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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21:38:40

CAC CA-15


CAC CA-15
CA "Kangaroo"

1. 제원2. 요약3. 설계 및 개발4. 시험과 운용


1. 제원

형식 : 단발 단좌 전투기
개발 : CAC(Commonwealth Aircraft Corporation)
초도비행 : 1946년 3월 4일
운용시기 : 1946년~1950년
승무원 : 1명
전장 / 전폭 / 전고 : 11.04 m / 10.97 m / 4.32 m
익면적 : 23.50 m²
중량 : 3,427 kg / 4,309 kg / 5,597 kg
동력 : 롤스로이스 그리폰 Mk 61 액랭 V-12 엔진 (출력 2,035 hp) 1기
최대속도 : 721 km/h (8,050 m)
상승고도 : 11,887 m
항속거리 : 1,850 km
무장 : 12.7mm 중기관총 6정 (각 250발) / 로켓탄 10발 또는 450 kg 폭탄 2발
생산수 : 원형기 1대

2. 요약

비공식적으로 캥거루라는 별명이 붙여져 CAC 캥거루라고도 불리는 이 레시프로 군용기는 영연방 호주의 항공기 제작업체인 커먼웰스 항공기 회사(Commonwealth Aircraft Corporation : CAC)가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개발에 착수한 전투기였다. 처음 예상보다 개발에 많은 시간이 필요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원형기를 완성시키지 못하여 종전 후인 1946년에야 1호기 제작이 마무리되었으나, 이때는 차세대 항공기 엔진으로 기대를 받고 있던 제트 엔진의 출현으로 프로펠러 전투기는 시대에 뒤떨어질 것이 확실해졌던 탓에 시험 비행과 평가만 진행된 단계에서 생산과 배치는 취소되었다.

3. 설계 및 개발

호주 공군(RAAF)를 위한 경전투기 CAC 부메랑을 속성으로 설계하여 생산까지 해낸 CAC와 새로 주임 설계자로 취임한 프레드 데이빗(Friedrich W. "Fred" David : 1898~1992)은 자신들의 성과에 고무되어 1943년부터는 완전히 독자적인 설계로 요격기 임무와 폭격기 엄호 임무를 할 수 있는 신형 전투기의 개발 작업에 팔을 걷어부치게 된다. 사내 개발번호 CA-15가 붙여진 이 단좌 전투기는 얼핏 보기에는 미국제 P-51 머스탱과 비슷해보였지만, 프레드 데이빗이 이 탁월한 미국제 전투기에서 직접 참고한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우선 CAC가 개발 주임 프레드 데이빗에게 요구한 성능 목표는 P-51과는 처음부터 달랐고, 그 결과 기체의 크기부터 시작해 다른 부분이 더 많은 완전히 별개의 전투기였던 것이다. 데이빗 기사는 특히 영국에서 노획된 포케불프 Fw 190의 평가보고서에 깊은 인상을 받고 스핏파이어나 머스탱과 같은 직렬 액랭 엔진이 아닌 정비소요가 적으면서도 터프한 공랭 성형 엔진을 얹은 대형 전투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개발에 앞서 CAC 경영진들은 설계가 어렵고 개발비용이 많이 드는 독자 개발보다는 이미 전선에서 성능이 입증되고 손쉽게 생산할 수 있는 머스탱의 면허생산에 힘을 쏟고 있었다. CAC의 대표이자 프레드 데이빗에게 개발주임 자리를 물려준 로렌스 웨킷(Lawrence James Wackett : 1896~1982) 경은 지금은 항공전력을 신속하게 강화할 수 있고 돈도 쉽게 벌 수 있는 면허생산 쪽에 힘을 실어주고 있어서 CA-15의 개발 진도는 일부러 늦추고 있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점차 완성되어가는 CA-15의 지상 실험을 지켜 본 로렌스 사장은 개발 중인 이 국산 전투기가 P-51을 대신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런 믿음의 상당 부분은 영국의 롤스로이스 사로부터 받아온 그리폰 엔진의 시운전을 본 다음에 갖게 된 바가 컸지만, 기체 자체의 설계도 매우 탁월한 완성도를 보이고 있었다.

처음에 CAC 디자인 팀은 터보 차저가 달려 출력 2,300 hp을 내는 프랫&휘트니 R-2800 더블 와스프 공랭 성형 엔진을 쓰려고 계획하고 있었지만,이 엔진의 수출이 지연되는 기색을 느낀 스탭들은 제때에 입수할 것이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을 내리고 엔진 도입선을 바꾸게 된다. 상대적으로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던 롤스로이스 그리폰은 더블 와스프와 마찬가지로 터보 차저가 달려 고공 성능이 확실한데다 출력도 2,035 hp에 달해 그다지 뒤지지 않아서 이것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영연방이라 하더라도 당시는 호주 방면의 전선보다는 유럽 본토의 전세가 다급했던 영국은 그리폰 엔진을 수출해주지 않고 임대해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이렇게 해서 빌려온 그리폰 Mk 61 엔진은 프로토타입 CA-15에 올려졌고, 양산형에서는 3단 과급기를 장착하여 출력을 더 끌어올릴 기대도 품게 된다.

4. 시험과 운용

문제는 이 국산 전투기의 개발이 시작된 것은 연합군이 승기를 잡기 시작한 후라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CA-15는 작업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는 바람에 개발 스피드는 좀체로 붙지 않았고, 거기에 더해 로렌스 사장의 고의적인 지연 조치로 인해 더 제동이 걸려 기체는 90% 정도 만들어진 상태에서 그대로 종전을 맞게 된다. CAC의 테스트 파일럿 짐 스코필드(James Edward 'Jim' Schofield : 1921~2005)가 올라탄 CA-15 원형기의 첫 비행은 전쟁이 끝나고 6개월이나 지난 1946년 3월 4일이었다. 개발 스탭들에게 캥거루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 시제기에는 RAAF 일련 번호 A62-1001이 그려졌고, 테스트를 위해 공군에 인도되었다.

항공 역사가 대런 크릭(Darren Crick)의 저서에 따르면, CA-15는 고도 8,046 m에서 수평 비행으로 721 km/h를 기록했으며, 1948년 5월 25일에 J. A. L. 아처(Archer) 대위는 멜버른 상공에서 완만한 하강 도중에 고도 1,200 m의 저공에서 803 km/h의 엄청난 속도에 도달했다고 보고했다. 호주가 만든 두 번째 국산 전투기 CA-15는 그야말로 궁극의 레시프로 전투기 대열에 올라서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고성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1948년 시점에서는 제트기가 프로펠러기에 비하여 연비를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훨씬 뛰어난 성능과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밝혀진 후였다. 물론 소련 같은 강대국을 포함하여 많은 나라들이 종전 후에도 한동안 프로펠러 전투기를 계속 운용했던 것처럼 호주 공군도 CA-15를 생산하여 일선에 배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멀리 앞을 내다 본 호주 정부는 그러지 않았고, 캥거루 전투기는 더 이상 만들어 질 수 없었다. 유일한 시제기 1001호기는 1950년에 폐기 처분되었고 그리폰 엔진 롤스로이스 측에 되돌려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