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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26 05:45:26

경주 김유신묘 십이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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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유신묘 십이지상 중 돼지상. Google Arts & Culture : 십이지상 돼지, 통일신라 8세기,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김유신묘

1. 개요2. 내용

1. 개요

1941년 경상북도 경주시 김유신묘에서 발견된 8세기 경 통일신라시대 십이지상.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파일:신라 곱돌 십이지상2.jpg

파일:신라 곱돌 십이지상1.jpg

김유신묘라고 전해오는 신라시대 무덤[1]의 둘레에서 출토된 십이지상으로, 유물의 제작연대는 연구 결과 8세기 초로 확인되었다.

십이지상은 방위와 시간을 맡은 12가지 동물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처음에는 무덤 안에 십이지용을 넣다가 차츰 수호신으로 성격이 바뀌어 십이지상을 무덤 둘레에 배치했다. 의 무덤을 보호하고 왕권의 위엄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세워졌으며, 갑옷을 입고 큰 을 잡고 서 있는 형태로 불교에 보이는 사천왕상 복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김유신묘에서 발견된 이 십이지상들은 동물머리 형상에 사람 몸을 하고 바위모양의 대좌(岩座) 위에 서서 오른손에 칼을 든 이른바 무장형(武將形)이다. 특히 지석(誌石)의 성격을 지닌 점에서 통일신라 십이지신장상(十二支神將像) 중에서는 가장 먼저 제작된 초기형인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장방형의 앞면을 섬세하게 조각하여 양감이 도드라지며, 긴 소매와 펄럭이는 천의가 생동감을 더해주는 예술성 높은 석조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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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블로그

8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십이지상으로, 당시 한국의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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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단독]90년 전 일본 학자가 찍은 경주 발굴 사진 700장 공개. 이 기사에서 일제강점기 1920년대 무렵 일본인 건축학자 노세 우시조가 경주 황복사터, 헌덕왕릉, 원원사 등에서 신라시대 십이지상 등을 발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 다만 이 무덤을 김유신묘로 비정한 것은 고고학적 지식이 부족하던 조선시대의 일이며, 현대 몇몇 학자들은 이 무덤이 신무왕이나 경덕왕의 무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