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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원자력 사고 4~7등급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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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9151e> 4등급 | 셀라필드 원자력 단지 (1955~1979) |
생로랑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80) | ||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 (1999) | ||
5등급 | 퍼스트 초크 강 사고 (1952) | |
윈드스케일 화재 (1957) | ||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1979) | ||
고이아니아 방사능 유출사고 (1987) | ||
6등급 | 키시팀 사고 (1957) | |
7등급 |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1986) |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2011)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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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에 브라질 고이아스 주 고이아니아에서 발생한 방사능 오염 사고. 방사성 물질에 대한 기본적인 인지만 있었다면 사실 정말 간단히 막을 수 있었던 사건이었지만 무지와 안전불감증, 그리고 정부의 무관심으로 인해 초특급 대형 사고로 발전했다. 피해자들은 모두 교육수준이 낮은 도시빈민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다량의 방사선원에 노출돼 피폭되고 말았다.
2. 사고의 전개
2.1. 사건 진행
이 사건은 브라질 고이아니아 지방의 어느 건물에 세들어 영업을 하던 한 암 치료 전문 의료원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의료원은 1985년에 새 건물로 이전하면서 1977년에 사들인 암 치료기기를 낡은 구 병원 건물에 놓고 떠났다. 이후 기기를 철거하려고 하는데 건물의 소유주와의 법적인 분쟁으로 지연되었고 그 과정에서 암 치료기기도 자연스레 방치되었다. 법원은 경비원을 보내 의료기기를 지키도록 했다. 의료원 측은 암 의료기기를 건물에 남겨 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이 기기를 철거하지 못하게 하는 법원 판결이 떨어진 바람에 결국 기기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방치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보안을 철저히 한 것도 아니고 꼴랑 경비원 한 명을 세워두기만 했다.시간이 흘러 1987년 9월 13일, 경비원이 무단 결근을 하면서 감시가 허술해진 사이 주변에 살던 '호베르투 두스산투스 아우베스'(Roberto dos Santos Alves)와 '바그네르 모타 페헤이라'(Wagner Mota Pereira)라는 두 명의 좀도둑이 구 의료원에 침입해서 값나가는 물건들을 찾다가 문제의 암 의료기기를 발견했고 돈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의료기기의 방사선 조사 장치를 자기들의 집으로 가져갔다. 기기를 해체한 이들은 그 안에서 주먹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금속제 캡슐[2]을 끄집어냈다. 캡슐을 만지면서 이들은 구토, 설사 등의 증세를 보였으나 음식을 잘못 먹어서 그렇다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캡슐을 해체하려고 한 사이에 증세가 계속해서 더 심해지자 이들은 인근의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도 그들이 무엇을 건드려서 증세가 나타난 것인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단순히 상한 음식을 먹고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3]
그들이 훔친 캡슐의 구조. |
이 둘은 이것을 호베르투 아우베스의 집으로 옮겨 며칠에 걸쳐 분해를 시도했고 9월 16일에 캡슐에 구멍을 내는 데 성공했다. 이때 뚫은 구멍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긴 이들은 그것이 화약인 줄 알고 불을 붙여 보려고 하기도 했으며 여태까지도 이것들이 방사성 물질인 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결국 9월 18일에 캡슐을 완전히 해체하는 데 성공했고 해체 과정에서 캡슐 안에 있던 푸른 빛을 내는 가루 형태의 방사성 물질이 새어 나왔다. 당연하지만 분해한 것을 아우베스의 집에 놔둔 바람에 아우베스의 가족들도 방사선에 노출되었고 같이 해체 작업을 도운 바그네르 페헤이라와 나중에 바그네르 페헤이라와 접촉한 이들도 다량의 방사선에 피폭되어 버렸다.
같은 날 그 캡슐은 25달러에 고물상 주인 '데바이르 아우베스 페헤이라'(Devair Alves Ferreira)[4]에게 팔려 나갔다. 그는 푸른 빛이 나는 가루를 신비한 것이라 여겨 이웃들을 초대해서 가루를 보여줬으며 9월 21일경 데바이르의 한 친구가 기어이 가루를 일부 추출해내는 데 성공해서 그 가루를 인근 친지들에게 나눠주었고 몇 명은 가루를 피부와 얼굴에 바르기도 했다. 심지어 데바이르 페헤이라는 이 가루로 반지를 만들어 아내에게 선물할 생각까지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증세로 병원을 찾았지만 이들은 '열대성 질병'으로 진단받아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뿐이다. 데바이르는 9월 25일을 기점으로 해당 캡슐을 다른 고물상에 팔아 버리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레이데 다스네베스 페헤이라(Leide das Neves Ferreira)의 생전의 모습. |
매각 하루 전이었던 9월 24일 데바이르의 동생 이보(Ivo) 페헤이라는 가루의 일부를 가져가서 자신의 집 바닥에 뿌렸고 이보의 6살짜리 딸 '레이데 다스 네베스 페헤이라'가 푸른 빛이 나는 가루를 만지고 그걸 온 몸에 바르고 엄마에게 자랑하였으며 심지어 그 가루가 묻은 손으로 밥을 먹으면서 가루 일부가 체내로 들어가고 말았다.
약 보름 후 주변 사람들이 동시에 아프기 시작한 것을 이상하게 여긴 데바이르 페헤이라의 부인 '마리아 가브리엘라 페헤이라(Maria Gabriela Ferreira)'는 1987년 9월 28일에 문제의 가루 약간을 가지고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 마침내 가루의 정체가 판명되었다. 그 가루는 '염화 세슘-137(137CsCl)'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방사성 물질이었다. 지구상에 있는 세슘의 대부분은 안정적인 세슘-133이지만, 동위체 중 하나인 세슘-137은 매우 불안정해 쉽게 붕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5], 이 과정에서 강한 방사선을 방출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슘-137의 강력한 방사성을 이용해 세슘-137 화합물에서 나오는 감마선을 암환자의 종양 조직에 조사(照射)하는 치료법이 있었는데[6], 이런 용도로 사용되는 의료기기를 건드린 것이다.
당시 염화세슘-137의 양은 93g 정도였는데, 여기서 나오는 방사능 수치는 50.9TBq으로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이 154TBq인 걸 감안하면 손바닥만한 금속 통 하나에 대형 원전사고에서 나온 총량의 1/3에 달하는 방사선이 농축되어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큰 소동과 함께 곧바로 비상이 걸렸고 브라질 정부 소속 원자력위원회의 전문가가 조사한 결과로 8개지구 25가구가 오염되었고 250여 명이 방사선에 피폭되었음이 밝혀졌다. 병원 관계자와 원자력위원회의 전문가도 포함된 수치다.
결국 최초의 사망자가 나왔는데 데바이르 고물상의 고용인으로 일했던 '아지미우송 아우베스 지소자(Admilson Alves de Souza)'는 5시버트에 피폭되었고 18살의 나이로 10월 18일에 사망했다.
문제의 가루를 먹은 레이데 다스네베스 페헤이라는 6 시버트에 피폭되었고 6살의 나이로 10월 23일에 세상을 떠났다. 6시버트는 한국의 연간 자연방사선인 3밀리시버트(0.003시버트)의 2000배에 달하는 큰 수치이다. 가루를 조금만 먹었는데 저런 수준으로 피폭된 이유는 체내의 세슘-137에서 나오는 엄청난 수준의 알파, 베타, 감마선을 모든 방향으로 맞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파선은 종이 한 장으로도 막아질 만큼 투과력은 약하지만 에너지가 매우 커 신체에 미치는 파괴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피폭을 당한 부위가 체외인지 체내인지에 따라 예후가 크게 다른데, 이런 것을 몸 속에서 정면으로 맞으면 현대 의학으로도 도저히 방법이 없다. 어린이는 체내 세포분열이 극히 활발해 암 같은 웬만한 세포 손상에 대한 회복력은 성인보다 훨씬 뛰어나지만, 몸이 작고 체력이 약한 특성상 같은 양의 독극물에는 더 치사율이 높다. 게다가 고농도의 알파선은 세포분열에 필수불가결한 설계도인 DNA를 변형시키는 것을 넘어 아예 조각조각 파괴하기 때문에 어린이 특유의 뛰어난 회복력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건강한 성인을 기준으로 해도 6시버트는 치료를 정말 잘 해도 끝내 절반이 사망하는데 어린이나 노인, 임산부가 이런 강렬한 것에 맞는다면 운명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지 의료진들은 방사능을 두려워해서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의료진 잘못도 아닌 것이, 만약 다가갈 만한 용기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의 방사선 피폭은 거의 40년이 지난 현재에도 치료법이 나오지 않아 연명치료만 해주며 관망하거나, 치료를 포기하고 호스피스 케어를 해주는 수밖에 없다.
최초 신고자인 가브리엘라 마리아 페헤이라는 5.5시버트에 피폭되었고 레이데와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났다. 데바이르 페헤이라의 직원 중에서 문제의 가루를 의료장비에서 꺼냈던 '이스하에우 바치스타 두스산투스(Israel Baptista dos Santos)'는 4.5시버트에 피폭되었고 10월 27일에 사망했다.
4명의 사망자들의 시체는 두꺼운 납으로 만들어진 관에 안치되어 장례가 이루어질 예정이었으나 장례식날에 주민들이 그 관에 가래침을 뱉고 돌팔매질을 하면서 매장을 격렬하게 반대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지 1년밖에 안 된 시점이라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딸 레이데 페헤이라는 사후에도 저주받은 요물 취급까지 당했다. 어른들의 탐욕과 무지에 아무것도 모르고 말려들어 목숨을 잃은 것도 모자라 억울한 고인드립까지 당한 셈이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희생자들은 예정된 무덤에 안치되었다.[7] 이들의 시신은 그 자체로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되어 버린 탓에 방사선의 누출을 막기 위해 다른 무덤들과는 반대로 콘크리트로 매장하였다.[8]
의료 장비를 캐낸 장본인은 아니지만 그 가루를 나누어 줌으로써 방사성 물질 누출을 확산시킨 장본인인 데바이르 페헤이라(Devair Alves Ferreira)는 7 그레이에 피폭되었는데도 살아남았지만[9] 결국 본인 때문에 가족 4명이 사망했다는 점에 대한 충격으로 우울증과 폭음에 빠졌다가 7년 뒤인 1994년 간경변으로 삶을 마감했다.
2.2. 피해규모
출처가 불분명한 물질을 아무 경계 없이 무분별하게 퍼뜨리고 접촉한 사람들로 인해 한 줌에 불과했던 세슘-137이 만들어낸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해당 지역은 각종 약품과 진공청소기까지 동원되어 청소가 이루어졌으며 건물의 페인트를 죄다 벗겨내서 수거하고 건물 바닥은 프러시안 블루와 산을 섞어서 닦아냈다.[10] 이 과정에서 수거된 위험물질들은 모두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옮겨졌고 피폭된 사람들의 소변도 일일이 모아서 정화처리해야 했다. 피폭된 사람들의 소변을 수거해야 했기 때문에 피폭된 사람들은 집중 감시대상이 되었다. 이 때 수거된 방사능 폐기물은 3,000㎥에 달했다. 이 폐기물은 고이아니아시 외곽에 매립되어 있으며 앞으로 260년 간 계속 보관되어야 한다.[11]약 10만 명의 사람들이 방사능 오염 여부를 검진받았는데 그 중 약 250명에게서 방사능이 검출되었으며 절반 가량이 체내 피폭을 당했다. 다행히 대다수는 경미한 수준이어서 약 20명의 환자만이 입원 치료를 받았다.
그나마 다행히 사망자는 단 4명에 그쳤는데 안타깝게도 최초에 훔친 자들이 아닌 고물상 데바이르 페헤이라(Devair Ferreira)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숨지고 말았으며 그 대신 최초에 캡슐을 파손한 두 명 중 한 명이었던 와그네르 파헤이라는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오른쪽 팔에 종양이 생기면서 팔을 절단해야 했다.
병원의 소유자이자 경영자였던 세 명의 의사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었으나 무혐의 처리되었다. 이들은 기기를 철거하려고 했지만 법적 분쟁에서 법원 판결로 철거할 수 없었고 이전에 원자력 위원회 측에 위험성을 미리 경고했기 때문에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중 한 명은 건물을 유기한 죄목으로 10만 헤알(약 6만 달러 - 한화 약 6,870만원)의 벌금이 선고되었고 원자력 에너지 위원회가 130만 헤알(약 80만 달러 - 한화 약 9억 1,600만원)의 보상금 및 치료비 전액을 지원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누출된 방사능은 중소형 더티 밤과 맞먹었다고 한다. 덤으로 국제 원자력 사고 척도에서 스리마일 섬 원자력 발전소 사고, 윈드스케일 화재사고와 같은 5등급에 랭크되었다.
2008년에서 2009년 사이 고이아니아 지역 동물원의 동물들이 갑자기 의문사를 당하면서 이 사건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지만 마지막으로 동물원에서 사망한 기린이 죽기 얼마 전 불상의 여성으로부터 독이 든 먹이로 추정되는 것을 먹었다는 동물원 관계자의 증언이 나와 이 여성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방사능 우려는 흐지부지되었다. #
2.3. 사고 이후
사고 36주기가 지난 2023년에서도 별 탈은 없었던 듯하다. 사고 이전에도 한 주의 주도였고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같은 지역오염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시작한 오염이었기에 사고 발생 직후 역학조사를 통해 오염원에 대한 격리 및 제염작업이 비교적 빨리 이루어진 것이 방사능 누출의 영향을 최소화한 것으로 보인다.3. 관련 문서
4. 참고 자료
[출처]
관련 기사
[2]
이후 조사 결과
납과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진 차폐성 캡슐 안에 방사성 물질이 든 것이었다.
[3]
방사선 피폭의 초기 증세는 소화기 기관의 파괴, 즉 구토, 배탈, 설사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4]
좀도둑 페헤이라와는 다른 성.
[5]
세슘-137의
반감기는 약 30년이다.
[6]
이렇게 사용할 경우 위험한 알파선, 베타선은 전부 차폐하고 적절한 양의 감마선만 내보내기 때문에 의료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그나마 세슘-137을 사용하는 기기는 현재는 거의 없어졌으며, 보다 안전한
코발트-60을 주로 사용한다.
[7]
비록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더라도 타 지역 주민들이 방사선에 피폭한 시신을 받아줄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예정된 무덤에 안치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8]
알파선은 종이로도 막아지지만 Cs-137에서 발생하는 662 keV
감마선은 콘크리트 30cm 로도 1/100 정도 감쇄시킬 수 있다.
[9]
한번에 최대 선량의 방사선에 피폭되고도 생존한 사례다. 피폭 이후 도합 방사선까지 포함한 가장 높은 선량 생존 사례는 연간 3Sv씩 도합 64Sv에 피폭된
알버트 스티븐슨.
[10]
인체 내의 세슘-137 제거에도 프러시안 블루가 흔히 사용되었다.
[11]
방사성 폐기물 항목에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저준위 폐기물은 노출된 방사성 물질의 반감기 영향을 받긴하지만 그렇더라도 수백 년 보관이 기본이다.
[12]
해당 괴담의 원형은 이 사건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