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고태리(高泰利) |
본관 | 제주 고씨 |
생몰 | 1912년 9월 24일 ~ 1932년 4월 9일 |
출생지 |
전라남도
제주군 구우면 귀덕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1] |
사망지 | 전라남도 제주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고태리는 1912년 9월 24일 전라남도 제주군 구우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귀덕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1년 3월 제주농업학교(현 제주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홍수표(洪秀杓)·김두진(金斗珍) 등 10여 명의 급우와 함께 평소 한국 학생에게 민족적 차별을 일삼던 일본인 교장에 대한 배척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일본인 교장은 한국 학생에게 민족적 열등감을 부추기는 한편 그에 대항하는 학생을 가차없이 퇴학시켰다. 이에 반감을 품은 고태리는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무력에 의한 실력 행사를 단행하기로 결의했다. 1931년 3월, 그는 동지들과 함께 일본인 교장을 찾아가 무력으로 시위하는 한편 교장편에서 동조하는 직원들을 내쫓고 직원실을 파괴했다.이 일로 경찰에 체포된 그는 1931년 8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공소하여 1932년 3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폭력행위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에 집행유예 5년을 받기까지 1년여 동안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출옥 후 한달 만인 1932년 4월 9일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고태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1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