬, 유시춘, 정봉주. [19] 또한 특정 기간 이상 감옥을 갔기 때문에 수형자 병역규정에 의해 자동으로 군면제(정확히는 제2국민역)가 되었다. [20] 당시에는 민언협이라 불렸다. [21] 정봉주가 방송에서 상당히 자주 하는 얘기인데 3번째 기자라고 한다. 첫 번째 기자는 훗날 국회의원이 된 민언련 출신 정치인 최민희, 2호 기자는 훗날 그 최민희와 결혼한 정수웅. 사실 정수웅은 최민희의 후배였고, 최민희은 민언련 들어갈 때 다른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었다고 하는데, 기자 활동을 하다가 그 남자와 이별을 하게 되자 정수웅이 고백해서 연애에 성공하고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훗날 정봉주와 함께 방송하면서 정봉주가 최민희에게 '기자일 하라고 했더니 2호 기자랑(정수웅) 연애를 해서 결혼했다'고 놀리자 최민희가 '그때 데이트는 3호 기자(정봉주)랑 했다'고 농담으로 받아친 적이 있는데, 정봉주는 '우리 집사람이 이 방송 보니까 조심하라'고 농담으로 넘겼다. 당시 최민희가 연애했다는 진짜 남자친구가 정봉주인지는 알 수 없다. [22] 선거 낙선 후에 자금력이 받쳐줘야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의 피해자 강기훈이 형량 다 채우고 만기출소 이후에 생계가 막막해지자, 정봉주 자신이 운영하던 학원으로 그를 불러 강사 일자리 및 생계지원을 해주기도 했다. # 당시 운동권 출신들은 시위 전과 경력으로 인해 제도권으로 취직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도와주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직되었던 교사들도 생계를 위해 사교육계로 많이 진출했었다. [23] 외대어학원은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법인 측에서 다시 인수하여 운영하고 있다. [24] 운명의 장난인지, 안타깝게 정봉주가 BBK 사건으로 허위사실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감옥에 가게 되자마자 바로 일주일만에 김근태가 사망하여 김근태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25] 서울이나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국회의원 다수가 해당 지역구에 아무런 연결고리조차 없는 외지인 출신이 많다. 하지만 정봉주는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중에서도 자신의 연고지(공릉동)에서 세습 없이 국회의원이 된 드문 케이스다. 보수정당까지 범위를 넓혀도 박진 의원 정도가 끝이며, 그는 본인의 연고지인 종로구에서 3선 의원(16~18대)을 지냈다. 서울 21대 국회의원 국회의원 중 자신의 출생지에서 국회의원이 된 케이스는 2명( 노웅래, 김영호)이 더 있지만 이들은 모두 선친의 지역구를 이어받은 케이스이며, 고민정 의원은 광진구 출생은 맞지만 엄밀히 따지면 본인 지역구 출신은 아니다. [26] 자서전에 손학규 시절이라고 정확하게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이 시기가 확실하다. 우연히도 이 시기에 박스떼기의 총책임을 맡던 이재명과 마주치는 일이 잦았으며 뉴스도 종종 나왔다. [27] 거기다가 정봉주는 이명박을 확실히 잡기 위해서는 김백준을 잡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김백준을 수사할 때도 반드시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고 JTBC 뉴스룸에서 지적했다. [28] 이때 자신을 떨어뜨린 현경병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300만원 벌금형 확정판결을 받고 2011년 6월에 의원직을 잃었다. 바꿔 말하면, 18대 총선 당시 노원구 갑 주민들은 누구를 찍던 자신들의 국회의원이 임기 도중 강제퇴직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는 소름돋는 결론이 나온다. [29] 여담이지만, 공직선거법 270조에 따르면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의 항소심 선고 이후 상고심은 3개월 이내에 반드시 해야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을 무시하고 2008년 12월 11일 항소심 선고 이후 3개월 안에 판결해야할 상고심을 2년 이상 미룬뒤 후임 대법관에게 넘긴 정봉주 상고심의 주심 대법관이 바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양승태는 이 건 판결 전에 퇴임후 중앙선관위원장을 거쳐 이명박 정권때 대법원장으로 임명받았고, 정봉주 상고심은 후임 이상훈 대법관에 의해 2011년에 12월에야 원심유지 판결로 1년형이 확정된다. [30] 정봉주 본인이 수감될 때, "오늘은 진실이 구속되지만 내일은 거짓이 구속될 것이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31] 이미 정봉주는 선고받은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했기에 사면이 아닌 복권 대상이다. [32] 강병원, 강훈식, 고용진, 기동민, 김경수, 김경진, 김관영, 김광수, 김두관, 김민기, 김병관, 김병기, 김병욱, 김상희, 김성수, 김수민, 김영진, 김영호, 김종대, 김종민, 김종회, 김진표, 김철민, 김태년, 김한정, 김해영, 김현권, 남인순, 노웅래, 노회찬, 민병두, 민홍철, 박경미, 박광온, 박남춘, 박범계, 박선숙, 박영선, 박용진, 박재호, 박 정, 박주민, 박주선, 박주현, 박준영, 박지원, 박찬대, 박홍근, 백혜련, 변재일, 서영교, 서형수, 설 훈, 소병훈, 손혜원, 송기석, 송기헌, 송영길, 송옥주, 신경민, 신동근, 신창현, 심기준, 심상정, 심재권, 안규백, 안민석, 안호영, 양승조, 어기구, 오영훈, 오제세, 우상호, 원혜영, 위성곤, 유성엽, 유승희, 유은혜, 윤관석, 윤소하, 윤영일, 윤후덕, 이개호, 이동섭, 이상민, 이석현, 이수혁, 이용득, 이원욱, 이인영, 이재정, 이정미, 이종걸, 이찬열, 이철희, 이춘석, 이학영, 이해찬, 이 훈, 임종성, 장정숙, 전재수, 전해철, 전현희, 전혜숙, 정동영, 정성호, 정재호, 정춘숙, 제윤경, 조배숙, 조승래, 조정식, 주승용, 진선미, 천정배, 최경환, 최운열, 최인호, 추혜선, 한정애, 홍영표, 홍의락, 홍익표, 황주홍. 총 125명. [33] 정봉주와 원래부터 친한 안민석, 정봉주의 첫 공직선거에서 공천장을 써준 정동영은 물론이고, 정봉주의 지역구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12년만에 다시 꽂은 고용진 의원도 다음 선거 경선에서 정봉주와 붙으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임에도 서명에 동참했다. [34] 형을 모두 살아서 사면은 아니고 복권이었다. 정치인과 경제인 중에 정봉주 단 1명 외에는 사면이나 복권된 사람이 없었다. [35] 12:03부터 정봉주의 전국구에서도 동일한 언급을 했다. [36] 참고로 노원구 병은 정봉주와 상당한 친분을 가진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원래 지역구이다. 원래 창원 성산의 국회의원이었던 권영길이 건강 사유로 불출마하게 되자 노회찬에게 대신 출마해달라는 요청을 해서 노회찬이 잠시 창원 성산으로 내려간 것뿐. [37] 같은 당의 금태섭 의원이 있는 지역구. 나중에 유인태 국회사무총장 밝힌 바에 따르면, 금태섭을 살려내기 위해 이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정봉주와 김남국을 당 지도부에서 주저앉힌 것이라고. [38] 특히 시민당 선대위원장을 맡았던 김홍걸 [39] 자신을 모략하고 음해하고 시정잡배에 개쓰레기 취급을 했다며 그렇게 말하고도 앞으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 같냐고 짐승만도 못한 짓이라 비난한 뒤, '내가 영원히 을로 있을 줄 아냐.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을테니 갑과 을이 언제 바뀌는지 한번 보자'고 말했다. [40] 다음날 진행한 욕설 사과방송에서는 윤호중을 향한 욕은 잘못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김홍걸을 언급하려다 윤호중을 언급했다고 한다. [41] 참고로 의정활동 평가 하위 10%일 경우 경선에서 감점이 무려 30점이다. 하위 20%의 경우 감점 20점. [42]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위한 탈당. [43]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 [44]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 [45]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 [46]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 [47]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 [48] 실형선고로 인한 피선거권 박탈 및 당적 상실. [49] 성추행 의혹으로 인한 복당 불허. [50] 성추행 의혹 1심 무죄. [51] 열린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 [52] 더불어민주당에 흡수 합당. [53] 충북 청주 FC [54] 그때의 K3리그는 지금과 달리 아마추어와 세미프로가 혼재한 형태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55] 물론 기독교는 개신교와 가톨릭을 포괄하는 용어이므로, 이 경우는 기독교가 아닌 개신교로 호칭하는 것이 맞는다 [56] 언론 인터뷰에서 본인이 밝힌 키는 168cm, 출소 후 몸짱이 되어 보디빌딩 책도 내고 보디빌딩 대회도 준비하던 시기 168cm에 74kg이라고 밝혔다. 현재 한국 남성 평균키는 173~174cm 정도라 정봉주의 키는 다소 작은 편이지만 60~70년대 출생한 세대와 비교해보면 평균수준에 가깝다. [57] 언론에 공개된 과거사진 중 70년대에 산에서 웃통벗고 무술연습을 하다가 찍은 발차기하는 사진이 있다. [58] 그러나 본인 말로는 싸움 잘하는 학생치고 공부도 잘하는 편이었는데 암기과목을 등한시해서 대학에 떨어졌다가 나중에 재수하던 친구가 암기과목을 더 하라고 조언을 해줘서 대학에 갔다고 한다. [59] 오죽하면 이때에 운동까지 하면서 몸까지 만들고 나와 책까지 냈을 정도. 정치범죄자들은 보통 조용하게 지내거나 하는데, 교도관들이 말하길, 다른 정치사범들과는 달리, 굉장히 낙천적이었다고 한다. [60] 공직선거법상 규정도 그렇고, 노원구 조례상으로도 그렇고 월계동 공릉동보다 앞서 언급되어 직제상 서열이 앞선다. 실제로 지역구 후임자 [61] 당시 안철수의 복심으로 불리우던 시골의사 박경철에 대해 정부가 세무조사를 했다는 루머로, 후에 밝혀진 바로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62] 본인 증언인데, 그냥 막말수준이 아니라 진짜 욕이었다. 정봉주가 전화를 걸어 "어이, 기자, 어떻게 인간적으로 나한테 이럴 수 있어?라고 하자, 기자가 피곤한척 목소리를 깔면서 "여보세요~ 어~ 제가 뭐 기사를 잘못 쓰기라도 했습니까?" 라며 피곤한척하자, 너무 화가 나서 "어? 이 개XX가 지금 어디서 개기름 바른 목소리를 깔고 있어 이 새X가, 야 이 씨XX아!"라고 했고, 기자가 "어어? 이거 너무하신거 아닙니까?"라고 항의하자, "너무하긴 이 개XX야 너 나 정봉주가 누군지 몰라서 이러는 거지? 모가지를 비틀어버릴까 이 개XX가, 뭐 내가 일부러 괴담을 퍼뜨려? 그래 내가 뭐 말하면 당연히 쫙 퍼지지 내가 (트위터) 팔로워가 20만명인데, 이 씨XX아 너 (피곤한척하는) 목소리 원래 목소리로 안 해? 이 새X가 어디 목소리에 개기름을 발라 목소리를 깔고 있어?"라고 했고, 기자가 상황을 넘기기 위해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걸게요" 라고 하자 "전화하지마 이 쌍X무 새X야"라고 화를 내면서 전화를 끊었는데, 정봉주의 분노에 그냥 넘어갈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기자가 실제로 몇시간 뒤에 피곤한 톤이 아닌 원래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건 기자가 "정봉주 선배님 저 OOO기자입니다"라고 하자마자, 분이 안 풀린 정봉주는 "너인줄 아니까 전화끊어 이 새끼야"라고 하고 끊어버렸다고. 주진우는 이 이야기를 듣고 " 조선일보 기자에게 쌍욕하는 정치인 처음 봤다"고 혀를 내둘렀다. [63] 1959년생이 삼수했을 때 대학입학하는 나이다. [64] 과거 팟캐스트 방송에서 말할 때도 그냥 '흥국이가', '김흥국이랑 나랑 친구먹은 사인데' 이렇게 부른 걸로 보아 형동생 사이는 아니다. 근데 문제는 정봉주가 대학시절이나 정치입문 후 좀 불규칙하게 친구를 먹어서 1960년생들하고도 친구를 먹기도 하고, 1959년생과 친구를 먹기도 하고(근데 이쪽은 정치입문 후 빈도가 적다), 반대로 일부 59년생 정치인이나 지인들을 선배로 부르기도 한다는 점. 그래도 59년생과 60년생만 문제지, 대학 동기인 1961년생들과는 친구를 먹지는 않았다. [65] 출생신고가 1년 늦는 이런 케이스로는 홍준표, 안희정, 이재명 등 정치인들도 상당히 있다. 모두 빠른 나이(1, 2월생)가 아님에도, 출생신고는 1년 늦게 하고 학교는 실제나이 만6세(법적 나이 만 5세), 즉 한국나이 8살(법적 나이 7살)부터 다녔다고 한다. [66] 실질적으로 매주 한번은 무조건 갔다고 한다. 또한 안민석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봉주가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자 이명박을 강력하게 비난한 바 있으며, 문재인 정부로 정권 교체가 된 직후로는 아예 이명박 구속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67] 안민석이 정봉주가 진행하는 방송인 정봉주의 뉴스쇼에 나와서 한 말로는, 정봉주가 국회의원 재선에 실패했을 때, 재선에 성공한 안민석의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안민석의 보좌관들에게 대신 정책 연구 주문을 하고 잘못하면 혼내기까지 하는 등 비선실세 놀이를 했다고 한다. [68] 정봉주의 경우 더불어민주당 친노-범친문계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정의당 주요 인사들 중 한때는 같은 정당소속이었던 참여계뿐만 아니라 진보신당계와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회찬과 심상정, 조승수가 속해있는 계파이다). 더 놀라운 건 정봉주가 복당 원서를 제출한 더불어민주당은 일부 의원이 정봉주 복권에 개인사정으로 서명을 하지 않았지만, 정의당은 소속 의원 전체가 정봉주 복권에 서명을 한 바 있다. [69] 언급된 국민의당 의원들 모두 정봉주 복권 탄원서에 직접 서명한 사람들이다. [70] 같은 서울토박이인 손석희와 비교해 보면, 억양이 확실히 살아있다. 동년배 유명인사들 치고는 서울 억양이 상당히 강한 케이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