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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8-23 17:22:37

irojiro

<colbgcolor=#603e93><colcolor=#fff> irojiro
色白 | 이로지로
파일:irojiro profile.jpg
출생 1983년 03월 18일 ([age(1983-03-18)]세)
성별 남성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악기 베이스, 기타
스트리밍 Apple Music Amazon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니코니코 동화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팬사이트 니코니코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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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irojiro의 브로마가 (色白のブロマガ)
3.1. 2014-05-03

1. 개요

파일:Irojiro bass.jpg
はじめまして(^_^)/
ニコニコ動画やYoutubeで、ベースの演奏動画や、ボカロオリジナル曲をつくっている色白と申します。
初のボカロオリジナル曲を投稿しました!!

처음 뵙겠습니다. (^_^)/
저는 니코니코 동화와 유튜브에서, 베이스로 연주하는 동영상과 보컬로이드 오리지널 곡을 만드는 irojiro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첫 곡으로 キミイロ花火(네 색깔의 불꽃)을 투고했습니다!
{{{#!wiki style="float:right"
출처: irojiro's Facebook }}}

2. 특징

<colbgcolor=#89552a> GUMI - 지구 최후의 고백을
<colbgcolor=#89552a> Supercell - 사요나라 메모리즈

3. irojiro의 브로마가 (色白のブロマガ)

브로마가(ブロマガ)란 블로그(ブログ), 메일(メール), 매거진(マガジン)의 약자이다. 니코니코 동화에서 2021년 10월 07일을 마지막으로 브로마가 서비스를 종료할 예정이라, 본 문단에 irojiro가 마지막으로 작성한 글을 보존하기 위해 원문과 번역문을 함께 작성하기로 했다.

3.1. 2014-05-03

みずいろギターロケットをつくりました。
물빛 기타 로켓을 만들었습니다.

{{{#!wiki style="float:right"
작성일시: 2014-05-03 21:00
출처: https://ch.nicovideo.jp/irojiro }}}

====# 원문 #====
みずいろギターロケットという曲をつくりました。

sm23467829

この曲をつくった背景を、少し書こうと思います。


学生時代、いわゆる地味メンだった私は、友人と呼べる人も少なく、大した学生生活は送っていなかったように思います。

唯一の趣味が音楽で、部屋で毎晩、音楽を聴きながらベースを練習していた、絵に描いたような引きこもり学生でした。

そんな私にとって、めずらしく波長が合うというか、世間でいう、親友と呼べる友人が一人だけいました。名前はAとします。

もともと、私のバイト先で知り合ったので、歳は2つほど離れていて、私が下、Aは年上です。

大学が関西だったため、地元を出てこちらで一人暮らしをしていたAは、バスケが得意で、身長180cmのがっしり体型。170cmヒョロガリ運動神経ゼロの私にとっては、とてもかっこいい大学生の先輩というイメージでした。

仲良くなったきっかけは、バイト先の打ち上げで、たしか私がベースを弾けるという話になり、Aもギターを練習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よく話すようになった気が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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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校を卒業して、学生時代を終えると、私たちはバイト先が変わったことや、それぞれの働く土地の違いもあり、少しずつ疎遠になっていきます。

私は関西でバンドマンを、Aは東北でスタジオミュージシャンとして仕事を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さらにそれから、二年ほど経ち、20歳になった私は、特に変化も無くバンド活動を続けていたのですが、バンドでの東北ツアーの最中に、たまたま駅前のTSUTAYAでAと再会します。

久しぶりに再会したときは、お互い、とても驚いてしまい、男同士なのに指を指して「あ、あぁーーーっ!!」と、大声を出したことを今でも覚えています。

もちろん、すぐに意気投合した私たちは、少ない時間を使って、お互いの近状報告をして、今後について熱く語りました。

それからは、東北に向かう際には、リハーサル後の時間を使ったりして、できるだけ会うようになり、バンド活動でお金のない私に、Aはいつもご飯をおごってくれたり、知らないバンドのCDを集めて、後学のためだと渡してくれたり、友人というより、もはや兄弟のような存在だったと思います。

A自身も、よく私に弟のようだと言って、とても可愛がってくれました。

Aにも兄弟はいたようですが、そのことを聞くと、いつもはぐらかすAに、私はなんとなく、何か事情があるんだろうなと考え、あまり深く聞かずにい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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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れから三年が経ち、私は世間の同年代が就職していく姿を見て焦り始め、バンドを脱退して、音楽をあきらめることを決意。社会人として、別業界で生きる道に進みます。

同じ頃、順調にスタジオミュージシャンとしての階段を上っていたAは、お世辞にも有名人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が、その優しい性格からか、仕事はとても多く、「毎日が忙しいけど、自分が人の役に立てることが、とてもうれしいし、幸せを感じる。だから、このまま続けるつもり。」と話してくれました。非の打ちどころがない好青年わろた。勘弁してほしい。

ほどなくして、社会人の繰り返す同じ日々、いわゆるルーティン生活に飽き飽きしていた私は、ニコニコ動画という動画投稿サイトを知り、その魅力にどっぷりハマることになります。

動画を投稿していた私の姿を、実はこっそりAも観ていて、いつも画面越しに褒めてくれていたと、あとから聞きました。

そんな中、たまたま仕事で東京にいるというAと連絡を取った私は、出張会議という名目で東京へ向かい、久しぶりに再会します。

明日、東北に帰るというAと居酒屋で飲み歩きをしながら、こんな約束をしました。


私「今、動画投稿にハマっててさ、でも、一人で撮影してるのが少し飽きてきたから、何か一緒にできない?」

A「え、、なにそれ、もう飽きたの?俺という存在がいるのに?w」 私「いや、よくわからないし、それはキモいよ。」

私「ねー、なんか、一緒にやろうよー。」

A「うーん、、徹夜仕事が多くて、けっこう大変なんだけどな。でもまぁ、せっかくだし、一緒にやるか!!プロの実力を見せますよ!」

私「やったー。わーい。」


なんと、頼もしい。
損得を考えずに動けるAよ。やはり、あなたが神か。。

簡単な打ち合わせをして深掘りしつつ、また再会することを約束した私たちは、翌日、それぞれの帰路に着きます。

2011年3月11日、Aは東北へ、私は関西へ。

午前中、帰りの新幹線の中で、また新しい刺激をもらえそうだなと、ワクワクしながら睡魔に襲われ、関西へと帰りました。同日14時46分、未曾有の大地震が起きました。


この大地震は、後に東日本大震災と名付けられ、過去の日本でも類を見ない超巨大地震であることが明かされています。

東北の東に位置する太平洋を震源とするM9.0 (震度7)の地震は、世界規模で見ても、ここ数百年の歴史の中で四番目に大きな地震でした。

次の日、休みだった私は、家でTVをつけた瞬間、おそろしい惨劇の映像に、凍りつきました。

TVでは「すぐに逃げてください!!」と叫ぶアナウンサーと、その対応に追われる専門家たちが、緊急の生放送を行っている最中でした。

そこに映された現地の映像は、私が小さな子供の頃に体験した阪神大震災よりもさらにひどい、すべてが津波に押し流されていく悲惨なもので、私の頭の中で「こんな映画のようなことが実際に起きるものなのか。」と、絶句しながら、しかし見たことのない現実の映像を、食い入るように見つめていました。

TVでアナウンサーが各地の震度を読み上げている時、私はあることに気付きます。


私「気仙沼で震度6?!気仙沼って、宮城県ちゃうんか。Aのおるとこやんけ。。」


そういえば、以前、Aは自分の父の実家が東北で、とてものんびりしていて、みんなが優しく、海の幸がとても美味しい、最高の場所なんだと、私に話してくれていたことを、ふと思い返しました。

ただ、それを思い出した瞬間、ゾワッと鳥肌が立ち、身が凍るような恐怖を感じた私は、すぐさまAの携帯に電話をかけようとします。

ですが、回線が規制しているのか、まったくつながりません。

その日からの一週間、何度かけてもつながらない状態で、私は、ただただ親友の無事を祈ることしか、できませんで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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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ヶ月が経ち、震災の情報が少しずつ明らかになってきた頃、亡くなられた方のリストに、Aの名前があることがわかりました。

それをテレビで観た私は、膝からガクッと崩れ落ち、今までの人生で、これまでここまで泣いたことはないだろうというくらい、声を上げて泣きました。

東京の出張の帰りに、Aのお葬式(震災の影響でまともなお葬式は困難なことから、集団で遺体を土の中に埋葬する仮埋葬という形。)に出席した際、ご家族の方に挨拶をさせていただき、こんな話を聞きました。

「実は、Aには12年前に他界している弟がいて、あなたのことを、いつもその弟のようだと話してました。今は空の向こうで、弟と一緒にあなたのことも見守ってくれているかもしれませんよ。」

亡くなった直後なのに、とても優しく、とても冷静でお話してくださるご両親に、私は胸が避ける思いでした。

本来、ご家族の方以外は遺体の確認ができなかったようなのですが、混乱の中で、Aの家族ということで通してくださり、遺体とも対面することができました。


棺に入ったAの顔は、土砂の影響で傷だらけになっており、とても人に見せれるようなものではなかったと思います。

顔色は真っ白で、眠っている人形のようでしたが、じーーっと見つめていると、急に起き上がってくるんじゃないかと、何度も声をかけてしまいます。

津波の中は、さぞ冷たかったろう。土砂は身体を傷つけて、とても痛かったろう。目の前は真っ暗で何も見えず、極寒の中、さぞ怖かったろう。。

ごめんね。。助けてやれなくて、本当にごめんね。。何もできなくて、本当にごめんね。。


また、涙が出た。鼻水と一緒に、とてもいっぱい出た。声も出た。顔も心も、ぐしゃぐしゃになった。

でも、生き返らないし、呼んでも応えてくれない。

冷たいよ。。そりゃ、ないよ。。


翌日、帰路に向かう私は、生前、Aがこんなことを言っていたのを思い返しました。


A「なぁ。

仕事っていうのはさ、人様からお金をもらって、利益を上げることも大事だと思うんだ。

でもさ、それ以上に、誰かのために役に立てているかどうかが大事だと思うんだよ。

どちらが欠けても続けることなんかできやしない。その両方が達成できて、初めて仕事になると思うんだよ、俺は。

今、お前がやってる音楽は、今は利益は出ていなくても、きっと誰かの役に立ってると思うんだ。

だから、継続できるように、俺も手伝って、もっと多くの人に届くようにしたい。

そしたら、利益が出て、お前も俺も応援してくれる人も、みんな幸せになるじゃん。

あ、もし、成功して億万長者になったら、お金いっぱいちょうだいね。w」私「ならねぇよ。w」


今、思い返しても泣けてくる。

Aは俺みたいな人間にも、いつだって前向きで、恥ずかしげもなく、本心を突いてくる。

やらなければいけないことは、いつだってシンプルだと教えてくれる。


Aとの約束は実現できなかったし、もうお礼を言うこともできないけど、私が今でも尊敬している気持ちは変わりません。

だから、今は後ろ向きな音楽はいらない。


あれから、3年が経ちましたが、たくさんの仲間に支えられて、「みずいろギターロケット」という楽曲ができました。

今、片手間だけど、私は音楽を続けることができています。あなたのおかげです。

あなたが言っていたように、誰かの役に立てるような、明るくて元気で、楽しくなる歌にしよう!湿っぽいのは、なし!!

そう思いながら、作りました。


皆さんにも、大切な家族や仲間、恋人や友人がいると思います。

いつもの声、いつもの仲間、いつもと変わらない日常。。

そんな日に満足して、いつでも手に入る、いつでも会える、話せるなんて思っていたら、

ふと急になくなってしまった時、どうしますか。



どうしようもないんですよ。現実って、そんなに甘くないから。。

もう、今は面と向かって伝えることができない私は、せめて、夢の中だけでも、音楽の中だけでも、あなたに出逢えて良かったと思いたい。伝えたい。

初めてあなたと見たあの空は、まっさらな「みずいろ」のような空でした。


長い文章、読んで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みずいろギターロケット
https://www.youtube.com/watch?v=UMx3-dEK71w

sm23467829

====# 번역문 #====
물빛 기타 로켓라는 곡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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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을 만든 배경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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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저는 평범한 남학생으로 친구도 많이 없었고 대단한 생활은 보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음악이 유일한 취미라서 매일 밤 방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베이스를 연습했던 히키코모리 같은 학생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흔하지 않게 파장 같은 것이 통했다고 해야 할까요,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수 있는 친구가 1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이름을 A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처음 만났는데 나이는 2살 차이였습니다. 제가 연하, A가 연상이었습니다.

대학교가 간사이에 있어서 이곳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던 A는 키가 180cm나 되는 남자다운 체격을 가졌습니다. 그에 반해 키 170cm, 마른 체격에 운동 신경이 제로였던 제게 A는 매우 멋진 대학생 선배 같은 이미지였습니다.

친해지게 된 계기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때 아마 제가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얘기가 대화의 주제가 돼서, A도 기타를 연습 중이라고 자연스레 넘어갔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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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는 아르바이트 장소가 달라지기도 했고, 일하는 곳도 달라져 점점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저는 간사이에서 밴드를 하고 A는 도호쿠에서 세션 연주자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2년쯤 지나 20살이 된 저는 특별히 달라진 것 없이 밴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밴드의 도호쿠 투어 중 역 앞 TSUTAYA에서 우연히 A와 재회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서로 많이 놀라서 남자끼리인데도 손으로 가리켜 "우와아악!" 큰소리 쳤던 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금방 의기투합한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서로 근황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도호쿠에 갈 때는 리허설이 끝나는 시간을 이용해 만나게 되었고 밴드 활동 때문에 돈이 없던 제게 밥을 사준다거나, 모르는 밴드의 CD를 모아 전해주는 등 친구 이상으로 형제지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A 자신도 저를 자주 동생 같다고 말하고는 무척 귀여워해 주었습니다.

A에게는 형제도 있었던 것 같은데 물어보면 말이 없어지는 A에게 저는 무슨 사정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깊이 묻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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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년 후 저는 주변 또래 애들이 취업하는 걸 보고 초조해져 밴드를 탈퇴하고, 음악을 포기하기로 결정, 사회인으로서 다른 분야에서 살아가기로 합니다.

같은 무렵, 순조롭게 스튜디오 뮤지션으로의 계단을 올라 있던 A는 칭찬도 유명하지 않았지만 그 상냥한 성격 때문인지, 일이 그렇게 많은 "매일 바쁘지만 자신이 사람의 도움이 될 수 뿌듯하고 행복 해요. 그래서 이대로 계속할 생각 "이라고 귀띔했다. 나무랄 데없는 청년 웃었다. 용서하기 바란다.

사회인으로서 반복되는 나날들, 그러니까 루틴 생활이 질려가고 있던 차에 니코니코 동화라는 영상 투고 사이트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투고하는 제 모습을, 실은 A도 보면서 화면 너머로 칭찬해 주고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업무 때문에 도쿄에 있다는 A와 연락이 닿아 출장 회의라는 명목으로 오랜만에 재회합니다.

내일 동북으로 돌아간다는 A와 술집에서 약속을 하나 했습니다.


나: "지금 영상 투고하는 것에 빠져 있는데 말야. 그래도 혼자서 촬영하는 게 심심한데 같이 할 수 없을까?"

A: "엥? 이제 질리는 거야? 이 몸이 계시는데도? ㅋ"

나: "같이 좀 하자고~ "

A: "음, 요즘 야근이 좀 많지만 모처럼이니 한번 해볼까! 프로의 실력을 보여주겠어!"

나: "좋았어!"

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손익을 따지지 않고 움직이는 A, 역시 그는 신인가?

간단하게 미팅을 마치고 또 만날 것을 약속한 우리는 다음날 각자 돌아가기로 합니다.

2011년 03월 11일, A는 도호쿠에, 나는 간사이에.

아침에 돌아오는 신칸센에서 또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심장이 두근두근하다가도, 졸음이 몰려와 간사이로 돌아갔습니다. 같은 날 14시 46분 경험해 본 적 없는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은 동일본 대지진이라고 불리게 되며 과거 일본에서도 유례없는 초거대 지진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동북 동쪽에 위치한 태평양을 진원으로 강도 9.0(진도 7)의 지진은 세계적으로 지난 몇 백년의 역사에서 4번째로 큰 지진이었습니다.

다음날 휴일, 나는 집에서 TV를 보는 순간, 끔찍한 참극의 영상에 얼어 버렸습니다.

TV에서는 "빨리 움직이세요!" 라고 외치는 아나운서와 그 대응에 쫓기는 전문가들이 긴급 생방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은 마치 내가 어렸을 때 겪은 한신 대지진[1]보다 심각한, 모든 게 쓰나미에 휩쓸리는 모습으로, '이런 영화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건가?', 본 적 없는 현실에 숨이 막힌 채로 보고만 있었습니다.

TV에서 아나운서가 각 지역의 진도를 발표할 때 생각났습니다.


나: "케센누마시에서 진도 6? 케센누마시라면 미야기현 아닌가? A가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 A는 자신의 아버지의 집이 동북에서 가장 조용하고, 모두 친절하고, 해산물이 매우 맛있는 최고의 장소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습니다.

그 순간 소름끼치고 몸이 오싹해지는 감각을 느껴 바로 A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부터 일주일간 여러 번 걸어도 연결되지 않아 그저 친한 친구가 무사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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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지나고 지진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풀리고 있을 때 사망자 명단에 A의 이름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다리에서 힘이 풀려 지금까지 이렇게 운 적이 없었을 정도로 목놓아 울었습니다.

도쿄에서 출장 갔다 오는 길에 A의 장례식(지진의 영향으로 정상적인 형태는 어려우니 집단으로 시신을 흙에 묻는 가매장 방식)에 참석해 유족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사실 A에게는 12년 전 타계한 동생이 있었어요. 당신이 항상 동생 같다고 말하곤 했죠. 지금은 하늘에서 동생과 함께 당신을 지켜봐 주고 있을 거예요."

돌아가신 직후인데도 매우 부드럽고 냉정하게 말씀하시는 부모님, 나는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원래 가족 외에는 시신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지라 A의 가족인 것으로 통과시켜 주고 그와 대면할 수 있었습니다.


관에 누워 있는 A의 얼굴은 토사 때문에 상처투성이었고 도저히 남에게 보일 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피부는 하얗고 잠든 인형 같았지만 보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일어날까봐 몇 번이고 말을 걸었습니다.

쓰나미 속은 분명 추웠을 것이고 토사 때문에 무척 아팠겠지. 눈앞은 캄캄해서 보이지 않고 몹시 무서웠을 거야..

미안.. 도와줄 수 없어서, 정말 미안해.. 아무것도 못해서, 정말 미안해..


또 눈물이 콧물과 함께 쏟아졌다. 울음도 나오고, 얼굴과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어나지 않고 불러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차가워.. 이젠,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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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돌아가는 길에 나는 생전 A가 이런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A "있잖아. 일이라는 것은 남에게 돈을 받고 이익을 얻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누군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지도 중요한 것 같단 말이지.
어느 하나가 없어도 계속할 순 없어. 양쪽이 성립돼야 일이 되는 거라고 봐, 나는.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음악은 이익이 없을 지라도 분명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을 거야.
그러니 계속할 수 있게 나도 돕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게 하고 싶어.
그러면 이익이 생기고 너도 나도 응원해 주는 사람도 모두 행복해지잖아.
아, 만약 성공해서 억만장자라도 되면 부자가 되는 거잖아 ㅋ"

나 "그럴 일 없어 ㅋ"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온다.

A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언제나 긍정적으로 부끄러움도 없이 본싱믈 찔러 온다.

해야 할 일은 언제나 간단하다고 가르쳐 준다.


A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고, 또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없지만, 내가 지금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제 역행하는 음악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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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틈틈이 음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당신 덕분입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밝고, 활기차고, 즐거워지는 노래를 하자! 눅눅한 건 없어!

그렇게 생각하며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가족과 동료, 연인과 친구가 있을 겁니다.

평소의 목소리, 평소의 동료, 평소와 다름 없는 일상..

그런 날에 만족하고,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문득 갑자기 없어져 버렸을 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어요. 현실이란 그렇게 만만하지 않으니까요..

이젠 얼굴 보고 전할 수 없는 나는 적어도 꿈속에서나마 음악으로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당신과 본 그 하늘은 정말 '물빛' 같은 하늘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빛 기타 로켓
https://www.youtube.com/watch?v=UMx3-dEK71w

sm23467829


[1] 효고현 남부 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