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강창기 (姜昌基 | Kang Chang-Gi) |
출생 | 1927년 8월 28일 |
사망 | 2007년 1월 5일 (향년 79세) |
포지션 | 하프백 |
신체조건 | 167cm | 67kg |
소속팀 |
육군 특무부대 축구단 (?-?) 조선방직 축구단 (?-?) |
국가대표 | 7경기 1골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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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강창기는 1927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났고 한양공고에서 수학했다. 1954년부터 강창기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었다.강창기는 스위스 월드컵 지역 예선 일본과의 1차전에 선발 출전했고 대한민국은 일본의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5:1의 역전승을 거뒀다. 그는 2차전에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은 일본과 2:2 무승부를 거둬 대한민국은 사상 첫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강창기는 1954년 월드컵 개막 한달 전에 열린 1954 마닐라 아시안 게임에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참가했고 버마와의 4강전에서 득점을 기록했다.
강창기는 스위스 월드컵 1차전에 라이트 하프백으로 출전했지만 상대였던 헝가리의 벽은 너무 높았다. 헝가리는 대한민국을 0:9로 깼지만 당시 대표팀의 선수들은 투혼을 불태워가며 스코어를 최소한으로 좁힌 결과였다. 강창기는 2차전 튀르키예전에도 출전한 3명의 필드 플레이어[2]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헝가리와의 1차전에 너무 힘을 쏟은 것도 있었고 2진 선수들조차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있던 나머지 튀르키예에도 0:7로 패했다. 이 튀르키예전이 강창기의 마지막 A매치였다.
2.2. 이후
강창기는 선수 은퇴 이후 자신의 모교 한양중학교 축구부의 감독직을 지냈다.이후에 강창기는 야인으로 지내다 가끔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특히 강창기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FIFA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거뒀던 폴란드전을 지켜보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척추 수술을 받고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골을 넣을 때는 벌떡 일어나던 강창기를 보며 가족들이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그는 큰 경기에는 운이 따라야하지만 후배들이 이번에는 운 못지않게 탄탄한 실력을 보였다는 평가를 내렸다.
강창기는 말년에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하면서도 2006년 월드컵까지 지켜본 후 2007년 1월, 부천의 한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