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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WBSC 프리미어 12/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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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일정
본선 조별리그 [[2015 WBSC 프리미어 12/조별 리그/A조|
A조
]] · [[2015 WBSC 프리미어 12/조별 리그/B조|
B조
]]
결선 라운드 [[2015 WBSC 프리미어 12/결선 토너먼트|
8강전~결승
]]
관련 문서
대회 준비 · 논란 · 도쿄 대첩


1. 개요2. 대회 진행 관련
2.1. 막장스러운 심판 배정2.2. 시상식
3. 일본에 대한 어드밴티지
3.1. 타국을 배려하지 않는 일정
4. 한국의 반응5. 기타

1. 개요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벌어진 논란을 다루는 문서.

아무리 초대 대회라고 해도, WBSC에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대항마로 내세운 것 치고는 대회 진행이 매우 미숙했다. 더군다나 개최국이자 후원사의 국가이기도 한 일본에게 홈 어드벤티지를 넘어 노골적으로 밀어주기를 한 대회나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이렇게 대회가 졸속이 된 이유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 경기가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면서, IBAF IOC로부터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보조금 중단으로 순식간에 재정난에 빠진 IBAF는 국제대회 개최는 고사하고, 조직 유지까지 위협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IBAF가 'SOS'를 친 곳이 바로 메이저 리그 사무국이었다.

그러자 메이저 리그 사무국은 IBAF에 여러 지원을 해주는 조건으로 자신들이 개최하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IBAF가 인정하는 ‘유일한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로 격상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IBAF가 개최하던 ‘ 야구 월드컵’을 폐지하도록 유무형의 압력을 넣었다.

어찌됐든 IBAF는 메이저 리그 사무국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오랜 전통의 ‘야구 월드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WBC가 '유일한 세계야구선수권대회'로 인정받게 됐다. 덤으로 역시 또다른 아마추어 세계 대회인 대륙간컵까지도 같이 사라졌던 걸 보면 이때 메이저 리그 사무국은 세계 아마추어 야구까지 조종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지 몰랐지만...[1]

이후 IBAF는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계속 살아남고자 IOC의 조언을 받아들여 국제소프트볼연맹(IFS)과 통합해 세계야구소프트볼 총연맹(WBSC)을 결성했다. 진통 끝에 태어난 WBSC는 세계야구 저변 확대와 올림픽 정식종목 복귀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했다. 결국 WBSC는 “과거처럼 세계야구를 관장하려면 명예와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그러려면 국제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안을 내놓았기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프리미어 12는 WBSC가 과거처럼 자신들이 세계야구를 관장한다는 명예와 권위를 되찾고, 협회 운영비를 벌기 위해 출범한 이벤트 대회였던 것이다.

WBSC는 프리미어 12를 준비할 때부터 일본을 최대 파트너로 고려했다. 메이저 리그 사무국이 철저한 외면으로 일관하면서 일본을 ‘대안 돈줄’로 삼은 것이었다. 일본도 프리미어 12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프리미어 12만큼 ‘돈 되는 이벤트’도 드물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2017년 4회 WBC 우승을 목표로 ‘사무라이 재팬’이란 이름의 대표팀을 출범한 터였다. 하지만 말이 WBC 우승이지, 일본야구기구(NPB)는 대표팀을 상설화해 큰 수익을 올리는 게 진정한 목표였다. 실제로 NPB는 ‘사무라이 재팬’을 통해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동안 40억 엔(약 376억 원)의 스폰서비를 거둬들이는 걸 목표로 했는데 일본 메이저 항공사인 ANA와 3년 5억 엔의 스폰서 계약을 맺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

문제는 ‘사무라이 재팬’이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는 데 있었다. 올림픽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된 뒤 ‘사무라이 재팬’이 활약할 수 있는 국제대회는 WBC가 유일했다. 하지만, WBC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라 한계가 있었다. 거액의 스폰서비를 받으면 그만큼 스폰서들을 노출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사무라이 재팬’는 어떻게든 대중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국제무대에 서야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대회가 프리미어 12였다.

‘세계 야구 최강자를 가리자’는 프리미어 12의 슬로건은 ‘사무라이 재팬’에겐 더없이 훌륭한 구호였다. 특히나 2013년 3회 WBC에서 NPB는 ‘사무라이 재팬’ 관련 사업으로 3억 엔(약 28억 원)의 흑자를 기록한 바 있기에 프리미어 12에서도 큰 수익이 예상됐다.

일본야구계는 WBSC의 ‘우리와 함께 대회를 주최하자’는 달콤한 유혹을 거절하지 않았다. 양측은 ‘전체 대회 일정을 일본에서 치르자’는 데 합의했다. 일본이 주도적으로 대회를 이끌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WBSC는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순조로웠던 양측의 밀월관계는 스폰서 수익 배분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WBSC는 “우리가 메인 주최자인 만큼 스폰서 수익 대부분을 우리가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일본은 “대회 경비를 대부분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만큼 스폰서 수익을 우리가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고 맞섰다.

결국 양측은 의견 조정에 실패했으며, 개막전과 4강전 그리고 결승전만 일본에서 치르고, 나머지 대회 일정은 타이완에서 소화하는 것으로 대립을 매듭지었다. 그렇다고 일본 입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개막전이 뜬금없이 삿포로 돔에서 열리고, 심판 배정과 공인구 사용 등에 일본이 개입할 수 있었던 배경엔 이른바 ‘ 잽머니’에 고분고분했던 WBSC의 협조가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2. 대회 진행 관련

대회 진행이 매우 미숙하다. 경기 시간도 평일 오전에 잡질 않나, 직전 경기와 시간대를 맞추지 않아 연습 한번 못 해보고 경기장에 들어서질 않나, 동선도 이상하게 짜서 선수들이 불만을 표시하기도. 관련 기사 게다가 8강전을 개최할 구장을 8강이 확정된 지 수시간 후인 11월 16일 밤 1시경에야 비로소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캐나다 대 멕시코"와 "쿠바 대 한국" 경기는 타이중에서,[2] "미국 대 네덜란드"와 "일본 대 푸에르토 리코" 경기는 타오위안에서 열렸다.

경기 운영측의 전반적인 일정 조율이 매우 엉망진창이다. 경기를 하기 전날에도 어디서 경기를 하는지, 몇 시에 경기를 하는지조차 고지하지 않았으며 경기 직전 갑자기 경기장을 바꾸기도 했다. 한국으로 치면 사직 야구장에 외국인 선수들을 모아놓고 대전으로 갑자기 경기 구장을 옮기는 식이다. 이에 한국 기자들이 따지자 '다른 나라들은 다 조용한데 왜 한국만 이렇게 난리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문제는 한국의 비판이 타당한지 안 한지가 중요한 거지, 누가 말했느냐 몇 명이 말했느냐에 집중하는 것은 본래의 논점을 흐리고 피하려는 물타기 논리에 불과하다.

KBO 리그와는 달리 대회 규정상 합의판정을 요청할 수 없는 경기다. 당연히 판정에 대한 불만도 여러 경기에서 나오고 있으며, 특히 B조 5차전 경기였던 한국 대 미국의 경기에서는 연장 10회,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오심이 나와 불만을 샀다. 그대로 이닝을 종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세이프가 선언되어 그대로 결승점을 내주게 되었다. 글러브에 발이 얹혔는데 베이스에는 닿지도 않을 정도로 명백한 오심이 나와 빈축을 샀다.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5111601001739200113822.jpg [3]

심지어 4강 한국 : 일본 경기에서 대한민국 SBS 해설진에게 관중석 한 복판에 있는 중계부스를 준 것 정우영 캐스터의 트윗으로 알려졌다. ## 다른 중계부스 2개가 비어있음에도, 일부러 일본 관중 틈에서 중계하도록 한 것. 이 때문에 야구 중계 도중에도 관객의 목소리와 혼선이 잦았고, 이승엽 해설은 9회초 이대호의 역전 안타 후에 "관중들이 쳐다보네요."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2.1. 막장스러운 심판 배정

4강 한일전에서 일본인 심판이 배정되었다. KBO 사무국 측에서 조직위에 이를 항의하자 규정상 주심과 루심 외에는 상관 없다면서, 조직위는 심판부에 간섭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물론 4강전에서는 좌선심이 일본인이었지만, 그 이전에 조별리그 미일전에서는 1루심이 일본인이었다. 아니, 아예 심판 배정 자체가 답이 없었다. 일본이 치른 조별리그 5경기 중 3경기에서, 그리고 8강전에서도 일본인 심판이 배정되었다. 물론 조별리그에서는 좌선심 우선심 따위는 없었다.

여기까지면 일본에 대한 어드벤티지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자국 심판이 자국 경기를 본 것은 일본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었다. 미국은 조별리그 한번, 그리고 8강, 4강, 그리고 결승전까지 네번이나 자국 심판의 심판 속에 경기를 치렀고, 공동 주최국 대만도 2번이나 자국 심판이 자국 경기의 심판을 맡았다. 그 밖에 캐나다 한번, 이탈리아 한번이 있었다. 이번 대회가 총 합 38경기인데 자국 심판이 자국 경기를 본 것만 해도 13경기로 비중 또한 자그마치 1/3을 넘는다. 그야말로 대회 운영이 답이 없다.

자국 심판이 자국 경기를 보는 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일본은 조별 리그 5경기 중 두 경기, 그리고 3,4위전에서까지 한국 심판을 경험해야 했고, 한국은 조별리그 단 두 경기를 제외한 전 경기에서 일본 심판을 경험해야 했다. 4강 한일전에서 대만 심판이 1루심을 봐서 국내 팬들의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캐나다는 조별리그 첫 경기때 자국심이 심판을 본 것도 본 것이지만, 이 때 심판은 3명 뿐이었다.

이런 막장스러운 심판 배정은 바로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공식 홈페이지의 조별리그 경기 결과 페이지다.

다만 축구와 다르게 야구는 국제 심판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WBC에서도 메이저리그 심판이라는 명분으로 미국 경기에 미국인이 주심을 보는 일이 흔하게 일어났듯이 프리미어12만의 문제가 아니며, 부족한 심판 숫자로 모든 경기에 모든 나라가 전혀 불만이 없게끔 심판을 배정하는 일정을 짜는 것은 쉽지 않았을 현실적인 어려움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2.2. 시상식

일본이 치른 3, 4위전이 콜드게임으로 일찍 끝나자마자, 결승전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바로 자국 선수들끼리만 따로 동메달 수여식을 진행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통상적으로 시상식은 결승전이 끝난 후에 진행되는 걸 생각하면 이건 누가 봐도 속이 뻔한 처사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

물론 FIFA 월드컵에서 3, 4위전 종료 후 바로 시상식을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스포츠 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는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 경우는 3, 4위전을 결승전과 다른 날짜 다른 경기장에서 진행하기에 그렇다. 이번 대회의 경우는 3, 4위전이 같은 날 같은 구장에서 진행했기에 변명이 될 수 없다.

특히, 일본시리즈의 경우 패배팀은 경기가 끝나고 바로 라커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상식이 끝날때까지 덕아웃 앞에 도열하여 우승팀의 시상식을 지켜보는게 관행이다. 이를 축하해주는 의미에서 같이 하는 것이 도리라는 정서가 있는 국가이기에 이는 더더욱 속보이는 처사라고 볼 수 있다.

3. 일본에 대한 어드밴티지

3.1. 타국을 배려하지 않는 일정

또한 일본이 자국의 홈 어드밴티지를 위해 타국에게 불편한 일정을 감수하게 했다는 비판이 있다.(물론, 일본은 겪지 않았다.)개막전이 삿포로 돔에서 열린 것은 그렇다 쳐도, 전날 축구팀 홈경기를 감안해서 경기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훈련 한 번 못 해보고 곧바로 경기에 들어갔다는 점이나,[4] 대만으로 이동 후에도 일본만 유일하게 낮경기가 배정되지 않았다는 점, 푸에르토리코와 8강전을 베네수엘라와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치른 타오위안에서 진행하여 구장 이동의 부담 없이 여유있게 준비하게 되는[5] 등 일본 자본이 강하게 들어간 대회여서 일본 띄워주기 대회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인천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도 개최국 한국이 낮경기를 1경기도 치르지 않은 것처럼(대만 낮경기 2경기, 일본 낮경기 3경기) 국제 대회에서 개최국이 흥행 등을 이유로 유리한 일정을 가져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므로,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말도 안되는 일정을 짠 것이 아니라면 개최국의 일정이 유리한 것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당초 일본이 대회 도중에 마음대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던 준결승 일정도 사실은 일본이 대회가 열리기 전인 9월에 미리 참가국들의 양해를 구하고 참가국들의 동의를 얻은 것이라는 기사가 있다. #

그러다가 4강전에서 각본 없는 드라마가 나오면서 그 이후 일본이 당연히 결승에 갈 줄 알고 준비했던 특혜들은 전부 한국이 가져갔다. 하루 쉬는 것이야 양 팀 다 혜택이지만, 3, 4위전은 낮 경기고, 결승전은 밤 경기다. 결승전 및 3, 4위전 대비 20일날 훈련 시간도 승리팀이 뒤로 잡혀 있어서 한국이 편하게 훈련을 했다고 한다.

4. 한국의 반응

"저희 도열할 때도 한 명이 일본 심판이더라고요. 저희 분위기는 아~이건 너무한다는 단계를 넘어서 야! 할때까지 해봐라 거의 그런 분위기였어요." - 오재원
"(일본심판 배정에 대해) 저는 사실은 별 느낌 없었어요. 아. 또 시작했구나 일본이." - 이승엽
"(중략)근데 일정이야 걔들이 마음대로 바꾸고 우승하고 싶어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저희끼리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래, 우승해라 너희 그렇게 우승하고 싶으면. 근데 너희 그렇게 하고 못하면 진짜 못하는 거다 너희 우승 못하는 거다 아무 핑계 대지 마라. 저희끼리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 김현수
SBS의 프리미어12 결산 특집 <한국 야구. 꺾이지 않는 투혼>에 따르면 선수들의 반응은 위와 같았다.

상기된 여러 운영상의 미숙함과 노골적인 주최측에의 편파적 텃세들 그리고 한국 야구계 전반에 대한 홀대 때문에 현지에 파견되어있던 기자들의 불만이 일제히 폭발해, 프리미어 12를 졸속 대회라고 비판하는 기사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또 네티즌의 여론도 매우 악화되어 '그냥 상무 선수나 대학선발팀같은 아마추어팀이나 보내자', '2회 대회는 불참하자'는 얘기가 베스트 댓글을 점령할 정도가 됐다. 또는 이 대회 때문에 취소된 아시아 시리즈를 다시 열고 앞으로는 이 대회가 열리든 말든 아시아 시리즈에나 우승팀을 내보내는 게 낫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사실 WBSC 자체가 호구로 유명한 IBAF를 계승한 단체고 또 아무런 힘도 능력도 경력도 없는 허접하기 짝이 없는 단체였으므로 이런 파행적이고 조악한 운영은 어느정도 예상된 바이기도 했다. 이 대회의 전신인 야구 월드컵이나 대륙간컵에는 원래 상무 선수들 위주 또는 그냥 대학선발팀 위주로 출전했었다. 애초에 그런 수준의 단체고 그런 수준 대회[6]였다. 네덜란드가 이 대회(대륙간컵)에 나와 한국을 10:0으로 콜드게임으로 이기는 일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신경도 안 썼던 것은 대학선발팀이 당했기 때문[7]이듯이 이 대회 자체는 언론에서도 무시하던 분위기였다.진짜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괜한 공명심으로 얻어갈 것이 전혀 없는 졸속대회에 멋대로 대대적인 참가를 결정해 대만과 일본의 동네 잔치에 얻을 것 하나 없이 열과 성을 다해 들러리만 서 준 꼴이 되도록 만든 KBO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WBSC의 실체를 아는 야구팬들은 프리미어 12의 개최 훨씬 이전부터 참가를 반대했었다. 물론 상황이 이렇게 나쁘니까 비난이 거세진 것도 있지만.

만약 2020 도쿄 올림픽에 야구가 정식종목이 된다면? 2019년에 열릴 이 대회가 올림픽 야구 예선전이 될 가능성이 많기에 위에 나오는 것처럼 아마추어를 보내긴 어려울 듯 하다. 그런데 1회 대회가 이 모양인데 2회 대회도 일본에서 치러질테고 저런 꼴이라면 올림픽에 과연 한국이 나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물론 일본이야 개최국이니 대회 탈락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진출이겠지만 대회를 이렇게 운영한다면 말이 필요할까? 사실 이 대회는 애시당초 일본이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야구를 정식 종목으로 채택하기 위해 홍보용으로 개최한 대회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정작 야구 종주국인 미국도 홀대하는데다가 결정적으로 '일본 스스로도 가장 중요한 결승전을 녹화방송으로 중계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IOC에서 과연 야구를 정식종목으로 넣을 생각이나 하겠냐?' 라는 반응이 늘어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으로 인하여 임시 정식종목까진 가능하겠지만 그 이후 대회는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는 회의적 시각을 늘렸다.

결국 11월 20일 도쿄에서 열린 WBSC 이사회에서 2020 올림픽에 야구가 임시 정식 종목(개최국 특혜로 1종목에 한해)이 된다면 2019년에 일본에서 열릴 2회 대회가 올림픽 야구 예선전을 겸한다고 확인해버렸다. 덤으로 이사회가 끝나고 이 대회가 야구를 세계에 잘 알리고 있다느니 만족할 운영을 하고 있다느니라며 정신나간 정신승리를 구사하는 발언을 했다.

이번 일 덕분에 일본이 까이면서 네이버 뉴스 댓글이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일본에 대한 인상이 더욱 안좋아지고 대부분이 높게 보던 국민성도 졸렬하다며 욕먹게 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사전에 참가국들의 동의를 얻은 준결승 일정 변경을 대회 도중에 일본이 마음대로 바꿔 버린 것처럼 사실 확인 없이 보도하는 등 언론에서 일부 논란을 부추긴 면도 없지 않아 있다.

반론에서는 한국의 라이벌인 일본이나 복병인 대만이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선수를 차출했다면 우리도 상무나 대학선발팀을 보내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애초에 올림픽에 야구의 복귀라는 공감대의 형성이 있었고 일본이나 대만 모두 한국에 되도록이면 최정예의 대표팀을 보내줄 것을 당부했고 일본은 오타니 쇼헤이, 마에다 겐타, 마쓰이를 대표팀에 넣고 대만도 양다이강 천관위 등 대표팀을 최정예로 구성하는데 우리만 상무팀을 보내면 분명히 야구팬들은 일본은 최정예인데 우리는 뭐냐며 항의할게 뻔했다.

어쨌든 한국이 우승을 한 여파로 프로야구는 그 해 800만의 관객을 동원했고 한국은 프리미어12의 초대 챔피언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남겼다.

5. 기타

일본 내 방송권을 보유한 방송사 중 지상파 중계를 담당한 테레비 아사히는 결승전을 생중계하지 않고 녹화해서 심야에 방송했다. 다른 방송사인 J 스포츠(케이블·위성 스포츠 전문 채널)에서는 결승전을 생중계했다. 테레비 아사히 문서의 사건사고 절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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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메이저 리그 사무국 때문에 두 대회가 없어졌다고 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대회 상금도 없던 이 대회는 그동안 대회 운영 자금 문제라든지 재정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대회인 2011년 파나마 대회 때도 중계 방송 수준이 엉망이 화질이나 음질이 문제를 보이는 모습을 봐도... [2] 미국과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열린 타이베이의 티엔무 구장의 조명 시설에 경기 직후 화재가 발생하면서 다음날 경기가 어려워진 결과다. 타이중은 타이베이에서 버스로 2시간 반 정도 거리에 위치한다. [3] 오심을 한 사진에 나와있는 2루심은 대만 심판이었다. [4] 일본 대표팀의 경우 당연히 삿포로 돔에서 일본프로야구 경기를 치르고 있어서 매우 익숙한데다, 선발이 삿포로 돔을 홈으로 쓰고 있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오타니 쇼헤이였다. [5] A조에서 전승 1위를 차지한 캐나다도 마지막 1라운드 경기를 치른 타이중에서 멕시코와 8강전을 치렀다. 조 1위의 특혜라면 진작 규정을 하든가 [6] 다만 국내 프로야구리그가 있기전에는 실업선발팀이 총동원하여 나가는 대회였기에 제법 인지도가 많았다.1982년 야구 월드컵 서울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우승하여 아시아 유일 우승기록을 거뒀고 당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대회 우승을 압도적으로 거둔 최강 쿠바가 불참했었다...그래도 80년대까지는 제법 야구 월드컵답게 알려지기도 했으나 차츰 아마추어 대회로 인식되면서 듣보잡이 되어버리게 된다. [7] 마찬가지로 한국 대학선발팀같은 축구팀이 동남아 지역 대회에 나가거나 친선경기를 가진 해당리그 중상위권 팀, 때론 우승팀까지 이기거나 반대로 져도 한국에서는 언론에서 기사로 찾아보기 어렵다. 야구도 마찬가지라 야구 아마추어팀이 동남아같은 야구 약체국 전지훈련가서 해당 국가팀을 이기고 와도 역시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