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1-09 18:01:57

소탑불연

감천태후에서 넘어옴

요 황제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0 0;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783E22 0%, #a0522d 20%, #a0522d 80%, #783E22); color: #ece5b6; min-height: 31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대요(大遼)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제3대 비정통 제4대
태조 태종 세종 목종
<rowcolor=#ece5b6>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경종 성종 흥종 도종 천조제
북요(北遼)
<rowcolor=#ece5b6> 초대 제2대 임조칭제 제3대 제4대
선종 소제 덕비 유제 회제
서요(西遼)
<rowcolor=#ece5b6> 초대 임조칭제 제2대 임조칭제 제3대
덕종 인종 말제
<rowcolor=#ece5b6> 제4대
결제
}}}}}}}}}
시호 감천태후(感天太后)
연호 함청(咸清, 1144년 ~ 1150년)
소(蕭)
탑불연(塔不煙)
생몰년도 ? ~ ?
재위 기간 1143년 ~ 1150년
1. 개요2. 생애3. 여황제였는가?4. 가계도

[clearfix]

1. 개요

서요의 섭정이자, 야율대석의 황후이자, 야율이열의 황태후.

2. 생애

남편 야율대석이 사망 후 태자인 아들 야율이열이 서요의 황제로 즉위해야 했으나 아들의 나이가 어려서 소탑불연(蕭塔不煙)이 수렴청정을 하여 연호를 함청(咸靑)으로 바꾸고 7년 동안 섭정을 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재위 7년차에 아들 야율이열이 친정을 시작한다. 소탑불연이 언제 사망한지 기록이 남지 않아서 소탑불연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수렴청정을 거둔 것인지 아니면 소탑불연이 죽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녀가 사망할때 감천태후(感天太后)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3. 여황제였는가?

인터넷에는 감천후가 측천무후와 같은 여황제였다는 글이 많이 보이는데 요사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다.
아들 이열의 나이가 어려서 임금의 유언으로 황후가 나라를 권한했다. 황후의 이름은 탑불연, 호는 감천황후로, 칭제(稱制)하고 함청으로 개원했으며 7년동안 재위했다.
子夷列年幼,遺命皇后權國。後名塔不煙,號感天皇后,稱制,改元咸清,在位七年。
요사 30권 본기 제30 전문
한자를 잘 보자. 稱帝가 아니라 稱制이다. 稱制는 임조칭제(臨朝稱制)의 줄임말로 수렴청정을 뜻한다. 즉 여황제를 칭한 것이 아니라 수렴청정을 7년간 했다는 것이다.

4. 가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