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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라티온 왕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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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베리아 왕국 5대 군주 გურგენი | 구르겐 1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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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호 | 한국어 | 구르겐 1세 |
조지아어 | გურგენი | |
라틴어 | Gurgen II | |
생몰 년도 | 미상 ~ 1008년 | |
재위 기간 | 994년 ~ 1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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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베리아 왕국 바그라티온 왕조 5대 군주.2. 생애
이베리아 왕국 바그라티온 왕조 4대 군주 바그라트 2세의 아들이다. 그는 압하지야 왕 기오르기 2세의 딸 구란두크트(Gurandukht)와 결혼하여 바그라트 3세를 낳았다. 그는 어린 아들을 상류 타오 공작 다비트 3세의 양자로 보냈는데, 허울뿐인 이베리아 왕위를 물려주는 것보다는 조지아에서 가장 강력한 권세를 구가하는 다비트 3세의 후계자가 되는 편이 아들에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여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975년, 아직 10대 소년이었던 바그라트 3세는 다비트 3세에 의해 카르틀리 통치자로 임명되었고, 그가 섭정을 맡았다. 978년 게오르기 2세가 후계자를 두지 못한 채 사망하자, 다비트 3세는 압하지야 대신들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바그라트 3세가 압하지야 왕에 선임되게 했다. 그는 카르틀리에서 아들과 함께 공동 통치를 하면서 아들이 압하지야 내 반대 세력에 맞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990년, 바그라트 3세는 자신에게 복종하길 거부하는 라티 공작을 징벌하고자 군대를 소집했다. 그는 휘하 병력을 소집하여 아들과 합세하고자 사브세티로 이동했다. 그런데 다비트 3세는 그와 바그라트 3세가 자신을 치려고 하는 줄로 오해하고 기병대를 이끌고 구르겐을 습격했다. 구르겐은 갑작스러운 습격에 별 대응도 못하고 한 요새로 대피했고, 그의 아버지 바그라트 2세는 다비트 3세를 두둔했다. 이에 바그라트 3세가 단독으로 다비트 3세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고, 다비트 3세는 자기가 오해했다는 걸 깨닫고 구르겐-바그라트 3세와 화해했다.
994년 바그라트 2세가 사망한 뒤 이베리아의 왕으로 즉위했다. 1001년 다비트 3세가 귀족들에게 독살당하자, 그는 아들이 다비트 3세의 영지를 확보하는 걸 도와줬다. 이보다 전, 다비트 3세는 바르다스 포카스의 반란을 도와줬다가 포카스가 바실리오스 2세 황제에게 패사하자 황제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제가 죽으면 모든 영지를 제국에 헌납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바실리오스 2세는 이를 상기시키며 다비트 3세의 영지를 제국에 귀속시키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바그라트 3세는 자신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전혀 몰랐으며 정당한 후계자인 자신이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건 억울하다며 거부했고, 그는 아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당시 불가리아 제1제국의 사무일과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을 치르고 있던 황제는 조지아인들과 마찰을 벌이는 건 무익하다고 보고, 바그라트 3세가 다비트 3세의 영지를 그대로 가지는 걸 인정했다. 바그라트 3세는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쿠로팔레스 칭호를 받았고, 그는 마기스테르의 칭호를 받았다. 쿠로팔레스가 마기스테르보다 더 높은 칭호였는데, 이는 그가 아들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자중지란을 일으키도록 유도하려는 황제의 술책이었다. 그러나 구르겐이 아들이 자기보다 높은 직위를 가지는 걸 깨끗하게 인정해버리면서 무산되었다.
1008년 사망하면서 이베리아 왕위와 영지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이리하여 압하지야와 타오 등 조지아 대부분을 확보하게 된 바그라트 3세는 조지아 왕국의 건국을 선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