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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20:21:27

CFA 프랑

franc CFA

1. 개요2. 배경3. 상세4. 현재5. 각국의 CFA 프랑

1. 개요

프랑스의 해외 영토[1]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 사용하는 통화. 이름이 약간 다른 CFP 프랑까지 포함한 탄생배경은 모두 같지만 제각기 별개의 통화로 취급되며, 의미도 다르고 발행처도 다르고 탄생 이후의 역사나 특징까지 모두 다르다. 우연히 약자가 똑같았을 뿐. 프랑스어로 세파프랑이라고도 부른다.

2. 배경

탄생 배경은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이후의 프랑스 프랑의 폭풍약세에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6주만에 항복하고 비시 프랑스로 정권이 교체되며 전 세계의 프랑스 식민지들이 붕 뜬 상태가 되는데,[2] 아프리카 식민지의 상당수는 이 기간 중에 비시 프랑스와의 교역보다 미국과의 교역량이 압도적으로 늘어 분명 식민지임에도 불구하고 주 교역상대는 종주국이 아닌 골때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따라서 전후 프랑스는 그저 본국에 돈이 없다는 이유 만으로 많은 해외 거주 국민들이 환율상의 타격을 입는 상황을 방지함과 동시에 식민지들을 다시 프랑존으로 끌어들여 프랑스의 경제적 영향력을 수복하려는 의도로[3] 1945년 프랑과 연동되는 CFA프랑을 도입하게 된다. 때문에 처음의 CFA는 "아프리카의 프랑스 식민지"(Colonies françaises d'Afrique)의 약자였다.

3. 상세

그러나 모든 것이 프랑스의 뜻대로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튀니지, 모로코, 기니, 말리, 알제리, 모리타니, 마다가스카르 등 프랑스 식민지들이 연이어 독립을 선포하면서 프랑스의 지배에서 벗어났고, 반불감정이 강했던 구 식민지 국가들에서는 동시에 프랑존에서도 탈퇴해버린다. 그러나 프랑존을 탈퇴한 구 식민지 국가들의 일부는 프랑존으로 다시 복귀했다. 대부분은 CFA 프랑을 사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었기 때문이나, 프랑스의 외압 또한 분명히 있었다. CFA 프랑을 거부하자 독립 전 모든 인프라를 때려부수고, 정말 자체 화폐를 발행하자 프랑스가 직접 위조지폐를 유통시켰으며 쿠데타까지도 시도하려다 들켜서 무산되었던 기니의 경우가 그렇다. 아메드 세쿠 투레 참고. 콩고민주공화국 파트리스 루뭄바, 부르키나파소 토마 상카라 역시 프랑존을 탈퇴하고 독자적 경제정책을 수립하고자 했으나 프랑스가 연관된 쿠데타에 의해 살해당한 바 있다.

CFA프랑의 장점으로는, 우선 화폐가치가 안정적이어서 경제가 엉망이 되어 버린 나라라 할지라도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CFA 프랑존 권역 내 금융 감독기관을 둠으로서 각국이 독자적인 정책을 펼치지는 못하는 대신 방만한 재정편성을 막고, 프랑스의 참여를 통해 보다 정교하게 설계된 경제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방적으로 프랑스에게 끌려가지도 않았다. 1970년대에 CFA 프랑의 운영을 개혁함으로서 프랑존의 직책을 프랑스로부터 CFA프랑존 회원국들이 넘겨받았으며, 외환보유액 100%를 프랑스에 예치하도록 했던 규정을 65%까지 줄였다.

또한 과거에는 프랑스 프랑과 연동되었다. 이후 프랑스의 화폐가 유로화로 전환되었을 때도 프랑스 정부의 태환 보증은 유지되었다. 오히려 프랑보다 안정적인 유로화로 바뀌면서 물가 상승률이 다른 사하라 이남 국가들보다 현저히 낮게 유지되었고, 해외 투자 유치에도 프랑 시절보다 더 유리해졌다.

독립적인 화폐와 경제정책을 집행하다 물가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고통받는 여타 국가들을 지켜본 CFA 프랑존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정치 불안과 역량 부족으로 효과적인 경제정책 수립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하나로 뭉쳐서 프랑스 지원 받는 게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CFA 프랑존에 속하는 차드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처럼 최빈국 수준의 나라들은 엄연히 존재했지만 후진적인 경제 수준임에도 물가의 폭등을 막았다는 점에서 제 역할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경제가 잘 안돌아갈 때 독자적인 통화/환율 정책을 쓸 수가 없다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무역조건의 조정이 안되기 때문에 주요 수출품 가격의 변동에 경제가 쉽게 흔들린다는 불안정함이 남아 있다. 실제로 1960년대와 70년대 당시에 경제적으로 활발히 성장해서 중진국으로 성장에 성공해서 서아프리카에서 떠오르는 신흥국 취급받았던 코트디부아르가 결국 경제성장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고꾸라진 이유 중 하나가 이 것때문이었다.

4. 현재

세파프랑을 바라보는 프랑스의 시선은 복잡하다. 우선 CFA 프랑존 국가들이 사하라 이남에서 어느정도 성장을 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규모가 너무 작다. 프랑스의 對 CFA존 무역 비중은 60년대의 3% 가량에서 현재는 1% 남짓으로 줄어든 상태다. 그래서 최종 대부자 자격으로 태환 보증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부담은 가득하다.

그러나 프랑스가 제국주의 시절 독자적으로 만든 세파프랑에 문제가 발생하면 이건 전적으로 프랑스가 해결해야 될 일로 치부하기 때문에 EU와 다른 회원국들은 연대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서는 과거 식민제국의 영광을 추억할 수 있다는 것외에는 큰 실익은 없다. CFA 프랑이 태생부터 식민지들의 경제 예속을 위해 시작된 만큼 국제적으로도 식민주의의 잔재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니 계륵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고 폐지하기에는 옛 식민지들에게 그렇게 착취를 해왔으면서 보증도 못서주냐는 비판을 듣게 될 상황이다.

그래서 최근들어 새 화폐인 ECO를 제시하여 서아프리카 8개국과 영어권-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의 참여를 권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영어권 국가들의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최종 대부자 낙인을 지우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영어권 아프리카 나라들은 태환 보증도 안 되는 화폐를 쓸 이유가 없다고 거절했다.

5. 각국의 CFA 프랑


CFA 프랑의 경우 코트디부아르와 프랑스는 2019년 12월 22일에 폐지하고 새로운 화폐 에코(Eco)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 2019년 12월말 마크롱 대통령이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하여 한 연설에 ECO통화 사용에 대한 내용이 있었으나 아직 사회적으로 크게 이슈화가 되고 있지는 않다. 또한 ECO통화는 프랑스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닌 현 프랑세파 사용국들간의 협의체에서 협의,발행하는 것으로 각 나라간의 이해관계가 잘 이루어 질지는 의문이다. 또한 해당 국가들이 세금 및 과세 부분에 있어 아직도 미흡한 부분이 많아 실제 통화개혁이 아무런 저항없이 이루어 질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

CFA는 어디까지나 프랑을 대체하기 위한 통화였으므로 프랑스 프랑 페그되어 있었다. 그 환율 변화는 아래와 같다.
CFP의 경우는 아래와 같다.
[1] 태평양이나 대서양 한가운데에 띄엄띄엄 박혀 있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과거 해양 개척이 활발하던 나라들이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섬들이 대부분이다. [2] 특히 프랑스의 멀티나 다름없던 북아프리카 지역은 비시 프랑스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유 프랑스에 협력하는 것도 아닌 정치적으로 매우 애매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횃불 작전 당시에는 연합군인 미군에 대항해 전투를 벌이기도 했을 정도. [3] 실제로 처음 CFA, CFP 프랑을 언급할 때 "해외주"들을 "딸"들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제국주의적 색채가 강했다. [4] 원래는 Colonies françaises du Pacifique(프랑스령 태평양 식민지) 였다. [5] 2013년에 기존의 CFP에서 분리될 예정이었으나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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