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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V/프로그램/196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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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참고 문헌3. 개국 주간 프로그램 일람4. 정규 프로그램 일람
4.1. 보도·시사·스포츠
4.1.1. 뉴스
4.2. 드라마·오락
4.2.1. 드라마4.2.2. 연예·오락
4.3. 수입·공급물
4.3.1. 외화

1. 개요

2. 참고 문헌

3. 개국 주간 프로그램 일람

4. 정규 프로그램 일람

4.1. 보도·시사·스포츠

4.1.1. 뉴스

<rowcolor=#ffffff> 제목 방송채널 시작연도 종영연도 담당부서
텔레뉴스 DTV 1964 1965

4.2. 드라마·오락

4.2.1. 드라마

<rowcolor=#ffffff> 제목 방송채널 시작연도 종영연도 담당부서
매일 연속극 눈이 나리는데[2] DTV 1964 1965
TV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TV 1964 1965
연속사극 민며느리 DTV 1964 1965
TV지정석 → 바이엘극장[3] → TV지정석 DTV 1964 1965
어린이극장 DTV 1964 1965

4.2.2. 연예·오락

<rowcolor=#ffffff> 제목 방송채널 시작연도 종영연도 담당부서
쇼쇼쇼[4] DTV
(1964~1965)
1964 1980
JBS-TV
(1965~1966)
TBC-TV
(1966~1980)
아베크 노래자랑 DTV 1964 1967
퀴즈 올림픽 DTV 1964 1965

4.3. 수입·공급물

4.3.1. 외화

<rowcolor=#ffffff> 제목 국가 방송채널 시작연도 종영연도 담당부서
보난자[5] 미국 DTV
(1964~1965)
1964 1976
JBS-TV
(1965~1966)
TBC-TV
(1966~1976)
전투[6] 미국 DTV
(1964~1965)
1964 1967
JBS-TV
(1965~1966)
TBC-TV
(1966~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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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양텔레비전 DTV의 개국 특집 드라마. 거기에 국내 첫 녹화 드라마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비디오테이프 가격이 비싸 남아있는 방송자료는 없다. 가장 오래된 드라마는 아래에 소개된 아씨 마지막회. (다만 개국특집 쇼는 남아있다.) 거기에 편집 기능도 없었는데, 이에 대한 일화는 생방송 항목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2] 국내 최초의 TV 일일 드라마. 하지만 지금의 완전한 일일드라마와는 달리 주 2~3회 방송되었다고 한다. 단막극과 주간극이 주류였던 당시 상황에서는 이정도도 진일보한것이다. 한명숙이 부른 주제가가 유명하다. [3] 독일의 제약회사인 바이엘의 한국법인인 한국바이엘약품이 스폰서한 한국 법정 드라마의 효시로도 꼽히는 드라마이다. 법정 드라마인 만큼 대사의 양이 엄청나게 많았고, 당시 해설을 맡았던 변호사가 실수로 NG를 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스튜디오에 에어컨도 없어 여름이면 배우와 스탭들이 상당히 애를 먹었다고 한다. 때문에 당시 배우들 사이에서는 "오뉴월 염천에 신세계백화점에서 바이엘 극장이나 찍어라"라는 악담을 퍼부었을 정도라고 한다. [4] TBC의 전신인 DTV 개국때 부터 TBC라는 이름으로 폐국을 선언할때까지 방송된, 그야말로 TBC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인기 쇼 프로그램. 1967년에 국민영 합동방송으로 제작해서 방송한적이 있었고 (물론 TBC가 대부분을 제작.), 이를 문화영화로 재편집해 상영한 적이 있다. # 참고 자료 언론통폐합 이후 KBS 2TV에서 방송되었으나, 잦은 시간대 변경과 이듬해 방영된 MBC의 쇼 2000에 밀리면서 시청률이 하락하여 1983년 7월에 종영. 초대 MC는 곽규석이었으며, 이후 이한필과 정윤희를 거쳐서 이한필, 정소녀 그리고 허참, 정소녀 체제로 바뀌었다가 정소녀가 결혼을 하게되면서[7] 손정은, 한우리 등으로 진행자가 바뀌었다. 쇼쇼쇼에서는 인기 가수들이 출연해서 노래하는것 뿐만 아니라, 송해같은 인기 코미디언이 나와서 꽁트를 하거나, MC의 판토마임도 중간중간 선보였다. 또한 한익평 안무단장[8]이 이끄는 안무단의 무용도 상당히 수준급이었고, 꼭 라스베가스 쇼를 연상시킬 정도로 화려했다.[9] 또한 패티김, 조영남, 김추자, 남진같은 당대 최고 인기가수들이 컴백무대 및 고별무대를 하던 곳이 바로 쇼쇼쇼였다.[10] 무대도 단순히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뒤에 안무단과 악단이 위치하는 것을 넘어서서 이런 식으로 연극을 연상시키는 무대연출도 자주 선보였다. 조용호 PD가 연출할 당시에는 크로마키 합성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야외녹화도 종종 진행해 일종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해서 방송하기도 했다. 1978년에는 700회 특집을 맞아서 유럽, 미국에서 현지 녹화를 무려 컬러로 진행했는데, 당시에 해외 여행이 어려웠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당시로서 상당히 혁신적이고 호화로운 기획을 한것이다. 말하자면 현재 JTBC에서 하는 비긴어게인 같은 기획을 특집이긴 하지만, 40년이나 앞서서 시도한것이다. 1980년 당시에는 토요일 9시대에 방송되었다. 의외로 공개방송은 하지않았고, 오랫동안 관객없이 진행되었다.[11] [5] 1964년 12월 7일 개국 시부터 1976년 1월 22일까지 12년간 방영한 장수 외화. 1976년에도 재편성된 후 1983년 KBS 2TV에서 재방송했으며 본방 초기부터 카트라이트 4형제 중 3명은 배우들이 맡았는데, 벤(론 그린) 역은 김무생, 호스(댄 블로커 분) 역은 김순철, 조(마이클 랜던 분) 역은 MBC <수사반장>의 서 형사 역으로 유명한 김호정이 각각 맡다가 1974년을 기점으로 벤 및 조 역은 배한성, 호스 역은 김병관으로 각각 바뀌었으며 이듬해엔 조 역은 박춘일로 변경됐다. 관련기사 [6] 개국때부터 방송했다. 70년대에 재방송했으며, 통폐합 이후에도 80년대 중반까지 재방송. 스폰서는 동아제약 박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