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춘혁 姜春革[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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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6년 |
함경북도 온성군 | |
직업 | 래퍼 |
학력 |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11 / 학사[2]) |
데뷔 | 싱글앨범 "For The Freedom" |
SNS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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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총살이 두려워 숨죽인 채 탈북한 곳이
중국인데
지천에서 굶주린 배를 채워줄건 들판에 풀뿌리
잡히면 아오지는 표준형 실은 총알이 아까워 교수형
생명과 맞바꾼 자유의 맛 하지만 세상은 요지경
니들이 마시는 한강 이 연결된 시체 떠다니는 대동강
부산에서 철길로 러시아로 갈 수 있는 이 땅은 철책으로 두동강
군생활 쩔어 10년 제대 무찌르자 미제 남조선 괴뢰
속았어 그놈의 혁명땜에 넌 혁명이 뭐라고 생각해?
속았어 그놈의 혁명땜에 아직도 팔려간다 인신매매 의미도 모른채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속았어 그놈의 자유땜에 아직도 팔려간다 인신매매 의미도 모른채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영혼까지 세뇌 영혼까지 세뇌
미발표곡 中 [3][4]
지천에서 굶주린 배를 채워줄건 들판에 풀뿌리
잡히면 아오지는 표준형 실은 총알이 아까워 교수형
생명과 맞바꾼 자유의 맛 하지만 세상은 요지경
니들이 마시는 한강 이 연결된 시체 떠다니는 대동강
부산에서 철길로 러시아로 갈 수 있는 이 땅은 철책으로 두동강
군생활 쩔어 10년 제대 무찌르자 미제 남조선 괴뢰
속았어 그놈의 혁명땜에 넌 혁명이 뭐라고 생각해?
속았어 그놈의 혁명땜에 아직도 팔려간다 인신매매 의미도 모른채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속았어 그놈의 자유땜에 아직도 팔려간다 인신매매 의미도 모른채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영혼까지 세뇌 영혼까지 세뇌
미발표곡 中 [3][4]
어쩌다 차려 주어진 원치 않던 삶
누군갈 원망할 수 없이 삼켰어 난
생과 사라는 두 단어가 몸에 새겨져
모험이라는 게임 속 주인공이 됐어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때가
나을 때가 있어 때가 낀 지금 때에 비해
참 웃기지 이런 얘길 뱉으면서 지금은
처절하게 현실에 목을 매고 있네
그래도 다행이야 과거가 있기에
오늘날의 내가 또 존재하기에
지난날 모든것이 기름진 거름돼
나름 세상 속 주인공이 됐어 You know?
알 거 같으면서 모르는게 인생
몽환 속 헤엄치며 그 답을 죽어라 찾지만
답은 그 어디에도 없어 결국 내가 그려 나가는 게 인생 답인 거지 Man
ziei - Growing Pain (Feat. Akeri, Carpediem, 강춘혁) [5]
누군갈 원망할 수 없이 삼켰어 난
생과 사라는 두 단어가 몸에 새겨져
모험이라는 게임 속 주인공이 됐어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그때가
나을 때가 있어 때가 낀 지금 때에 비해
참 웃기지 이런 얘길 뱉으면서 지금은
처절하게 현실에 목을 매고 있네
그래도 다행이야 과거가 있기에
오늘날의 내가 또 존재하기에
지난날 모든것이 기름진 거름돼
나름 세상 속 주인공이 됐어 You know?
알 거 같으면서 모르는게 인생
몽환 속 헤엄치며 그 답을 죽어라 찾지만
답은 그 어디에도 없어 결국 내가 그려 나가는 게 인생 답인 거지 Man
ziei - Growing Pain (Feat. Akeri, Carpediem, 강춘혁) [5]
대한민국의 래퍼 겸 예술가. 탈북자 출신이다.
2. 생애
1986년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 인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다니던 중 고난의 행군을 피해 먹고 살 길을 찾아 1998년 3월 9일 가족들과 함께 탈북, 두만강을 건넜다. 그 뒤 중국에서 4년간 은신해 있었는데, 송환이 두려워 무보수로 일하기 일쑤였고, 대한민국의 연예인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린 뒤 판매해 생계를 잇기도 했다. 그 사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한 달간 수감되었다가 뇌물을 주고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2001년 사촌 형과 함께 기차, 버스를 이용해 중국 국경을 넘어 베트남에 도착했으나,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에서는 별달리 도움을 받지 못해 라오스를 거쳐 캄보디아에까지 가야 했다. 다행히도 주캄보디아 대한민국 대사관에는 비슷한 처지의 북한이탈주민들이 대한민국 땅을 밟기 위해 대기 중이었고, 곧 중국에 있던 부모님까지 캄보디아에 불러 2001년 8월, 마침내 대한민국에 도착했다.처음엔 중학교에 편입했으나 적응에 실패해 중퇴했고, 18세 되던 2003년부터 건설현장 노가다, 물류센터, 배달, 공장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했다. 그럼에도 2003년에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인권회의 전시에 북한 주민들의 삶의 모습을 담은 드로잉 10여 점을 출품하기도 하고, 출판사에서 삽화 그리는 일을 하기도 하는 등 어렸을 때부터 꾸어 온 화가의 꿈을 잊지 못했는데, 그러다 25세 되던 2010년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및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에 차례로 합격한 뒤 2011년 재외국민특별전형을 통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11학번)에 입학했다. 2016년 2월 홍익대학교 졸업 후 현재 화가로도 활동 중이다.
2014년 SHOW ME THE MONEY 3에서 탈북래퍼로 이름을 알렸다. 주로 자신이 북한이나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나 북한 사회를 비난하는 가사를 쓰는 편.
3. SHOW ME THE MONEY 3
1차 예선에서 뛰어난 랩 실력으로 YDG에게 합격했다. 그리고 탈북자라는 사실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다만 긴장했는지 가사를 절며 2차 예선에서 탈락했다. 특히 그를 합격시켰던 YDG는 매우 아쉬워했으며, 결국 프로듀서 특별무대에서 그의 2차 예선 곡을 불러주었다. 상단에 표기된 '미발표곡'이 바로 그거다.4. 방송 활동
- SHOW ME THE MONEY 3
- 비정상회담 79회
- 애정통일 남남북녀/시즌2
- 공동공부구역 JSA
- 무엇이든 물어보살 31회, 42회
5. 여담
- 2017년 들어서는 래퍼보다는 주로 화가나 작가 등 예술가로서 활동하며, 랩 가사처럼 자신이 북한이나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나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예술을 많이 하고 있다.
- 201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11학번) 입학 당시 입학금 면제 및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