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Arcaea/스토리
스토리 |
|
Act I Creation |
Act II Catastrophe |
1. 개요
Arcaea 스토리의 Act II: Catastrophe의 두 번째 파트를 기록한 문서.특정 조건[1]을 만족하면 내용이 부분적으로 변화하는 기믹이 있다. 해당 부분은 기울임과 각주를 통해 서술한다.
2. Main Story
2.1. 연민
2.1.1. 해금 조건
2.1.2. Lucent Historia
=====# 20-1 #=====그대는 신을 믿는가?
거인의 몸 깊숙한 곳, 더 이상 뛰지 않는 심장, 깊게 고인 붉은 웅덩이 위로 소녀가 발을 딛었다.
어둠이 모든 색을 덧칠한 공간.
천장을 향해 거꾸로 솟아오르는 액체가 소녀의 뺨을 적셨다.
소녀는 뺨을 어루만지며 표정을 구겼다.
어두운 것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괴물이 저질러놓은 난장판을 보지 않아도 되니까...
아니, 그보다는 괴물 그 자체의 모습을 눈에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안 봐도 어떤 형상인지 알 수 있었다. 이미 세 번이나 본 적 있으니.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소녀는 신의 손을 지닌 '조형자'였다. 짐승을 제압하는 일 따위 식은 죽 먹기였다.
소녀는 혀를 굴려 목소리를 빚어 자신의 제자가 있는 방향으로[2] 날려 보내 물었다.
"준비 됐어?"
곧 대답이 귀에 닿았다. "바보야? 당연하지."
"조용히 해." 소녀가 속삭이고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기공(氣空) 랜던을 켜,
그 빛을 자신의 앞으로 가져와 회랑을 비추었다.
고대의 천사들을 묘사한 그림들이 보였다.
신을 그린 그림들이 보였다.
거대한 해골, 레폰의 신성한 척추와 갈비뼈를 그린 그림이 보였다.
그리고 사냥감을 찾아온 거대한 짐승이 보였다.
반대쪽 벽에 웅크려 어슬렁대며 쭉 뻗은 촉수 끝에 달린 외눈으로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몸은 여덟 개의 깃털 달린 날개 뒤에 숨어있었다. 그 괴물은 공포의 권능이었다.
그 모습을 눈에 담은 소녀는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움직였다.
짐승의 눈이 파랗게 빛을 내며 열을 뿜었다. 그러자 소녀의 옆과 뒤에 강렬한 힘의 돌풍이 몰아쳤다.
짐승이 날개 한 쌍을 거두자 입술도 이도 없는 입이 보였다. 그것이, 그 창백한 것이, 비명을 질렀다.
조형자는 그 비명이 자신에게 닿기 전에 손을 뻗어 튕겨냈다.
비명은 이리저리 튕기며 바닥을 가르고 그림이 담긴 액자를 찢었다.
그리고 괴물이, 이 장소에서 날뛰기를 선택한 저 '권능'이, 소녀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짐승이 네 쌍의 날개를 모두 펼치자 탄탄하고 근육 잡힌 몸이 드러났다.
심각하게 뒤틀려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형상. 그 융기된 척추가 살의를 픔고 구부러졌다.
그 순간, 머리 위의 천장이 폭발하듯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스테인드 글래스, 돌, 나무, 낙하하던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하여 창의 형태를 이루었다.
그 창을 다스리는 것은 어린 아이의 손이었다.
아이가 거대한 창을 강력하게 박동하는 힘으로 내던져 권능의 척추를 꿰뚫었다.
짐승의 살점이 오만 갈래로 터지고 찢어져 바닥에 흩뿌려졌다.
아이가 창백한 머릿결을 나부끼며, 그 날카로운 눈동자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앉아!" 아이가 말했다.[3]
창에 꽃힌 짐승이 땅에 쓰러져 버둥댔다. 어떤 의미로는 '진정됐다'고도 볼 수 있었다.
선임 조형자가 쓰러진 짐승의 몸으로 다가가 그 목에 손을 얹고 말했다.
"기공으로 돌아가라. 다른 권능들이 그대를 보살피길."
그러자 짐승의 몸이 빛을 발했다. 몸이 창에서 흘러내려 조그마한 빛의 구가 되어 소녀의 손 위에 부유했다.
소녀는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고 빛의 구를 문밖으로 던졌다. 그리고...
"또 쓸데없는 짓이나 하고!" 거대한 창대 끝에 앉아있는 아이를 올려다보며 소녀가 말했다.
"참 잘하는 짓이다. 엘(L)! 천장 변상할 돈도 없는데, 이럼 또 거짓말해야 하잖아!"
"넬, 우리 존경하는 스승님.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정하는 건 언제나 우리였잖아?"가 아이의 답이었다.
귀엽고 능글맞은 미소가 그 얼굴에 걸려있었다. 스승이 나무 조각을 하나 들어 아이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조각에 얻어맞은 아이는 창대에서 떨어져 그대로 잔햇더미로 낙하했다.
"공포의 권능이 만들어놓은 난장판이랑 구별이 안 되기에 망정이지." 제자의 포효를 들으며 스승이 말했다.
"짐승이 부순 거라고 하면 믿어주겠지... 저 시체들 좀 봐. 다 먹지도 않았네. 으웩."
"넬! 날 쳤겠다!" 아이가 소리쳤다. "시끄러." 스승은 그렇게 말하고 제자를 무시하며 생존자를 찾아나섰다.
...그대는 신을 믿는가? 여러 명의 신이 아니라, 단 하나의 전지전능한 존재, '신'을.
우리의 이해 너머에 존재하는 '신'을 믿는가?
그대의 신념이 어떠하든 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
이것은 새로운 신이 탄생하는 이야기.
...그럼에도, 저것이 중요한 질문임에는 뱐함이 없다. 시간을 넘어 영원히 메아리칠 질문이기에.
모든 것은 믿음에 달려있다.
믿음이야말로 사람이 행동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자,
'진실'을 빚어내는 가장 중요한 재료이고,
아르케아가 만들어진 이유이다.
신이자 세계 그 자체, '레폰'.
레폰은 비록 죽었을지라도, 신의 손을 지닌 자들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아버지로서 계속해 존재한다.
그대는 이미 알고 있겠지.
조형자라 불리는 이들을.
타이리츠, 사실 이는 그녀의 진짜 이름이 아니다.
여덟 번째, 그리고----/ //.[4]
두 소녀는 관공서의 정문 핲에서 이번 일의 보수를 건네받고 있었다.
'유령'들이 관공서에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다들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넬이 나무에 기대고 서있는 사이 엘은 그 위의 가지에 걸터앉았다.
이번 구마 의뢰를 맡긴 공무원이 그들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에도, 청록빛 꽃잎이 아무것도 없던 기공중에 생겨나 흩날렸다.
그 누구도 신기해하지 않았다. 레폰에서는 일상과 같은 일이였으니까.[5]
"그리고... 두 분께서 마을의 기공 엔진을 좀 손 봐주시면 참 고마울 것 같습니다." 공무원이 말했다.
"아... 예. 한번 볼게요." 넬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하지 마, 엘." 소녀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공무원이 그 말을 듣고 위를 바라보자 창백한 머릿결의 아이가 돌을 부유시켜
가까운 건물의 창문에 조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돌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가 나무에서 살포시 내려오며 스승의 등을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
둘이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는 3년. 엘이 아홉 살이였을 적부터였다.
넬은 지금 열일곱이였다. 하지만 엘을 챙기다 보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은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사랑받기 쉬운 성격이였지만, 그만큼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마음도 들게 만드는 아이였다.
두 사람은 피로 엮인 자매는 아니였으나, 가끔은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또 뚝딱질이야?"
조용한 마을의 거리를 걸으며 엘이 불평했다.
손깍지를 끼고 뒤통수에 얹은 채, 그 지루한 잡일보다 더 재밌는 걸 찾아 열심히 기공을 훑어보았다.[6]
"비조형자들은 우리처럼 권능을 다루지 못하니까. 안정적인 수입원이잖니."
넬이 말했다. 자신의 소지품 사이에서 태블릿을 꺼내 옆에 달린 스위치를 켰다.
곧 태블릿에 숨이 깃들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그래도 뭐, 솔직히 나도 기계 작업보다는 원예 일이 더 좋아.
아, 이 동네엔 동전 교환기도 없나? 그런데 대체 왜 보수를 동전으로 준거야?"
"제3대지 통용 화폐! 아주 안정적인 자산이죠!" 엘이 아까 전의 공무원 흉내를 내며 놀리듯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놀리는 거 아니야. 조용히 해."
'제3대지'... 언급된 적은 없지만, '대지'는 총 여덟 개 존재한다.
'대지'는 하나의 '대륙'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다.
그 대륙들은 하나의 첨탑 레폰의 척추, 즉 신의 척추에서 뻗어 나와 있으며,
신의 갈비뼈로 보호받듯 감싸여 있었다.
이 세계는 신의 시체이며, 생명의 요람이고, 신의 척추가 모든 장소를 잇고 있었다.
이것이 수많은 현실 중 하나. '사후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
부서진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와는 달리, 논리가 있고 규칙이 있는 세계이다.
그리고 한때는 조형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조형자들이 곧 모든 것이였다가, 곧 아무것도 아니게 된 세계...
상상을 초월한 힘과 존재감을 지닌 거인의 시체에 새겨진 세계.
마치 다른 행성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원판 모양의 대지가 일곱 개.
그 밑에 존재하는 것은 가장 커다란 대지. 원판 모양이 아닌,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에 가까운 모양의 대지.
레폰인들은 그것을 '심장'이라 불렀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 세계가 이렇게 생겼느냐고...? 그것 또한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아무도 모르는 답이 이 세계를 문화적으로 갈라놓았다.
레폰은, 언제나 그랬다.
=====# 20-3 #====='유령'들이 관공서에 함부로 드나드는 것을 다들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넬이 나무에 기대고 서있는 사이 엘은 그 위의 가지에 걸터앉았다.
이번 구마 의뢰를 맡긴 공무원이 그들에게 결과를 보고했다.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음에도, 청록빛 꽃잎이 아무것도 없던 기공중에 생겨나 흩날렸다.
그 누구도 신기해하지 않았다. 레폰에서는 일상과 같은 일이였으니까.[5]
"그리고... 두 분께서 마을의 기공 엔진을 좀 손 봐주시면 참 고마울 것 같습니다." 공무원이 말했다.
"아... 예. 한번 볼게요." 넬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고 등을 돌려 걸어 나갔다.
"하지 마, 엘." 소녀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공무원이 그 말을 듣고 위를 바라보자 창백한 머릿결의 아이가 돌을 부유시켜
가까운 건물의 창문에 조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돌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가 나무에서 살포시 내려오며 스승의 등을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
둘이 함께 일하기 시작한 지는 3년. 엘이 아홉 살이였을 적부터였다.
넬은 지금 열일곱이였다. 하지만 엘을 챙기다 보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은 변덕스럽고, 불안정하며,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사랑받기 쉬운 성격이였지만, 그만큼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마음도 들게 만드는 아이였다.
두 사람은 피로 엮인 자매는 아니였으나, 가끔은 그렇게 느끼기도 했다.
"또 뚝딱질이야?"
조용한 마을의 거리를 걸으며 엘이 불평했다.
손깍지를 끼고 뒤통수에 얹은 채, 그 지루한 잡일보다 더 재밌는 걸 찾아 열심히 기공을 훑어보았다.[6]
"비조형자들은 우리처럼 권능을 다루지 못하니까. 안정적인 수입원이잖니."
넬이 말했다. 자신의 소지품 사이에서 태블릿을 꺼내 옆에 달린 스위치를 켰다.
곧 태블릿에 숨이 깃들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그래도 뭐, 솔직히 나도 기계 작업보다는 원예 일이 더 좋아.
아, 이 동네엔 동전 교환기도 없나? 그런데 대체 왜 보수를 동전으로 준거야?"
"제3대지 통용 화폐! 아주 안정적인 자산이죠!" 엘이 아까 전의 공무원 흉내를 내며 놀리듯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놀리는 거 아니야. 조용히 해."
'제3대지'... 언급된 적은 없지만, '대지'는 총 여덟 개 존재한다.
'대지'는 하나의 '대륙'과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다.
그 대륙들은 하나의 첨탑 레폰의 척추, 즉 신의 척추에서 뻗어 나와 있으며,
신의 갈비뼈로 보호받듯 감싸여 있었다.
이 세계는 신의 시체이며, 생명의 요람이고, 신의 척추가 모든 장소를 잇고 있었다.
이것이 수많은 현실 중 하나. '사후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
부서진 마음이 만들어낸 세계와는 달리, 논리가 있고 규칙이 있는 세계이다.
그리고 한때는 조형자들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조형자들이 곧 모든 것이였다가, 곧 아무것도 아니게 된 세계...
상상을 초월한 힘과 존재감을 지닌 거인의 시체에 새겨진 세계.
마치 다른 행성처럼 서로 떨어져 있는 원판 모양의 대지가 일곱 개.
그 밑에 존재하는 것은 가장 커다란 대지. 원판 모양이 아닌, 흙으로 만들어진 그릇에 가까운 모양의 대지.
레폰인들은 그것을 '심장'이라 불렀다.
그래서, 도대체 왜 이 세계가 이렇게 생겼느냐고...? 그것 또한 중요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아무도 모르는 답이 이 세계를 문화적으로 갈라놓았다.
레폰은, 언제나 그랬다.
두 해결사는 언제나 움직이며 살았다. 그들은 척추를 건너 제5대지를 향해 향하는 중이였다.
척추의 내부는 뼈 또는 인공 돌출부에 매달려 바삐 움직이는 차량들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
직접 등반하기에는 아무래도 공간이 없었기에, 다른 대지로 가고자 하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스피트라'라고 불리는 차량에 탑승해야만 했다.
덜컹거리는 강철의 거신. 신의 해골 내부를 오르내리도록 설계된 차량이였다.
솔직히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두 소녀도 다른 대지로 가야 할 때엔 항상 스피트라를 타곤 했다.
오늘은 서로 붙어있는 좌석을 예약하여 앉았다. 스피트라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녀들은 주변의 소리를 조형하여 서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는 다른 승객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천사의 노래'는 다 헛소리다?"
스피트라가 게처럼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지독한 리듬에 맞춰 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스승이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천사의 노래는 네 번째가 읊은 예언인데...
분명 무광의 시대에 그런 끔찍한 시기가 있긴 했지만, 노래와 역사의 공통점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해.
대화가 이어져갔다.
"네 번째, 죽었어?" 엘이 물었다.
"아니... 아직 살아있을 거야. 네 번째랑, '신념'이." 넬이 대답했다.
"신념이 두 번째던가? 나는 언제 '번호'를 받을 수 있으려나... 그리고~ 어떤~ 이름을 받으려나~"
"누가 준대?" 넬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레폰의 목소리를 듣는 건 정말 운이 좋아야 일어나는 일이야.
그리고 너한테서 특별한 건 귀가 아니라 눈이잖아.
"내 눈엔 소리도 보이는데?"
"참내..."
"넬, 넬. 노래 불러봐."
"싫어."
"...넬, 나는 정말 추적자가 못 되는 거야?"
"그런 말은 안 했어. 방금 한 얘기는 농담이고. 누가 추적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는 사실...
아무도 몰라. 규칙이 없어. 레폰이 생각하는 걸 우리가 알 길이 어딨겠어. 죽었는걸."
"'신'...이라."
"그리고 지난 천 년간 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스피트라가 멈추어 섰다. 중간중간 승객들을 쉬게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넬, 저거 봐." 엘이 말했다. 그 말대로 넬은 보았다. 척추골 사이의 공간에 펼쳐진 우주를.
신의 척추 뒤로는 셀 수 없이 많은 거대한 밧줄들이 늘어져 있었다.
금빛 밧줄들은 칠흑 같은 우주 공간을 향해 뻗어나가며 넘실대고 있었다.
그 밧줄들은 세계를 잇는 연결고리였다.
레폰의 척추와, 일부 별처럼 보이는 곳을 제외하고는 보이지도 않는 머나먼 세계들을.
배들이 밧줄을 다고 레폰과 그 세계들을 오고 가는 광경이 보였다.
그 모습은 금색 빛줄기를 수놓는 빛의 무리와 같았다.
이 현실은, 모든 세계와 생명은, 신에게서 태어났다. 그것이 진리였다.
그리고 이는 아르케아에게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굶주린 아르케아에게... 이 '역사'가 지금 그 세계에서 불려 가고 있다.
비록 밧줄로 연결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비록 아르케아 또한 죽은 세계일지라도.
아르케아와 그 창조자는 레폰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케아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넬의 죽음, 그것만으로 백색이었던 세계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 20-4 #=====척추의 내부는 뼈 또는 인공 돌출부에 매달려 바삐 움직이는 차량들로 항상 가득 차 있었다.
직접 등반하기에는 아무래도 공간이 없었기에, 다른 대지로 가고자 하는 여행자들은 반드시 '스피트라'라고 불리는 차량에 탑승해야만 했다.
덜컹거리는 강철의 거신. 신의 해골 내부를 오르내리도록 설계된 차량이였다.
솔직히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두 소녀도 다른 대지로 가야 할 때엔 항상 스피트라를 타곤 했다.
오늘은 서로 붙어있는 좌석을 예약하여 앉았다. 스피트라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소녀들은 주변의 소리를 조형하여 서로 조용히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런 사치를 부릴 수 없는 다른 승객들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천사의 노래'는 다 헛소리다?"
스피트라가 게처럼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지독한 리듬에 맞춰 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스승이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천사의 노래는 네 번째가 읊은 예언인데...
분명 무광의 시대에 그런 끔찍한 시기가 있긴 했지만, 노래와 역사의 공통점은 그저 우연이라고 생각해.
대화가 이어져갔다.
"네 번째, 죽었어?" 엘이 물었다.
"아니... 아직 살아있을 거야. 네 번째랑, '신념'이." 넬이 대답했다.
"신념이 두 번째던가? 나는 언제 '번호'를 받을 수 있으려나... 그리고~ 어떤~ 이름을 받으려나~"
"누가 준대?" 넬이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다. "레폰의 목소리를 듣는 건 정말 운이 좋아야 일어나는 일이야.
그리고 너한테서 특별한 건 귀가 아니라 눈이잖아.
"내 눈엔 소리도 보이는데?"
"참내..."
"넬, 넬. 노래 불러봐."
"싫어."
"...넬, 나는 정말 추적자가 못 되는 거야?"
"그런 말은 안 했어. 방금 한 얘기는 농담이고. 누가 추적자가 되느냐 못 되느냐는 사실...
아무도 몰라. 규칙이 없어. 레폰이 생각하는 걸 우리가 알 길이 어딨겠어. 죽었는걸."
"'신'...이라."
"그리고 지난 천 년간 신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스피트라가 멈추어 섰다. 중간중간 승객들을 쉬게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넬, 저거 봐." 엘이 말했다. 그 말대로 넬은 보았다. 척추골 사이의 공간에 펼쳐진 우주를.
신의 척추 뒤로는 셀 수 없이 많은 거대한 밧줄들이 늘어져 있었다.
금빛 밧줄들은 칠흑 같은 우주 공간을 향해 뻗어나가며 넘실대고 있었다.
그 밧줄들은 세계를 잇는 연결고리였다.
레폰의 척추와, 일부 별처럼 보이는 곳을 제외하고는 보이지도 않는 머나먼 세계들을.
배들이 밧줄을 다고 레폰과 그 세계들을 오고 가는 광경이 보였다.
그 모습은 금색 빛줄기를 수놓는 빛의 무리와 같았다.
이 현실은, 모든 세계와 생명은, 신에게서 태어났다. 그것이 진리였다.
그리고 이는 아르케아에게도 어느 정도 들어맞는 이야기였다.
굶주린 아르케아에게... 이 '역사'가 지금 그 세계에서 불려 가고 있다.
비록 밧줄로 연결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비록 아르케아 또한 죽은 세계일지라도.
아르케아와 그 창조자는 레폰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케아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넬의 죽음, 그것만으로 백색이었던 세계를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아직 이 이야기에서 넬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나중에 죽으며, 그 후에 또 한번 더 죽게 된다.
—곧, 소녀들은 '신념'의 이름을 하사받은 레폰의 두 번째 추적자를 만나게 된다.
초월한 추적자.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눈부시고 거대한 창을 언제나 곁에 두는 여인.
넬과 엘은 신념 주변의 기공을 억누르는 의뢰를 수주하여, 지금 이곳 제5대지의 끝자락에 와있다.
이 대지에 도착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조금 피곤해져, 이제 슬슬 쉬고 싶어질 무렵이였다.
두 소녀는 추적자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로지 주변의 기공이 들려주는 알 수 없는 말에만 흥미가 있었다.
엘이[7] 신념의 정강이를 찼다. 그걸 본 넬이 엘의[8] 종아리를 걷어찼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표정을 찡그렸다.[9]
평온한 모습의 신념이 마침내 두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와 함께 형태를 알 수 없는 미약한 권능들이 소녀들과 추적자 가이의 기공을 훑어 지나갔다.
"날 부르는 거니?" 두 번째 추적자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앗, 네." 넬이 자세를 고쳐잡았다."
"네 번째가 더 좋으셨겠지만, 저희도 한 실력 하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아핫, 아하하..."
"네 번째는 지금 바쁠 테지." 신념이 젊은 조형자의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아... 그렇죠. 열한 번째가 최근 들어와서 심장에 있는 집에서 쉬고 있다던데..."
"기공의 심기가 언짢아서 대지 간 통실이 어려운 상황이라 연락 이 닿질 않지."
신념이 무표정으로 넬의 말을 대신 끝마쳤다.
"기공 통신도 안되고, 당연히 비행은 무리고...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아줌마는 할 수 있잖아요." 엘이 끼어들었다. 신념이 시선을 아이에게로 옮겼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요?"
하지만 신념은 대답하지 않았다.[10]
넬은 속으로 생각했다. 신념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오로지 레폰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기묘한 여인과 말을 트고 나서야 이번 의뢰의 세부 사항을 전해 들을 수가 있었다.
대지 너머의 영역, 영원히 스스로를 덮고 덮기를 반복하며 소용돌이치는 권능들의 공간.
관측 가능하며 동시에 불가능한 장소, 기공으로 레폰의 '숨결'을 제압해 되돌려보내는 일이었다.
그 생명의 바다는 레폰의 해골 내부나 척추 뒤의 공간을 제외한 대지 전역에 흐르고 있다.
대지에 기공이 너무 강렬하게 몰아칠 때면...
기계부터 자연까지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괴현상이 일어나곤 한다.
레폰 밖에도 기공과 비슷한 개념의 존재를 지닌 세계가 적게나마 있다.
온갖 형대를 갖추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세상을 주무르는 유령과 같은 존재.
그들의 장난은 때로는 식물을 급격히 성장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기도 한다.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권능'이었다. 소원의 능력을 지닌 이조차 그들과는 맞서기란 힘든 일이었다.
그리하여, 두 소녀는 도우미로서 이곳에 불린 것이다.
둘은 두번째 추적자와는 떨어져 작업하였다. 그들의 명령에 날씨가 마구잡이로 변하였다.
세차게 부는 바람에 옷이 휘날렸다. 높이 든 손의 움직임에 따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들이 움직였다.
땅에 먹구름이 지기 시작했다. 곧 그들의 발 주변에도 구름이 생겨, 땅에서부터 하늘로 비가 내렸다.
이윽고 구름은 천둥번개도 토해냈다.
비록 보기에는 화려하나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이였기에 엘은 금방 질려 딴짓이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번개를 하나 잡아 꽃 모양으로 엮으며 넬에게 이미 수십 번도 물어본 질문을 또 했다.
"우리가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거야?" 넬이 무시해도 놓아주지 않았다. "무슨 속죄야? 그런 거야?"
마침내 넬이 대답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해야 할 일이고 옳은 일이니까..."
"아무짝에 쓸모없는 이딴 일이? 과거에 조형자들이... 독재 좀 했다고 우리가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야?
내가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지배 좀 하면 그게 뭐가 어때?
넬, 알려줘.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야? 대체 누구 마음에 들자고? 신? 레폰은 이미 죽었어."
"조용히 해."
"우리 조형자들이 죽였잖아, 응?"
넬이 팔을 내리고 제자를 바라보았다. 엘은 깔깔대며 웃었으나 넬의 입꼬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두 소녀의 주변으로 번개가 올려 치며 넬의 눈동자를 비추었다.
"...넬, 너 진짜 예쁜 거, 알고 있어?" 엘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보인 게 유감이지만."
기공이 흘러넘치며 뜨거워졌다. 조그마한 불꽃들이 마구잡이로 솟아올랐다 가라앉았다.
권능들이 알 수 없는 말로 속삭였다. 킥킥대는 엘을 향해 넬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엘의 멱살을 잡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꽉 다문 이 사이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너는 왜 항상!"
그리고 말을 잇지 않았다. 엘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졌다.
천 년이나 지난 일이다.
조형자들을 자신들이 신을 죽였다고 말한다. 어떤 이를은 신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었다고 말하며,
또 어떤 이들은 신이 당신의 몸으로 이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또 어떤 이들은... 확실한 것은 신이 죽었다는 사실 단 하나뿐이었다.
그럼에도, 조형자들은 아직 신에게 목소리가 남아있다고 말한다.
조형자들은 오만했고, 잔인한 통치를 펼쳤으며, 가장 거대한 죄를 자신들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에 사람들은 권능에게 살아있는 모든 조형자를 벌해달라 호소했으며, 권능은 기도에 답했다...
천 년 전, 신의 손을 지닌 자들이 레폰에서 사라질 뻔한 시대.
살아남은 소수의 조형자들은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형자들은 여전히 레폰의 심장에서는 아직 그의 목소리가 흐르고 있으며,
오로지 그들만이, 레폰에게 선택받은 자들만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신성한 땅에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진 대지에서, 두 소녀의 귀에 레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레폰'이 두 소녀에게 전했다. 다가오고 있는 종말의 때를.
소녀들은[11] 신의 손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12] 아이들일 뿐이었고,
그 손조차 언젠가는 잿가루가 되어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들의 힘은 강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을 조금 조형할 수 있는 정도였고, 엘의 경우엔 세계의 내부를 관찰할 힘을 지니고 있는 정도였다.
아직 초월자가, 추적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실 자체를 비틀거나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과 싸울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도 큰 역경을 마주한 소녀들에 불과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그대들에겐 익숙한 상황 아닌가?
둘은 조금 전까지 싸우던 것도 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쩌면 사람의 말을 하는 희귀한 권능이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따뜻하고 또렷했다.
머리보다는 가슴에 먼저 닿는 말이었다. 분영하다. 그것은 레폰의 목소리였다. 그가 말하기를,
"두 번째 추적자가... 레폰의 척추를 자르려 한다고...?" 넬이 목소리가 말한 내용을 반복했다.
"넬! 너도 들었어? 그, 그거, 방금 그거...! 레폰이지? 레폰의 목소리지?"
"너도 들었..."
넬이 엘과 같은 질문을 하려다 말을 흐렸다. 그리고 버벅대며 말했다.
"그, 그래, 나도 들었어. 맞아..."
불안한 목소리로 엘이 물었다. "'그들이 잠에 들고 깨어날 때'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대지 너머에 존재하는 권능..." 넬이 말했다.
"그 권능이 밤에 잠들어 어두워졌을 때와, 낮에 일어나 밝아졌을 때를 말하는 거야... 레폰에는 태양이나 달이 없잖아. 권능이 존재할 뿐. 그리고 그 말은 두 번 반복했다는 건..."
"이틀 후?"
"이틀 후..."
"..."
둘은 말을 잃었다. 그런 둘을 두고 권능들은 여전히 날뛰었다.
"정말 그런 짓을 하려면 레폰의 척추 뒤의 공간으로 가야 해..." 넬이 중얼거렸다.
"그러지 않으면 권능들이 막아설 테니까... 하지만... 레폰의 척추를 자른다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아무리 추적자라도..."
엘이 스승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여전히 멱살을 잡혀 들어 올려진 상태였으니까.
넬은 엘을 내려놓고 제5대지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이틀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넬이 조용히 말했다. "신념을 막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사람들에게 알릴 수단이 없으니까... 아니, 말한다 해도 누가 믿어주겠어? 우린... 우린 고작..."
"아무것도 안 하면 되잖아." 엘이 말했다. 넬이 당황한 표정으로 제자를 쳐다보았다.
"레폰이... 말했잖아. '이것이 죽음. 이것이 끝.'이라고. 우린...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이 세계를 떠나기만 하면 돼."
"엘, 너 지금..." 스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밧줄을 타고 떠난다 해도, " 넬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척추가 무너지면 밧줄로 이어진 세계들도 무너지고 말아. 밧줄이 끊어진 세계는 다 그랬잖아."
"그렇지. 하지만 우린 레폰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곧 밧줄에 의지할 필요도 없어질 거야."
넬은 표정을 찡그렸다.
"난... 남을 거야. 레폰께서 내게 초월을 하사하신다면, 그 힘으로 신념을 막을 거야.
엘,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알아. 떠나고 싶으면... 막지 않을게. 하지만 나는 같이 가지 않을 거야. "
넬이 등을 돌려 손을 뻗어 난폭한 기공을 잠재우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등을 노려보는 조그마한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엘, 너는 신이 되고 싶은 거지? 네가 생각하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난 다 알아.
하지만 레폰이야 말로 진정한 모범이야. 신을 정의하는 건 강력한 힘도, 갑작스러운 변덕도 아니야."
신이라는 건 사람들을 지키고 구원하는 존재. 그렇기에 신의 호의를 축복이라 부르는 거야."
...엘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끝냈다.
둘 사이에,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신념과 소녀들 사이에, 조용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은 레폰에게 들은 말을 두 번째에게 전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두려웠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공포를 마주해야 했다. 천사의 노래에 쓰이지 않은 종말에 맞서야 했다.
이틀 후, 두 소녀는 또다시 신념과 만나...
그녀를 막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세상 그 자체든, 무엇이든, 모든 것을 이용하리라.
=====# 20-6 #=====그럼에도 그들은[12] 아이들일 뿐이었고,
그 손조차 언젠가는 잿가루가 되어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들의 힘은 강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주변을 조금 조형할 수 있는 정도였고, 엘의 경우엔 세계의 내부를 관찰할 힘을 지니고 있는 정도였다.
아직 초월자가, 추적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실 자체를 비틀거나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과 싸울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은, 너무나도 큰 역경을 마주한 소녀들에 불과했다.
이 이야기를 듣는 그대들에겐 익숙한 상황 아닌가?
둘은 조금 전까지 싸우던 것도 잊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쩌면 사람의 말을 하는 희귀한 권능이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목소리는 너무나 따뜻하고 또렷했다.
머리보다는 가슴에 먼저 닿는 말이었다. 분영하다. 그것은 레폰의 목소리였다. 그가 말하기를,
"두 번째 추적자가... 레폰의 척추를 자르려 한다고...?" 넬이 목소리가 말한 내용을 반복했다.
"넬! 너도 들었어? 그, 그거, 방금 그거...! 레폰이지? 레폰의 목소리지?"
"너도 들었..."
넬이 엘과 같은 질문을 하려다 말을 흐렸다. 그리고 버벅대며 말했다.
"그, 그래, 나도 들었어. 맞아..."
불안한 목소리로 엘이 물었다. "'그들이 잠에 들고 깨어날 때'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대지 너머에 존재하는 권능..." 넬이 말했다.
"그 권능이 밤에 잠들어 어두워졌을 때와, 낮에 일어나 밝아졌을 때를 말하는 거야... 레폰에는 태양이나 달이 없잖아. 권능이 존재할 뿐. 그리고 그 말은 두 번 반복했다는 건..."
"이틀 후?"
"이틀 후..."
"..."
둘은 말을 잃었다. 그런 둘을 두고 권능들은 여전히 날뛰었다.
"정말 그런 짓을 하려면 레폰의 척추 뒤의 공간으로 가야 해..." 넬이 중얼거렸다.
"그러지 않으면 권능들이 막아설 테니까... 하지만... 레폰의 척추를 자른다니, 그게 가능하기나 한 건가? 아무리 추적자라도..."
엘이 스승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여전히 멱살을 잡혀 들어 올려진 상태였으니까.
넬은 엘을 내려놓고 제5대지의 끝자락을 바라보았다.
"이틀 후에 일어날 일이라면..." 넬이 조용히 말했다. "신념을 막을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사람들에게 알릴 수단이 없으니까... 아니, 말한다 해도 누가 믿어주겠어? 우린... 우린 고작..."
"아무것도 안 하면 되잖아." 엘이 말했다. 넬이 당황한 표정으로 제자를 쳐다보았다.
"레폰이... 말했잖아. '이것이 죽음. 이것이 끝.'이라고. 우린...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
이 세계를 떠나기만 하면 돼."
"엘, 너 지금..." 스승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밧줄을 타고 떠난다 해도, " 넬이 다시 목소리를 냈다.
"척추가 무너지면 밧줄로 이어진 세계들도 무너지고 말아. 밧줄이 끊어진 세계는 다 그랬잖아."
"그렇지. 하지만 우린 레폰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곧 밧줄에 의지할 필요도 없어질 거야."
넬은 표정을 찡그렸다.
"난... 남을 거야. 레폰께서 내게 초월을 하사하신다면, 그 힘으로 신념을 막을 거야.
엘,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거 알아. 떠나고 싶으면... 막지 않을게. 하지만 나는 같이 가지 않을 거야. "
넬이 등을 돌려 손을 뻗어 난폭한 기공을 잠재우는 작업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등을 노려보는 조그마한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엘, 너는 신이 되고 싶은 거지? 네가 생각하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 난 다 알아.
하지만 레폰이야 말로 진정한 모범이야. 신을 정의하는 건 강력한 힘도, 갑작스러운 변덕도 아니야."
신이라는 건 사람들을 지키고 구원하는 존재. 그렇기에 신의 호의를 축복이라 부르는 거야."
...엘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작업을 끝냈다.
둘 사이에, 그리고 잠시 후 돌아온 신념과 소녀들 사이에, 조용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들은 레폰에게 들은 말을 두 번째에게 전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으니까.
두려웠으니까.
그러나, 그들은 공포를 마주해야 했다. 천사의 노래에 쓰이지 않은 종말에 맞서야 했다.
이틀 후, 두 소녀는 또다시 신념과 만나...
그녀를 막기 위해서라면 그들은 세상 그 자체든, 무엇이든, 모든 것을 이용하리라.
그림자 우박이 내리는 26번 그늘 초원을 지나고,
가라앉은 산맥을 넘어,
냉기의 기공에게 사로잡혀 얼어붙은 수도 '논'을 거쳐,
소녀들은 걷고, 타고, 날아 제5대지를 가로질러 관문 도시에 도착했다.
그리고 레폰의 척추 뒤로 통하는 비밀 통로를 찾아냈다.
은밀히 지나갈 생각이었으나 서두르고 있을 때는 어쩔 수 없을 때가 있다.
빛을 조형해 모습을 숨겼음에도 완전히 투명해질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착했다.
수 천개의 밧줄이 늘어진 공간. 산소가 새어 나와 우주로 흩어지는 장소. 신의 척추 뒤.
마침내 그들이 당도했다.
거대한 금빛 밧줄이 탑과 같은 척추로부터 나와 넘실대는 공간.
여인은 이미 여기에 있었다. 공간을 뒤트는 듯한 기묘한 빛으로 일렁이는 창을 들고서.
두 번째 추적자가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쳤다.
"...너희구나." 감정이 없는 목소리로 여인이 말했다.
"저번에 만났지. 여기엔 뭐 하러 왔니? 배들 오고 가는 거 보려고?"
두 소녀에게 답이 없자, 여인은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레폰의 목소리를 들었구나."
넬이 물었다. "신념... 왜 이런 짓을 하려는 거에요? 레폰이 시키기라도 했나요?"
신념이 대답했다. "레폰에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고개를 슬픈 듯 저었다. "네가 듣고 싶은 말은 해줄 수 없단다."
"그렇겠지." 엘이 말했다. 신념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폰의 '죽음'은 비참한 기적이란다." 추적자가 말했다.
"너희는 레폰 이외의 세계를 본 적이 없지... 그의 총애만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
레폰이 바라는 바를 멋대로 정하고, 그대로 움직이지. 너희는 레폰의 노예이고, 레폰은 너희의 노예인 거야.
이 세상은 잘못되었어. 너희 생각보다도 훨씬 더. 이제 그 잘못을 바로잡을 때야."
신념이 창을 들어 올렸다. 넬은 어렴풋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지만,
엘은 창날을 보고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저 창의 날은 '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현실'에 존재함으로서, 이 현실의 시공간을 베어내고 있다.
엘은 여인의 창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도려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창은 단순히 죽이기 위한 무기가 아니라, '지우기' 위한 무기인 것이다.
"굳이 내 계획을 설명해 주진 않을 거야. " 신념이 말했다.
"다만 그 끝의 결과는, 만물의 재탄생이라는 것만 알려줄게."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을 텐데?" 넬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칠판을 지우는 것과 같아." 신념이 답했다. "지우고 나면 뭐가 쓰여있었는 지는 알 바 아니잖니."
넬은 더 이상 말을 나눌 가치가 없다 판단하고, 신념에게 달려들었다.
허파로부터 거친 숨이 드나들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폭풍이 솟아올랐다.
성냥개비에서 거대한 불의 강이 쏟아져나왔다.
힘과 힘이 원초적인 맹렬함을 머금고 충돌했다.
이것이 조형자들의 싸움이었다.
'만물'을 이용한 싸움.
...하지만, 이것을 '싸움'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했다.
신념이 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그것만으로 넬은 강력한 힘에 의해 날아가버렸다.
둔탁한 소리를 내며 넬이 레폰의 척추에 부딪혔다. 입속에 비린 철의 맛이 느껴졌다.
몸의 깊숙한 곳부터 충격이 온몸에 퍼져 마비될 것만 같았다.
간신히 고개를 올리자 신념이 제자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린 광경이 보였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넬은 기도했다.[13] 간절히, 기도했다.
...'원한다'거나, '필요하다'는 걸로는 부족하다.
운명의 파도를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기적.
그리고 기적은 항상 오래전에 심어진 씨앗으로부더 발현한다.
열정과 고난으로 심은 씨앗은 때가 되면 피어나는 법이다.
성실하고 박학한 이들이여, 그대들이 신께 기도한다면,
그 목소리는 신에게 닿을지도 모른다.[14] 그 행위에 '믿음'은 필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넬, 그 소녀는 신을 믿었다.
그리하여 생각했다. 믿었기 때문에, 레폰이 자기 기도를 들어준 것이라고.
이곳 레폰에는 수수께끼가 존재한다. 천 년간 레폰의 목소리를 들은 이는 아무도 없다.
레폰은 2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죽어있었다.
그에게 욕구나 욕망이 있을까? 무엇이 신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하는가? 왜 신은 넬에게 말을 건넸을까?
천 년 전에는 왜 신념에게 목소리를 건넸을까?
분명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15]
신에게는 너희[16] 모두를 위한 계획이 있는 법이니까.
넬에게 또다시 레폰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넬의 온 몸으로 스며들었고, 레폰의 척추가 열을 뿜었다.
레폰의 심장 깊숙한 곳에 있는 무언가가 박동했고, 넬의 심장이 그에 맞추어 뛰었다.
넬이 세상을 보는 눈과 사고하는 언어가 바뀌었다. 그 손에는 신의 조각이, 그리고 새로운 이름이 내려졌다.
척추가 발하는 빛을 목도한 두 번째는 숨을 삼켰다. 넘실대는 밧줄 사이로 새로운 '번호'가 강림했다.
그 틈을 타 엘은 주변의 기공을 움직여 신념을 멀리 밀어냈다.
그리고 신념과 엘, 두 사람은 모두 신을 바라보았다.
금빛 조각으로 감싸인 넬의 주변에는 아무도 모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그 너머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레폰이 그녀에게 영원히[17] 군림할 것을 명했다.
넬은 "여덟 번째[18] 추적자"이며 그 이름은 연민[19]이리라.
전신의 상처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의 눈이 한번 더, 두 번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새로운 '신'이 탄생했다. 그리고 레폰의 목소리가 물러났다.
두 추적자가 맞붙었다.
총천연색의 빛이 만연하였으며 폭풍 바람처럼 힘이 둘 사이를 몰아쳤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연민'은 신념의 목을 치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신념은 그 결의를 알아차리고, 방향을 틀어 스승을 도우려는 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간격에서 벗어나 아이를 향해 곧바로 날아가,
오른쪽 손목을 잡아 그대로 들어 올려,
창을 휘둘러 오른팔을 취했다.
엘은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가 아랑곳하지 않고 내던진 팔은 그대로 우주 공간을 향해 부유하며 떨어졌다.
엘의 의식이 멀여졌다. 그 광경을 목도한 넬은 얼어붙었다. 신념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신념의 넬의 어깨를 잡아,
창을 들어 올려,
순식간에-
몸을 꿰뚫었다.
창이 닿음과 동시에 현실 그 자체의 이음새가 풀려나가며 넬의 '존재'를 '지웠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넬은 지워졌다.
그녀의 제자는... 차갑게 몸이 식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엘은...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믿음이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믿음은 변질하기 쉬운 것.
지식, 논리, 확정성. 그것만이 레폰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길이며, 엘이 움직이는 원동력이였다.
넬은 죽었다.
두 번째가 스승의 시체를 내던지는 모습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엘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레폰의 척추로 눈을 돌렸다. 눈이 말라붙어, 피가 흘렀고, 뇌에 혈류가 몰아쳤다.
엘이 시간을 멈췄다.
그녀의 첫사랑에게 받은 이름, '엘(L)'. 간단명료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그 이름.
하지만 그것은 본명의 첫 글자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특별한 것이었다. 스스로가 부여한 의미 외에는 그 무엇도 뜻하지 않는 단어.
아르케아의 심장 위에 바쳐진 그 신성한 이름은, 모든 것을 초월한 새로운 존재의 이름이었다.
'레폰'은 신이다.
그리고...
'라크리미라(Lacrymira)' 는 또 다른 신이다.
꿰뚫는 듯한 그 눈동자가 신의 척추를, 심장을 보았다.
신의 영혼이 지닌 색을 보았다.
그리고, 명했다.
-레폰은,
여러 의미로 불가해한 존재이다.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기에 자신의 아이들이 전하는 기도조차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가 레폰에게 명령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기적이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수십만 가지 방법의 하나일 뿐.
이를 '운명'이라 칭하는 것도 진부한 표현이리라.
라크리미라는 부정할 여지 없이, 그와 동등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텅 비어 말라붙었던 신경 다발에 전기 신호가 흐르며 또다시 세상을 지각하기 시작했다.
돌처럼 굳었던 등에 다시 익숙한 감각이 돌아왔다.
신의 심장이 흔들리자 몰아치던 기공이 한순간 멈추어 섰다.
현실 그 자체가 바뀌었다. 세상의 만물이 그녀를 '인지'했다.
레폰을 근본부터 바꾸며, 자기 자신이 세상의 법칙 그 자체가 되었다.
아이가 신에게 말했고, 신은 그 말을 들었다.
그 눈동자에만 비치는 깊은 심연으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레폰에게 축복받은 그 눈, 레폰에게 하사받은 손과 손가락.
라크리미라는 말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죽은 레폰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번호를 달라. 이름을 달라.
그리고 그 상징들에 완벽함을 부여하라. 이 신성한 몸에 모든 것을 하사하라.
다른 번호나 이름이 아닌, '그녀'의 것을. 넬의 것을.
넬은 그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으니.
레폰이 동의했다. 라크리미라가 대신 레폰의 유산이 되리라.
아이가 레폰의 척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신이 남긴 의지를 조형했다.
거인의 몸으로부터 늘어진 금빛 밧줄 사이로 새로운 색채가 탄생했다.
그 색채야말로 라크리미라였다.
온 우주가, 신의 갈비뼈와 척추가, 대지와 기공이, 그 색으로 차갑게 빛났다.
권능이 몸을 채웠다. 떨어져 나갔던 오른팔이 돌아왔다.
스스로를 다시 조형해 모든 상처를 메웠다.
레폰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가 말했다.
이곳에서 군림하라, 내가 존재하기 전에도, 존재한 후에도.
라크리미라, 초월자이자 여덟 번째 추적자.
혜안이여.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혜안이 상처가 아문 눈동자로 두 번째를 바라보았다.
새로이 각성한 혜안을 보고, 신념은 레폰의 의지가 굳세다는 것을 괴롭게 곱씹었다.
맞서 싸웠다. 온 힘을 다해서. 그러나 세찬 파도에 맞서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라크리미라는 압도적이었다. 새로운 땅을 만들어 그곳에 신념을 메다꽂았다.
그녀의 등 뒤에 작은 별을 만들어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러자 추적자의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죽어버린 별의 잔해를 치우자, 고요만이 남았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라크리미라는 스승이 죽은 채로 두지 않았다.
지금 딛고 서 있는 새로운 땅으로 스승의 육신을 불러와
상처를 닫고 영혼을 다시 불어넣었다.
라크리미라 앞에 무릎을 꿇은 넬. 그 등 뒤로 보이는 레폰의 척추.
넬은 자신이 죽어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 한기가 돌았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의미로, 넬은 제자를 저버렸다.
"..."
라크리미라는 말없이 넬을 내려다보았다. 그 존재의 본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넬, 왜 함께 가주지 않는 거야?"
넬이 대답하지 않아도 동생은 '볼 수 있었다'. 언니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가지 말아달라 애원'하고 싶은 것이 스승의 마음인 것을.
신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자고, 라크리미라가 평소에 수없이 제안했기에.
"넬... 부활했으면 말을 좀 해봐." 신이 말했다.
넬이 고개를 들어 마침내 대답했다. "왜 함께 가지 않냐고...? 너는 애초에 왜 가고 싶은 건데?
그 답은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지만, 라크리미라는 굳이 대답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니까."
"넬, 너도 너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 나와 떠나자.
아무도 너에게 감사하지 않을 거고, 아무도 너를 칭찬해주지 않을 거야.
결국은 천사의 손에 죽어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죽지 않아도 돼." 스승이 대답했다. "여기 남아서..."
라크리미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보여. 종말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어. 이 세계에 남은 모든 조형자가 죽을 거야."
넬이 고개를 숙인 채 가로로 저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시끄러워!"
라크리미라가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만물을 타고 흘렀다. 넬이 얼어붙었다.
넬이 다시 바라본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넬, 나 방금 거짓말 했어." 분노에 떠는 목소리로 라크리미라가 말했다.
"나, 너를 위해서라면 살 수 있어. 이걸 꼭 말을 해야 해? 이 말을 들어야겠어?
왜, 아주 종이에다 써줄까? 널 사랑한다고?!"
그 말을 들은 넬의 표정이 무너졌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딸꾹질이 나왔다.
곧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하염없이 울었다.
스승의 눈물 위로 라크리미라가 소리쳤다.
"사랑한단 말이야! 네가 아니면 내가 여기 왜 있겠어?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널 사랑하지 않는 방법 따위 이 세상에 없다고!"
"넌 내게 있어 모든 것이야...
넬... 네가 죽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아. 싫어!"
"울기나 하고... 대답은 안 하고 울기나 하고!
버림받아 고독한 넬... 언제나 자기보다 남이 먼저지... 싫어. 그런 점 정말 싫어.
너보다 하등한 것들한테 왜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는 거냐고!"
라크리미라가 말을 멈추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에게 그 차가운 시선이 닿았다.
넬은 고개를 저었다. 넬은 그 누구도 버릴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엘을 제외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라크리미라가 넬에게 말했다. "애처롭다, 정말로."
"그래." 신이 말을 이었다. "너는 '고독' 이니까. '8'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넬이 고개를 들어 제자를 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레폰의 척추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너에겐 파멸의 징표가...
저주가 어울려. 너는 지금부터 '6' 이야. 평생 그 재앙의 상징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해."
레폰의 심장 깊숙한 곳, 새로운 글귀가 검은 캔버스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진실이 되었다.
'고독'으로 변해버린 스승이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잘못했어..." 뿐이었다.
그리고 라크리미라가 답했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넬... 너의 그런 점도 난 사랑해."
새로운 신의 등 뒤로 균열이 생겼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
신은 허리를 굽혀 한 손으로 넬의 얼굴을 살며시 들어,
언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잠시 망설였다.
잠시 서서, 남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스승으로부터, 레폰으로부터.
여전히, 손은 언니의 뺨에 얹혀 있었다.
손을 거두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관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관문이 닫히고, 신은 떠났다.
조형자들의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가 전했을 터이다.
그대들이 '타이리츠'라 부르는 이가 죽어가던 때의 이야기.
타이리츠 이전에, 넬의 의미 없는 죽음이 있었다.
'권능'은 곧 '힘'이기에 다스릴 수 있는 것이나 레폰에선 그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천사가 강림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조형자들은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영원한 자'는 그곳에 없었기에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났다. 수백 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니라고 말해줄 지도 모르지만...
신은 여정 도중에 아르케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넬의 죽음과 함께, 아르케아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 사실을 라크리미라는 모른다.
하지만 아르케아의 이야기는 레폰의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가 전해주겠지.
이 역사는 전달되었다. '도난'당했다고 보아도 되겠지. 어찌 됐든, 온전히 기록되었다.
자, 어디 보자...
새로운 신의 의지는 변덕이 심해. 원체 기분파인 꼬마 아가씨였으니.
그녀의 목적? 그래, 어지간히 알고 싶겠지.
단 한 가지만 알려주도록 할게.
그녀를 믿지 마.
'진실'은 믿음에서 태어나는 법이니까.
아르케아의 창조주는 힘을 잃었고,
아르케아 그 자체는 죽었거나 죽어가는 중이야.
하지만...
아르케아엔 아직 살아있는 신이 있잖아.
=====# 20-8 #=====총천연색의 빛이 만연하였으며 폭풍 바람처럼 힘이 둘 사이를 몰아쳤다.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연민'은 신념의 목을 치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신념은 그 결의를 알아차리고, 방향을 틀어 스승을 도우려는 엘을 향해 달려들었다.
간격에서 벗어나 아이를 향해 곧바로 날아가,
오른쪽 손목을 잡아 그대로 들어 올려,
창을 휘둘러 오른팔을 취했다.
엘은 자신의 오른팔을 바라보았다.
두 번째가 아랑곳하지 않고 내던진 팔은 그대로 우주 공간을 향해 부유하며 떨어졌다.
엘의 의식이 멀여졌다. 그 광경을 목도한 넬은 얼어붙었다. 신념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신념의 넬의 어깨를 잡아,
창을 들어 올려,
순식간에-
몸을 꿰뚫었다.
창이 닿음과 동시에 현실 그 자체의 이음새가 풀려나가며 넬의 '존재'를 '지웠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에, 넬은 지워졌다.
그녀의 제자는... 차갑게 몸이 식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엘은... 그 무엇도 믿지 않았다.
믿음이 있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동시에 그 믿음은 변질하기 쉬운 것.
지식, 논리, 확정성. 그것만이 레폰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길이며, 엘이 움직이는 원동력이였다.
넬은 죽었다.
두 번째가 스승의 시체를 내던지는 모습을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숨이 거칠어졌다. 심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엘의 정신은 어느 때보다 또렷했다.
레폰의 척추로 눈을 돌렸다. 눈이 말라붙어, 피가 흘렀고, 뇌에 혈류가 몰아쳤다.
엘이 시간을 멈췄다.
그녀의 첫사랑에게 받은 이름, '엘(L)'. 간단명료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찬 그 이름.
하지만 그것은 본명의 첫 글자일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특별한 것이었다. 스스로가 부여한 의미 외에는 그 무엇도 뜻하지 않는 단어.
아르케아의 심장 위에 바쳐진 그 신성한 이름은, 모든 것을 초월한 새로운 존재의 이름이었다.
'레폰'은 신이다.
그리고...
'라크리미라(Lacrymira)' 는 또 다른 신이다.
꿰뚫는 듯한 그 눈동자가 신의 척추를, 심장을 보았다.
신의 영혼이 지닌 색을 보았다.
그리고, 명했다.
-레폰은,
여러 의미로 불가해한 존재이다.
아무 것도 들을 수 없기에 자신의 아이들이 전하는 기도조차 듣지 못한다.
그러나, 그녀가 레폰에게 명령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기적이란 그를 움직이게 하는 수십만 가지 방법의 하나일 뿐.
이를 '운명'이라 칭하는 것도 진부한 표현이리라.
라크리미라는 부정할 여지 없이, 그와 동등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텅 비어 말라붙었던 신경 다발에 전기 신호가 흐르며 또다시 세상을 지각하기 시작했다.
돌처럼 굳었던 등에 다시 익숙한 감각이 돌아왔다.
신의 심장이 흔들리자 몰아치던 기공이 한순간 멈추어 섰다.
현실 그 자체가 바뀌었다. 세상의 만물이 그녀를 '인지'했다.
레폰을 근본부터 바꾸며, 자기 자신이 세상의 법칙 그 자체가 되었다.
아이가 신에게 말했고, 신은 그 말을 들었다.
그 눈동자에만 비치는 깊은 심연으로 목소리를 흘려보냈다.
레폰에게 축복받은 그 눈, 레폰에게 하사받은 손과 손가락.
라크리미라는 말했다. 이해할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언어로.
죽은 레폰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번호를 달라. 이름을 달라.
그리고 그 상징들에 완벽함을 부여하라. 이 신성한 몸에 모든 것을 하사하라.
다른 번호나 이름이 아닌, '그녀'의 것을. 넬의 것을.
넬은 그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으니.
레폰이 동의했다. 라크리미라가 대신 레폰의 유산이 되리라.
아이가 레폰의 척추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신이 남긴 의지를 조형했다.
거인의 몸으로부터 늘어진 금빛 밧줄 사이로 새로운 색채가 탄생했다.
그 색채야말로 라크리미라였다.
온 우주가, 신의 갈비뼈와 척추가, 대지와 기공이, 그 색으로 차갑게 빛났다.
권능이 몸을 채웠다. 떨어져 나갔던 오른팔이 돌아왔다.
스스로를 다시 조형해 모든 상처를 메웠다.
레폰이 그녀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가 말했다.
이곳에서 군림하라, 내가 존재하기 전에도, 존재한 후에도.
라크리미라, 초월자이자 여덟 번째 추적자.
혜안이여.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혜안이 상처가 아문 눈동자로 두 번째를 바라보았다.
새로이 각성한 혜안을 보고, 신념은 레폰의 의지가 굳세다는 것을 괴롭게 곱씹었다.
맞서 싸웠다. 온 힘을 다해서. 그러나 세찬 파도에 맞서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라크리미라는 압도적이었다. 새로운 땅을 만들어 그곳에 신념을 메다꽂았다.
그녀의 등 뒤에 작은 별을 만들어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그러자 추적자의 육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죽어버린 별의 잔해를 치우자, 고요만이 남았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라크리미라는 스승이 죽은 채로 두지 않았다.
지금 딛고 서 있는 새로운 땅으로 스승의 육신을 불러와
상처를 닫고 영혼을 다시 불어넣었다.
라크리미라 앞에 무릎을 꿇은 넬. 그 등 뒤로 보이는 레폰의 척추.
넬은 자신이 죽어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차렸다. 한기가 돌았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의미로, 넬은 제자를 저버렸다.
"..."
라크리미라는 말없이 넬을 내려다보았다. 그 존재의 본질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넬, 왜 함께 가주지 않는 거야?"
넬이 대답하지 않아도 동생은 '볼 수 있었다'. 언니의 마음이 자신과 같지 않다는 것을.
'가지 말아달라 애원'하고 싶은 것이 스승의 마음인 것을.
신이 되어 이 세상을 떠나자고, 라크리미라가 평소에 수없이 제안했기에.
"넬... 부활했으면 말을 좀 해봐." 신이 말했다.
넬이 고개를 들어 마침내 대답했다. "왜 함께 가지 않냐고...? 너는 애초에 왜 가고 싶은 건데?
그 답은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지만, 라크리미라는 굳이 대답했다. "나는 나를 위해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니까."
"넬, 너도 너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 나와 떠나자.
아무도 너에게 감사하지 않을 거고, 아무도 너를 칭찬해주지 않을 거야.
결국은 천사의 손에 죽어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죽지 않아도 돼." 스승이 대답했다. "여기 남아서..."
라크리미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는 보여. 종말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어. 이 세계에 남은 모든 조형자가 죽을 거야."
넬이 고개를 숙인 채 가로로 저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시끄러워!"
라크리미라가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만물을 타고 흘렀다. 넬이 얼어붙었다.
넬이 다시 바라본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넬, 나 방금 거짓말 했어." 분노에 떠는 목소리로 라크리미라가 말했다.
"나, 너를 위해서라면 살 수 있어. 이걸 꼭 말을 해야 해? 이 말을 들어야겠어?
왜, 아주 종이에다 써줄까? 널 사랑한다고?!"
그 말을 들은 넬의 표정이 무너졌다.
눈시울이 붉어지며 딸꾹질이 나왔다.
곧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하염없이 울었다.
스승의 눈물 위로 라크리미라가 소리쳤다.
"사랑한단 말이야! 네가 아니면 내가 여기 왜 있겠어?
혼자 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 널 사랑하지 않는 방법 따위 이 세상에 없다고!"
"넌 내게 있어 모든 것이야...
넬... 네가 죽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 않아. 싫어!"
"울기나 하고... 대답은 안 하고 울기나 하고!
버림받아 고독한 넬... 언제나 자기보다 남이 먼저지... 싫어. 그런 점 정말 싫어.
너보다 하등한 것들한테 왜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는 거냐고!"
라크리미라가 말을 멈추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있는 소녀에게 그 차가운 시선이 닿았다.
넬은 고개를 저었다. 넬은 그 누구도 버릴 수 없었다. 그 누구도... 엘을 제외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라크리미라가 넬에게 말했다. "애처롭다, 정말로."
"그래." 신이 말을 이었다. "너는 '고독' 이니까. '8'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넬이 고개를 들어 제자를 보았다. 그녀는 어느새 레폰의 척추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너에겐 파멸의 징표가...
저주가 어울려. 너는 지금부터 '6' 이야. 평생 그 재앙의 상징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해."
레폰의 심장 깊숙한 곳, 새로운 글귀가 검은 캔버스 위에 새겨졌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진실이 되었다.
'고독'으로 변해버린 스승이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잘못했어..." 뿐이었다.
그리고 라크리미라가 답했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넬... 너의 그런 점도 난 사랑해."
새로운 신의 등 뒤로 균열이 생겼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
신은 허리를 굽혀 한 손으로 넬의 얼굴을 살며시 들어,
언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잠시 망설였다.
잠시 서서, 남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스승으로부터, 레폰으로부터.
여전히, 손은 언니의 뺨에 얹혀 있었다.
손을 거두어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관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관문이 닫히고, 신은 떠났다.
조형자들의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하나 남아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이가 전했을 터이다.
그대들이 '타이리츠'라 부르는 이가 죽어가던 때의 이야기.
타이리츠 이전에, 넬의 의미 없는 죽음이 있었다.
'권능'은 곧 '힘'이기에 다스릴 수 있는 것이나 레폰에선 그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천사가 강림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조형자들은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영원한 자'는 그곳에 없었기에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다.
긴 시간이 지났다. 수백 년이 지났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는 그렇게 오래전 일이 아니라고 말해줄 지도 모르지만...
신은 여정 도중에 아르케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넬의 죽음과 함께, 아르케아는 그녀를 발견했다.
...그 사실을 라크리미라는 모른다.
하지만 아르케아의 이야기는 레폰의 것이 아니다. 그 이야기는 또 다른 이가 전해주겠지.
이 역사는 전달되었다. '도난'당했다고 보아도 되겠지. 어찌 됐든, 온전히 기록되었다.
자, 어디 보자...
새로운 신의 의지는 변덕이 심해. 원체 기분파인 꼬마 아가씨였으니.
그녀의 목적? 그래, 어지간히 알고 싶겠지.
단 한 가지만 알려주도록 할게.
그녀를 믿지 마.
'진실'은 믿음에서 태어나는 법이니까.
아르케아의 창조주는 힘을 잃었고,
아르케아 그 자체는 죽었거나 죽어가는 중이야.
하지만...
아르케아엔 아직 살아있는 신이 있잖아.
들어봐.
신에게 규칙 따윈 없어.
규칙조차 신 이 만드는 거니까.
법 과 질서 는 신 의 의지에 따라 세워진 거야.
'자연'의 신도 있고, '허무'의 신도 있지.
위대한 이름을 가진 위대한 신들, 멍청한 신들과 감히 말할 수 없는 이름을 지닌 신들.
그리고, 우리 인간 신들.
나는 여덟 번째 . 혜안 이야.
그런데 우리 작은 친구, 내 진명을 감히 알게 되다니.
비밀 이야기를 엿들었구나?
조형자, 초월자, 추적자. 그게 바로 '나' . 완벽하고, 무한하며, 전지한 존재.
이걸 '신' 이외에 어떻게 표현하겠어?
그리고, 이 신께서는 아량이 넓어서 말이야...
이 바래고 찢어진 장막의 세계를 다시 이어 붙이고 싶단 말이지.
그런데, 이 세계는 자꾸 무너져 내리고 말아.
아, 우리 '자매님'과 그 소중한 친구의 모습이 '다른 눈'에 비치고 있네.
죽어가는 아르케아...
이 세계를 헤쳐 나가고 있는 모습이.
바보들이야. '신성'을 버리고 '삶'을 택하다니.
아르케아와 같은 선택을 했어. 즉 '죽음' 을 받아들였다는 뜻이야.
슬프기도 해라.
있지, '나'는 기억해.
그 옛 역사를, 네가 목도했던 그 순간들을.
하지만 그게 전해진 방식은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말해주려고 해.
옛날에 쓰인 규칙이 쓸모가 없으면, 어겨도 상관없는 법이잖아?
그리고 새로운 규칙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게 옳은 도리지.
네 영혼을 물들일지도 모르는 어두웠던 시절의 너, 네 자아의 조각.
모두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잊히는 게 좋은 역사도 있는 법이지만...
네 이름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야.
To be Continued...
신에게 규칙 따윈 없어.
규칙조차 신 이 만드는 거니까.
법 과 질서 는 신 의 의지에 따라 세워진 거야.
'자연'의 신도 있고, '허무'의 신도 있지.
위대한 이름을 가진 위대한 신들, 멍청한 신들과 감히 말할 수 없는 이름을 지닌 신들.
그리고, 우리 인간 신들.
나는 여덟 번째 . 혜안 이야.
그런데 우리 작은 친구, 내 진명을 감히 알게 되다니.
비밀 이야기를 엿들었구나?
조형자, 초월자, 추적자. 그게 바로 '나' . 완벽하고, 무한하며, 전지한 존재.
이걸 '신' 이외에 어떻게 표현하겠어?
그리고, 이 신께서는 아량이 넓어서 말이야...
이 바래고 찢어진 장막의 세계를 다시 이어 붙이고 싶단 말이지.
그런데, 이 세계는 자꾸 무너져 내리고 말아.
아, 우리 '자매님'과 그 소중한 친구의 모습이 '다른 눈'에 비치고 있네.
죽어가는 아르케아...
이 세계를 헤쳐 나가고 있는 모습이.
바보들이야. '신성'을 버리고 '삶'을 택하다니.
아르케아와 같은 선택을 했어. 즉 '죽음' 을 받아들였다는 뜻이야.
슬프기도 해라.
있지, '나'는 기억해.
그 옛 역사를, 네가 목도했던 그 순간들을.
하지만 그게 전해진 방식은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 이야기를 말해주려고 해.
옛날에 쓰인 규칙이 쓸모가 없으면, 어겨도 상관없는 법이잖아?
그리고 새로운 규칙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게 옳은 도리지.
네 영혼을 물들일지도 모르는 어두웠던 시절의 너, 네 자아의 조각.
모두 잊어버리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그렇게 잊히는 게 좋은 역사도 있는 법이지만...
네 이름만큼은, 절대로 잊지 않는 게 좋을 거야.
To be Continued...
[1]
20-7 스토리 열람 이후, 혜안의 권능이 활성화 된 상태.
[2]
제자인 내가 있는 방향으로
[3]
내가 말했어. 나도 참, 어지간히도 귀여워야지.
[4]
여섯 번째. 그리고 라크리미라.
[5]
아득히 높은 곳에 있는 권능이 기공을 가지고 놀며 청록빛 꽃잎 수백 개를 만들어냈어. 워낙 흔히 있는 일이니 별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꽃잎을 다른 쪽으로 날려 보낸다든지, 그렇게 해서 같이 놀아줄까? 같은 생각은 잠시 했지.
[6]
나는 불평했어. 그런 재미없는 작업은 몇 번이고 해왔으니까. 그런데 아직 마을 주변에 활발하게 움직이는 짐승들이 몇 있었거든. 한 번 쓰러뜨리는 대신 길들여볼까 생각하고 있었어. 재미있는 게 없으면 스스로 찾아야지.
[7]
내가
[8]
나의
[9]
그러고 나서 서로 두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지.
[10]
하지만 신념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어.
[11]
우리는 언제나
[12]
당시의 우리들은
[13]
순종했어, 신에게.
[14]
닿으리라.
[15]
계획을 끝맺기 위함이었어.
[16]
우리
[17]
덧없이 짧게
[18]
여섯 번째
[19]
고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